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방서예자료[1366]이백(李白)의 長相思
장상사 이백 일수
장상사 이백 이수
장상사 이백 삼수
장상사 1수 해석 - 동양고전종합DB
〈한없는 그리움〉두 수 중 첫 번째 시
한없는 그리움은
장안에 있네
귀뚜라미 우물가에서 우는 가을
옅은 서리 쌀쌀하여 대자리 빛은 차다
외로운 등 희미하니 그리움에 끊어질 듯하고
휘장 걷어 달을 보며 공연히 길게 탄식하네
꽃 같은 그대는 구름 끝 저 멀리에
위에는 청명한 높은 하늘
아래는 출렁이는 맑은 물결
긴 하늘 길은 멀어 혼조차 날기 어려워
꿈에서도 가지 못할 험난한 關山길이여
한없는 그리움에
애간장이 끊기네
역주
역주1 長相思 : 악부 《雜曲歌辭》의 이름으로, 남녀 혹은 친구 사이에
오랫동안 이별하여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다.
역주2 絡緯 : 귀뚜라미이다. 귀뚜라미가 날개를 떠는 소리가
실을 잣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하여 絡絲娘 또는 紡織娘이라고도 한다.
역주3 金井闌 : 장식이 화려한 우물의 난간을 말한다.
역주4 思欲絶 : 그리움이 극점에 다다른 것을 형용한다.
역주5 美人 : 그리워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임금’‧‘聖君’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양고전종합 DB의 해석]
장상사 1수 다른 해석 - 네이버백과
長相思 애타게 그리노라
在長安 장안에서.
絡緯秋啼金井闌1) 가을 우물가에 귀뚜리 슬피 울고
微霜凄凄簟色寒2) 싸늘한 서릿발에 대자리마저 차가운데,
孤燈不明思欲絶 가물대는 호롱불 밑 상념조차 끊어질 듯
卷帷望月空長嘆 휘장 걷고 달을 보며 공연히 한숨이라.
美人如花隔雲端 꽃 같은 내 임은 먼 구름 가에 있어라.
上有靑冥之高天 위로는 까마득히 푸른 높다란 하늘
下有淥水之波瀾 아래로는 맑은 강 거센 물결.
天長路遠魂飛苦 하늘 높고 길은 멀어 마음만 헤매이며
夢魂不到關山難 꿈길에도 험한 관산(關山) 가볼 수 없구나.
長相思 그리고 그리노라
摧心肝 애간장 녹는다.
해제
한대(漢代)의 고시(古詩)에서부터 빈번하게 노래되어온
그리움[相思]의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남조(南朝) 때부터
문인들이 본격적으로 이 악부제(樂府題)로써 가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잡곡가사(雜曲歌辭) 중의 하나이다.
해설
첫 두 구절과 뒤에 나오는 "하늘 높고 길은 멀어 마음만 헤매이며,
꿈길에도 험한 관산(關山) 가볼 수 없구나.[天長路遠魂飛苦, 夢不到關山難.]"
부분을 연결시켜 볼 때, 이 작품은 일차적으로 장안(長安)에 있는 아낙이
관산(關山) 너머에 있는 낭군을 그리는 노래로 파악된다.
그러나 주석가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그리움의 대상 '미인'은 당대 임금이나
그의 측근을 암시하는 것이며, 그리워하는 주체는 작자 자신이라고 해석한다.
마치 우리나라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에서 '미인'이 임금을 가리키며,
그리움을 품고 있는 여인네는 정철 자신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작가 의도에 대한 지나친 천착은 시 본래의 맛을 해치므로 경계해야 하겠지만,
그의 강한 정치 지향성과 비흥성(比興性)을 고려해 볼 때
이 같은 해석이 견강부회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상사1 [長相思-] - 오랜 그리움
(고풍 악부 가음, 2014. 5. 26., 진옥경, 노경희)
장상사 2수 해석
日色欲盡花含烟 황혼이 스러질 때 꽃은 내를 머금고
月明如素愁不眠 달빛은 깁처럼 밝아 수심에 잠 못 이루네.
趙瑟初停鳳凰柱1) 조(趙)의 비파, 봉황 안족에 막 멈추고
蜀琴欲奏鴛鴦絃2) 촉(蜀)의 비파, 원앙 줄을 울리려 하네.
