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IVF학사지 '소리'지에 갑과 을을 주제로 한 글을 기재하였습니다.
제가 건설업에 있으며 몸소 경헝한 바를 교유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갑과 을의 공존
저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설업에 몸담은 지 어언 14년차가 되었습니다. 5년 전에는 [소리]에 직장인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만큼 지났습니다.
‘갑과 을’에 대해 생각해 보니, 우리 모두의 인생이 어떤 때는 갑으로 어떤 때는 을로, 동시에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갑과 을의 위치를 생생하게 경험하며 부대끼는 직업군은 아마도 수직적인 구조와 서열 매김이 확실한 건설업이나 제조업이 아닐까 싶네요.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이 건설업종 중 시공회사인데요, 건설 현장이야말로 수직적인 구조에 갑을병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역할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건설회사의 경우, 수직적인 구조는 발주처, 원도급사, 하도급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쉽게 설명 드리자면, 발주처에 해당하는 곳은 공사를 발주하여 감독하는 곳으로 관공서나 00국토청, 00공사(LH, 도시철도, SH 등)입니다. 원도급사는 공사를 발주처에서 도급받아 도급계약서를 맺고 목적물을 수행하는 곳이고, 하도급사는 원도급사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여 목적물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제가 근무하는 곳은 원도급사니 발주처를 기준으로 보면 을이 되고 하도급사를 기준으로 보면 갑이 되겠죠. 보는 기준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는 하는, 공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갑의 위치에서
먼저 원도급사의 직원으로 하도급사와의 관계 가운데 발생하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의 제 직책은 공사팀장입니다.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하여 5시 50분에 현장(인천시 남동구 소재)에 6시 40분에 도착합니다. 최근 수원 영통으로 이사하여 왕복 100km인데 대부분 고속도로 구간이라 출퇴근 시간이 한 시간 이내라 자동차로 출퇴근하죠. 일평균 근로자(목수, 철근, 가시설공)가 60명인데, 다 같이 모여 안전조회를 하고 그날 하루 현장의 안전을 기원하며 각자의 일터로 헤어집니다. 조회 후 현장 전체를 한바퀴(지하철 연장 2,2km) 순찰하고, 그날의 공정진행상황과 문제점을 지적 및 확인하고, 8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오늘 해야 할 일(검측, 회의, 유관기관 미팅 등)을 체크하고 소장님께 보고한 후 이후의 시간을 보냅니다. 건설 현장에는 수많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실제 목적물(지하철 구조물 형성)을 시공하려다 보니 그로 인해 발생되는 수많은 문제점, 즉 민원이나 안전사고, 환경관리, 설계변경 등의 일들이 생기고 그런 문제를 처리하는 게 저의 중요한 일입니다.
건설업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다보니 하도급사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제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은 중 첫 번째는 정당한 임금이 적절한 시기에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도급사 직원과의 관계에서 지시를 내릴 때 정확하게 내려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서 수많은 업체들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고 떼어먹히는 경우가 하다하게 발생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일한 대가를 제 날짜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저희 회사에서는 기성금을 매월 10일에 지급하는데, 한 달 동안에 발생된 목적물의 수행과정으로 생기는 비용을 내역서 수량에 제대로 산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공사 시행 시 설계도서를 꼼꼼히 검토하여 오시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번 더 체크하여 손실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겠죠. 또 협력사(하도급사)와 회의를 할 때 수직적으로 공포 분위기나 억압 분위기를 조성하여 야단치고 부당한 지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귀담아듣고 회의석상에서는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편안히 회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말은 쉽지만 이 원칙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전 00현장의 설계변경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 00협력사에게 기성 지급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격훈련, 기술자의 경험 및 지식 습득, 소통, 이 모든 것을 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을의 위치에서
지난번에 근무했던 현장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발주처 감독과의 견해차가 발생하여 설계변경에서 피터지게(?) 싸운 이야기입니다. 아까 언급했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발주처에서 적절한 기성대가를 원도급사가 수령해야 하고 그래야 하도급업체에게도 적절한 기성대가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발주처에서 적절한 기성대가를 지급받지 못하면 하도급사에게도 적절한 대가를 지급할 수 없겠죠. 이건 쌍방의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목적물에 대한 하나하나의 아이템이 세부 내역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상을 지급한다면 과기성이 됩니다.
