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의 남단 코르사코프 항구에 있는 망향의 언덕. 지난 역사의 아픔을 모르는 현지의 어린이들이 망향의 탑에서 천진하게 뛰어놀고 있다. 조봉권 기자
러시아 사할린섬의 남쪽에 있는 사할린주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차를 타고 40분쯤 다시 남쪽으로 달려가면 작은 항구도시 코르사코프가 있다. 코르사코프 남단에 바다를 향해 작은 언덕이 하나 봉긋 솟아 있다. 사할린에 사는 한민족 동포들은 이곳을 '망향의 언덕'이라 부른다.
망향의 언덕에는 2007년 한국의 민간단체 한강포럼이 주도해 건립한 높이 5m의 탑 하나가 하염없이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망향의 탑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전쟁에 광분해 있던 제국주의 일본은 이곳 사할린 남부를 장악하고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해 끌고 왔다.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온 조선인은 주로 경상도 출신이었는데 그 숫자가 7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45년 8월 15일 역사의 사필귀정에 따라 일제가 패망했고, 그때까지 사할린에 있던 한인 강제징용 노동자 4만여 명은 지긋지긋한 고생을 끝내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기대에 부풀었다.
'1945년 8월, 애타게 그리던 광복을 맞아 동토의 사할린에서 강제 노역하던 4만여 명의 동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 코르사코프 항구에 몰려들었습니다./그러나 일본은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분들을 내버린 채 떠나가 버렸습니다./소련 당국도, 혼란 상태에 있던 조국도, 이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짧은 여름이 지나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이분들은 굶주림을 견디며/고국으로 갈 배를/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망향의 탑에 새겨진 김문환 시인의 글 중)
하지만 '고국으로 갈 배'는 끝내 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몇 년을 코르사코프에 눌러앉아 기다리다가 수천 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고국이 그리워 미쳐 죽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68주년 광복절 직후였던 지난달 17~21일 사할린을 찾아 한민족동포들의 '오늘'을 취재했다.
■ 동포 1세대 90세 김윤덕 옹
- "귀국 권유 받았지만 가족·친구 선택" - 스무살에 아버지 대신해 끌려와 손자·손녀 15명 등 일가 이뤄
사할린에 남은 한민족 동포들은 이 동토의 섬에 정착했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뤄 후손을 낳았다. 1959년 당시 사할린의 한민족 인구는 4만2000여 명에 달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정부가 사할린 동포 1세대를 고국으로 모셔 오는 영주귀국사업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4500여 명이 돌아왔다. 현재 사할린의 한인 동포는 약 2만5000명. 주류인 러시아민족을 제외하면 여전히 규모 면에서 제1의 소수민족이다.
"1923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지. 일본놈들이 강제징용을 한창 하던 1943년에 아버지를 대신해서 사할린으로 끌려왔지. 여기 도착한 게 12월 17일, 잊지도 못해. 일본 아오모리를 거쳐 사할린에 도착하자마자 탄광에서 탄 캐는 일에 동원됐는데, 고생 고생…그 고생은 이루 말로 다 못하지."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외딴 마을인 시니고르스크에서 만난 김윤덕(90) 옹은 사할린 한인 동포 1세대이다. 그는 나이 스물에 영문도 모른 채, 약소국가의 청년이라는 이유 하나로 만리타향 사할린으로 왔다. "꼬르싸까(김 옹은 코르사코프를 이렇게 불렀다)에 도착해서 첫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와 보니 집이 하나도 안 보여. 그래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누가 말해주더라고.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집들이 파묻혀버려 굴뚝만 보이는 거라고. 춥고 배고팠고 힘든 세월이 그때부터 시작된 거라."
김 옹은 평생 시니고르스크마을에 살면서 동포 여성과 결혼해 5남매를 낳았고 손자 손녀 15명을 봤으며 증손자도 6명이나 된다. 사할린에서 일가를 이룬 것이다. '사할린 시니고르스크 김 씨'의 시조가 된 셈이다. 김 옹은 "올해 4월에 아내가 저세상으로 갔다"며 허전하고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 옹은 우리 말을 유창하게 했다. 사할린에서 듣는 그의 짙은 경북 사투리는 정겨웠다.
