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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영-오연교-최인영-김병지-이운재로 이어진 한국대표팀 월드컵 주전 골키퍼 역사에서 유일한 본선 2경기 이상 무실점, 본선 3회 출전, 최다 경기 소화의 주인공이 이운재다. 94월드컵 최종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 최인영과 교체돼 월드컵 본선 무대에 데뷔한 이운재는 2002월드컵 스페인전 승부차기 히어로, 2006월드컵 프랑스전 슈퍼세이브 등의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0월드컵의 유력 주전 키퍼인 이운재가 내년 남아공 땅을 밟는다면 홍명보의 한국축구 개인 통산 월드컵 본선 최다 출전 기록(4회)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수비라인에선 중앙 수비수 홍명보의 자취가 독보적이다. 90월드컵부터 2002월드컵까지 4회 연속 본선 무대를 밟은 홍명보는 발군의 리딩과 수비력으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대표팀의 불가결 존재로 확고히 자리 했다. 수비수임에도 한국축구 사상 첫 월드컵 본선 한 대회 2골 등 골 넣는 수비수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왼쪽 풀백과 또 한 명의 센터백 자리에는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서 활약한 이영표와 최진철을 선정했다. 조민국, 정용환, 박경훈, 김태영 등의 뛰어난 전임자들과 경합을 벌인 끝에 개인과 팀 성적 부문에서 우위를 점한 이영표와 최진철이다. 오른쪽 풀백으로는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활약한 김판근을 꼽았다. 빠른 발에 날카로운 킥력, 남다른 승부근성의 김판근은 공격과 수비에 걸친 고른 활약으로 한국대표팀의 2002월드컵 4강 이전 최고 성적을 가능케 하는 공헌을 세웠다. 김판근이 홍명보, 박정배, 이영진 등과 함께 수비라인을 구축했던 94월드컵 조 예선 2차전 볼리비아전 0-0 무승부는 한국축구 사상 첫 월드컵 본선 무실점 경기였다. |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활약만으로 선정 기준을 정한 덕에 별다른 고민 없이 필요 없었다. 2002년 월드컵의 '판타스틱4'를 그대로 적어 넣었다. 이운재(GK)와 그 앞 선에 늘어선 스리백(홍명보-최진철-김태영)은 첫 경기 폴란드 전에서 독일과의 4강 전에 이르는 6경기를 단 3실점으로 막았다. 이 대진에는 '유럽 3강'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이 모두 포함된다. 이 중 골키퍼 이운재는 1994년 스페인 월드컵 독일 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것을 비롯 총 3개 대회(94,02,06)에 나서 11경기 10실점으로 0점대 방어율을 기록 중. 불세출의 리베로 홍명보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4개 대회 연속 본선 무대를 밟았고 이 4개 대회에서 한국이 치른 전 경기(16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었다. 최진철은 2002년과 2006년, 김태영은 2002년 월드컵에서 제 몫을 해냈다. 이외에도 여러 선수가 대한민국의 월드컵 무대를 빛냈는데 1998년 월드컵에서수 많은 선방을 펼치며 고군분투했던 김병지 골키퍼, 두 번의 월드컵에서 분전한 조민국, 정용환 등의 수비수들도 기억할 이름들. 윙백으로 활약한 선수들도 수비수 부문해 포함해 소개하면 단연 이영표와 송종국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개 대회(02,06)에 출전한 두 선수는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쳐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주역으로 기억된다. |
가장 고민이 됐던 포지션은 중앙 한 자리였다. 허정무와 조광래, 김남일 등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86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마라도나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고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었던 '진돗개' 허정무, 86월드컵에서 한국이 넣은 4골 중 3골에 관여하는 빼어난 활약을 펼친 '컴퓨터 링커' 조광래, 2002월드컵의 슈퍼스타이자 2006월드컵에서도 활약한 김남일 등 어느 한 쪽으로 무게추가 쉽게 기울지 않았다.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다 공수에서 너른 활약을 펼친 유틸리티 플레이어 허정무 카드를 집어 들었다. 허정무의 중앙 파트너로는 또 한 명의 멀티플 플레이어 유상철을 택했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의 유상철은 98년과 2002년 월드컵에서 최전방부터 후방까지 넓은 범위를 오가고 커버하는 다능함을 과시했다. 자신이 출전한 매 대회 골을 넣는 결정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미드필더 노정윤, 윙백 하석주 등이 후보군으로 지목된 왼쪽은 박지성으로 최종 낙점했다. 한국 월드컵 본선 최고의 골 장면으로 꼽히는 2002월드컵 포르투갈전 득점과 레블뢰 군단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2006월드컵 프랑스전 극적인 동점골 등 실질적인 공헌도와 족적 면에서 앞섰다. 박지성의 월드컵 도전사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는 서정원을 꼽았다. 쌕쌕이로 불린 서정원은 94월드컵 스페인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고 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서정원은 4년 뒤 프랑스월드컵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
