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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클래식]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2009)
감독 얀 쿠넹
출연 아나 무글라리스, 매즈 미켈슨 …
<줄거리>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온 순간, 세상은 매혹의 향기와 영원한 멜로디를 얻었다!
1913년, 파리에서 초연한 발레 [봄의 제전]은 지나치게 전위적인 음악으로 인해 혹평을 받지만 샤넬은 파격적인 음악을 선보인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에게 흥미를 가지게 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스트라빈스키는 샤넬의 제안으로 그녀의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기로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매혹적이고 강렬한 샤넬의 매력에 이끌리고, 곧 두 사람은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들의 사랑 앞에 절망한 스트라빈스키의 아내는 저택을 떠나고 서로를 통해 영감을 얻게 되는 두 사람은 [샤넬No˚5]와 [봄의 제전] 이라는 그들의 대표작을 완성해 가는데…
실존 인물의 삶을 그린 영화의 경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픽션인가 하는 문제가 논란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보아야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영화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저건 아닌데”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두 사람이 정말 연인 사이였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전에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취향, 예술적 지향점이라는 측면에서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도저히 줄긋기가 안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샤넬이 말년에 자기와 스트라빈스키가 한때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고백했다는데, 이것도 사실 믿거나 말거나한 주장에 불과하다. 여하튼 이런 샤넬의 일방적인 주장에 착안해서 영국 작가 크리스 그린홀즈가 소설을 썼고, 이것을 바탕으로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이 아닌, 말 그대로 ‘소설’에 가깝다.
스트라빈스키 – 봄의 제전 제 1부 1곡 대지의 찬양
스트라빈스키 – 봄의 제전 제 2부 3곡 선택된 처녀에의 찬미
영화는 클래식 공연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캔들로 기록되고 있는 [봄의 제전] 초연 장면으로 시작한다.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미녀] 류의 우아한 발레를 상상하며 샹젤리제 극장을 찾은 파리의 관객들은 초반부터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음악과 춤, 의상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오고 객석은 곧 아수라장이 된다. 하지만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공연을 지켜보는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다. 관객들은 거의 파괴에 가까운 스트라빈스키의 혁신적인 음악에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샤넬은 바로 여기서 스트라빈스키의 천재성을 발견한다.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시대를 앞서간 두 예술가, 샤넬과 스트라빈스키가 연인이었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 후 샤넬은 경제난에 시달리는 스트라빈스키 가족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스트라빈스키는 지척에서 병든 아내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도 샤넬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버린다. 결국 스트라빈스키의 아내는 남편 곁을 떠난다. 아이들을 데리고 샤넬의 집을 떠나는 날, 그녀는 샤넬에게 자기 가족을 위해서 지킬 것은 지켜달라는 편지를 남긴다. 이 편지의 약발이 먹혔을까. 샤넬은 스페인 공연을 함께 가자는 스트라빈스키의 요청을 “나는 당신의 정부가 아니예요.”라는 다소 상투적인 말로 거절한다. 아내가 떠나고, 애인마저 자신을 거부한 상황에서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의 개정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작업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의 관계도 끝난다. 다시 [봄의 제전] 공연 장면.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지휘하는 동안, 영화는 수십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완전히 늙어버린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무모한 정열’의 표상인 남녀의 불륜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차갑고 어둡다는 것이었다. 우선 주인공의 이미지가 본래의 스트라빈스키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직접 스트라빈스키를 보지 않았으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으나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발표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1살이었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팔팔한’ 나이였다. 그렇게 젊은 에너지로 전통을 파괴한 [봄의 제전]을 작곡해 ‘음악의 혁명가’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스트라빈스키는 겉모습도 그렇지만 내면적으로도 너무 나이가 들어 보였다. [봄의 제전]을 작곡한 팔팔한 열정의 사나이가 아니라, 불륜의 사랑에 고뇌하는 중년 남자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가공적인 이야기 줄거리와는 달리 개별적인 상황이나 사물 묘사는 철저히 사실에 가깝도록 재연하고 있다. 샤넬이 입고 나온 다양한 패션이나 호사스러운 의상실 풍경이 풍성한 눈요기감을 제공하고, 그 유명한 향수 샤넬 넘버 5를 만드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초반에 나오는 [봄의 제전]의 초연 장면이다. 클래식 공연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캔들로 기록되고 있는 [봄의 제전]의 초연 상황을 영화는 놀랍도록 자세하고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그날 밤의 아수라장이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치는 듯하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에서는 [봄의 제전] 초연 장면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때는 1913년 5월 29일, 이 날은 파리에 새로 문을 연 샹젤리제 극장에서 러시아 발레단이 [봄의 제전]을 초연하는 날이었다. 당대 최고의 흥행사 디아길레프 기획, 스트라빈스키 음악, 니진스키 안무의 드림팀이 내놓은 야심작이었다. 이날 저녁, 우아한 드레스와 말끔한 턱시도로 한껏 멋을 부린 파리의 선남선녀들이 샹젤리제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는 우아한 발레 공연을 기대하며.