"자식들이 조선말을 잊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손자 손녀들은 한국말을 아예 못 해. 그 점은 아쉬워." 김 옹은 "그동안 여러 차례 고국을 방문했고 한국 정부의 영주귀국 권유도 받았지만, 자식 있고 친구 있고 또 평생을 살아온 사할린을 떠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새고려신문' 배빅또리아 사장
- "한글 보존 자부심으로 신문 발행" - 취재·편집·경영 등 거의 도맡아…수 차례 위기 독자 도움으로 넘겨
배빅또리아(48) 씨는 '새고려신문'의 사장이다. "취재하고 기사 쓰고 편집하는 일을 거의 도맡아 하는" 기자이기도 하다. 그는 '새고려신문'에 '배순신 기자'라는 한국 이름으로 매주 기사를 싣고 있다. 배 사장은 사할린 한민족 동포 3세다. 그는 소수 민족 집안 출신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사할린에 단 하나뿐인 한국어신문을 이끌고 있다.
"'새고려신문'은 1949년 6월 1일에 창간호를 냈어요. 그때 제호는 '조선로동자'였죠. 창간 64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신문이죠. 1961년 '레닌의 길로'라고 제호가 바뀌었고 1991년부터 '새고려신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한민족 동포가 취재하고 기사 쓰고 한글로 찍어내는 신문으로는 러시아 전체에서 새고려신문'이 유일하다.
"사할린에서는 1964년에 마지막 조선학교가 폐교됐어요. 그 뒤 25년 만에 유즈노사할린스크 사범대학(현 사할린국립대)에 한국어 강좌가 생겼죠. 숱한 역사의 우여곡절 속에서 꿋꿋이 우리말로 발행해 온 '새고려신문'이 아니었다면 사할린에서 과연 한글이 보존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부심이 있죠."
1983년 '새고려신문' 기자로 들어와 올해로 30년째 일하고 있다는 배 사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입사 때만 해도 직원 30명에 기자만 15명이었습니다. 일요일과 월요일을 빼고 일주일에 5일 신문을 내던 시절이었죠. 그때는 당의 기관지였기 때문에 발행 환경도 안정돼 있었죠."
하지만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러시아사회가 격변하면서 '새고려신문'은 1990년대 이후 만성적인 위기 상황이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1300부가량 찍어서 사할린과 러시아 일대에 배포·발송하는데 직원은 5명입니다. 회계원, 디자이너, 사진기자, 교열기자가 한 명씩 있고 기사는 제가 거의 다 쓰죠."
배 사장은 "제가 사장을 맡은 뒤로도 경영난이 여러 번 닥쳐 폐간 위기를 몇 번 맞았는데 독자들의 도움을 살아났다"며 "지금도 사정이 매우 어렵지만 '새고려신문'을 포기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후원 및 문의 cafe.naver.com/sekoreasinmun
■ 사할린한국교육원 박덕호 원장
- "동포들에 우리말 교육이 주임무" - 18개 강좌 연 평균 400명 교육, 한국주간 신설 등 문화교류 앞장
"사할린한민족동포를 위해 한국어를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죠. 한국 문화를 이곳 동포들에게 널리 알려 한국의 얼을 심고 문화교류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축입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중심가에는 한국 교육부 재외한국교육원 산하 사할린한국교육원이 있다. 박덕호 사할린한국교육원장은 "이곳 한국교육원은 1993년에 설립돼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러시아 등이 속한 독립국가연합(CIS) 권역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소개했다.
사할린한국교육원은 사할린 동포사회를 하나로 엮어주는 중요한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어 강좌를 초·중·고급반에 걸쳐 18개 진행하고 있는데 1년 평균 수강생은 400명 정도이고 한인 동포가 70%, 러시아인이 30%를 차지한다." 박 원장은 "최근에는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동포사회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에 유학이나 취업을 가려는 젊은 층도 늘어나 할 일이 더 많아졌다"고 밝혔다.
사할린한국교육원은 한국 정부의 공식 기관인데다 현지 동포들 사이에도 신뢰도가 높다. 사할린에 관심이 있는 한국의 교육기관이나 사회단체는 먼저 교육원을 찾아 도움을 청하기 마련이다. 2003년부터 10년 동안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을 진행해 동포 청년들에게 한국 유학 기회를 주고 있는 동서대의 배수한 종합인력개발원장은 "이 프로그램을 사할린 현지에서 홍보하고 주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교육원의 도움이 매우 컸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지난해 사할린한인회, 사할린주정부 등과 협력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격년제 한국주간 행사를 신설했고 오는 10월 11~13일 열리는 한국축제도 규모를 키워 부산시립무용단도 초청했다"며 "한민족 동포뿐 아니라 러시아인 사회와도 문화교류를 넓혀 우리 동포의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