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시모음 101편 ☆★☆★☆★☆★☆★☆★☆★☆★☆★☆★☆★☆★ 《1》 그대 침묵으로 바람이 되어도
이해인
눈을 감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사람 그대 침묵으로 바람이 되어도 바람이 하는 말은 가슴으로 들을 수가 있습니다. 아침 햇살로 고운 빛 영그는 풀잎의 애무로 신음하는 숲의 향연은 비참한 절규로 수액이 얼어 나뭇잎이 제 등을 할퀴는 것도 알아보지 못한 채 태양이 두려워 마른 나뭇가지 붙들고 메말라 갑니다. 하루종일 노닐 던 새들도 둥지로 되돌아갈 때는 안부를 궁금해하는데 가슴에 품고 있던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은 날 있겠습니까 삶의 숨결이 그대 목소리로 젖어 올 때면 목덜미 여미고 지나가는 바람의 뒷모습으로도 비를 맞으며 나 그대 사랑할 수 있음이니
그대 침묵으로 바람이 되어도 바람이 하는 말은 가슴으로 들을 수가 있습니다 ☆★☆★☆★☆★☆★☆★☆★☆★☆★☆★☆★☆★ 《2》 그대에게 고운 향기가 되리라
이해인
초승달이 노니는 호수로 사랑하는 이여 함께 가자
찰랑이는 물결 위에 사무쳤던 그리움을 던져두고서
꽃 내음 번져오는
전원의 초록에 조그만 초가 짓고 호롱불 밝혀 사랑꽃을 피워보자구나
거기 고요히 평안의 날개를 펴고 동이 트는 아침 햇살타고
울어주는 방울새 노래 기쁨의 이슬로 내리는 소리를 듣자구나
사랑하는 이여 일어나 함께 가자
착한 마음 한아름
가득 안고서 나 그대에게 황혼의 아름다운 만추의 날까지
빛나는 가을의 고운 향기가 되리라 ☆★☆★☆★☆★☆★☆★☆★☆★☆★☆★☆★☆★ 《3》 그리운 등불 하나
이해인
내 가슴 깊은 곳에 그리운 등불 하나 켜 놓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 언제든지 내가 그립걸랑 그 등불 향해 오십시오.
오늘처럼 하늘빛 따라 슬픔이 몰려오는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 위해 기쁨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삶에 지쳐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 위해 빈 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가슴이 허전해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한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의 좋은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대 내게 오실 땐 푸르른 하늘 빛으로 오십시오.
고운 향내 전하는 바람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그대 내게 오시기 전 갈색 그리운 낙엽으로 먼저 오십시오.
나 오늘도 그대 향한 그리운 등불 하나 켜 놓겠습니다. ☆★☆★☆★☆★☆★☆★☆★☆★☆★☆★☆★☆★ 《4》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이해인 먼 하늘 노을지는 그 위에다가 그간 안녕 이라는 말보다 보고싶다는 말을 먼저하자...
그대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아련한 노을함께 보기에 고맙다
바람보다, 구름보다 더 빨리 가는 내 마음, 늘 그대 곁에 있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언제나 남아 있다는 말로 맺는다.
몸과 마음이 무게를 덜어내고 싶을 때마다 오래도록 너를 그리워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벼워야 자유롭고 힘이 있음을 알고 있는 새야
먼데서도 가끔은 나를 눈여겨보는 새야 나에게 너의 비밀을 한 가지만 알려주겠니?
모든 이를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끈끈하게 매이지 않는 서늘한 슬기를 멀고 낯선 곳이라도 겁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담백한 용기를 가르쳐주겠니? ☆★☆★☆★☆★☆★☆★☆★☆★☆★☆★☆★☆★ 《5》 그리움
이해인
마르지 않는 한 방울의 잉크빛 그리움이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출렁입니다
지우려 해도 다시 번져오는 이 그리움의 이름이 바로 당신임을 너무 일찍 알아 기쁜 것 같기도 너무 늦게 알아 슬픈 것 같기도
나는 분명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잘 모르듯이 내 마음도 잘 모름을 용서받고 싶습니다 ☆★☆★☆★☆★☆★☆★☆★☆★☆★☆★☆★☆★ 《6》 기다리는 행복
이해인
온 생애를 두고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수수한 옷차림의 기다림입니다
겨울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처럼 나의 言語를 익혀 내 복된 삶의 즙을 짜겠습니다
밀물이 오면 썰물을 꽃이 지면 열매를 어둠이 구워 내는 빛을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나의 친구여 당신이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더 이상 먼 곳을 헤매지 마십시오
내가 길들인 기다림의 日常 속에 머무는 나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소임입니다 ☆★☆★☆★☆★☆★☆★☆★☆★☆★☆★☆★☆★ 《7》 기쁨 꽃 맑은 꽃
이해인
한번씩 욕심을 버리고 미움을 버리고 노여움을 버릴 때마다 그래그래 고개 끄덕이며 순한 눈길로 내 마음에 피어나는 기쁨 꽃 맑은 꽃
한번씩 좋은 생각하고 좋은 말하고 좋은 일 할 때마다 그래그래 환히 웃으며 고마움의 꽃술 달고 내 마음 안에 피어나는 기쁨 꽃 밝은 꽃 ☆★☆★☆★☆★☆★☆★☆★☆★☆★☆★☆★☆★ 《8》 기쁨 찾는 기쁨
이해인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생활 안에서 권태나 우울에 빠져들다가도 재빨리 기쁜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슬기를 구하고 싶다.
매일 보물찾기라고 하듯이 '기뻐할거리'를 찾는다면 불평의 습성도 차츰 달아나고 말테지
기쁨을 찾는 기쁨만으로도 나의 삶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안에서 만드는 기쁨은 늘 힘이 있다. ☆★☆★☆★☆★☆★☆★☆★☆★☆★☆★☆★☆★ 《9》 기쁨에게
이해인
기쁨아, 너는 맑게 흘러왔다 맑게 흘러나가는 물의 모임이구나
빠르게 느리게 높게 낮게 모여드는 강, 바다 호수, 폭포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흘러오는 너를 나는 그때마다 느낌으로 안다
모든 맑은 물이 그러하듯 기쁨아, 누구도 너를 혼자만 간직할 수 없음을 세상은 안다
그래서 흐르는 생명으로 네가 오면 나도 너처럼 멀리 흘러야 한다 메마른 세상을 적시며 흐르는 웃지 않는 세상에 노래를 주는 한 방울의 기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 《10》 기쁨이란 반지는
이해인
기쁨은 날마다 내가 새로 만들어 끼고 다니는 풀꽃반지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소중히 간직하다가 어느 날 누가 내게 달라고 하면 이내 내어주고 다시 만들어 끼지 크고 눈부시지 않아 더욱 아름다워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나누어 가질수록 그 향기다 더하네 기쁨이란 반지는 ☆★☆★☆★☆★☆★☆★☆★☆★☆★☆★☆★☆★ 《11》 기쁨이란
이해인
매인 데 없이 가벼워야만 기쁨이 된다고 생각했다
한 톨의 근심도 없는 잔잔한 평화가 기쁨이라고
석류처럼 곱게 쪼개지는 것이 기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며칠 앓고 난 지금의 나는
삶이 가져오는 무거운 것 슬픈 것 나를 힘겹게 하는 모욕과 오해 가운데서도
기쁨을 발견하여 보석처럼 갈고 닦는 지혜를 순간마다 새롭게 배운다
어느 날은 기쁨의커다란 보석상을 세상에 차려놓고 큰 잔치를 하고 싶어 ☆★☆★☆★☆★☆★☆★☆★☆★☆★☆★☆★☆★ 《12》 기차를 타요
이해인
우리 함께 기차를 타요
도시락 대신 사랑 하나 싸들고
나란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서 길어지는 또 하나의 기차가 되어 먼길을 가요 ☆★☆★☆★☆★☆★☆★☆★☆★☆★☆★☆★☆★ 《13》 깨어 사는 고독
이해인
외출했다 돌아온 나의 빈 방에 흰 무명옷을 빨아입은 정갈한 모습 말없이 날 기다려 준 고운 눈매의 너.
