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 시련 그리고 꿈
몇 일전 양봉장에서 작업중인데 돌개 바람이 휘몰아치며 벌들이 다른 통으로 쏠리는 등 더 이상의 진행이 어려웠다.
하든 일을 멈추고 청주 문의면 에서 제일 맛있는 칼국수 집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칼국수가 가장 맛있는 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식당 창문 앞 도로변의 벚꽃이 세찬 바람에 우수수 흩날린다.
“어머나, 왜 이렇게 바람이 심하게 부나, 꽃잎 다 떨어져 꽃 구경도 못 가겠네”
후루룩 칼국수 젓가락질 옆으로 지나가는 가게 주인 아주머님의 딸이 걱정이다. 칼국수 오물오물 하며 내가 한마디 한다.
“바람이 왜 부는지 이유를 알려드릴까요?”
‘네?”
나는 말없이 나의 초록색 명함을 건네어 준다. 나의 명함 뒤편에는 이런 시가 적혀 있다.
봄
해올 김안민
꽃이 피면
반드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라
벌은 슬프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반드시
꽃은 피더라
벌은 기쁘다
참 희한하더라. 지금과 같이 봄 꽃이 이 곳 저 곳 사방에서 피어 오르고 특히나 약하디 연약한 벚꽃이 만개하면 시샘하듯 세찬 바람이 불거나 우두둑 봄비가 쏟아진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또 그 전에도 그랬었다.
작년 이 맘 때 양봉에 막 입문하며 꽃을 보고 바람을 보고 비를 보며 적었든 시 한편이다.
시련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기승전결의 세상 이치를 안다. 우리 시대 천재 시인은 유년의 어려움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엄마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50의 나이가 넘어가는 세대는 ‘열무 삼십 단의 엄마 걱정’과 거의 비슷한 유년의 추억이 있으리라.
바람이 왜 불고 비가 오는가? 꽃이 피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은 왜 홀로 무서운 방에서 배추잎 같은 발소리에 귀를 오뚝 세우고 있는가? 엄마가 오기 때문이다.
삶의 기승전결을 이미 아는 듯 나의 이야기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고 싶다.
“꽃은 피고 엄마는 오더라”
시심농심봉심
해올 김안민
첫댓글 비오고 바람부는 봄날의 꿀벌과 시인과 칼국수.......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를 다시 읽습니다.
저는 삶이 기승전결은 아직 몰라도
사람보다 꿀벌이 꿀벌보다 식물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 봅니다.
청주에는 칼국수가 맛있죠. 지난 주에도 먹었습니다. 바다 한 솥담아서........
한결 선생님
다음번 청주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맛있는 문의면 칼국수집에 모시고 싶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4.17 09:5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4.17 20:40
좋은 시네요
감사합니다. 비오지만 즐거운 하루되세요.
자연과 벌과 우리는 다 하나인 듯 합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
오후 늦게 비가 그쳐 덧통 작업하지 못한 홑통을 살며시 열어보니 난리가 났습니다.
내일은 비가 오지않길 바라며
좋은글 감명있게 되 읽어봅니다.
만학도이신 해올님 멋지십니다.
여기도 가로수 벚꽃이 피면 비오고 바람 불어요~~~^^
벚꽃꿀이 들어온거같아요.
비가와서 계상 작업 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