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1월 8일, 시즌이 시작해도 벌써 시작했어야할 그 시점에서 구단측과 노조측은 직장 폐쇄 문제에 대한 마지막 협상을 벌였다. 이 날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98-99 NBA 시즌 개최에 대한 여부는 불가능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팬들이 조마조마해 했던 이 날, 결국 두 단체는 극적으로 협상안에 대한 합의점에 도달했고, 사라질 뻔 했던 98-99 시즌은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관련 기사를 소개했던 ESPN 의 헤드라인이 생각난다.
'Play ball! Lockout ends!'
2개월 가량의 시즌을 까먹은 상태, 게다가 FA 시장이 아직 개막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즌 개막은 2월 첫째 주까지 늦춰질 수 밖에 없었고, 경기 수 역시 50경기로 단축되었으며,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기로 했던 1999 NBA 올스타전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1월 중순부터 2월 초, 그 짧은 기간동안 100여 명의 FA 가 이동했던 그 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스카티 피펜은 휴스턴 로케츠로 이적했고, 앤토니오 맥다이스는 덴버 너겟츠를 향해 떠났다. 또한, 문제아 라트렐 스프리웰은 뉴욕 닉스에서 새로운 NBA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은 매년 여름이면 있어왔던 것이지만, 짧은 기간동안 정말 많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 임팩트만큼은 그 어느 해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레이커스 역시 동참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레이커스는 99년 1월 29일, 코비 브라이언트와 6년 7천만 달러의 확장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이 액수는 96년도 드래프티들이 확장 계약시 받을 수 있는 최대치 액수였고, 96년 출신 중 이런 액수를 받은 선수들로는 앨런 아이버슨, 스테판 마버리, 레이 앨런, 앙투앙 워커, 케리 키틀즈, 샤립 압더 라힘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팀과 확장 계약을 체결했다.
* 리바운더, 코비 브라이언트
레이커스의 98-99 시즌, 베테랑 PG 인 데릭 하퍼의 영입, 닉 반 엑셀의 트레이드 이외에는 이렇다할 변화가 없었지만, 그들이 내놓은 개막전 로스터, 휴스턴 로케츠와의 첫 홈경기 로스터는 많은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난 시즌, 주전으로 활약했던 로버트 호리와 릭 폭스가 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반,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C : Shaquille O'neal
PF: Corey Blount
SF: Kobe Bryant
SG: Eddie Jones
PG: Derek Fisher
97-98 시즌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과시한 코비 브라이언트가 개막전 주전 로스터에 포함된 것이었다. 당시 개막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숱한 화제 거리를 양산해 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사람들의 관심을 한데 모았던 건, 세 명의 '위대한 50인의 선수' 들(올라주원, 피펜, 바클리)이 어떤 콤비네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였지만, 새로운 유니폼을 입은 스카티 피펜, 그리고 그와 매치업하는 코비 브라이언트에 대한 관심사 역시 대단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1쿼터에서만 스카티 피펜의 슛을 두 번이나 블락하는 등 경기 내내 피펜을 압도했다. 그 경기에서 브라이언트는 25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피펜을 10득점(4/18 FG) 로 막아내는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결국 레이커스는 승리했고, 당시 AP 기사에서 '세 명의 올스타(오닐, 존스, 브라이언트)가 세 명의 '위대한 50인의 선수' 보다 뛰어났다.' 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 주전 SF 였던 릭 폭스는 레이커스의 시즌 네 번째 경기에서 코트에 복귀했지만, 델 해리스는 이미 브라이언트의 주전 체재를 선택했는지 폭스는 벤치 플레이어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시즌 초반, 레이커스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코비의 리바운드. 코비는 시즌 개막 후 5경기 연속으로 10+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로케츠와의 개막전에서 선보인 'Put Back Dunk' 는 예전의 코비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어서 더욱 놀라움을 주었다. 당시 폭스 스포츠에선 이러한 코비의 리바운드 능력을 놓고, 그 것이 과연 fluke 인지, 혹은 그 것이 코비의 성장인지를 두고 분석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코비의 리바운드는 진짜다.'
* In & Out !!
레이커스의 시즌 6번째 경기 상대는 지난 시즌, 시카고 불스와 컨퍼런스 패권을 놓고 다퉜던 인디애나 페이서스였다. 페이서스는 직장 폐쇄 상황에서도 미리 팀 연습을 실시하며, 98-99 시즌 우승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동부 컨퍼런스 최강팀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날 경기는, 강팀의 저력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던, 내게는 보물과도 같은 경기였다. 두 팀은 51-51 으로 전반을 마쳤다. 그러나, 홈코트 어드벤티지를 등에 업고 있었던 레이커스는 3쿼터, 에디 존스의 6연속 속공 득점과 샤킬 오닐의 덩크 퍼레이드에 힘입어 홈구장을 열광의 도가니탕 속으로 안내했다. 레이커스가 경기 분위기를 압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3쿼터 종료시, 레이커스가 확보했던 점수차이는 고작 2점 뿐이었다. 레이커스가 공격 러쉬를 하는 그 와중에서도 페이서스는 제일런 로즈, 레지 밀러를 중심으로 차분히 득점 행진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레이커스는 4쿼터 중반까지 경기를 리드해 나갔으나, 앤토니오 데이비스가 풋 백 덩크와 두 번의 공격자 파울 유도를 연속적으로 성공시키며, 경기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여기에 코비는 베이스 라인에서 풀업 점퍼를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재반전시키는 듯 했으나, 제일런 로즈 역시 침착한 점퍼를 성공시키는 클러치 능력을 발휘했다.