손짓하지 않아도 밤낮 내 방을 지키며 깨어 사는 손님인가 천장에도, 벽에도, 문에도 숨어 있다 가슴으로 파고드네.
죽고나면 또 어느 누가 이 나무침대 위에 쉬게 될까 지금은 내가 이 자리에 누워 너를 만난다.
들을수록 정다운 카랑카랑한 목소리 뽑아 네가 노래를 하면 나의 방은 신기한 바닷속 궁전이 된다.
지느러미 하늘대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나는 짜디짠 밤의 물을 마신다. ☆★☆★☆★☆★☆★☆★☆★☆★☆★☆★☆★☆★ 《14》 꼭 말하고 싶었어요
이해인
지나가는 세상 것에 너무 마음 붙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로워지라고
날마다 자라는 욕심의 키를 아주 조금씩 줄여가며 가볍게 사는 법을 구름에게 배우라고
구름처럼 쉬임 없이 흘러가며 쉬임 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라고 꼭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의 구름이라면. ☆★☆★☆★☆★☆★☆★☆★☆★☆★☆★☆★☆★ 《15》 꽃 마음으로 오십시오
이해인
꽃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 고운 자리에 꽃처럼 순하고 어여쁜 꽃 마음으로 오십시오
있어야 할 제 자리에서 겸허한 눈길로 생각을 모으다가 사람을 만나면 환히 웃을 줄도 아는 슬기로운 꽃 꽃을 닮은 마음으로 오십시오
꽃 속에 감추어진 하늘과 태양과 비와 바람의 이야기 꿀벌과 나비와 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꽃이 좋아 밤낮으로 꽃을 만지는 이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기쁨을 나누는 우리의 시간도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기다림의 꽃 마음으로 오십시오
열매 위한 아픔을 겪어 더욱 곱게 빛나는 꽃 마음으로 오십시오 ☆★☆★☆★☆★☆★☆★☆★☆★☆★☆★☆★☆★ 《16》 꽃 멀미
이해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 《17》 꽃 이름 외우듯이
이해인
우리 산 우리 들에 피는 꽃 꽃 이름 알아 가는 기쁨으로 새해, 새날을 시작하자
회리 바람 꽃, 초롱 꽃, 돌 꽃, 벌 깨 덩굴 꽃 큰바늘 꽃, 구름 채 꽃, 바위 솔, 모싯 대 족두리 풀, 오리 풀, 까치수염, 솔나리
외우다 보면 웃음으로 꽃 물이 드는 정든 모국어 꽃 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 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 봄바람 타고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 나르는 향기가 되자 ☆★☆★☆★☆★☆★☆★☆★☆★☆★☆★☆★☆★ 《18》 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이해인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테지요?
5월의 편지 대신 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 《19》 꽃밭에 서면
이해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의 사람이 되는 꽃밭에 서면
큰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속의 자디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찬 근심걱정 후련히 쏟아내고
비우고 비워서 붉게 타오르는 마음으로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사랑의 사람이 되는 꽃밭에 서면 불타는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 받고 싶다.
죄 없는 꽃들의 웃음소리 속에 ☆★☆★☆★☆★☆★☆★☆★☆★☆★☆★☆★☆★ 《20》 꽃봉오리 속에 숨겨온 그 마음
이해인
복(福)을 빈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너무 자주 하면 향기가 사라질 것 같아 꽃봉오리 속에 숨겨온 그 마음
가시를 지닌 장미처럼 삶의 모든 아픔 속에서도
고운 꽃을 피워내라는 한 송이의 기도와 격려로
그대의 꽃 선물을 받아들입니다 ☆★☆★☆★☆★☆★☆★☆★☆★☆★☆★☆★☆★ 《21》 꽃샘바람
이해인
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짐짓 모른 체 하던 어느 옛친구를 닮았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쌀쌀한 냉랭함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얄밉도록 오래 부는 눈매 고운 꽃샘바람 나는 갑자기 아프고 싶다 ☆★☆★☆★☆★☆★☆★☆★☆★☆★☆★☆★☆★ 《22》 꽃씨 편지
이해인
그대가 내게 준 꽃씨 봉지는 글씨 하나 없어도 가장 길고 확실한 사랑의 편지로 나를 설레이게 해요
꽃씨 하나 땅속에 내 마음속에 떨어져 꽃을 피울 그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나는 내내 그대만 생각할 거예요
조그만 꽃씨처럼 우리의 사랑 또한 다시 피어 열매 맺게 될 거예요 ☆★☆★☆★☆★☆★☆★☆★☆★☆★☆★☆★☆★ 《23》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해인
내가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 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 《24》 꽃을 받은 날
이해인
제가 잘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보내시다니요!
