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브라질 대선이 많은 우려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극우파의 놀라운 부상과 함께 치러진 브라질 선거에 대해, 일반적으로 포괄적인 사회학적 범주를 활용한 매우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들은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구적 차원의 위기이기도 한 브라질 위기의 심각성은 너무나 커서,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기존의 범주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보다 근본으로 들어가 희망의 빛을 찾기 위해 철학적 사유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이 지금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생명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경고했듯, 이대로 계속된다면 우리는 “집단 무덤으로 향하는 행렬을 더 늘리게 될 것”입니다. 일찍이 1930년, 프로이트(Freud)는 『문명 속의 불만』을 쓰며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어두운 경고를 남긴 바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자연의 힘을 지배하는 데 있어 너무나 나아간 나머지, 그 힘의 도움을 받아 서로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쉽게 전멸시킬 수 있게 되었다”(Vozes 출판사, 2026년판, 129쪽).
오늘날 현존하는 파괴적 무기들과 자율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러한 경고를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집단적인 불안과 불만이 존재하며, 이는 브라질을 비롯해 특히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파시즘과 극우파의 급격한 부상을 통해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 하나의 가설로 말하자면, 생명과 인간 사이의 형제적 더불어 삶,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을 적대시하는 이러한 분위기는 깊은 우울로 변질되어 버린 근본적인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실망감은 지난 몇 세기 동안 계몽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정보통신 기술과학과 인공지능 등 거대서사들이 제시했던 모든 약속의 실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약속들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보편적 실망감은 거대한 집단적 우울로 이어졌습니다. 증오, 분노, 가짜 뉴스, 폭력의 무서운 파도가 지구 전체와 브라질을 덮치고 있습니다. 우울은 우리에게서 삶의 기쁨을 앗아갑니다.
어느 문화에나 위기는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위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지구적 차원의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12권짜리 대작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어떤 빛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는 이 책에서 문화가 어떻게 출현하고, 발전하며, 전성기에 도달했다가 사멸하여 다른 문화로 대체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토인비는 두 가지 기본 범주, 즉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을 사용합니다. 도전이 크지 않을 때 문명은 이에 응전하며 번영합니다. 그러나 도전이 응전 능력을 초과할 때 문명은 위기에 처하며, 쇠퇴의 고통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복잡하고 매우 학술적인 노작을 단순화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토인비 사상의 한계가 있다면,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복잡한 사회에서 항상 발생하는 계급투쟁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응전 능력의 부재가 지배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도전이 우리의 응전 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우울이 분출합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위기에서 빠져나갈 출구가 있을까요? 아니면 우주가 생성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주기를 마치고, 이제 우리도 사라질 차례가 된 것일까요? 이 지구상에서 수백만 년 동안 살아온 모든 존재가 그 절정에 도달한 후 사라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요? 우리 스스로가 자멸의 수단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열어두고자 합니다.
세상에 대한 저의 감각이 말해주기를, 기존 체제 안에서 더 나아지리라는 가장 소박한 유토피아적 희망조차 시들어갈 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무궁무진한 잠재적 가능성의 원천이며, 관계를 맺고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빛과 그림자(C. G. 융), 지혜와 광기(E. 모랭), 에로스(삶)와 타나토스(죽음)(프로이트)로 이루어진 존재일지라도, 우리 안의 긍정적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7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러시아 출신 벨기에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 1917~2003)이 이자벨 스탕제르(Isabelle Stengers)와 함께 쓴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1984), 그리고 에드워드 로렌츠의 연구와 제임스 글릭의 저술을 통해 널리 알려진 혼돈 이론(카오스 이론)은 큰 영감을 줍니다. 우주는 빅뱅이라는 엄청난 초기 혼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진화는 그 원초적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인간에 이르러 지능, 감정, 사랑, 그리고 돌봄을 지닌 점차 더 높고 복잡한 질서를 창조해 냈습니다.
혼돈의 본질은 파괴적인 동시에 생성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혼돈은 잠재적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지만, 그 안에 새로운 질서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파괴의 과정이 끝나면 그 새로운 질서가 출현합니다. 이는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지만, 그 질서 역시 스스로 고갈되어 다시 혼돈과 파괴의 성격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또다시 새롭게 출현할 가능성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지구적 차원의 현재 역사적 단계에서 우리는 혼돈의 파괴적 에너지 아래 놓여 있지만, 그 안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싹트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에 친화적이고, 자연의 모든 존재들까지 아우르는 보편적 형제애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롭고 다정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잘 공존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줄 새로운 세계일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1차 투표에서 드러난 보우소나루주의적·파시즘적 파괴의 혼돈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의 생성적 혼돈을 통해 극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승리하여 가난한 이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맙시다. 철학적 사유를 시도한 이 글이 우리에게 새롭게 희망을 품고 실천할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작가입니다. IC의 LIBERTA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기: 성장의 기회(Crisis: oportunidad de crecimiento)』의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