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미 人터뷰] 신치용 감독, 임도헌 코치 품은 진짜 이유
신치용 감독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배구단 단장 겸 삼성스포츠단 부사장이 그의 새로운 타이틀이다.(사진=일요신문DB)
먼저, 이 인터뷰는 4월 6일에 진행됐음을 밝힌다. OK저축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한 후 기자와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진 신치용(60) 감독은 이 날 많은 얘기를 털어 놓았다. 1995년 삼성화재 창단 감독을 맡은 이후 20년 동안 19번 챔피언결정전 진출, 16번의 우승을 이룬 상황들, 그리고 제자 김세진 감독과의 세 차례 대결에서 0-3으로 완패당한 심정 등과 관련해서 이례적으로 많은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얘기를 덧붙였다. “이제 더 이상은 코트에서 제자들과 얼굴 붉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신치용 감독은 OK저축은행과 챔피언결정전을 치르기 전에 이미 마음 속으론 자신의 또 다른 인생을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그 끝이 우승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쓰라린 패배로 막을 내렸고, 자연스레 지도자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가 아니었지만, 대화는 인터뷰 형식으로 흘러갔다. 소주를 곁들인 식사 자리에서 신 감독은 내내 이런 부탁을 전했다.
“이 기자, 오늘 얘기는 당분간 쓰지 마소. 조만간 생각 정리를 할 테니 그게 결정되면 후에 나가는 걸로 합시다.” 삼성화재는 18일, 신치용 감독이 6월 1일부터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산하에서 삼성 블루팡스 배구단 단장 겸 스포츠단(축구·농구·배구)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임명됐다고 발표했다. 신 감독의 후임으론 임도헌 수석코치가 사령탑에 올랐다.신 감독이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가장 솔직하게 인터뷰했던 내용을 정리해 본다(타이틀은 기존의 ‘신치용 감독’ ‘임도헌 코치’로 통일했다).
# 챔프전 직후 신치용 감독의 반성 “우리 팀은 ‘원팀’이었다. 원팀이었기 때문에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고. 그러나 단기전으로 가면 OK저축은행이 우리보다 전력이 앞서 있었다. 젊은 선수들은 불이 붙으면 화력이 세다. 그걸 알면서도 제대로 대응 못한 내가 무능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신 감독은 기자 앞에서 자신의 지도력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가했다.
“선수 실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걸 변명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정규리그가 선수 관리와 전략이라면 챔프전은 전력과 기 싸움이다. 힘으론 우리가 OK에 밀렸지만 경험과 노련미를 통해 단점을 극복하려 했는데, 그게 결과로 나타나지 못했다.”
신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 직전, 6라운드 들어서부터 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했다고 말한다. 부상 선수와 FA 선수들로 인해 선수단 구성의 변화가 많은 상황에서 기존 삼성화재만의 열정과 투혼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이다.
“그걸 알아 챈 순간 내가 많이 당황했다. ‘아, 우리 팀이 왜 이리 됐지?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건가?’하며 복잡한 마음뿐이었다. 우리보다 전력이 앞선 상대를 만나 내가 겸손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선수 구성에 변화가 있는 상태에서 난 이전의 삼성화재를 떠올리며 그걸 믿고 갔다는 아쉬움이 나를 심하게 흔들었다.”
# 제자를 만나 싸우다 보니 불이 붙지 않았다!
신 감독은 선수들의 잘못보다는 감독의 역량 부족이었음을 토로했다. 챔프전을 앞두고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신 감독의 새로운 고백이 이어졌다.“상대팀 감독이 김세진이다 보니 나 스스로 불이 붙지 않더라. 내가 제자를 상대로 눈에 불을 켜고 이기려 드는 게 어색했다. 불편했다. 그래서 또 다른 사실을 느꼈다. 챔프전에서 우승하려면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 점에서 현대캐피탈의 김호철 전 감독은 아주 훌륭한 파트너였다(웃음).”
김호철 현대캐피탈 전 감독과 신치용 감독. 신 감독의 승부욕에 불을 지핀 라이벌이었다.(사진=일요신문DB) |
삼성화재는 팀 창단 이후 지금까지 항상 남자 배구의 정상에 올랐다. 세 차례 챔프전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삼성화재가 정상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코칭스태프나 선수들, 심지어 구단 직원들 까지 ‘최고’라는 의식에 도취돼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우승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면서, 우승을 당연시 하는 풍토가 팀을 흔들었다는 분석이다.