내내 부끄러워하다가 다시 생각해봅니다
꽃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는 거라고
우정과 사랑을 잘 키우고 익혀서 향기로 날리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꽃잎마다 숨어 있는 거라고-
꽃을 사이에두니 먼 거리도 금방 가까워지네요
많은 말 안 해도 더욱 친해지는 것 같네요
꽃을 준 사람도 꽃을 받은 사람도 아름다운 꽃이 되는 이 순간의 기쁨이 서로에게 잊지 못할 선물이군요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침묵 속에 향기로워 새삼 행복합니다 ☆★☆★☆★☆★☆★☆★☆★☆★☆★☆★☆★☆★ 《25》 꿈속의 꽃
이해인
오랜 세월 내 사랑하는 친구 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 친구가 어느 날 정색을 하고 다른 이의 말만 듣고 나를 마구 다그쳤지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변명도 못 하고 마음으로 끙끙 앓다 잠이 들었지 빨갛게 피 흘리는 동백꽃으로 하얗게 눈물 흘리는 매화로 그래도 사랑한다 고백하며 나는 그대로 꽃이 되고 있었지 말로 다 하지 못한 나의 생각이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지 ☆★☆★☆★☆★☆★☆★☆★☆★☆★☆★☆★☆★ 《26》 꿈을 위한 변명
이해인
아직 살아 있기에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꿈꾸지 말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꿈이 많은 사람은 정신이 산만하고 삶이 맑지 못한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 마세요
나는 매일 꿈을 꿉니다 슬퍼도 기뻐도 아름다운 꿈 굼은 그대로 삶이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도 내일의 이야기도 꿈길에 그려질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꿈이 없는 삶 삶이 없는 꿈은 얼마나 지루할까요
죽으면 꿈이 멎겠지만 살이 있는 동안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꿈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27》 꿈의 연가
이해인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겐 늘 당신이 보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오직 당신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꿈속에도 꿈을꾸는 희망으로 신발도 신지 않고 먼 길을 걸으며 마음을 닦는 동안 나의 꿈도 이만큼 맑아지고 순해져서 흰나비가 춤추네요
꿈을 잃은 이들에게 꿈을 심고 싶은 꿈 다시 꾸어도 좋겠지요 새삼 말이 필요 없는 사랑 많이 아팠기에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자유를 흰나비가 일러 줍니다
내 삶의 이유가 되어 준 당신께 이토록 고마움 마음 첫자리에 두는 것이 오늘도 변함없는 나의 꿈 나의 기도입니다 ☆★☆★☆★☆★☆★☆★☆★☆★☆★☆★☆★☆★ 《28》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향기
이해인
기쁨은 날마다 내가 새로 만들어 끼고 다니는 풀꽃반지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소중히 간직하다 어느 날 누가 내게 달라고 하면 이내 내어주고 다시 만들어 끼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크고 눈부시지 않아 더욱 아름다워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 많이 나누어 가질수록 그 향기 더하네 기쁨이란 반지는 ☆★☆★☆★☆★☆★☆★☆★☆★☆★☆★☆★☆★ 《29》 나를 부르는 당신
이해인
오를 때는 몰랐는데 내려와 올려다보니 퍽도 높은 산을 내가 넘었구나
건널 때는 몰랐는데 되건어와 다시 보니 퍽도 긴 강을 건넜구나
이제는 편히 쉬고만 싶어 다시는 떠나지 않으렸더니
아아, 당신 그래도 움직이는 산 굽이치는 강
나를 부르는 당신 ☆★☆★☆★☆★☆★☆★☆★☆★☆★☆★☆★☆★ 《30》 나를 아름답게 하는 기도
이해인
날마다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일생의 꿈은 그 과정에 기쁨을 주셔서 떠나야 할 곳에서는 빨리 떠나게 하시고 머물러야 할 곳에서는 영원히 아름답게 머물게 하소서
누구 앞에서나 똑 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춤으로서 내얼굴이 들어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눈물을 많게 하시고 생각을 빛나게 하여 웃음이 많게 하소서 나의 허물을 드러내는 용기를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음악을 듣게 하시고 햇빛을 좋아하게 하시고 꽃과 나뭇잎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하게 하소서 누구의 말이나 귀 기울일 줄 알고 지켜야 할 비밀은 끝까지 지키게 하소서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람의 참 가치와 모습을 빨리 알게 하소서 사람과의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그 사람의 좋은 점만 기억하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 쇠약하여질 때에도 삶을 허무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을 좋아하게 하소서
삶을 잔잔하게 하소서 그러나 폭풍이 몰려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소서
건강을 주소서 그러나 내 삶과 생각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질서를 지키고 원칙과 기준이 확실하며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시고 성공한 사람이 되기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 ☆★☆★☆★☆★☆★☆★☆★☆★☆★☆★☆★☆★ 《31》 나를 위로하는 날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 《32》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 《33》 나무의 자장가
이해인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 나른한 여름
눈을 감아도 몸과 마음이 모아지지 않고 멋대로 흩어지는 오후
달디단 바람이 와서 가만가만 나를 달래며 잠들게 해줍니다
초록빛 나뭇잎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나는 금방 초록빛 시원한 잠의 숲속으로 들어가 깨어날 줄을 모릅니다 ☆★☆★☆★☆★☆★☆★☆★☆★☆★☆★☆★☆★ 《34》 나비에게
이해인
너의 집은 어디니?
오늘은 어디에 앉고 싶니?
살아가는 게 너는 즐겁니? 죽는 게 두렵진 않니?
사랑과 이별 인생과 자유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늘 물어볼 게 많은데
언제 한번 대답해주겠니?
너무 바삐 달려가지만 말고 지금은 잠시 나하고 놀자
갈 곳이 멀더라도 잠시 쉬어가렴 사랑하는 나비야 ☆★☆★☆★☆★☆★☆★☆★☆★☆★☆★☆★☆★ 《35》 나의 밭에는 어떤 씨를 뿌릴 것인가
이해인
늘 열려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누워 있는 밭 그러나 누군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 있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밭
매일 다시 시작하는 나의 삶도 어쩌면 새로운 밭과 같은 것이 아닐까
밭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매일 살 수 있어야겠다. 매일이라는 나의 밭에 나는 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여러 종류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익한 명상의 씨를 더 많이 뿌리는 날도 있으리라. 아름다운 말의 씨를 뿌릴 때가 있는가 하면
가시 돋힌 말의 씨를 뿌릴 때도 있으며 봉사적인 행동으로 사랑의 씨를 뿌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행동으로 무관심의 씨를 뿌린 채 하루를 마감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의 밭 모양도 달라지는 것일게다. ☆★☆★☆★☆★☆★☆★☆★☆★☆★☆★☆★☆★ 《36》 나의 별이신 당신에게
이해인
조용히 끝난 하루를 걷어 안고 그렇게도 멀리 살으시는 당신의 창가에 나를 기대이면 짙푸른 시원의 바다를 향하여 열 리는 가슴
구름이 써놓은 하늘의 시 바람이 전해온 불멸의 음악에 당신을 기억하며 뜨겁게 타오르는 작은 화산이고 싶습니다
내가 숲으로 가는 한 점 구름이었을 때 더욱 가까웁고 따스했던 당신의 눈길
문득 우주가 새로워지는 놀라운 환희의 시심을 처음으로 내게 알게한 당신
아프도록 순수한 영혼 속의 대화를 침묵 속에 빛나는 기도의 영원함을 날마다 조심스레 일깨우는 당신이여
오직 당신을 통하여 하늘로 난 하나의 문이 열리면 나의 어둠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하고
어진 눈길 묵묵히 모아 당신이 계신 은하의 강가에서 가슴 적시옵니다 나는
언제나 함께 사는 멀리 가까운 나의 별이여 ☆★☆★☆★☆★☆★☆★☆★☆★☆★☆★☆★☆★ 《37》 나의 친구
이해인
오늘도 역시 동쪽 창으로 해가 뜨고 우린 또 하루해를 맞이했지. 얼마나 좋으니 빨랫줄엔 흰 빨래가 팔랑거리듯이 우린 희망이라는 옷을 다리미질해야겠지.
