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환태평양 연합훈련, 이른바 ‘림팩(RIMPAC)’을 현지 취재했습니다. 림팩은 미군 주도로 하와이 근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군사 훈련입니다.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 등 주요 해군 전력에 직접 승선하거나 눈 앞에서 취재하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 환태평양 연합훈련 ‘림팩’, 좁은 해역에 갇힌 한국 해군에 ‘꿈의 무대’
림팩은 1971년 시작됐고 1974년부터 격년으로 열립니다. 2018년 25개국이, 2020년엔 코로나19 여파로 10개국만 참가했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20개국 2만 5천 명이 참가할 전망입니다. 한국은 1990년부터 꾸준히 참가했습니다.
2008년 림팩은 한국 해군에 나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전투 훈련 중 미사일 4기를 실사격하고 3개국 다국적 전투단도 지휘하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국 해군은 평소 한반도 인근 좁은 해역에 갇혀있습니다. 좀처럼 SM-2 등 함대공 미사일을 실사격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림팩은 활짝 열린 대양에서 실전에 준하는 경험을 쌓는 꿈의 무대입니다.
한국 해군은 여러 차례 림팩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불발탄이 나오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야말로 실전 상황의 실패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경험입니다.
■ 림팩에서 돋보였던 한국 해군의 전력 ‘잠수함’
그런데 구축함 전력 못지 않게 림팩 현장에서 돋보인 전력이 있습니다. 바로 잠수함입니다. 2008년 취재 당시 한국 해군의 잠수함 이순신함에서 미사일을 쏘자 80km 앞 적함이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한국 잠수함 부대의 전투 구호인 ‘원 샷, 원 히트, 원 싱크(one shot, one hit, one sink)’를 현장에서 확인했습니다.
당시 군 관계자는 한국 잠수함은 림팩에서 경계 대상 1호인 동시에 미군이 가장 환영하는 전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디젤 잠수함은 핵잠수함에 비해 잠수 시간 등에서 한계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탐지가 어려운 만큼 미군 입장에선 가상적으로 대응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밀히 적진 깊숙이 다가가 치명적 피해를 입히는 잠수함의 위력은 미군도 크게 경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0년도 더 된 과거 림팩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올해 2022년이 바로 림팩이 열리는 해이고, 특히 최근 미·중 갈등의 최전선으로 떠오른 타이완이 처음으로 참가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 미국, 올해 타이완 초청 가능성 높아...“타이완 군사 교류 고도화 큰 걸음”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말 서명한 ‘2022 국방수권법’은 올해 림팩에 타이완 해군을 초청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타이완 관계법을 근거로 ‘타이완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갖도록 지원한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여름 타이완이 실제 림팩에 초대받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타이완 국방부는 과거 인도적 구호 참여 등에 옵서버 자격으로 림팩에 점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은 앞서 2014년과 2016년 림팩에 중국을 옵서버로 초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인 2018년부터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타이완의 중앙통신은 “타이완이 림팩에 참가할 수 있다면 군사 교류 고도화를 위한 큰 걸음일 뿐 아니라 가장 부족했던 미국 등 연합군과의 합동 작전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 접근이 제한됐던 전술 정보의 수준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타이완이 옵서버를 넘어 향후 특히 잠수함 전력 강화의 기회로 림팩을 활용한다면 해군력 측면에서 뚜렷한 진전을 거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타이완은 지난 몇 년 동안 잠수함 전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 타이완, 잠수함 전력 강화 중...대중 비대칭 전력 핵심
현재 타이완이 실전 배치한 잠수함은 4척에 불과하고 그나마 낡았습니다. 잠수함을 만드는 나라들이 중국 눈치를 보기 때문에 수입이 어려웠습니다. 이 때문에 타이완은 2017년 자체 잠수함 설계에 나섰습니다. 이르면 내년부터 8척의 자체 디젤 잠수함을 차례로 진수할 계획입니다.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은 2020년 11월 잠수함 착공식에서 “해군의 비대칭 전력을 개선하고 타이완 주변 적들의 함선을 봉쇄하고 위협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잠수함 전력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타이완의 입장에선 가뜩이나 양안 관계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워낙 중국과 군비 격차가 크다 보니 비대칭 전력으로서 잠수함의 군사적 가치에 더욱 주목할 것입니다. 중국은 항공모함을 비롯해 300척이 넘는 함정과 잠수함을 보유해 규모로는 세계 최대 수준을 자랑합니다.
이 같은 타이완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로이터 통신이 “미국과 한국 등 7개국이 타이완의 최신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파문이 컸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습니다.
중국 국무원의 타이완사무판공실은 “무기를 충원해 독립을 획책하는 타이완의 행동을 어떤 국가나 기업도 도와선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12월 들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타이완 잠수함 건조에 협조하는 4개 업체를 사실상 블랙리스트로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타이완의 잠수함 전력 강화는 다른 한편 호주의 사례도 떠올리게 합니다. 지난해 9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새로운 안보협의체 ‘오커스’를 발족하면서 회원국 호주에 극히 이례적으로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습니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결정이 ‘지역의 평화 안정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 중국, ‘타이완 림팩 참가’ 강력 비판...“미국의 불장난”
이 같은 상황에서 향후 타이완이 새로 진수한 잠수함들을 이끌고 림팩에 참가해 정교한 미사일 타격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참가국들과 연합훈련 경험을 축적한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제 타이완의 림팩 참가 가능성이 제기되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타이완을 이용해 중국을 봉쇄하는 불장난을 하고 있다”면서 “불장난을 하다 불에 타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08년 림팩에서 한국 해군의 능력과 연합 작전의 중요성을 확인했지만,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경험은 따로 있습니다. 항구에 정박된 미 해군 이지스함 앞을 지나는데 중령 계급장을 단 함장이 선뜻 승선해보라고 즉석에서 초대했습니다. 취재진은 계획에 없던 미군 이지스함 내부 참관 기회를 가졌습니다. 촬영은 제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동행했던 우리 군 관계자는 좀 놀란 듯했습니다. 미군이 한국 언론에 이지스함 내부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전 림팩 때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2년 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대한민국은 세계 5번째 이지스함 보유국이 됐습니다. 동맹이라도 힘이 있어야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특파원 리포트] '잠수함 강화' 타이완, 한국도 가는 해상 군사훈련 참가할까?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