“정규리그는 꾸역꾸역 이어갔지만, 챔프전에선 에이스의 부재가 컸다. 선수들이 기죽을까봐 (박)철우의 부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선수들이 중심축을 형성하며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와 에이스의 부재가 챔프전 우승을 놓친 원인이었다. 신치용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승부사로 인식되었다. 마지막에는 피도 눈물도 있는 지도자였다. 그래서 진 것이다.”
# “신치용 후임은 임도헌일 수밖에 없다!”
처음엔 소주 한 병으로 시작된 식사 자리가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병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신 감독은 기자의 질문만 받지 않고,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기자는 삼성화재 후임 감독이 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기습 질문이라 순간 ‘어버버’ 하고 있자, 신 감독은 서슴없이 임도헌 코치 이름을 꺼내 들었다.
“내 후임은 임도헌 코치이다. 누가 뭐래도 난 임 코치를 차기 삼성화재 감독으로 추천할 것이다. 임 코치는 2006년 우리 팀 코치로 들어와 성질 더러운 신치용 밑에서 9년을 버틴 지도자이다. 현대캐피탈 출신 선수였지만, 누구보다 삼성화재의 배구를 잘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는 적임자이다.”
임 코치는 올시즌 A 팀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다. 고민 끝에 신 감독을 찾아가 이와 같은 사실을 털어 놓았고, 신 감독은 임 코치에게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고 한다.
“거기 가도 좋겠지만, 좀 기다려봐. 곧 무슨 얘기가 있을 테니까.”
임 코치는 그게 어떤 내용인 지를 전혀 몰랐지만, 신 감독의 한 마디에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룹에선 삼성화재 출신을 감독으로 앉히길 원했지만, 지금은 출신 성분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지 않나. 임 코치만큼 성실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가 감독에서 물러난다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임 코치가.”
# 외국인 선수 가빈과 안젤코의 차이점
신 감독은 몸값이 싼 외국인 선수를 영입, 최고의 선수로 신분 상승 시키는 남다른 지도력을 발휘했다. 안젤코 추크, 가빈 슈미트, 그리고 현재 뛰고 있는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레오)는 한국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이 만개한 경우다. 한편으로는 ‘몰빵배구’라는 비난에 직면했지만, 외국인선수에게 지속적인 기회와 믿음을 주면서 자신의 독한 훈련을 견뎌낼 수 있는 내성을 장착시켰다. 그리고 그 끝은 우승이었다.
“안젤코는 10만 불에 데려온 선수였다. 가빈도 입단 첫 해에는 15만 불 정도였다. 더욱이 가빈은 아가메즈를 데려오려다 막판에 바뀐 선수였다. 외국인선수들이 들어오면 그들에게 분명한 선긋기를 했다. ‘외국인선수라서 봐주는 것은 없다. 오히려 더 ‘빡세게’ 굴릴 것이다‘라는 걸 직접 보여줬다. 물론 처음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 시스템에 적응 못하겠다고 반발했던 선수도 나타났다. 그럴 땐 가차 없이 나가라고 했다. 설령 우리가 경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외국인선수에게 읍소하면서 팀을 이끌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모두 돌아왔다. 돌아와선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다.”
신치용 감독이 꼽은 최고의 외국인선수, 가빈.(사진=배구연맹) |
“지금 가빈이 터키 프로팀에 있는데, 그곳은 원래 아가메즈가 있던 팀이었다. 아가메즈가 현대로 오면서 가빈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가빈은 지금도 종종 연락해온다. 유럽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잘 챙겨줘 예쁘다(웃음). 한 번은 다시 삼성으로 오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더라. 그러면서 자신의 몸 상태가 옛날 같지는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가빈 얘기 듣고 한참을 웃었다. 우리 팀에 있다 나간 선수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한다. 이유? 나도 모르겠다(웃음).”