우리 웃자 기쁜 듯이 언제나 웃자. 우린 모두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행복을 향하여 웃음 웃어야 하는 거지. 계절이 가고 오는 이 흐르는 세월 속에 우리도 마찬가지로 얽혀 가겠지만 우리 변함 없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도록 하자.
친구야! 너와 나 같은 세상 아래서 만나진 것만의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서로 어깨동무를 하자꾸나. 너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까. 너의 등불이 되어 너의 별이 되어 달이 되어 너의 마스코트처럼 네가 마주보는 거울처럼 우리 서로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친구야! 우리 서로 사랑하자 우리 서로 듣기 좋고 감미로운 음악 같은 사람이 되자. ☆★☆★☆★☆★☆★☆★☆★☆★☆★☆★☆★☆★ 《38》 나의 하늘은
이해인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하늘은 희망이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까지 낸다 내가 물을 많이 퍼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 《39》 낙엽
이해인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 《40》 낯설다
이해인
나는 많이 아파 종일 누워있는데 창밖의 햇살은 눈부시고
새들의 노랫소리 그칠 줄 모르니 낯설다
너무 힘들어 문득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눈물 글썽이는데
무에 그리 즐거운지 웃고 떠드는 사람들 낯설다
삶이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를 찾아와서 자꾸
무언가를 부탁하는 착한 사람들
오늘 따라 매우 야속하다. 낯설다 ☆★☆★☆★☆★☆★☆★☆★☆★☆★☆★☆★☆★ 《41》 낯설어진 세상에서
이해인
참 이상도 하지 사랑하는 이를 저 세상으로 눈물 속에 떠나 보내고
다시 돌아와 마주하는 이 세상의 시간들 이미 알았던 사람들 이리도 서먹하게 여겨지다니
태연하기 그지없는 일상적인 대화와 웃음소리 당연한 일인데도 자꾸 낯설고 야속하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토록 낯설어진 세상에서 누구를 의지할까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잊으면서 산다지만 다른 이들의 슬픔에 깊이 귀기울일 줄 모르는 오늘의 무심함을 조금은 원망하면서
서운하게,쓸쓸하게 달을 바라보다가 달빛 속에 잠이 드네 ☆★☆★☆★☆★☆★☆★☆★☆★☆★☆★☆★☆★ 《42》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이해인
참 행복한 일입니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누군가 아픈 마음을 움켜잡고 혼자 어둠 속에서 눈물 흘릴 때
난 따뜻한 햇볕아래 있는 당신께 내 아픔 내 보이며 보다듬어 달라 합니다
그러면 당신께선 따스한 손길로 따스한 웃음으로 나의 아픔을 녹여주십니다
참 행복한 일입니다 이렇게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단 것이
누군가 세상의 힘겨움에 떠밀려 고통스럽게 허우적대는 동안
난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당신께 날 잡아 달라 손을 내밉니다
그러면 당신은 행여나 놓칠세라
내 두 손 꼭 붙잡으시고 천천히 당신 곁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난 이렇게 행복합니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으므로…… ☆★☆★☆★☆★☆★☆★☆★☆★☆★☆★☆★☆★ 《43》 내 기도의 말은
이해인
수화기 들고 긴 말 안 해도 금방 마음이 통하는 연인들의 통화처럼
너무 오래된 내 기도의 말은 단순하고 따스하다
뜨겁지 않아도 두렵지 않다
끊고 나면 늘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 통화처럼 일생을 되풀이하는 내 기도의 말 또한
부족하고 안타까운 하나의 그리움일 뿐 끝없는 목마름일 뿐 ☆★☆★☆★☆★☆★☆★☆★☆★☆★☆★☆★☆★ 《44》 내 나이 가을에 서서
이해인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 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 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도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 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 《45》 내 마음에 그려 놓은 사람
이해인
내 마음에 그려 놓은 마음이 고운 그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살 맛나고 나의 삶은 쓸쓸하지 않습니다.
그리움은 누구나 안고 살지만 이룰 수 있는 그리움이 있다면 삶이 고독하지 않습니다.
하루 해 날마다 뜨고 지고 눈물 날 것 같은 그리움도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 살아 빛나고 날마다 무르익어 가는 사랑이 있어 나의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그려 놓은 마음 착한 그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즐겁고 살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 《46》 내 마음은
이해인
믿을까 말까 용서할까 말까 하루에도 열두 번 내 마음이 변해요
믿는다더니 온통 의심뿐이고 용서했다더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 어찌하면 좋은가요?
길은 하나인데 우왕좌왕 갈피 못 잡고 방황이 뚜렷한데도 망설임으로 하루해가 가고
내 마음은 왜 이리 내 말을 안 듣는지 더없이 친하지만 변하는 마음은 마주보기 힘드네요
내 마음을 느긋이 제자리에 앉혀달라 날마다 기도하면 이루어질까 ☆★☆★☆★☆★☆★☆★☆★☆★☆★☆★☆★☆★ 《47》 내 마음의 사계절
이해인
꽃을 만나기 전 새 소리 먼저 들려오는 봄 봄이 오면 나도 삶을 새롭게 노래하는 새가 되렵니다 얼음 덮인 침묵 속에 겨울을 견뎌 더욱 맑고 투명해진 나의 사랑을 안고 봄과 같은 가벼움으로 당신께 가는 이 마음 받아 주십시오
해 아래 서 있으면 단숨에 불길로 타 버릴 것 같은 여름 여름이 오면 나도 불꽃이 되렵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 잃어버린 꿈 식어버린 열정 밖으로 불러내어 땀흘리다보면 삶은 곧 축복이 될테지요? 웃음이 폭포로 쏟아지는 기쁨을 안고 여름과 같은 뜨거움으로 당신께 가는 이 마음 받아주십시오 ☆★☆★☆★☆★☆★☆★☆★☆★☆★☆★☆★☆★ 《48》 내 안에 흐르는 시
이해인
1 내 안에 흐르는 피와 물처럼 보이지 않게 감추어 둔 생명의 말들
어느 날 시(詩)가 되어 쏟아지면 밖으로 쏟아진 만큼 나는 아프고 이로 인해 후유증이 심해도 나는 늘 행복하고
2 내 마음의 바다 위에 해초(海草)처럼 떠다니는 푸른 시상(詩想)들
힘껏 건져 올리고 나면 이미 퇴색하는 그 빛깔
끝내 햇볕을 보지 못하고 남아 있는 언어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가난하게 살아도 항상 넉넉하구나 ☆★☆★☆★☆★☆★☆★☆★☆★☆★☆★☆★☆★ 《49》 내 안에서 크는 산
이해인
좋아하면 할수록 산은 조금씩 더 내 안에서 크고 있다
엄마 한번 불러 보고 하느님 한번 불러 보고 친구의 이름도 더러 부르면서 산에 오르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조금씩 산을 닮아 가는 것일까?
