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노인-죽음의 경계에 있지만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노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시간에 조금만 더 있었다면, 못다 이룬 내 꿈들을 모두 완성할 수 있을 텐데. 아직 내 집도 다 짓지 못했고, 내 아들의 결혼도 보지 못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너무 많다. 나는 이제야 그것들을 조금씩 이루기 시작했다.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끌려 나가는 것이 공정하고 적절한 일인가? 최근에서야 세상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다. 아이들은 자라서 자기 삶을 일구기 시작했다. 나는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며 신을 숭배하며 여생을 바칠 생각이었다.”
죽음이 다가오면 인간은 늘 ‘나에게 시간이 더 있다면 신을 모시는 데 그 시간을 쏟았을 것이다. 신이 내 꿈을 모두 이루도록 배려하지 않은 채로 내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은 너무나 부당해 보인다.’라고 말한다.
죽음의 순간에 인간이 겪는 어려움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열망이 충족되지 않은 채로 육체가 그를 떠나려고 한다. 그런 미완성의 열망들은 곧바로 새로운 탄생을 찾아갈 것이다. 그것들은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지 못한다. 좀 더 살고 싶은 그대의 열망이 또 다른 탄생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죽음은 사실 자궁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자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는 점을 깊게 이해하라. 이런 죽음의 순환은 그대가 전생의 죽음에서 더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을 때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대가 그 현상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면, 그 열망들이 바로 계속 이어지는 죽음들을 연결시키는 고리라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 탄생과 여러 죽음의 원인이 된다. 붓다는 여러 번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열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그러면 삼사르samsar, 즉 속세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열망도 마음에 품지 말라. 그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만족하라. 그러면 그대에게 또 다른 탄생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목표에 이미 도달하여 더 이상의 여정이 필요 없고 아무데도 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저 지금의 삶에 만족하라. 무얼 성취하던지 간에 그것은 이미 충분함을 넘어선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성취하려는 생각을 모두 버려라.
이런 일이 그대에게 일어난다면, 과연 그대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겠는가? 그대는 완전하게 만족한 상태로 죽을 것이다. 완전히 만족한 상태로 죽는 사람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 그런 사람은 죽음의 예술을 이미 안 것이다. 무욕의 상태로 죽는 사람은 죽음의 예술을 깨달은 것이다.
-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
첫댓글 욕심을 내려놓고 자세를 낮추고 작은 것이 감사함을 가지면 모두가 행복하다고 하네요.
열망이 자칫 지나치거나 넘치면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속박하게 되겠지요.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는 게 편안하고 자유로울 것 같습니다.
윗글의 마지막 글귀가 "무욕의 상태로 죽는 사람은 죽음의 예술을 깨닫는 것이다"는 것인데 얼듯 생각하면 죽는데 무슨 예술까지 거창하게 거론하는가라고 단순히 생각할수도 있지만 에술까지는 모르겠지만 '무욕'만큼은 수많은 선각자들께서 '비워라', '내려 놓아라'라고 목청을 돋구시면서 알려주셨지요. '평상심이 도'라 하시면서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라', 진실하게 사는 삶이 바로 도'라는 상세히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지요. 이제는 알만한 것은 다 알았고 실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상이 짧은 지금으로서는 그저 단순하게 감사와 배려를 실천하는 것만이 잘 살다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하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