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도서관
김상미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하나 더 생겼다. 삼청공원 안에 있던 매점을 리모델링해 만든 작고(규모가 206. 26㎡밖에 안되는) 아담한 도서관이다.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이름도 참 예쁘다. 삼청공원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방문하는 나의 산책 코스이다. 중요한 일이나 만남이 없는 날이면 오후 5~6시경 집을 나와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한 후 마지막 코스로 삼청공원에 가서 유일한 나의 운동(걷기와 그곳에 있는 운동기구 사용)을 한다. 너무 늦게 가 캄캄해지면 그냥 돌아오기도 한다. 가끔씩 출현하는 멧돼지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관광명소(?)로 변한 우리 동네엔 구경거리가 참 많다. 평일에도 사람들로 복작거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동네 구석구석을 누빈다(주말이면 평일의 10배쯤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 때문에 예전의 조용하고 한적한 모습 대신 이제는 동네 구석구석이 화사하고 밝게 옷을 갈아입었다. 살림집이 현저히 줄어들고 크고 작은 예쁜 가게들이 거의 다 동네를 점령(?)해 버렸다. 그래도 술집이나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가 없어 밤 10시 경쯤이면 신기하게도 그 많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다 빠져나가 버린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래도 예쁜 커피점이나 음식점, 액서사리숍 들을 감상하며 걷는 산책길이 심심하지는 않다. 때로는 지나가다 좋은 그림전을 하는 갤러리에 들러 그림 감상도 하고, 아주 오랜만에 듣는 빌리 조엘이나 보니 타일러, 로드 스튜어트 등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카페 앞에선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서서 듣는 재미는 오히려 즐겁기까지 하다. 그렇게 삼청공원에 도착하면 공원 숲길을 2~3바퀴쯤 돌고 그곳에 있는 여러 개의 운동기구를 3~5분쯤 이용하며 듣는 바람소리, 나뭇잎 속삭이는 소리…. 그것이 내가 하는 운동의 전부이다. 그런데 이곳에 작은 도서관까지 생겼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간단한 운동 후 그곳에서 책도 읽을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으니, 한가한 날엔 하루 온종일 놀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 안에 카페도 있어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엔 얼마나 그 커피 맛이 일품이겠는가.
운 좋게도 오늘이 도서관 개관 날이라니^^. 나는 안으로 들어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도서관 점검(?)부터 했다. 입구에서 보면 1층이고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지하 1층이 있는 아주 작고 예쁜 도서관이었다. 지하 1층엔 어린이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1층은 북카페 식으로 만들어져 어른들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어림잡아 한 5천 권쯤 되는 책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듯했다. 도서관은 주민공동체에서 주부들이 돌아가면서 자원봉사하고, 카페 수익금으로 운영될 것이라 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우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앞으로도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되도록 이곳에 와 마셔야겠다. 동네 주민으로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도서관 입구 전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창가에 앉으니 삼청공원 숲 속 풍경이 환히 다 내다보였다. 바람소리와 낙엽 떨어지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듯했다. 개관 첫날인데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도서관 안팎이 꽤 소란스러웠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책을 펼쳐놓고 서로 소곤거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우연히 들러 차 마시는 어른들(등산객들)의 말소리도….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본래 아이들이란 떠들면서 책을 읽기 마련. 그러다 차츰 저들 중에서 진짜 책벌레가 나오기도 하니까. 그리고 등산객들은 등산길이 아니면 평소엔 이곳에 들르지도 않을 테니까.
유리창 너머 공원에는 가족끼리 소풍 나온 사람들로 화기애애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도토리를 줍거나 낙엽을 줍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거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예전엔 비둘기들과 다람쥐들이 참 많았었는데… 지금은 그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삼청공원도 예전만큼 신비스럽지가 않다.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만큼 자연적이고 야생적인 모습은 점차 그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이곳에 도서관이 생겨 무지 반갑고 고맙다. 비록 도서관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에 이곳이 더 때를 타게 될지라도,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나는 진심으로 원하니까. 특히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공원에 놀러왔다가 도서관을 발견, 자연스레 책과 친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니까.
내 옆자리 꼬마 아가씨에게 화장실 다녀올 동안 짐 좀 봐달라고 했더니 환하게 고개를 끄덕인다(화장실은 공원 내 화장실을 사용해야 함으로 왕복시간이 좀 걸린다). 돌아오니 소녀가 내 책 옆에다 도토리 한 알을 놓아두었다. 오늘 자기가 주운 것인데 나에게 하나 주고 싶다고…. 나는 고맙다며 그 도토리 한 알을 주머니에 넣었다. 따뜻하고 귀엽다. 도서관 팸플릿에 보니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광고도 있어 언젠가는 나도 이곳에서 그 일을 해볼까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 숲속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며 숲이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를, 숲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오래된 그림책인지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누가 뭐래도 아이들은 우리에게 색색의 크고 작은 불꽃, 아낌없이 불붙이고 싶은 미래의 희망이니까.
―계간 『시에』 2013년 겨울호
김상미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