하늘과 바다를 가까이 두고 산처럼 높이 솟아오르고 싶은 걸 보면
산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그냥 마음이 넉넉하고 늘 기쁜 걸 보면 ☆★☆★☆★☆★☆★☆★☆★☆★☆★☆★☆★☆★ 《50》 내 혼에 불을 놓아
이해인
언제쯤 당신 앞에 꽃으로 피겠습니까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노을 빛 바람이여
봉오리로 맺혀 있던 갑갑한 이 아픔이 소리 없이 터지도록 그 타는 눈길과 숨결을 주십시오.
기다림에 초조한 내 비밀스런 가슴을 열어놓고 싶습니다.
나의 가느다란 꽃술의 가느다란 슬픔을 이해하는 은총의 바람이여,
당신 앞에 "네"라고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떨리는 3월입니다.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 내는 뜨거운 바람이여. ☆★☆★☆★☆★☆★☆★☆★☆★☆★☆★☆★☆★ 《51》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이해인
처음으로 사랑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하늘색 원피스의 언니처럼 다정한 웃음을 파도치고 있었네
더 커서 슬픔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실연당한 오빠처럼 시퍼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네
어느 날 이별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남빛 치마폭의 엄마처럼 너그러운 가슴을 열어 주었네
그리고 마침내 기도를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파도를 튕기는 은어처럼 펄펄 살아 뛰는 하느님 얼굴이었네 ☆★☆★☆★☆★☆★☆★☆★☆★☆★☆★☆★☆★ 《52》 내가 사랑하는 너는
이해인
친구와 나란히 함께 누워 잠잘 때면 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고 싶어 불끄기를 싫어하는 너였으면 좋겠다
얼굴이 좀 예쁘지는 않아도 키가 남들만큼 크지는 않아도 꽃 내음을 좋아하며 늘 하늘에 닿고 싶어하는 꿈을 간직한 너였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엔 누군가를 위해 작은 우산을 마련해주고 싶어하고 물결 위에 무수히 반짝이는 햇살처럼 푸르른 웃음을 반짝이는 너였으면 좋겠다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애써 마음의 정리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편안한 친구의 모습으로 따뜻한 가슴을 가진 너였으면 좋겠다
한잔의 커피향으로 풀릴것 같지 않은 외로운 가슴으로 보고프다고 바람결에 전하면 사랑을 한아름 안아들고 반갑게 찾아주는 너였으면 좋겠다
나를 소중히 안겨주는 온통 사랑스러운 나의 너였으면 좋겠다 ☆★☆★☆★☆★☆★☆★☆★☆★☆★☆★☆★☆★ 《53》 내가 아플 때
이해인
내가 아플 때 내 이마를 짚어 보는 엄마의 손은 내가 안 아플 때 만져 보던 엄마의 손보다 몇 배나 더 부드럽고 따스해서 나는 금세 눈물이 핑 돕니다
내가 아플 때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조그만 크기의 하늘은 내가 안 아플 때 마음놓고 올려다본 하늘보다 몇 배나 더 푸르고 아름다워서 나는 금세 울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내가 아플 때는 후회되는 일들도 많습니다 이제 다시 학교에 가면 조그만 일로 말다툼했던 나의 짝 현아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서 활짝 핀 웃음을 선물하겠습니다
맨손 체조 할 때엔 내 하얀 두 팔을 나무처럼 더 높이 하늘로 뻗쳐올리겠습니다 ☆★☆★☆★☆★☆★☆★☆★☆★☆★☆★☆★☆★ 《54》 내가 외로울 땐
이해인
너는 네 말만하고 나는 내 말만하고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대화를 시작해도 소통이 안 되는 벽을 느낄 때
꼭 나누고 싶어서 어떤 감동적인 이야길 옆 사람에게 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나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가장 가까운 이들이 그것도 못 참느냐는 눈길로 나를 무심히 바라볼 때
내가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며 화해의 악수를 청해도 지금은 아니라면서 악수를 거절할 때
누군가 나를 험담한 말이 돌고 돌아서 나에게 도착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롭다. 쓸쓸하고 쓸쓸해서 하늘만 본다.
☆★☆★☆★☆★☆★☆★☆★☆★☆★☆★☆★☆★ 《55》 내일
이해인
부르지 않아도 이미 와 있는 너
이승의 어느 끝엘 가면 네 모습 안 보일까
물 같은 그리움을 아직은 우리 아껴 써야 하리
내가 바람이면 끝도 없는 파도로 밀리는 너 ☆★☆★☆★☆★☆★☆★☆★☆★☆★☆★☆★☆★ 《56》 너에게 가겠다
이해인
오늘도 한줄기 노래가 되어 너에게 가겠다
바람 속에 떨면서도 꽃은 피어나듯이
사랑이 낳아준 눈물 속에 별로 뜨는 나의 시간들
침묵할수록 맑아지는 노래를 너는 듣게 되겠지
무게를 견디지 못한 그리움이 흰모래로 부서지는데
멈출 수 없는 하나의 노래로 나는 오늘도 너에게 달려가겠다 ☆★☆★☆★☆★☆★☆★☆★☆★☆★☆★☆★☆★ 《57》 너에게 띄우는 글
이해인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정한 친구이고 싶다. 다정한 친구이기보다는 진실이고 싶다.
내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만남의 의미를 전해 주었다.