반면에 안젤코는 신 감독의 기억 속에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안젤코는 삼성과 재계약 과정에서 일본 도요타가 자신에게 35만 불을 제시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말했다가 바로 짐을 싸서 팀을 떠나야만 했다. 신 감독이 그에게 더 많은 돈을 제시하며 붙잡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신 감독은 “도요타에서 35만 불을 제시했다고? 축하해. 나도 널 잡고 싶지만, KOVO에서 외국인선수의 몸값 상한선을 28만 불로 정해놨기 때문에 그 룰을 어길 수가 없다. 가서 열심히 해봐. 그동안 수고했다”라고 대답한 것. 안젤코는 당시 신 감독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결국 일본 도요타에서 2년을 뛴 안젤코는 그 후 한국전력으로 복귀했다.
신 감독이 가장 듣기 싫어하고, ‘열 받아’하는 표현이 ‘몰빵배구’이다.
“내가 한심하게 생각하는 감독 유형 중 하나가 ‘삼성화재의 몰빵배구 때문에 경기에서 졌다’라고 표현하는 감독들이다. 그 팀도 외국인선수가 있다. 그 선수로 ‘몰빵배구’하면 되지 않나. 그들이 할 줄 몰라서, 그런 배구를 하기 싫어서 안 한 건가. ‘몰빵’도 원팀이 됐을 때 가능한 얘기다. 외국인 선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훌륭한 어시스트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의 공격력이 배가 된다. 난 몰빵으로 여덟 번을 우승했다. 그걸 깨지 못한 사람이 바보지,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하나.”
(신치용 감독은 실업팀 시절, 슈퍼리그 시절 8회 우승, 프로 출범 후 8회 우승 등 모두 16차례나 삼성화재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 그룹에서 두 달을 쫓아다니며 뒷조사한 사연
지난해 1월, 신치용 감독은 체육인으로는 처음으로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과 모범이 되는 행동을 보인 임직원 20명이 수상자였고, 신 감독이 20회만에 체육인 1호를 기록한 것이다.
“수상자 후보들을 대상으로 그룹 차원에서 두 달 동안 뒷조사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난 탈탈 털렸고, 먼지가 안 났다(웃음). 당시 그룹에선 내게 ‘신 감독이 하고 싶을 때까지 감독하시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돌아가는 상황 파악 못하고 주저앉을 사람은 아니다. 때를 기다렸고, 그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신 감독은 곧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팀 감독으로 가려던 임 코치를 붙잡았기 때문에 자신은 책임을 지고 임 코치에게 그 자리를 맡겨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어떤 모양새로 팀을 떠날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에서 물러나도 배구단에서 완전히 손을 떼진 않을 것이다. 임 코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생각이다. FA로 나오는 선수가 있다면 필요한 선수는 잡아준다. 선수에 대한 ‘한’이 있는데 그건 풀어야 하지 않겠나.”
그 순간 기자는 직감했다. 신 감독이 배구단 단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물론 배구단 단장보다 더 어려운 스포츠단 부사장직도 겸했지만, 신 감독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 하고,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신 감독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만약 신 감독이 물러난다면, 배구판은 현대 출신의 삼성화재 감독인 임도헌과 삼성화재 출신의 현대캐피탈 최태웅, OK저축은행 김세진, 우리카드 김상우,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으로 나뉩니다. 과연 어떤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감독 생활한 과정을 제대로 지켜봤다면, 그리고 삼성이 왜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잘해 낼 것이다. 신영철 감독을 제외하고 모두 선수와 제자로 만난 감독들이다. 대신 임 코치는 선수가 아닌 코치 신분으로 내가 선수들을 어떻게 가르쳤고, 이끌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이 정도면 답은 나온 거 아닌가?”
마음의 정리를 끝낸 신 감독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감독 생활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는데, 그걸 지켰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내가 감독하는 동안 우승은 못할지 언정 챔프전은 꼭 간다는 게 목표였다. ‘영원불멸’ 삼성화재를 위해 20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쉬움이 있을 리가 없다. 만약 내년에도 이걸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뒷골부터 당긴다.”
그리고 기자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이 내용, 지금 바로 기사로 쓰면 안 될까요?(웃음)”
“나 잘리는 꼴 보려면 바로 써도 돼요(웃음).”(신 감독이 '잘리는' 걸 보지 않으려고 발표 난 이후 썼다.)
지난 시즌 챔프전 우승을 달성했던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과 레오. 감독 시절, 마지막 챔프전 우승이었다.(사진=연합뉴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