此曲有意無人傳 이 곡조에 마음 실어도 전해줄 이 없어
願隨春風寄燕然3) 봄바람에 실어서 연연산(燕然山)에 보내고저,
憶君迢迢隔靑天 하늘 저편 아득한 임 생각노라.
昔時橫波目4) 예전 곱게 흘기던 눈
今爲流淚泉 이제는 눈물 흐르는 샘.
不信妾斷腸 첩의 애간장 끊긴 것을 못 믿겠다면
歸來看取明鏡前 돌아와 밝은 거울 보면 알리라.
해제
한대(漢代)의 고시(古詩)에서부터 유래한 주제를 바탕으로 남조(南朝) 때부터
문인들이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악곡이다.
잡곡가사(雜曲歌辭) 중의 하나이다. 〈장상사1〉 참조.
해설
여인의 애끊는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안개에 싸인 듯, 달빛에 젖은 듯 아련한 그리움의 정서를 형상화한 첫 두 구와,
연주가 갓 시작되려고 하거나 막 끝나려는 순간을 포착한 뛰어난 감각의 제3, 4구는,
여성 주변을 농염하게 표현하였던 육조시(六朝詩)의 감각을 뛰어넘어 환상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다.
절절한 심정일수록 에둘러 말하는 곡진한 말솜씨가 돋보이는 마지막 두 구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지은 악부 〈여의낭(如意娘)〉의
"이즈음 내내 눈물짓는 줄 못 믿으신다면, 장롱 열어 석류 무늬 치마 보면 아시리.
[不信比來常下泪, 開箱驗取石榴裙.]"의 내용을 자기도 모르게 원용하여, 부
인 허씨(許氏)의 지적을 받고 실소(失笑)하였다는 일화가 얽힌 구절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상사2 [長相思-] - 오랜 그리움 (고풍 악부 가음, 2014. 5. 26., 진옥경, 노경희)
장상사 2수의 다른 해석
日色已盡花含煙
月明如素愁不眠
趙瑟初柱鳳凰柱
蜀琴欲奏鴛鴦絃
此曲有意無人傳
願隨春風寄燕然
憶君迢迢隔靑天
昔時橫波目
今作流淚泉
不信妾腸斷
歸來看取明鏡前.
일색이진화함연
월명여소수불면
조슬초주봉황주
촉금욕주원앙현
차곡유의무인전
원수춘풍기연연
억군초초격청천
석시횡파목
금작류누천
불신첩장단
귀래간취명경전
햇빛 이미 가시고 꽃에는 안개 끼여,
달은 밝아 흰 비단 같건만 나는 시름에 잠들지 못하네.
조 나라 여인같이 비파를 조금 타다 봉황 발을 멈추고,
촉의 사마상여처럼 원앙 거문고 곡을 타려 하네.
이 곡조에 담긴 뜻을 누구에게 알리랴,
봄바람에 실어 흉노의 연연산에나 보내야지,
푸른 하늘 바깥 멀리 있는 그대여,
전에는 눈물 글썽거리기만 하던 눈이,
지금은 눈물의 샘이 되어 흘러내리니,
내 속타는 마음 믿지 못하겠으면,
돌아와 거울 앞의 내 얼굴을 보아요.
어구(語句)
長相思 : 오래 서로 그리워함. 漢(한) 나라 때의 고시로 樂府(악부)의 제목임.
素 : 흰 비단. 生綃(생초).
趙瑟 : 조 나라 여인들이 잘 타는 비파 또는 거문고 곡조.
鳳凰柱 : 봉황 모양을 새긴,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줄을 받치는
雁柱(안주, 기러기 발 곧 줄을 고르는 기구).
蜀琴 : 촉 지방에서 타던 가야금. 한 나라 文人(문인)인 司馬相如(사마상여)가
촉의 부호 卓王孫(탁왕손)의 잔치에 초대받아 가서, 갓 과부가 된 왕손의 딸
卓文君(탁문군)의 미모에 반하여 거문고로 鳳求凰曲(봉구황곡)을 타니
과연 탁문군이 밤에 그에게 달려와 부부가 되었음.
鴛鴦 :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 암수가 서로 떨어지지 않으며 사이가 좋기에 부부간의 애정을 비유함.
燕然 : 연연산. 蒙古(몽골)에 있는 산인데 당시 匈奴(흉노)의 땅임.