순간의 지나가는 우연이기보다는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할 너와 나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너와 나의 만남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진실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래, 이제 더 나이기보다는 우리이고 싶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현실을 언제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접어두자.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 《68》 너와 나는
이해인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숙명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 《59》 누군가 내 안에서
이해인
누군가 내 안에서 기침을 하고 있다. 겨울나무처럼 쓸쓸하고 정직한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목 쉰 채로 나를 부르지만 나는 선 듯 대답을 못해 하늘만 보는 막막함이여
내가 그를 외롭게 한 것일까 그가 나를 아프게 한 것일까
겸허한 그 사람은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고
나는 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막막함이여 ☆★☆★☆★☆★☆★☆★☆★☆★☆★☆★☆★☆★ 《60》 눈 내리는 바닷가로
이해인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부르고 싶으면 눈 내리는 바닷가로 오십시오
가슴에 깊이 묻어둔 어떤 슬픔 하나 아직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으면 눈 내리는 바닷가로 오십시오
차가운 눈을 맞고 바다는 더욱 고요하고 따뜻해졌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는 하얀 웃음을 죽은 이들을 위해서는 하얀 눈물을 피우며 송이송이 바다에서 꽃이 되는 눈
어느날 문득 흰 옷 입은 천사의 노래를 듣고 싶거든 죽는 날까지 짠 물 속에 겸손해지고 싶거든 눈 내리는 바닷가로 오십시오 ☆★☆★☆★☆★☆★☆★☆★☆★☆★☆★☆★☆★ 《61》 눈꽃 노래
이해인
산과 들에 밤새 흰 눈이 많이 쌓이고 내 마음엔 시를 닮은 생각들이 많이 쌓이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으니 세상 사람 모두가 흰옷을 입은 눈사람으로 나에게 걸어오네
순간마다 마음이 순결해지는 눈 나라에선 미운 사람 아무도 없고 용서 못할 사람 아무도 없네
햇빛에 녹아 사라질 때까진 너도나도 그냥 웃으면 되지 ☆★☆★☆★☆★☆★☆★☆★☆★☆★☆★☆★☆★ 《62》 눈꽃 편지
이해인
손발이 시려우니 마음마저 춥네요 내 일생 동안 받은 사랑 날마다 새롭게 눈꽃으로 피는 겨울 눈꽃 사랑 모두 아름답긴 하지만 내가 가질 수는 없기에 조금은 쓸쓸해도 자유롭네요 한겨울의 얼음 밑으로 흐르는 봄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야 잘 들을 수 있겠지요 사랑받는 그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오늘도 깨어 있는 나에게 벗을 찾는 한 마리 새가 자꾸만 말을 걸어오네요 ☆★☆★☆★☆★☆★☆★☆★☆★☆★☆★☆★☆★ 《63》 눈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니
이해인
너무 기쁠 때에도 너무 슬플 때에도 왜 똑같이 눈물이 날까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가 호수처럼 고여오기도 하고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는 눈물
차가운 나를 따스하게 만들고 경직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고마운 눈물
눈물은 묘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내 안에도 많은 눈물이 숨어 있음을 오늘 다시 알게 되어 기쁘단다 ☆★☆★☆★☆★☆★☆★☆★☆★☆★☆★☆★☆★ 《64》 마음이 마음에게
이해인
내가 너무 커버려서 맑지 못한 것 밝지 못한 것 바르지 못한 것
누구보다 내 마음이 먼저 알고 나에게 충고하네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다 욕심이에요 거룩한 소임에도 이기심을 버려야 순결해 진답니다
마음은 보기보다 약하다구요
작은 먼지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구요
오래오래 눈을 맑게 지니려면 마음 단속부터 잘해야지요
작지만 옹졸하진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진 않게 마음을 다스려야 맑은 삶이 된다고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네요 ☆★☆★☆★☆★☆★☆★☆★☆★☆★☆★☆★☆★ 《65》 마음이 아플 때
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 《66》 마지막 기도
이해인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 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가는 한 송이의 흰 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빗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 나오리라
어떻게 웃으실까 고통 속에서도 설레이는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 이는 들으실까 ☆★☆★☆★☆★☆★☆★☆★☆★☆★☆★☆★☆★ 《67》 만남의 길 위에서
이해인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제가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아름다운 축복이며 의미 있는 선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정 당신과의 만남으로 저의 삶은 새로운 노래로 피어 오르며 이웃과의 만남이 피워 내는 새로운 꽃들이 저의 정원에 가득함을 감사드립니다
만남의 길 위에서 가장 곁에 있는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멀리 있어도 마음으로 함께하는 벗과 친지들을 그리워하며 저의 편견과 불친절과 무관심으로 어느새 멀어져 간 이웃들을 뉘우침의 눈물 속에 기억합니다
깊게 뿌리내리는 만남이든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든지 모든 만남은 제 자신을 정직으로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며 인생의 사계절을 가르쳐주는 지혜서입니다
사람들의 서로 다른 모습들만큼이나 다양하게 열려오는 만남의 길 위에서 사랑과 인내와 정성을 다하신 주님
나무랄 데 없는 의인뿐 아니라 가장 멸시받는 죄인들에게조차 성급한 판단과 처벌의 돌팔매질보다는 자비와 연민으로 다가가셨던 주님
당신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사랑하는 일에서도 늘 계산이 앞서고 까다롭게 따지려드는 저의 옹졸함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습관적으로 남을 먼저 판단하고 늘상 이웃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이기적인 태도로 슬픔과 상처를 이웃에게 더 많이 주었으며 용서하는 일에는 굼뜨기 그지없었음을 용서하십시오
때로는 만남에서 오는 축복보다 작은 근심과 두려움을 더 많이 헤아리며 남을 의심하는 겁쟁이임을 용서하십시오
앞으로도 멀리 가야 할 만남의 길 위에서 저의 비겁한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당신처럼 겸허하고 자유로운 기쁨의 순례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반갑고 기쁘게 다가오는 만남뿐 아니라 성가시고 부담스런 만남까지도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깊고 높은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저는 비록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좋은 사람으로 좋은 만남을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맑게 흐르는 주님의 바다를 향해 저도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며 쉬임 없이 흘러가는 작지만 아름다운 시냇물이 되고 싶습니다 ☆★☆★☆★☆★☆★☆★☆★☆★☆★☆★☆★☆★ 《68》 말 없이 사랑하십시오
이해인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내가 그렇게 했듯이 드러나지 않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이 깊고 참된 것 일수록 말이 적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고 드러나지 않게 선을 베푸십시오.
그리고 침묵하십시오 변명하지 말고 행여 마음이 상하더라도 맞서지 말며
그대의 마음을 사랑으로 이웃에 대한 섬세한 사랑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사람들이 그대를 멀리할 때에도 도움을 거부할 때에도 오해를 받을 때에도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대의 사랑이 무시당하여 마음이 슬플 때에도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대 주위에 기쁨을 뿌리며 행복을 심도록 마음을 쓰십시오.