역대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주력 포메이션은 늘 스리백 기반이었다. 그 앞에 나설 미드필더는 네 명으로 한정했다. 가장 먼저 적어 넣은 이름은 김주성이다. 등번호 16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삼손' 김주성은 86년 멕시코 대회부터 3개 대회 연속(86,90,94) 본선 무대를 밟았고 이 대회에서 한국이 치른 9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김주성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3년 연속 수상(1989년~1991년)하기도 했다. 그 다음은 박지성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멋진 골을 만들어냈고 2006년에는 명실상부한 팀의 주축으로 프랑스전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 가장 먼저 FIFA 월드컵 올스타에 포함된 한국인 미드필더는 '멀티플레이어' 유상철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치른 10경기에 모두 나선 유상철은 두 대회에서 모두 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2002년에는 홍명보와 함께 대회 활약상을 바탕으로 선정된 '올스타' 16인에 포함됐다. 남은 한 자리는 서정원의 몫이다. 1994년과 1998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치른 6경기에 모두 출전한 서정원은 그 중 첫 경기인 스페인 전에서의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당시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쥔 '날쌘돌이' 군인의 세리머니는 여전히 많은 축구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
차범근-최순호-황선홍의 삼파전 형국. 황선홍 카드는 상대적으로 일찍 가려졌다. 골 결정력 비난과 98월드컵 부상 고통 등의 아픔을 온 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던 황선홍이었지만 그처럼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하게 한국대표팀 월드컵 도전사의 최일선을 책임진 스트라이커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던 1990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황선홍은 94년 독일전과 2002년 폴란드전에서 골을 뽑아냈다. 유럽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 체격조건과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 등 한국의 역대 공격수 중 세계무대에서 통한 손꼽히는 스트라이커다. 차범근과 최순호 중 택일이 고민을 깊게 했다. 선수 차범근의 위대함은 새삼 설명이 불필요할 만큼 공인된 일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 보유자였을 정도로 선수 차범근의 명성과 능력은 추종을 불허했다. 다만 월드컵의 활약이 미흡했다는 점이 걸린다. 독일에서 뛰다 급하게 대표팀에 합류한 차범근은 선수로 나선 유일 월드컵 무대였던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3경기 모두 풀타임 활약했지만 골을 넣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상 원톱에 가까웠던 차범근은 상대의 수비에 고립됐고 한국이 수세에 몰려 상대적으로 공격 기회가 적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존재감은 차범근에 미치지 못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의 번쩍임만큼은 최순호가 돋보였다. 86년 대회 이탈리아전에서 후반 17분 터트린 오른발 동점골은 개인적으로 꼽는 한국축구 월드컵 본선 톱3의 골 장면이기도 하다. 90년 대회 주전 공격수로도 활약한 최순호는 최전방은 물론 아래로 처져 득점 기회를 스스로 엮어내는 능력에 있어서도 발군이었다. 어려운 선택이나 역사상 최강의 팀을 꼽는다면 선수 차범근의 무게감이 가벼울 순 없었다. |
수 많은 스타 공격수들이 뜨고 진 한국 축구사에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스트라이커들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그 무대에서 골맛을 본 선수들로 기준을 한정하면 후보에 오를 선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가장 먼저 떠올린 이름은 황선홍이다. 홍명보와 함께 4개 대회 연속(90,94,98,02) 본선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고 98년 월드컵을 제외한 3개 대회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며 2골을 넣었다. 94년 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 찬스를 놓친 것은 아픈 기억으로 남지만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에서의 선제골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뒤바꾼 장면이자 자신의 커리어를 극적으로 반전시킨 순간이다. 다음은 한국 대표 공격수 계보에서 차범근과 황선홍의 사이를 잇는 최순호다. 골이면 골, 도움이면 도움, 못하는 게 없던 만능 공격수 최순호는 2개 대회(86,90)에서 한국의 공격을 이끌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아름다운 중거리슛으로 터뜨린 골은 한국 월드컵사의 첫 동점골(1-1). 마지막 남은 자리는 한국 선수 중 역대 월드컵 최다골을 기록 중인 안정환이다. 2002년과 2006년 2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3골을 넣었다. 안정환이 넣은 골은 매번 한국에 승점을 안겨준 파랑새였다. 미국전의 무승부, 이탈리아전의 골든골 승리, 토고전에서의 역전승은 모두 안정환의 작품이다. |