경기 종료 15초 전, 2점차로 지고 있던 레이커스의 코비는 회심의 역전 3점슛을 시도했으나 볼은 림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레이커스의 파울 작전, 그리고 페이서스의 침착한 자유투로 인해 점수차는 4점으로 벌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집고 넘어가자면 페이서스는 97-98, 98-99 시즌을 통해 29개팀 가운데 자유투 성공률이 가장 좋은 팀이었다.
경기 종료 13초 전, 델 해리스 헤드코치는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돌파에 이은 빠른 2점 획득을 요구했고, 코비는 결국 자유투를 얻어내 점수차를 다시 2점으로 좁히는데 성공했다. 이제 레이커스는 다시 파울 작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페이서스는 볼을 레지 밀러에게 유도하는데 성공했고, 시간의 여유가 없는 레이커스는 어쩔 수 없이 밀러에게 파울을 범하고 만다. 물론, 밀러는 그런 상황에서 자유투를 놓칠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점수차는 다시 4점.
경기 종료까지는 8초가 남아있었고, 레이커스는 다시 반격에 나섰다. 레이커스가 선택한 옵션은 에디 존스가 아닌 코비 브라이언트로 하여금 3점을 던지게 하는 것. 코비는 정면 3점 라인에서 두 세 발짝 더 뒤로 물러선 매우 먼 거리에서 3점을 시도했고, 이는 정확히 림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남은 시간은 4초, 페이서스의 1점차 리드.
레이커스는 0.3 초 만에 파울을 범하는데 성공했는데, 이번엔 그 대상이 릭 스미츠였다. 릭 스미츠가 자유투 1구를 실패하는 바람에 레이커스는 종료 3.7 초를 남겨두고 동점 혹은 역전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델 해리스는 또 한 번의 도박을 했다. 다시 한 번, 코비에게 3점을 던지게 했던 것. 코비는 인바운드 패스를 받아 조금 전, Big 3 Shot 을 성공시켰던 바로 그 지점에서 또 한 번의 3점슛을 시도했다. 그러나, In & Out!! 코비는 아쉬워했고, 경기 후 밀러는 이러한 코비에게 다가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페이서스의 101-99, 2점차 승리. 당시 해설자는 코비가 시도한 마지막 슛이 비록 실패했지만, 그 슈팅 릴리스만큼은 정말 훌륭했다고 평가하며 코비를 위로했다.
한 경기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을지 모르지만, 이 경기 내용을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하는 이유는 바로 이 경기가 코비가 레이커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까지 늘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팀 내 최고의 3점 슈터는 에디 존스였다. 그러나, 델 해리스는 두 번의 클러치 3점 시도를 존스에게 맡기지 않았다.
In & Out !!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5할이라는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며, 델 해리스는 해고당했다. 레이커스가 어려웠던 90년대 중반 팀의 리더로서 많은 업적을 만들었던 그를 뒤로 하고, 2월 28일, 두 명의 인물이 새로이 레이커스호에 승선했다. 구단 프런트에서 여러 가지 임무를 맡고 있었던 전 레이커스 선수 출신의 커트 램비스가 헤드 코치에, 그리고 시카고 불스 3연패의 주역이기도 했던 데니스 로드맨이 12인 로스터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3월 12일은 많은 레이커스 팬들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던 날이다. 레이커스의 리빌딩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해주었던 에디 존스와 앨든 캠밸이 샬럿 호네츠로 이적하고, 호네츠의 글렌 라이스, J.R. 리드, B.J. 암스트롱이 레이커스로 이적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트레이드가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분석한다. 첫 번째는, 한층 더 성장한 코비와 EJ 는 양립할 수 없다라는 구단 프런트의 판단. 그리고 두 번째는 새로 영입한 데니스 로드맨의 탄탄한 팀 공헌도.