객석에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먼저 바순이 느리고 몽롱한 선율을 연주했다. 미묘한 분위기의 도입부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드디어 막이 올라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돌변했다. 악기들이 일제히 “밤밤밤밤” 하고 자극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충격적인 울림이 지나고 난 후, 이번에는 악기들이 각자 신경질적인 비명을 질러댔다. 그 소리에 맞추어 무용수들이 춤을 추었는데, 그것은 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원시적인 몸짓이었다. 그 야만적인 몸짓과 파괴적인 소리는 당시 관객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에 살던 어린 시절, 스트라빈스키는 매년 봄마다 척박한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자연의 거대하고 충만한 에너지, 너무 강렬해 때로는 폭력적이라는 느낌마저 드는 자연의 그 폭발적인 에너지에 깊은 감명을 받곤 했다. 꿈속에서 원시 부족이 산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본 후. 스트라빈스키는 죽은 땅에서 산 것들을 피워내는 자연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대지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 비문명의 근저에 깔린 날 것 그대로의 에로티시즘 같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곡한 것이 [봄의 제전]이다.
음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 지휘자가 악보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단원들은 이런 음악은 도저히 연주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금관악기는 비명 소리를 내고, 플루트는 ‘푸드득’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며, 클라리넷은 비명을 지르고, 튜바는 뱃고동처럼 거친 소리를 냈다. 연주자들은 악기마다 다른 리듬 때문에 쩔쩔맸으며,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박자 때문에도 애를 먹었다.
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용수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봄의 제전]의 안무는 전설적인 안무가 니진스키가 맡았는데, 여기에서 니진스키는 이제까지 내려온 발레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움직임을 도입했다. 발레의 동작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충격적인 시도였다. 니진스키의 안무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어려웠다. 몸의 각 부분을 따로따로 움직여야 했고, 동작도 매우 복잡했다. 무용수들은 오로지 [봄의 제전]만을 위해서 이제까지 자기들이 배웠던 발레 동작과 완전히 반대되는 새로운 동작을 익혀야 했다.
클래식 음악과 무용의 새 시대를 연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키 <출처: Wikipedia>
[봄의 제전]의 초연 날, 이제까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음악과 춤에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거대한 야생의 파티를 보고 관객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악을 쓰고 휘파람을 불면서 난리를 쳤다. 당시 공연을 보았던 프랑스 시인 쟝 콕토는 이 때의 심정을 “숲 자체가 미쳐버린 같은 느낌이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소동이 극에 달하자 디아길레프는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소동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객석에 앉아있던 스트라빈스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본래 그는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무대로 뛰어나가기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난리를 치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무대 뒤로 갔다. 무대 뒤에서는 니진스키가 무용수들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하나 둘, 하나 둘”하면서 박자를 세어주고 있었다. 관객들 소리에 묻혀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는 난장판 속에서 발레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처음부터 시작된 소란이 너무 커지자 급기야는 경찰이 개입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하지만 2막에서도 소동이 진정되기는커녕 더 커졌다. 디아길레프가 공연을 끝까지 하게 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난동을 부렸다.
