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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미래로 가라앉은
한 시절 뜨거웠던 삶들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라 캐더의 초역 소설. 피아니스트가 꿈인 ‘루시’가 고향을 떠나 도착한 시카고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성악가였던 ‘서배스천’의 보조 연주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얼음층을 깨부수고 나가려는 루시. 깊고 우울한 호수인 서배스천. 날씨는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구는 돌산 같은 ‘해리’의 삼중주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때 뜨거웠던 삶이 지나가고 그 위에 쌓이는 기억과 망각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동경하기를 그만두고 기억하기를 시작하자 삶이 시작되었다”라는 캐더의 유명한 문장을 곱씹게 한다. 쌓여가는 시간 위로 희미해지는 삶을 기억하는 일의 숭고함을 부드럽게 보여주는 캐더의 마법 같은 능력도 엿볼 수 있다.
기억에 관한 소설이자
기억 속에서 전개되는 소설
피아니스트가 꿈인 루시는 고향을 떠나 시카고에 도착한다. 우연히 국제적으로 유명한 성악가였던 서배스천의 공연을 보고 매료되어 그의 반주자가 되는 데까지 성공한다. 그때 서배스천은 생을 향한 열정이 식어 남몰래 무기력과 환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생의 기쁨이 발에” 있는 듯한 루시의 빛나는 젊음에 매료되고, 점차 둘은 인간적인 존경을 넘어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한편 고향에서 가장 부유했던 해리 고든은 루시에게 청혼하지만 루시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뿌리 박히느니 “뽑혀서 내쳐”지겠다는 마음을 품은 여자였다. 심지어 그때는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 같은 장난이라고 여기는 해리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얼마 후 유럽 투어를 떠난 서배스천이 그곳에서 불의의 사고를 맞닥뜨리고, 실의에 빠진 루시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마을에는 루시를 향한 이상한 소문이 퍼지게 되는데……. “다른 생과 감정”을 암시하는 별에 손을 뻗으며 압도되었던 루시는 “즐거운 것을 향해 서두르듯” 걸었지만 이제는 “도망치려고, 아니면 그저 몸을 혹사하려고” 걷는다.
루시는 다시 삶을 갈망할 수 있을까?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하는 열렬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만약, 만약 생 그 자체가 연인이라면? (……) 아, 이제는 알았다! 루시는 가져야만 했다. 도망칠 수 없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모든 것을 손에 넣어야 했다.(192쪽)
《루시 게이하트》는 기억에 관한 소설이자 기억 속에서 전개된다. 하나의 사건과 삶을 주도적으로 서술하는 화자가 없으며, 대부분 화자는 과거와 화해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삶과 이해의 시간차다.
서배스천은 모퉁이만 돌면 생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되살아나리라 믿지만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릴 운명”이라는 것을 씁쓸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나아가고 있는 루시를 자꾸만 불러세운다. 해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쪼그라든 현재를 살아간다.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루시에게도 자신과 함께 현재에 눌러앉자고 종용한다. 반면 루시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 다른 생과 감정”을 갈망하며 손을 뻗는 사람이다. 잠재적으로 고갈될 수 없는 미래를 헤쳐나간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으려면 ‘남자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결코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런 무례라니, 이런 모욕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루시는 젊고 튼튼했으며, 세상이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다.”(205쪽)
날씨와 기억
과거를 기억하려는 태도로서의 미래
이런 인물들을 통해 캐더는 과거를 소거하는 것보다 기억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들의 운명은 날씨에 크게 영향받는다. 루시는 “추위를 외투 삼으면” 된다고 말하며 날카로운 바람이 “뜨거운 생의 열정을” 불어넣는다고 느낀다. 꽁꽁 언 강을 스케이트로 질주할 때 생기가 넘치며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이는 서배스천과 지냈던 시카고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여름은 연습실을 내내 비워야 해서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하지 못하고, “금방 지나갈 테니까”라고 위로해야 하는 계절이다. 초록빛을 짙게 물들이며 생장하는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더 강하고 단단한 루시가, 다시 돌아간 고향에서 맞닥뜨리는 것이 꽁꽁 얼지 못해 ‘갈라지는 빙판’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루시는 “추운 날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강렬”해진다고 말했다. 이를 서배스천에게 적용시킨다면, 한때 꽁꽁 얼어붙어서 살아 있다는 강렬한 감각을 지녔으나 이제는 생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려 깊고 우울한 호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배스천은 바닥까지 긁어모으며 과거를 추억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후회뿐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면 과거의 자신으로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으리라”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자신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렇게 서배스천은 자신이 그토록 오래 들여다보면 호수 그 자체가 되었다.