迢迢 : 멀고 아득한 모양.
橫波目 : 눈물이 고여 옆으로 돌린 눈. 自流涕而橫波(절로 눈물이 흘러 옆으로 보네)〈傅毅 舞賦〉
감상(鑑賞)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을 읊은 악부의 노래 형식인 시.
첫 수의 대강은 ‘그리운 임은 장안에 있는데, 여치는 우물가에서 울고 옅은 서리에도
잠자리는 차갑네. 등불 어두우니 그리움 줄어들어 휘장 걷고는 달 보며 헛되이 탄식하노라니
고운 여인 같은 달 구름 저쪽 멀리 있구나.
위에는 푸른 하늘이요 아래로는 맑은 물결, 하늘 넓고 길은 멀어 꿈속 영혼은 고향까지 가지 못하는구나.
아아 그리워라 애끊네.’이다. 첫 수는 敍景(서경)을 중심으로 그리움을 그렸는데,
둘째 수는 抒情(서정)을 주로 하여 혼자 사는 설움을 읊었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雜體古詩(잡체고시). 7언구 대부분과 5언구 셋으로 된 6연 11구인데,
첫 수 또한 7언구 대부분과 3언구 넷으로 된 7연 13구이다.
압운은 煙, 眠, 絃, 傳, 然, 天, 泉, 前 자로 평성 ‘先(선)’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仄仄仄仄平平平, 仄平平仄平仄平, 仄仄平仄仄平仄,
仄平仄仄平平平, 仄仄仄仄平平平, 仄平平平仄仄平, 仄平平平仄平平,
仄平平平仄, 平仄平仄平, 仄仄仄平仄, 平平平仄平仄平’으로 이사부동이나
二四不同二六對(이사부동이륙대)에 맞는 구는 넷째 구, 열째 구의 둘뿐이다.
따라서 반법이나 점법은 이루어지지 않은 잡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상사 이수 제2수 [長相思 二首 第2首] - 오래 그리워하다
두 수 둘째 수 (한시작가작품사전, 2007. 11. 15.)
그림에는 其一 ~~~ 등재되어있음. 본문에는 학습을 위하여 전문을 기록합니다 ~
長相思 李白
其一
長相思 在長安
絡緯秋啼金井闌,微霜悽悽簟色寒。
孤燈不明思欲絕,卷帷望月空長嘆。
美人如花隔雲端。
上有青冥之高天,下有淥水之波瀾。
天長路遠魂飛苦,夢魂不到關山難。
長相思,摧心肝。
其二
日色慾盡花含煙,月明欲素愁不眠。
趙瑟初停鳳凰柱,蜀琴欲奏鴛鴦弦。
此曲有意無人傳,願隨春風寄燕然。
憶君迢迢隔青天。
昔時橫波目,今作流淚泉。
不信妾腸斷,歸來看取明鏡前。
其三
美人在時花滿堂,美人去後花餘牀。
牀中繡被卷不寢,至今三載聞餘香。
香亦竟不滅,人亦竟不來。
相思黃葉落,白露溼青苔。
장상사 이백
기일
장상사 재장안
락위추제금정란,미상처처점색한。
고등불명사욕절,권유망월공장탄。
미인여화격운단。
상유청명지고천,하유록수지파란。
천장로원혼비고,몽혼불도관산난。
장상사,최심간。
기이
일색욕진화함연,월명욕소수불면。
조슬초정봉황주,촉금욕주원앙현。
차곡유의무인전,원수춘풍기연연。
억군초초격청천。
석시횡파목,금작류루천。
불신첩장단,귀래간취명경전。
기삼
미인재시화만당,미인거후화여상。
상중수피권불침,지금삼재문여향。
향역경불멸,인역경불래。
상사황엽락,백로습청태。
李白 701 ~ 762 중국 당(唐)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의 대표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隴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성[四川省]인 촉(蜀)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 ·산둥[山東] ·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안릉(安陵:湖南省) ·남릉(南陵:安徽省) 동로(東魯:山東省)의 땅에 체류한 적도 있으나, 가
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 ·원단구(元丹邱) ·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백은 당시 부패한 당나라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자신의 정치적 재능으로 발휘할 기회를 바랐다.
그가 43세 되던 해인 742년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창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관직을 하사 받았다.
