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중앙 5월호,
http://mnbmagazine.joins.com/magazine/Narticle.asp?magazine=204&articleId=CX8S1MV9PIYCNO
출근 시간의 만원 지하철.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조그만 틈새로 기어코 신문을 펼쳐 든다. 이번에는 퇴근 시간의 지하철. 가방에서 (‘읽기는 하는 거냐’며 핀잔을 듣지만 꿋꿋이 들고 다니는) 책 한 권을 펼쳐 든다. 두 장면은 거의 매일 고집스럽게 반복되는 내 일상이다. 굳이 ‘고집스럽게’라고 한 이유가 있다. 요즘 스마트폰이 아닌 책을 펼쳐 든 사람은 지하철 안에서는 ‘이방인’처럼 낯설다. 책 읽는 소수자()들을 만날 때마다 무턱대고 반가운 이유다. 엄마는 한국 소설 광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마다 꼭 하나씩은 있던 책 대여점의 VIP 단골이던 엄마는 박경리, 박완서, 신경숙, 조정래, 공지영 등 한국 작가의 책을 거의 섭렵하다시피 했다. 개중에는 펄 벅, 시드니 셀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외국 작가의 소설도 더러 끼어 있었던 것 같다. 딸 둘 중 둘째 딸인 나는 글도 늦게 깨친 주제에 엄마가 다 읽고 난 책을 부지런히 주워다가 봤다.(엄마는 첫아이인 언니에게 자신의 모든 교육적 열망을 쏟아붓느라, 내가 초등학교 입학 직전까지 글을 못 읽어도 크게 조바심 내지 않았다.) 늘 식탁에서싱크대 쪽으로 돌아앉아 책을 읽던 엄마의 등. 그게 내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지배적인 기억이다. 돌이켜보면 그토록 첫째 딸의 교육에 집착했던 것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휘몰아치듯 했던 독서도 ‘고졸’ 엄마의 열등감, 배움에대한 갈구가 아니었나 싶다.
당신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굳이 책을 집어 들고 몇 시간이고 읽던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책 심부름을 하러 책 대여점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나를 꽤나 기특하게 여겼던 것 같다. 엄마는 『아동문학전집』 『세계위인전』 『세계문학전 집』 같은 고가의 전집을 차례로 사다 날랐다. 언니는 독서량으로는 늘 엄마의 기대에 못 미쳤고, 외려 관심 밖에 있던 내가 종일 책을 껴안고 살았다. 나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몰래 보는 ‘19금’ 비디오보다도 소설 속 ‘야한’ 장면들을 읽을 때가 훨씬 더 짜릿했다. 머릿속에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며 몸이 막 저릿저릿했다. ‘제인 에어’니 ‘안나 카레리나’니 하는 낯선 외국 여자들, 이름마저 세련된 이들을 막 닮고 싶었다. 그 시절, 책은 내게 세상에 대한 거의모든 것이었다.
대학 때 나는 거의 강박적으로 책을 찾아 읽었다. 전공이 국문학이라 주변에 난다 긴다 하던 작가 지망생이 많았는데 난 애초에 그들처럼은 못 될 것 같았고, 그나마 문학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데에 소질이 없진 않았기에 계속해서 뭔가를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늘 있었다. 도서관에서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읽다가 감동한 책을 만나면 일기장에 멋대로 감상평을 써댔다. 돌이켜보면 책은 그때 내게 ‘고통스러운 기쁨’이었던 것도 같다.