해리의 삶에 날씨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해리는 바로 그 이유로 날씨와 깊게 연결된다. 날씨에 깊이 감응했던 루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그에게 루시는 “수수께끼”이자 “마음속 어둠”이었으며, 종국에는 자신이 “종신형”을 받았다고 믿게 하는 대상이었다. 번역가 임슬애는 해설에서 해리의 삶을 “루시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무지를 통과하는 사이 평생의 사랑은 달아나버렸고, 남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자기 청춘의 편린뿐이라는 사실”임을 자각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면서도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태도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캐더 역시 해리가 소설을 끌어가는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과정이 미래라는 것을 깨달은 해리는 비로소 평생의 수수께끼였던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로 돌아온다. “동경하기를 그만두고 기억하기를 시작하자 삶이 시작되었다”라고 했던 캐더의 유명한 문장을 상기해야 할 때가 지금일까.
지나간 시대를 부드럽게 재구성하는
캐더의 마법적 능력
《루시 게이하트》를 집필하던 당시 캐더는 자기 삶의 ‘청춘’이 종언을 맞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작을 집필하며 14년간 살았던 아파트에서 지하철 공사 때문에 나오게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여의었으며, 친한 친구가 신장병을 앓기 시작했다. 덧없는 세월의 무자비함이 지나간 뒤 캐더의 손에 남은 것은 상실이 아니었을까. 이를 움켜쥐고 집필한 소설이 《루시 게이하트》다. 하지만 캐더는 ‘명랑한 마음’이라는 뜻의 ‘루시 게이하트’를 주인공으로, 심지어 책 제목으로 내세우면서 상실을 껴안으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생 그 자체가 연인”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어갈 준비를 하는 루시처럼. 구하고 싸우는 와중에 “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루시처럼.
시카고를 활보하던 루시는 그곳에서 자기만의 지도를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길을 찾아갈 수 없는, 루시가 포착해낸 아름다움이 그려진 지도였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탁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문단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당신만의 빛나는 기억의 편린을 가지게 될 것이다.
P.211
루시 게이하트가 죽고 25년이 흐른 어느 겨울 오후, 해버퍼드의 선량한 주민들은 또 다른 장례식을 위해 묘지에 모였다. 수술을 받기 위해 시카고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던 게이하트씨의 시신이 고향으로 보내진 것이다. 장례식이 열리는 시간치고는 이례적인 오후 4시였으나 기차 도착 시각에 맞춰 정한 일정이었다. 급행열차로 실려 온 관은 영구차로 옮겨져(이때는 현대, 1927년이었다) 루터 교회로 운반되었고 짧게 추도식을 치른 뒤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렇게 큰 장례식이 열린 적이 언제였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게이하트 영감님으로 통한 그는친구가 많았다.
P.212
중 한 명을 가정부로 부리며 줄곧 같은 집에 살았다. 변함없이 시계방을 운영하며 클라리넷 연주도 조금씩 계속했지만, 숨이 달린다며 불평했다. 여름날의 일요일이면 이따금 오래된 사과나무밭으로 나가 연습했다. 사과나무밭은 베어내지않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길고 훌륭한 삶이었다고, 사람들은 걷거나 천천히 차를 몰고 묘지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해버퍼드에 있는 시계 중에 그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분명 손이 느리기는 했으나 솜씨 좋은 장인이었다. 오랜 손님들은 간밤에 시계태엽을 감다가 괜스레 망연해졌다. 째깍째깍, 그의 손안에 있던 작은 것은 전과 마찬가지로 똑똑하게 시간을 재고 있는데 게이하트 영감님은 시간의 흐름에서 완전히 튕겨 나간 것이다.
P.216
지루하고 공허한 삶을 산 수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해리고든 역시 열정적으로 전시 사업에, 흔히 하는 말처럼 ‘자신을내던졌다. 적십자, 식량 보존 사업 등을 벌였고 종국에는 자금 조달을 도왔던 야전병원에 가서 직접 일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8개월을 보내는 동안 아내가 은행장으로 대행하며 남편의 사업 전반을 관리했다. 그때가 고든 부인의 인생 중 가장행복한 시기였을 것이다. 사업가의 성정을 타고난 여자였다.
고든에게 외국에서 보낸 시간은 굉장히 의미 깊었다. 사람들은 돌아온 그에게서 모종의 변화를 느꼈다. 게이하트 영감님과 맺은 우정은 더 긴밀하고 따뜻해졌다. 실로 부자 같은사이였다. 가정에서 맡은 역할도 한층 능숙하게 해냈다. 부부는 전보다 잘 어울렸다. 함께 외출하고 손님을 초대해 저녁을먹었다. 매끈한 바닥과 수많은 화장실이 있는 저택의 분위기는 전처럼 냉랭하지 않았다.