히딩크 감독의 독주라고 하기엔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있다. 물론 히딩크 감독이 한국 월드컵 도전사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2002월드컵 4강 과정에서 보여준 주도면밀한 계획의 마련과 탁월한 용병술, 전술 운용, 위기 대처 능력 등 세계적 명장의 이름값이 괜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히딩크 감독이다. 이후의 일이지만 호주와 러시아, 첼시 등지에서도 히딩크의 마법과도 같은 능력은 이어졌다. 2010월드컵 러시아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의 경쟁력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국내 감독 중에는 94년 대회 당시 한국대표팀을 이끈 김호 감독의 자취가 두드러진다. 상대 팀에 대한 정보 수집 그에 따른 체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훈련과 대비책 마련으로 2002월드컵 이전 한국의 월드컵 최고 성적을 엮어낸 김호 감독이었다.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이라는 쟁쟁한 팀들과 한 조에 묶여 2무1패라는 호성적을 이끌어냈다. 독일과의 최종전 막판 뒷심은 놀라운 일이었고 경기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었더라면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과의 1차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한 서정원이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넣는 등 경기 흐름의 대처와 용병술 면에서도 호평을 이끌어낸 김호 감독이었다. |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승부사 거스 히딩크를 첫 손에 꼽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첫 16강이나 첫 4강 진출 못지 않게 의미있는 것은 첫 출전의 역사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암흑기를 한국 최고의 축구 선수로 보낸 김용식 선생(이하 존칭 생략)은 대한민국의 첫번째 월드컵 감독이다. 1952년 43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일본과의 지역예선을 1승 1무로 마쳐 본선행이 확정된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라는 국가의 특명을 받아 장도에 오른 김용식과 선수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직항편이 없던 시절, 배로 방콕까지 이동한 대표팀은 홍콩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48시간을 날아간 뒤에야 스위스에 도착했다. 서양인 체형에 맞춘 비행기 좌석과 입에 맞지 않는 기내식으로 심신이 지친 대표팀은 스위스에 도착한 지 이틀만에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시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위대한 마자르족' 헝가리를 만난다. 1950년대 A매치 33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던 헝가리는 대회 직전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7-1 대승을 거둔 터였다. 당연히 한국은 푸스카스, 콕시스, 히데쿠티 등 유럽 축구의 레전드들을 앞세운 헝가리에 0-9로 대패한다. 하지만, 김용식의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초반 10분간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한국은 2차전에서도 터키에 0-7로 패해 예선탈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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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서형욱씨를 신뢰하고 좋아하지만
멤버들 짠거를 보면 박문성씨에게 한표 던짐
첫댓글 저 쓰리백은 좌우 이영표 송종국이 있어야 진리
차범근 없는건 솔직 말이안됨....
서형욱위원이 적었듯이..월드컵 본선에서의 활약으로 한다면..차범근은 없어도 할말없죠..
저는 서형욱위원에 한표~!!
월드컵 출전 선수로 하는 겁니다. 네이버엔 적혀있는데 여기엔 없어서
2002 년이 진리 같은데
스리백에 이영표, 송종국 무조건 있어야 함.. 그 다음에는 네임벨류 넣으면 되고.
정말 이걸 그때 축구토론방에서 서정원이 한국국대 붙박이주전은아니엇다고 한사람이 봐야할텐데
지성 - 고종수 - 남일 - 청용
김태영-홍명보-최진철......이거슨진리임..
차범근 본적 없을것 같은데
유상철~!!
박문성
유상철이 대박임...실제 경기보고 반한 축구 선수중 한명.
서정원 유상철 본좌
아시아 최고의 선수였던 김주성이 국내 일반팬들에게서 너무 저평가받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유상철 나 어렸을 때 경기 어른들이랑 보면 진짜 욕 많이 하던 선수였는데... 02 월드컵 이후로 그 평가 다 뒤집었음 ㅎㄷㄷ 홈런왕소리 많이 들었는데;;
차붐은....
난 박문성씨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