올해 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발주처 감독이 올해 2월 새로 부임하였는데, 전(前) 감독과 간단한 인수인계는 하였지만 공사 진행시 발생된 수많은 스토리를 잘 모르니 매 건마다 설명하고 해명하는 과정이 참 많았습니다.
감독의 업무는 대부분 책임제이고 감사도 수시로 받아야 하니 투명하고 명분이 있는 것에 한하여 업무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삯에 대한 문제가 발행했습니다. 분명이 전 감독에게 적절한 지시를 받고 일을 수행하였는데 그에 대한 문서(공문, 작업지시부)가 없다고 하여 대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였죠. 제가 이 현장에 오기 전에 발생한 일이라, 저도 물어물어 확인해보니 공문서가 없는 상태였고 구두 지시에 의하여 일을 진행하여 노임, 자재비가 오천만원 정도 발생하였습니다. 일을 했으면 노동의 대가가 따르는 것이 당연한데 작업지시에 대한 문서가 없어 그에 대한 기성대가를 지급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상도에 맞지 않는 일이었기에 도저히 수긍을 할 수 없었죠. 그간 발생된 추진경위를 조사하여 발주처 감독 윗사람에게 보고도 하고 협력사 직원과도 미팅을 시켰습니다. 새로 온 감독은 이 상황에 대하여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근거가 문서로 안 남아있어 감사에 지적받을 수 있으니 그 당시 담당 감독에게 확인서를 받아와야만 인정해 주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전 감독을 알지 못하지만 확인서를 만들어 감독을 찾아갔습니다. 그 서류 하나만 날인 받으면 기성대가를 지급받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서명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죠. 온갖 핑계를 대며 감사에 문제된다고 거부하였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여 맘을 추스르기 힘들었습니다. 같이 근무한 직원과 매주 예배를 드렸는데 이 문제를 놓고 하루에 몇 번씩 기도를 하고 교회 구역원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맘을 다해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편지 내용은 요즘의 사회적인 분위기, 슈퍼갑의 이야기, 공정한 대가가 지불되는 것이 상도인데 행정업무의 실수로 인해 기성대가가 없어지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편지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하여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맘에 병을 안고 살아가려니 이 상황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여 미칠 것 같아서 그냥 잊기로 하였습니다. 슈퍼갑의 횡포를 주위에서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깟 종이쪼가리 한 장 없어서 일한 대가가 없어지다니!
그러다 다시 용기를 내어 전 감독에게 공손하고 논리정연하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 처지를 이해한다고 하여 다시 재고하여 현 감독과 연락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산 시 반영되어야 하기에 며칠 밖에 시간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답이 없어 또 연락을 하니 시공사의 강한 의지에 어쩔 수 없다고 확인서를 써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확인서를 받아 기성대가를 지급받았습니다. 참 힘들고 지치고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건설업에서 발주처의 지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시공사에게 불이익이 많이 발생하여 억울하지만 참고 가는 게 대부분입니다. 이런 수직적인 구조에서 제 역할을 다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들던 지요.
갑과 을의 상생을 꿈꾸며
저의 일상에서 겪은 경험을 진솔히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 글의 독자들이 갑을병 위치는 다 다르겠지만 그리고 저의 생각과 불일치할 수도 있지만, 노동의 대가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비용으로 지불되어야 하는 원칙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갑을병 위치는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동역자라는 의식이 생긴다면 상생이 이루어질 텐데, 자신의 위치에서만 상대를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한 악순환만 계속될 겁니다. 신앙의 핵심인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샬롬!!!
첫댓글 수수께끼...을이 제일 좋아하는 의류브랜드는????
GAP랍니다^^
집사님 삶이 예배드림의 삶같아 감동입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디~
답답함에 들어왔는데 리얼한 글 잘 보고 갑니다.... 저에게 요즘 '슈퍼갑'은 둘째입니다. 딴에는 섬긴다고하는데도, 날마다 불만하며 적당한 비용지불을 불허합니다. - 엄마에게 필요한 '대가'는 그저 한번의 '감사'인데요.... 끝없는 결핍을 어쩌면 좋을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음을 깨닫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