P.220
그는 우체국에서 처음 루시를 보고 자기 마음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루시는 지저분한 남자들이득실거리고 사위로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천천히 아버지의 사서함 자물쇠 비밀번호를 맞추고 있었다. 문 너머로 보이는 루시의 몸이 그리는 곡선에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너무나도 작고, 너무나도 섬세하고, 너무나도 가만했다. 해리는안으로 들어가 루시를 마주하는 대신 번개처럼 뒤돌아 부리나케 떠났다. 하지만 한 손을 들고 서 있는 옆모습을 한 번흘긋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후로 매일 거리에 나설 때마다 저 멀리 지나가는 루시를바라보고 그 옆을 지나쳐야 했다. 루시의 우아함은 걱정 없고 명랑하던 시절보다 내향적인 지금 더욱더 돋보였다.
P.222
해리가 즐거움 없는 결혼 생활을 시작한 후로 1년이 흘렀고 (실로 모든 종류의 즐거움이 박탈된 결혼이라 아내는 아이도 낳지 못했기에) 마음 한쪽에 항상 루시와 함께 산다면 누렸을 삶에 관한 궁금증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루시가 한순간의 변덕 때문에, 한 조각의 간지러운 감상주의 때문에 망쳐버린 것이다. 그러니 고통받으라. 하느님은 아시거니와 자신은 고통받았으니까!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루시를 두고 길모퉁이를 벗어날 때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루시를 벌주겠다는 결심과 앙심 저변의 깊은 곳, 너무나도 깊어서 들여다볼 수도 없는 곳에는 모순적인 확신이있었다. 두 사람 모두 충분히 벌받고 나면 무슨 일이든 일어나리라는 확신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몰랐다. 어쩌면그가 보장된 미래를 다 내던지고 이 마을을 떠나게 될지도몰랐는데, 어쨌든 그와 루시 게이하트는 다시 함께하게 될 터였다.
P.226
그렇다. 그는 오래도록 마음 끓였다. 그는 강했으나 고통도그만큼 강했다. 다행스럽게도 세기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가 보급되었다. 그는 카운티 최초의 자동차 소유주가 되었고, 더 좋은 차가 나올 때마다 사고 또 샀다. 그는 가진 땅이 많았기에 도로에 살다시피 하며 여기저기로 다녔다.
주말에는 ‘악마처럼 사납게 차를 몰아 덴버에 다녀올 때가많았다. 운전하며 머릿속 생각을 중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사실상 자동차 엔진에 대고 말하는 셈이었다. 한번은 아내가 동석했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래, 종신형을 받은 셈이지.˝
P.227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루시는 몇 시간, 기껏해야 몇주 고통받았다. 하지만 자신은 영원히 고통받아야 했다. 그는루시가 어째서 플랫강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알았다.
고통과 분노가 루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았으니까. 열정과 맹렬함, 앞뒤 살피지 않고 하나의 충동에 자신의 온 존재를 오롯이 불태우는 성정, 바로 그것이 그가 루시에게서 발견한 경이였다. 루시는 감정의 불씨가 붙으면 불화살이 되어끝까지 날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세월이 흐르자 그는 마음속 어둠에 익숙해졌다. 다리를 잃은 사람이 의족을 달고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고, 땅을 어마어마하게 사들였다.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는 중이었기에 실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주의를 돌려야만 했던 시절에 분주하게 지낼 수있었다. 게이하트 씨와 다진 우정은 위로가 되었다. 일종의 응보였다. 체스판 앞에서 보내는 저녁은 그의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이하트 영감의 시계방이 마을의 그 어느 장소보다 애틋해졌다. 그들은 절대 루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루시가 앉아서 연습하던 피아노는 한구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P.229
사소한 것, 실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토록 행복해할 수있다니! 그는 그런 성정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런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해도 외면했을터였다. 하지만 잠시 루시를 통해 엿보는 것, 한순간 귀 옆으로 느껴보는 것은 좋았다. 가만히 서서 동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새가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의 옆에서느껴지는 기대감에 저릿저릿했다. 사냥복과 단단한 근육 위로 거센 봄 소나기가 퍼붓는 듯했다. 몸이 경이롭도록 자유로이 가벼워졌고, 핏속을 질주하는 불꽃에 이를 악물게 되었다.
P.236
집을 나서자 겨울 한낮의 강렬한 햇살이 마지막으로 저 밑의 마을에 내리쬐고 있었고 무성한 나무 꼭대기와 교회 첨탑이 황동처럼 빛났다. 이제 해버퍼드를 떠나는 일은 없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곳을 영영 떠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겪었다. ‘고향‘이 무엇이겠나, 결국 실망을 겪고 참아내는 법을 배우는 곳 아니겠나? 게이하트 가족이 살던 집을 떠나는길, 그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잠시 보도에 멈춰 서서 지금껏 수천 번은 족히 그랬던 것처럼 세 개의 가벼운 발자국을바라보았다. 달아나려는 발자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