그즈음이었을까. 우연히 집에서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한 적이 있다. 신기했다. 엄마가 일기를 쓴다니. 사춘기 딸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봤다는 엄마 얘긴 있어도 엄마 일기장을 훔쳐봤다는 자식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난 그 귀한 후자 경우 중 하나였다. 몰래 읽은 엄마의 일기장 속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문장이 놀랍도록 좋았다는 기억만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주제들도 그저 ‘오늘 반찬은 뭘 만들었다’나 ‘남편과 싸워서 기분이 좋지 않다’ 같은 일상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과 삶에 대한 내밀한 사유에 가까웠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철학적인 고찰. 머리가 굵어지면서 영어 알파벳도 헷갈리던 엄마의 지적 수준을 은연중에 얕잡아봤었다. 그런 내게 엄마의 문장은 가히 충격적일 만큼 좋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학력이나 배움의 정도가 사고력이나 지적 수준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읽는 사람의 사유의 깊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책 읽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저마다 독서 성향은 달라도, 희한하게 공통점이 한 가지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독서를 맹신하지 않는다는 점. 이들은 책에 모든 답이 나와 있고, 책 많이 읽는 사람을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는 양 말하지 않았다. 책의 효용은 정답 찾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질문하기에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을 읽으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이 계속되면 질문이 생긴다. 견고한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책 읽는 여자는 현실에 의심을 품고, ‘왜’냐고 질문을 던지는 여자였을 것이다.
그런 여자가 많아질수록 남성 세계가 흔들리고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은 정답들이 모여서 바뀌는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의심하고 질문할 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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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넘긴 엄마는 이제 책을 잘 펴지 않는다. 돋보기 쓰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 2~3장 넘기기도 힘들단다. 이제는 딸이 쓴 기사도 일일이 찾아 읽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글도 엄마는 못 읽을지 모른다. 그래서 고백해본다. 나에게 엄마는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단어만으로도 ‘찌르르’ ‘뭉클’ 하는 그런 주관적 엄마 말고, 한 인간으로서 내가 만난 엄마는 괜찮은 사람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딸의 삶을 휘두르려 하지 않고, 딸을 주체적 인간으로 대했다. 무엇보다 엄마는 ‘어디 감히 어른한테’ ‘내가 네 엄만데’ 하는 권위 의식이 없었다. 화가 치미는 순간에도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싶어 먼저 질문할 줄 아는 분이었다. 엄마는 책을 ‘잘’읽는 여자였다.
독서의 양은 지식의 절대적 깊이를 말하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을 통해 모든 지식을 열람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책을 펼쳐 본다는 건(요즘에는 ‘이북(E-book)’도 펼쳐 보기가 된다) ‘나’라는 우물 바깥의 세계를, 또 다른 우물 속 삶을 펼쳐 보겠다는 의지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지다』를 쓴 은유 작가는 그것을 “타인에 대한 이해이고, 타인에 대한 이해는 고통에 대한 이해이며, 독서는 그런 고통의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내안의 고통의 근원을 찾는 일,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 시절, 매년 휴가 때마다 독서 리스트를 공개했다. 그 리스트는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회자되곤 했다. 5월 대선을 앞두고 생각한다. 우리도 책 읽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책 많이 읽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분 말고,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통감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그래서 제대로 책 읽는 사람. 오늘도 가방 속에서 또 한 권의 책을 꺼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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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핑 중에 발견했는데 좋게 읽혀서 가져왔어!
잡지기사라 뉴스데스크 안하고 흥미돋 붙였는데 문제 있으면 댓부탁해ㅠㅠ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 더 많이 읽어야지
시간내기 힘들다ㅠㅠ
독서의 여름 되자!
첫댓글 순식간에 정독 ㅎㅎㅎ 좋은내용이다 나도 책읽어야지ㅠㅠ
ㄱㅅㄱㅅ
책 많이 읽어야지
이거 진짜 좋은 글이다
아 진짜 좋다.. 나도 독서 꾸준히 해서 저런 엄마 돼야지..
열심히읽어야지진짜ㅠ
노력해야지 ㅠ 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주체성있고 생각을 할줄알며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줄 아는 여자들이구만
헐 운전을 해야겠어
우리엄마도 일주일에 서너권씩 책읽는 독서광인데... 철학적 사유....글쎄.... 스릴러만 읽어서 그런가...