하지만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현종의 곁에서 시만 지어 올렸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정치적 야망과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역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나게 되었다.
창안을 떠난 그는 허난[河南]으로 향하여 뤄양[洛陽] ·카이펑[開封] 사이를 유력하고,
뤄양에서는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고적(高適)과 지기지교를 맺었다.
두보와 석문(石門:陝西省)에서 헤어진 그는 산시[山西] ·허베이[河北]의 각지를 방랑하고,
더 남하하여 광릉(廣陵:현재의 揚州) ·금릉(金陵:南京)에서 노닐고, 다시 회계(會稽:紹興)를 찾았으며,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쉬안청[宣城:安徽]에 있었다.
적군에 쫓긴 현종이 촉나라로 도망하고 그의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이 거병,
동쪽으로 향하자 그의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새로 즉위한 황자 숙종과 대립하여
싸움에 패하였으므로 그도 심양(尋陽:江西省九江縣)의 옥중에 갇히었다.
뒤이어 야랑(夜郞:貴州)으로 유배되었으나 도중에서 곽자의(郭子義)에 의하여 구명, 사면되었다(59세).
그 후 그는 금릉 ·쉬안청 사이를 방랑하였으나 노쇠한 탓으로 당도(當塗:安徽)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었다.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방식과 응시의 양태는 두보와는 크게 달랐다.
두보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에 침잠하는 방향을 취한 데 대하여,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두보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
‘성당(盛唐)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 ·시대 ·자기에 대한 커다란 기개 ·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의 부패 ·오탁의 현실에 젖어들어,
사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은 동시에 ‘만고(萬古)의 우수’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의 시문집은 송대(宋代)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의 《분류보주 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백 [李白] (두산백과)
이하=동아일보연모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138〉
하염없이 그리나니, 장안에 계신 님.
가을 귀뚜라미 우물가에서 울고,
차디찬 무서리에 대자리마저 싸늘하다.
등잔불은 저 홀로 가물거리고 그리움에 이 몸은 넋이 나갈 지경,
휘장 걷고 달 보며 괜스레 한숨짓는다.
꽃 같은 미인은 아득히 구름 저 끝에 있건만.
위로는 높다라니 푸른 하늘, 아래는 출렁이는 맑은 물결.
하늘 높고 길 멀어 혼백으로도 날지 못하고,
험난한 산에 막혀 꿈에서도 가지 못하네.
하염없이 그리다 애간장이 끊어지네.
(長相思, 在長安. 絡緯秋啼金井闌, 微霜凄凄簟色寒. 孤燈不明思欲絶, 卷帷望月空長歎. 美人如花隔雲端. 上有靑冥之高天, 下有淥水之波瀾. 天長路遠魂飛苦, 夢魂不到關山難. 長相思, 摧心肝.)
(장상사, 재장안. 낙위추제금정란, 미상처처점색한. 고등불명사욕절, 권유망월공장
탄. 미인여화격운단. 상유청명지고천, 하유녹수지파란. 천장노원혼비고, 몽혼부도관
산난. 장상사, 최심간.)
- ‘하염없이 그리다(장상사·長相思)’이백(李白·701∼762)
아득히 구름 끝을 사이에 둔 이를 그리는 밤. 귀뚜라미 울음, 차디찬 무서리,
가물거리는 등잔불과 밝은 달까지 하나하나에 그저 긴 한숨만 쏟아진다.
광활한 하늘과 강에 막히고, 변방의 험준한 산에 막혀 꿈에서라도 못 만나는
안타까움으로 끝내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노래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평생 음주와 유람을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이백의 이미지에,
이 섬세하고 애틋한 정서를 연결하기란 아무래도 낯설다.
그래서 국경지대로 출정 나간 남편을 연모하는 아내의 처지에 시인이
감정이입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꽃 같은 미인을 하염없이 그리는’
마음은 현종의 총애를 받다 조정에서 밀려난 이백의 심정이 투영된 거라 보기도 한다.
형식이 자유롭고 구어체로 소박미를 풍기는 이 시는 5·7언으로 정형화된
당시 분위기와는 다르다. 문인시가 성숙하기 이전인 한대 이후 민가의 모습이
바로 이랬는데, 호탕한 이백으로선 민가풍 소탈함이 구미에 맞았을 것이다.
그럴싸한 시제 대신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는 것 역시 민가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