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의 인수봉 암벽등반 “의대길” 개척 4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이차까지 간 후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일요일인 오늘 그 멤버랑 북한산 기념등반이니 서울의대 OB 산악반 회장인 내가 빠질 수가 없다.
늘 모이는 장소인 그린파크 호텔 앞 미니수퍼에서 9시에 만나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는데
오늘따라 휴일 아침인데도 고려대 앞에서 무슨 학내 행사로 밀리고 우이동 경전철 공사로 또 밀린다.
가다가 본 우스운 간판 하나 “돼지가 난다” 그려 논 것은 날개달린 돼지 이다.
날라서 입으로 들어 온다는 애기인지.
“수유리 장미원” 앞을 지날 때 그 새 버스정류장 이름이 바뀌었다. “인수동 장미원”으로,
미국에 있는 나의 대학동기 집이었는데 재개발로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살던 친구도 찾을지 모르겠다.
십 분을 늦게 들어가니 편의점 커피를 마시다 한잔 뽑아 주는데 이만 하면 맛도 훌륭하다.
내가 커피를 맛 본 것은 언제부터일까? 하고 생각을 하여보니 50년대 미군 C-ration의 쓴 커피가 처음 아니었을까?
산행을 시작한다.
MT를 많이 하는 우이령계곡 옆으로 영봉을 향하여. 먼저 육모정고개를 향하여 올라간다.
오른쪽은 북한산 둘레길 가는 안내 표지이다.
거리는 멀지 않으나 육모정고개 오르는 길은 경사가 만만치 않다.
오른쪽으로는 도봉산이 보이고
처음 만나는 용덕암.
선두는 무엇이 바쁜지 저 만치 앞서 가고 있다.
나야 오늘 가는 코스를 잘 아니까 쉬엄쉬엄 사진까지 찍어 가면서 간다.
육모정, 나의 군대친구가 묻혀 있는 곳, 아니 유골이 뿌려져 있는 곳이다.
처음 국방부직할 정보부대에 발령을 받았을 때
"유소령은 몇년 생이지?"
"48년생입니다"
"내가 입대한 해로구먼"
대위로 예편한 후 계속부대에 남아 문관으로 부이사관 자리인 병기과장(수송)을 하신 분.
그 후에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었는데.
가만히 서서 돌아가신 분을 추모한다. 아직도 나와 관계는 끝나지 않은 분,
87년 여름 용산병원의 나에게 왔을 때 간의 2/3를 차지하는 간종양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무소식.
3년 후 나도 아는 군대 친구들과 지리산 등산 중 우측 간부위 통증으로 입원하여 투병 석달 만에 정월 초 돌아가셨다.
평소 산 친구들에게 내가 죽으면 좋아하는 산에다 유골을 뿌려 달라 유언을 따라 눈 온 설악산에 가려고 준비하였더니 육모정이란다.
그제도 외국에 있는 딸과 손자가 나에게 다녀갔다.
가을의 흔적이 남아 잇는 조용한 오솔길을 지나
나무들이 바위를 지탱하나?
돌아서서 보니 멀리 수락산이 보인다.
이윽고 육모정고개이다.
오른 쪽으로는 갈 수 없게 막아 놓았으나 지금은 등산로가 폐쇄된 상장봉능선을 지나 이곳으로 올 수 있었고,
오히려 영봉에서 육모정고개 내려오는 길은 막아 두었었는데 이제는 풀려 이 아름다운 능선을 오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직 등산로가 열린지 얼마 되지 않아 훼손되지 않았다
가다가 보이는 군사시설.
저 안에 들어가보면 전망 좋고 보송보송하여 쉬고 싶은 곳이고
틀림없이 가까이에 물을 확보할 수 있어 야영도 할 수 있다.
뒤로 보이는 상장봉 연봉들
낙엽이 수북히 쌓인 등산로
앞서 가는 우리 일행들
인수봉이 ?아 올라 보인다.
오르는 능선의 조망이 좋은 곳은 감제가 쉬운 곳으로 통하여 약간은 흉물스러운 군사시설이 남아 있다.
이 시설물들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경보병특수부대 김신조일당이 내려오고 난 후 만든 서울 최외곽 방어선.
옆의 평평한 곳에서 쉬고 있는 일행들
다시 저 쇠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가운데 보이는 도로는 도선사 들어가는 길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영봉.
세차게 불던 바람도 여기는 조용하다.
거기에서 바라본 근사한 암봉인 인수봉.
인수 B를 내가 처음 올랐을때가 1966년 4월 7일,
얼음 얼어붙은 그 봉우리를 잊을 수가 있을까?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였었고, 개성의 송악산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 인수봉을 조만하면 “의대길”이 그대로 보인다.
귀바위 옆 취너스 B코스 옆의 크랙이다.
인수봉을 배경으로 후배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영봉에서 내려다 본 절벽아래.
왼쪽으로 올라가면 인수산장이 있었다.
나의 사진 찍는 모습이 그림자로 나와있네요.
하루재로 경사가 있는 내려가는 길, 전에는 여러 산행 중 사망한 산악인의 추모비가 서 있었고
쓰인 애절한 비문을 읽어보며 가슴 아파 하였으나 이제는 모두 치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첫댓글 옛날에 간종양(간암)을 가지고 3년을 살다 돌아갔다면 오래 산 것 같네요... 김신조는 유일하게 살아 남아서 김신조 일당이라는 악명을 듣고 살고 있지만, 사실 124군부대의 일원이었을 뿐으로 알거든요... 김신조는 목사로 살고 있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자식들은 자기 아버지 이름이 거명될 때 마다 괴로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