독서뽐뿌
좋은 글이다
이거 진짜인것 같아 책을 읽을수록 질문이 많아진다는거 특히..질문이 많아지면 생각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내가 알던게 진짜 앎이 였던건지 생각하게 되면서 생각이 넓어지는게 느껴져 아직 멀었지만 전에 했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많이 달라짐
공감... 감명깊은 책일수록 내안에 박혀있던 생각의 근간이 흔들리고 감상글은 의문형으로 끝남..
어머... 이 댓글 너무 좋다.... 여시 표현에 놀라고 감
글 읽는데 진짜 울컥하고 그렇네
좋은 글임
좋다.. 책 열심히 읽어야지
마지막 부분 울컥한다 퓨ㅠ 밖인데 울뻔함
좋다ㅠㅠㅠ
ㅠㅠ 책 읽으려고 항상 시도만 하지만 안읽었는데 이번엔 꼭 읽는다!!
좋은글이다. 여시야 고마워!
책읽어야겠다진짜... 책을 안읽으니까 이리저리 휘둘리고 의심없이 남의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거 같음
글 잘 읽었다 댓도 좋다 고마워!
아 좋다 책 열심히 읽어야지ㅜㅠㅠ
좋은글이네....책 놓은지 꽤 됐는데 반성하고간다...
좋은글이다 책열심히읽자
좋은글이다
책과 책사이에 간극을 이해하는 그 순가 진짜 어른이 된 기분 ㅋㅋ
근데 그냥 마냥 많이 읽는걸로도 될까 ㅠㅠㅠ 뭔가 읽고 그거에 대해 생각하고 이래야할텐데 그게
안돼
ㄱㅆ 혹시 고르는게? 어려우면.. 음 인문학베스트셀러부터 읽어도 좋을거같고 책에 대한 책 있잖아 좋은책 자기한테 필요한책 등등 책을 *선택해서 읽는법*에 대한 책들 서점가면 가끔 보이거든? 그런거 한두권 빠르게 훑어봐! 아니면 책은도끼다 라는 책도추천 나는 책은도끼다 읽으면서 책을 읽는거에대해 좀 감을 잡았던거같아!
책읽으면서 늘거나 얻는게 없다는 친구들보면 대부분 책 선택이 잘못 되었더라구 잘 고르면 노력하지않아도 뭔가 사고가 늘어!
@쩌리용 닉첸 오 책은 도끼다 읽어봐야겠어!!! 소설을 걍 막무가내로 읽었었는데 기본적인 언어능력은 느는데(수능1등급처럼?) 사고에 깊이는 안생기는 거 같더라고ㅜㅜ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느낌?그냥 문제의식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느낌...
@쿨보이 혹시 독후감쓰거나 책읽고니ㅛㅓ 다시
생각해보가 그런거 해? 그냥 읽고 바로덮어버려서 그런가 싶기도 해서...
@쿨보이 아니 그런거 안해! 그냥 가끔 메모장에 일기쓸때 다 읽고 좋았던 착 있으면 느낀점 간단하게 쓰는정도? 글구 소설이면 책읽고 아쉬우면 폰으로 사람들 서평 찾아봐 블로그나 서점서평 등등 다른 사람들이 읽고 남긴 글같은거보면 내가 읽은 소설이 단순한게 아니라 생각보다 엄청 철학적이고 상징하는게 많다는거 느끼게됑 특히 고전소설! 유명한책들은 왜 유명한지 이유만 봐도 뭔가 사고가 늘더라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여시 ㄱㅅㄱㅅ
고마워
나 요새 책읽기에 맛 들이기 시작했는데 진짜 좋은글이다...
책읽는거 진짜한번빠지니까 너무너무 좋아 영화보는거보다 훨훨 재밋음
고마웡!!
더 괴로워질텐데..
고마워 깨닫는게 많고 질문이 많을수록 사는게더 힘들어지지만 ㅠㅠ그래도 하나하나 변해가겠지...그렇게 믿고 책 더 많이 봐야겟다
좋다
고통을더잘이해하게된다니 이글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