[봄의 제전] 초연은 음악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에는 이 날의 소동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실제로 [봄의 제전]의 초연이 있었던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무대, 의상, 안무 등 당시 공연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그날의 소동을 재현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소동이 아니었다. 음악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통해 전통과 관습의 그늘 아래 안주하던 사람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 보인 관객들의 격렬한 저항은 어쩌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협화음과 규칙적인 박자의 안락함으로부터 쫓겨나 척박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자의 발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음악의 20세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그 극적인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으로 전통과 관습을 파괴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샤넬의 패션이 등장하기 전까지 여성의 몸은 코르셋에 구속되어 있었다. 허리를 잘룩하게 보이기 위해 복부를 조이는 코르셋은 여성의 자유를 구속하는 육체의 감옥 같은 것이었다. 샤넬은 이런 코르셋의 구속으로부터 여성의 몸을 해방시켰다. 스트라빈스키 역시 규칙적인 박자라는 구속으로부터 인간의 몸을 해방시켰다. [봄의 제전]의 경우에서 보듯이 물론 처음에는 저항이 컸다. 여성의 코르셋이 그런 것처럼 규칙적인 박자 역시 구속인 동시에 안전장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여자가 그저 ‘예쁘게 보이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음악 역시 규칙적인 박자만 가지고는 시대의 변화무쌍함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가 정말 연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으로 전통과 관습을 파괴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출처: 네이버 영화>
샤넬이 현대적, 도시적이라면 스트라빈스키는 야만적, 원시적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샤넬은 천연향과 인공향 등 80여 가지 향을 용의주도하게 조합해 샤넬 넘버 5를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샤넬 넘버 5는 ‘문명의 진액’이다. 반면에 스트라빈스키는 문명 세계에 결별을 고하고 저 먼 과거 원시시대로 돌아갔다. 그는 [봄의 제전]을 통해 강렬하고 원초적인 그 무엇, 날 것 그대로의 야생성 같은 것, 문명 세계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동물 같은 원초적 본능이 에너지가 되는 세계, 야만적인 폭력이 죽음을 부르고, 그 죽음이 다시 대지의 생명력으로 살아나는 세계, 그런 세계를 그렸다.
스트라빈스키의 삶을 다룬 영화이니만큼 음악 역시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특히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봄의 졔전]은 오케스트라 연주는 물론이고, 스트라빈스키가 치는 피아노 버전으로도 자주 나온다. 특히 그 유명한 바순 솔로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여러 번 출현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을 남긴다. 그 밖에 아내와 아이들이 떠나고 난 후 혼자 남은 스트라빈스키가 치는 곡은 [봄의 제전] 중 [봄의 시작, 젊은이들의 춤]이고, 카드놀이를 하다 방으로 돌아온 스트라빈스키가 피아노로 치는 곡은 [선택된 처녀에의 찬미], 아내가 떠나고 샤넬에게도 거절 당한 후에 나오는 곡은 [봄의 론도]이다. 또한 스트라빈스키 가족이 샤넬의 집으로 이사 온 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장면에서는 [5개의 쉬운 피아노 곡] 중 [안단테],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이 함께 피아노로 치는 장면에서는 [5개의 손가락] 중 [모데라토]가 나온다.
영화에 이렇게 다양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나오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입부의 [봄의 제전] 초연 장면이 아닐까 싶다. 내년이면 [봄의 제전]은 초연 100주년을 맞게 된다. 현실은 10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영화는 우리를 100년 전으로 데려간다. 그리하여 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 그 역사적인 현장에 실제로 와 있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 영화를 꼭 보아야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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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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