이 날은 코비 브라이언트 개인에게도 상당히 인상깊은 날로 기억될 것이다. 팀 내에서 가장 친했던 사이, 그리고 같은 포지션 라이벌이자 팀메이트로서 많은 가르침을 내려주던 존스의 이적은 코비에게도 상당한 아쉬움이었다. 그렇지만, 이 한 건의 트레이드로 인해 코비 브라이언트는 이제 확고한 주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또한, 레이커스는 로드맨 영입 이후 쾌조의 9연승 행진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In : 커트 램비스, 데니스 로드맨
Out: 델 해리스, 에디 존스, 엘든 캠밸
그러나, 미리 말해두겠지만, 레이커스의 승승장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커트 램비스에게는 데니스 로드맨을 장악할만한 카리스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 코비, 최고의 날.
3월 22일, 레이커스는 올랜도 매직과의 원정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날, 올랜도 팬들은 마치 샤크를 죽이겠다는 필사적인 의지를 갖고 경기장을 찾은 듯 했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지난 1996년 여름, 올랜도를 떠나 헐리우드에 안착했던 샤킬 오닐은 지난 두 시즌동안 매직 원정 경기가 있을 때마다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올랜도를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3월 22일은 올랜도 매직의 미래로 여겨졌던 샤킬 오닐과 앤퍼니 하더웨이 콤비가 이제는 적이 되어 처음으로 맞짱을 뜨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다.
전반, 레이커스는 무기력했다. 샤크-코비-라이스 트리오의 단조로운 1대1 공격에 너무 심한 의존도를 보였고, 페니를 축으로 하는 매직의 속공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페니는 과연 리그 최고의 가드다웠고, 대럴 암스트롱은 속공에 있어서 정말로 효율적인 선수였다. 결국, 매직은 20점차의 리드를 안고 전반을 마쳤다. 올랜도 홈팬들의 'Beat L.A' 열풍은 가실 줄을 몰랐다.
샤크 vs 페니. 이 멋져 보였던 시나리오가 허망하게 끝나는가 싶었던 그 타이밍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코비 브라이언트. 근데, 단순한 등장이라는 표현으로는 코비의 후반 활약상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코비는 마치 두 선수, 샤크와 페니만을 위한 경기처럼 보였던 이 날 경기를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전반 4득점에 그쳤던 코비는 3쿼터에 들어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셋오펜스에서의 풀업 점퍼, 속공에서의 풀업 점퍼. 그의 장기인 드라이브 인에 의한 득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비수를 앞에 두고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시도하는 그 점퍼 하나만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그리고 3쿼터, 코비는 6연속 필드골 시도를 성공시키는 등 막말로 아주 미쳐버렸다. 매직은 그를 막기 위해 닉 앤더슨, 맷 하프링, 마지막에는 결국 페니까지 붙여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코비는 후반에만 무려 34득점을 퍼부었고, 전반 20점차의 리드를 허용했던 레이커스는 코비의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4쿼터 중반 이후부터는 리드차를 점점 벌려나가며, 여유있는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115-104, 레이커스의 승리.
이 날, 각 NBA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코비 찬양 일색이었다. 적어도 이 한 경기만큼은 예전의 누구를 떠올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코비를 싫어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런 표현을 상당히 자주 볼 수 있었다. 코비가 지금까지 펼친 경기 중 최고의 경기는 어쩌면 00-01 시즌, 48득점을 퍼부었던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시리즈 4차전일지도 모르나, 지금까지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기 중에서 그가 이만큼의 지배력을 보였던 경기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코비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99년 3월 22일에 벌어졌던 레이커스와 매직의 경기 테잎을 구해보시길 권장한다. 참고로 이 날 경기는 AFKN 새벽 중계를 통해 국내에 방영되었다.
* Good Bye Dennis~
팀 연습 불참, 지각 등등 데니스 로드맨은 자신을 장악할 수 없는 램비스 감독 아래에서 나태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결국 4월 중순 경, 레이커스가 로드맨을 방출해버리는 사태를 야기시켰다. 레이커스가 글렌 라이스 영입을 위해 앨든 캠밸까지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데니스 로드맨에 대한 만족도 때문이리라. 실제로 많은 리포트를 통해 데니스 로드맨이 레이커스에 가져다준 효과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얘기들을 많이 봐왔고, 그의 팀 공헌도는 대단했다. 그러나, 제리 웨스트와 커트 램비스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로드맨은 떠났고, 레이커스는 31승 19패, 6할 2푼의 성적을 남기며 정규 시즌을 마쳤다. 레이커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유타 재즈 등에 이어 서부 컨퍼런스 전체 4번 시드를 획득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50경기 모두 주전으로 나와 평균 37.9분동안 19.9 득점, 5.3 리바운드, 3.8 어시스트, 46.5% FG, 26.7% 3P, 83.9% FT, 1.44 스틸, 1.00 블락슛을 기록했다. 코비 자신에게는 커리어 하이에 해당하는 기록이었고, 리그 탑 슈팅 가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만한 기록이기도 했다.
*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경기 소개가 많아서 내용이 매우 길어진 듯 해서요. 다음 편에는 아마도 98-99 PO 에 대한 얘기와 1999년 오프 시즌에 관한 얘기가 소개될 듯 합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