사람들의 말이나 태도가 그대를 괴롭히더라도 말없이 사랑하며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행여 그대의 마음에 원한이나 격한 분노와 판단이 끼어 들 틈을 주지말고
언제나 이웃을 귀하게 여기며 묵묵히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 《69》 말과 침묵
이해인
말을 할 때마다 쓸쓸함이 깊어 가는 것은 내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일까
마음 속 고요한 말을 꺼내 가까운 이들에게 소리로 건네어도 돌아오는 것은 낯선 메아리뿐
말을 하는 사이에 조금씩 빠져나간 내 꿈의 조각들은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말을 거듭할수록 목이 말라 찾아오는 침묵의 샘
이곳에 오래 머물러야 나는 비로소 맑고 고운 말 한 마디가 내 안에 찰랑이는 소리를 듣네 ☆★☆★☆★☆★☆★☆★☆★☆★☆★☆★☆★☆★ 《70》 말의 빛
이해인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며 자라는 고운 우리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푸르른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 《71》 매일의 다짐
이해인
사랑과 용서는 어쩌다 마음 내키면 하는 그런 것이 아니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의 모든 순간에
사랑이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하고 화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순간마다 깨어 있지 않으면 큰일나는데
그것이 너와 내가 살아가는 인생인 거야, 알았지? 나도 다시 알았어 ☆★☆★☆★☆★☆★☆★☆★☆★☆★☆★☆★☆★ 《72》 매화 앞에서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ㅇ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 《73》 무얼 들고 계신지
이해인
멸치 국물 우려내 맑게 끓인 콩나물국 담백한 국수 커피와 맥주 새우깡과 만두를 즐겨 드시던 엄마
“오늘은 또 무얼 먹을까?”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던 그 음성 다시 듣고 싶어요 함께 웃으며 소박한 식탁 차리고 싶어요
“나 혼자서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누구랑 나누어 먹으려고 준비하는 거지”
미안한 듯이 부끄러운 듯이 살짝 웃으시던 그 모습 다시 보고 싶어요
지금은 천상에서 무얼 들고 계신지요
엄마가 즐겨 해주시던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오늘은 먹고 싶네요
엄마의 김밥 김치찌개 계란말이 나박김치도 생각나네요 ☆★☆★☆★☆★☆★☆★☆★☆★☆★☆★☆★☆★ 《74》 무지개 속에서
이해인
오늘은 하늘 저편에서 쌍무지개가 떴습니다
수녀, 잘 있지? 기쁘게 살아야지! 일곱 빛깔의 무지개 속에서 귀에 익은 엄마 음성 들려옵니다
잘 참고 기다리면 눈물은 사라지고 일곱 빛깔의 기쁨이 떠오른다고 엄마가 웃으면서 일러 주시네요 ☆★☆★☆★☆★☆★☆★☆★☆★☆★☆★☆★☆★ 《75》 물망초
이해인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아달라고 나를 잊어선 안 된다고 차마 소리내어 부탁하질 못하겠어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내가 먼저 약속하는 일이 더 행복해요
당신을 기억하는 생의 모든 순간이 모두가 다 꽃으로 필 거예요 물이 되어 흐를 거예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 《76》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치듯 빨리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지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들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건 잊고 용서할 건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따뜻하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 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 《77》 수선화
이해인
초록빛 스커트에 노오란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의 언니 같은 꽃
해가 뜨면 가슴에 종을 달고 두 손 모으네
향기도 웃음도 헤프지 않아 다가서기 어려워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부르는 꽃
헤어지고 돌아서도 어느새 샘물 같은 그리움으로 나를 적시네 ☆★☆★☆★☆★☆★☆★☆★☆★☆★☆★☆★☆★ 《78》 수평선을 바라보며
이해인
당신은 늘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과 같습니다
내가 다른 일에 몰두하다 잠시 눈을 들면 환히 펼쳐지는 기쁨
가는 곳마다 당신이 계셨지요 눈감아도 보였지요
한결같은 고요함과 깨끗함으로 먼데서도 나를 감싸주던
그 푸른 선은 나를 살게 하는 힘 목숨 걸고 당신을 사랑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 《79》 숲에서 쓰는 편지
이해인
기다리다 못해 내가 포기하고 싶었던 희망 힘들고 두려워 다신 시작하지 않으리라 포기했던 사랑 신록의 숲에서 나는 다시 찾고 있네
순결한 웃음으로 멈추지 않는 사랑으로 신과 하나 되고 싶던 여기 초록빛 잎새 하나
어느 날 열매로 익어 떨어질 초록빛 그리움 하나 꽃과 이별한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가며 행복한 나무들의 숨은 힘
뿌리 깊은 외로움을 견디어 냈기에 더욱 깊이 뻗어가는 눈부신 생명이여 신록의 숲에 오면 우린 모두 말없는 초록의 사람들이 되네
사랑이 깊을수록 침묵하는 이유를 나무에게 물으며 말없음표 가득한 한 장의 편지를 그대에게 쓰고 싶네
어느새 숲으로 따라와 모든 눈물과 어둠을 말려주는 고마운 햇빛이여 잃었던 노래를 다시 찾은 나는 나무 같은 그대의 음성을 나무 옆에서 듣네
꽃에 가려져도 주눅들지 않고 늘 당당한 신록의 잎새들 잎새처럼 싱그러운 사랑을 우리도 마침내 삶의 가지 끝에 피워 올려야 한다고 ☆★☆★☆★☆★☆★☆★☆★☆★☆★☆★☆★☆★ 《80》 슬픈 그리움
이해인
세상 떠난 사람이 자꾸 보고싶어 못 견딜 땐 어떻게 할까 아무리 기도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한 슬픈 그리움
그 목소리 듣고 싶고 그 웃음보고 싶고 그의 손을 잡고 싶은데 하늘도 땅도 야속한 침묵이네
사람들은 아무 일 없이 즐거워하고 오늘은 바람조차 나를 위로해 주지 않네
이 슬픈 그리움 평생을 안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잠을 자면서도 그리움은 깨어있네 ☆★☆★☆★☆★☆★☆★☆★☆★☆★☆★☆★☆★ 《81》 슬픈 날의 일기
이해인
마음먹고 시작한 나의 이야기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고 바람 속에 흩어버릴 때
말로는 표현 못할 내 맘속의 슬픔과 자신에겐 길었던 고통의순간들을 내 가까운 사람이 다른 이에게 너무 짧고 가볍게 말해버릴 때
새롭게 피어나는 나의 귀한 꿈을 어떤 사람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며 허무한 웃음으로 날릴 때 나는 조금 운답니다
성자들은 자신의 죄만 크게 여기고 남들은 무조건 용서한다는데 남의 죄를 무겁게 여기고 자신의 죄는 가볍게 여기는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볼 때도 나는 조금 운답니다
슬픔은 이리도 내게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순하게 키워서 멀리 보내야 할지
이것이 나에겐 어려운 숙제입니다 ☆★☆★☆★☆★☆★☆★☆★☆★☆★☆★☆★☆★ 《82》 슬픈 날의 편지
이해인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 《83》 시간이 지나가도
이해인
시간이 가면 더러는 잊히는 그리움도 있다는데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만은 그렇지가 못하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또렷한 소리와 빛깔로 어디서나 나를 에워싸는 그 모습
금방이라도 눈물 글썽거려지는 희디흰 그리움
언제 어디서나 문을 열어 주는 어머니는 나의 집, 그리운 집 ☆★☆★☆★☆★☆★☆★☆★☆★☆★☆★☆★☆★ 《84》 씨를 뿌리는 마음
이해인
밭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 수 있어야겠다
매일이라는 나의 밭에 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여러 종류의 씨를 뿌린다
유익한 명상의 씨 아름다운 말의 씨를 뿌리기도 하고
가시돋힌 말의 씨 이기적인 무관심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내가 매일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밭도 달라지는 것일 게다 ☆★☆★☆★☆★☆★☆★☆★☆★☆★☆★☆★☆★ 《85》 보고 싶다는 말
이해인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오늘은 이 말이 새롭다
보고 싶은데
비오는 날의 첼로 소리 같기도 하고 맑은 날의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한
너의 목소리 들을 때마다 노래가 되는 말
평생을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감칠맛 나는
네 말속에 들어 있는 평범하지만 깊디깊은
그리움의 바다 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푸른 파도 밀려오고 내 마음에도 다시 새가 날고 ☆★☆★☆★☆★☆★☆★☆★☆★☆★☆★☆★☆★ 《86》 보고 싶은데
이해인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오늘은 이 말이 새롭다 보고 싶은데
비 오는 날의 첼로 소리 같기도 하고 맑은 날의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한 너의 목소리들을 때마다 노래가 되는 말
평생을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감칠맛 나는
네 말속에 들어 있는 평범하지만 깊디깊은 그리움의 바다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푸른 파도 밀려오고 내 마음에도 다시 새가 날고 보고 싶은데 ☆★☆★☆★☆★☆★☆★☆★☆★☆★☆★☆★☆★ 《87》 복사꽃과 벚꽃이
이해인
복사꽃은 소프라노 벚꽃은 메조 소프라노
두 나무가 나란히 노래를 부르다가
바람 불면 일제히 꽃잎을 날리며 춤을 춥니다.
