LPGA 선수들의 잇단 은퇴와 ‘골프 무상(無常)’
지난 22~25일(미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GC(파72)에서 열린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은 올 시즌 35개 대회 중 34번째 대회지만 사실상 시즌 최종전이다. 총상금이 1100만 달러에 달하고 우승상금만 400만 달러로 일반대회의 10배에 가깝다. 12월 5~8일 같은 장소에서 그랜드 손톤 인비테이셔널 대회가 열리지만 남녀선수가 팀을 이뤄 경쟁하는 이벤트성 대회다.
1라운드에서 안나린이 8언더파로 강력한 우승후보 엔젤 인에 1타 차이 단독선두에 올라 지난해(양희영 우승)에 이어 한국선수 2연패 기대를 모았으나 우승컵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대역전극을 펼친 태국의 지노 티티쿤(21)이 차지했다.
마지막 라운드 16번 홀까지만 해도 2타 앞선 엔젤 인(26·미국)의 우승이 예견됐었다. 라운드 내내 엔젤 인은 탄탄한 피지컬에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했다. 마지막 두 홀에서도 그는 견실한 플레이를 펼쳤다. 우승의 향방은 그의 실수가 아닌 티티쿤의 신들린 듯한 샷이 결정지었다.
티티쿤은 17번 홀(파5)에서 약 4.5m 거리의 이글 퍼트를 성공시켜 공동선두로 올라선 뒤 18번 홀(파4)에서 세컨샷을 홀 1.5m 거리에 붙여 버디로 연결했다. 합계 22언더파 266타. 2021년 데뷔 후 4승째다.
에인절 인은 17번 홀에서 티티쿤의 이글 성공 후 1m 남짓한 버디 퍼트마저 놓쳐 통한의 1타 차 역전패를 당했다.
이 대회 전까지 올 시즌 205만 9309달러를 벌어 상금랭킹 7위를 달리던 티티쿤은 우승상금 400만 달러를 보태 LPGA투어 사상 최초로 600만 달러를 돌파하며 상금 랭킹 1위에 올랐다.
티티쿤은 골반과 대퇴부 회전에 의한 샷 능력에서 LPGA투어 최고라 할만하다. 장타의 비결이다. 파5 17번 홀에서 이글을 낚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매 대회 파5 홀 성적으로 별도 상금을 지급하는 AON 리스크 어워드 부문에서도 1위에 올라 보너스상금 100만달러도 챙겼다.
리디아 고가 3위(17언더파), 인 뤄닝이 4위(16언더파), 안나린은 15언더파로 넬리 코다와 함께 공동 5위에 올랐다. 지난해 챔피언 양희영은 최혜진, 후루에 아야카(일본) 등과 공동 8위(13언더파), 2020, 2021년 우승자 고진영은 공동 12위(12언더파)로 마쳤다.
유해란은 합계 6언더파 272타(공동 35위)로 마쳐 18홀 평균 최저타 선수에게 수여하는 베어 트로피를 1타 차로 후루에 아야카에게 내줬다. 신인상에 도전했던 임진희도 일본의 사이고 마오에게 밀렸다.
대상격인 올해의 선수상은 7승을 거둔 넬리 코다에게 돌아갔다. 통산 15승째.
희비가 교차한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을 마치고 선수들이 올 시즌을 마무리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가운데 3명의 선수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미 풀타임 선수로 뛰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렉시 톰슨(32·11승)과 은퇴를 분명히 한 앨리 유잉(29·3승)이 대회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고 대회 마지막 날 마리나 알렉스(34·2승)가 은퇴 대열에 합류했다.
이로써 올해 은퇴했거나 은퇴를 선언한 선수는 모두 7명으로 늘어났다. 은퇴 또는 은퇴선언 선수 명단에는 유소연(34·6승) 김인경(36·7승) 브리타니 린시컴(39·8승) 안젤라 스탠포드(46·7승) 등이 포함돼 있다. 전에 비해 은퇴선수들의 나이가 낮아지고 아직 경쟁력이 있는 선수까지 은퇴대열에 합류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카 소렌스탐(54)의 경우 34세 때인 2004년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고 4년간 선수로 뛰며 메이저 3승을 추가, LPGA투어 통산 72승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호주의 캐리 웹(50)은 41승을 거둔 뒤 41세 때인 2015년 은퇴 후 주니어선수 육성에 헌신하고 있다. 2002년 데뷔 후 통산 27승을 거두고 158주간 세계랭킹 1위를 지킨 멕시코의 국민영웅 로레나 오초아(43)는 멕시코 항공회사 사장과 결혼하면서 은퇴했는데 그때 나이가 29세. 1998년 LPGA투어에 데뷔한 박세리(47)는 18년간 25승을 쌓은 뒤 2016년 은퇴,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승수나 수입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피할 수 없지만 체력의 한계, 골프에서 얻는 즐거움이나 스트레스의 정도가 선수들에게 은퇴를 고민하게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지구촌 곳곳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LPGA투어로 모여들면서 우승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것도 선수들에게 중압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최고 경지의 선수들도 골프의 무상성(無常性) 앞에선 어쩔 수 없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