나비와 새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꾼이 됩니다. 하하 호호 웃으며 손뼉칩니다. ☆★☆★☆★☆★☆★☆★☆★☆★☆★☆★☆★☆★ 《88》 봄 까치 꽃
이해인
까치가 놀로 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 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 《89》 봄 일기
이해인
봄에도 바람의 맛은 매일 다르듯이 매일을 사는 내 마음빛도 조금씩 다르지만 쉬임없이 노래했었지
쑥처럼 흔하게 돋아나는 일상의 근심 중에도 희망의 향기로운 들꽃이 마음속에 숨어 피는 기쁨을
언제나 신선한 설레임으로 사랑하는 이를 맞듯이
매일의 문을 열면 안으로 조용히 빛이 터지는 소리 봄을 살기 위하여 내가 열리는 소리 ☆★☆★☆★☆★☆★☆★☆★☆★☆★☆★☆★☆★ 《90》 봄 편지
이해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 《91》 봄과 같은 사람
이해인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 《92》 봄날 아침 식사
이해인
냉이국 한 그릇에 봄을 마신다 냉이에 묻은 흙 내음 조개에 묻은 바다 내음 마주 앉은 가족의 웃음도 섞어
모처럼 기쁨의 밥을 말아먹는다 냉이 잎새처럼 들쭉날쭉한 내 마음에도 어느새 새봄의 실뿌리가 하얗게 내리고 있다 ☆★☆★☆★☆★☆★☆★☆★☆★☆★☆★☆★☆★ 《93》 봄비
이해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힌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 《94》 봄이 오면 나는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아 오면 나는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고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유리창을 맑게 닦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 《95》 봄 편지
이해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 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힌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 《96》 당신 앞에 나는
이해인
당신 앞에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항아리예요 비켜 설 땅도 없는 이 자리에서 당신만 생각하는 길고 긴 밤 낮
나는 처음부터 뚜껑 없는 몸이었어요 햇빛을 담고, 바람을 담고, 구름을 담고 아직도 남아있는 비인 자리 당신만이 채우실 자리
당신 앞에 나는 늘 얼굴 없는 항아리 기다림에 가슴이 크는 항아리예요 ☆★☆★☆★☆★☆★☆★☆★☆★☆★☆★☆★☆★ 《97》 당신도 꽃처럼 아름답게 흔들려 보세요
이해인
아름다운 것들에 깊이 감동할 줄 알고
일상의 작은 것들에도 깊이 감사할 줄 알고
아픈 사람 슬픈 사람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많이 울 줄도 알고
그렇게 순하게 아름답게 흔들리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답니다
당신도 꽃처럼 아름답게 흔들려 보세요 ☆★☆★☆★☆★☆★☆★☆★☆★☆★☆★☆★☆★ 《98》 당신을 위해 내가
이해인
캄캄한 밤 등불도 없이 창가에 앉았으면
시리도록 스며드는 여울물 소리
먼 산 안개 어린 별빛에 소롯이 꿈이 이울어
깊이 눈감고 합장하면 이밤사 더 밝게 타오르는 마음길
인고의 깊은 땅에 나를 묻어 당신을 위해 꽃피는 기쁨
어느 하늘 밑 지금쯤 누가 또 촛불 켜 노래 날릴까
차가운 밤 밀물소리 살포시 안개 속을 오시는 당신을 위해
남은 목숨 고이 빛이 되는 사랑이여 ☆★☆★☆★☆★☆★☆★☆★☆★☆★☆★☆★☆★ 《99》 당신을 향해
이해인
간밤의 어수선한 꿈을 털고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면 눈이 뜨이는 아침, 나는 당신을 향해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으고 싶다.
내 좁은 방은 하늘이 되고, 내 무거운 육신은 날개를 달아, 멀리 떠나지 않고도 당신을 소유하는 새가 되는 연습을 한다.
한겨울 추위 속에 살아 있는 내가 깃을 치는 아침, 어둠을 먹고 크는 나의 기도 속에 보이지 않게 손을 내미는 당신. ☆★☆★☆★☆★☆★☆★☆★☆★☆★☆★☆★☆★ 《100》 당신의 마음
이해인
당신이 마음 아프지 않게 당신에게 항상 다가가 위로의 말과 함께 따뜻한 말을 나누며
당신이 조금이라도 행복함 속에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빛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차 한 잔이 그리울 때 당신의 찻잔이 되어 줄 것이고, 당신이 어디에 계시든 당신 그림자가 되어 당신을 지켜 주고 싶습니다.
진실한 마음 하나로 당신의 벗이 되어
외로움 찿아 오지 않게 곁에서 항상 웃으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내가 살아갈 동안, 당신의 좋은 사람으로서 더 없는 행복으로
내 모든 것을 당신을 위해 쏟아 부을 것입니다. ☆★☆★☆★☆★☆★☆★☆★☆★☆★☆★☆★☆★ 《101》 당신의 숲 속에서
이해인
당신의 숲 속에서 나는 도토리만한 기쁨을 주워먹으며 마음도 영글어 가는 한 마리의 신나는 다람쥐
때로는 동그란 기도의 알을 낳아 오래오래 가슴에 품어두는 한 마리의 다정한 산새
당신의 숲 속에서 나는 사유(思惟)의 올을 풀어내며 하늘 보이는 집을 짓는 한 마리의 고독한 거미
그리고 때로는 가장 조그만 은총의 조각들도 놓치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한 마리의 감사한 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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