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브레이크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박관우입니다.
26년전인 1992년 연천 출신 독립운동가 박경순 선생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동년에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한
박경순 선생의 기록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2016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대한족노동단 박경순 선생 기록을 발견하였습니다.
핵심 포인트는 연천 출신 박경순과 신민부,대한족노동단의
박경순 선생이 동일인물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본 바탕으로 문의드리겠습니다.
1.대한족노동단.
대한족노동단은 국편위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기재된 일본
외무성문서를 통하여 처음 알게 된 독립운동 단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대한족노동단"으로
검색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 문서의 내용중에 1923년 일제가 본 단체의 중요 문서를
압수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꼭 확인하고 싶은 문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단원명부"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단원명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박경순과
연천의 박경순 선생이 동일인물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압수된 이후 100년의 역사가 흘렀다는 것인데
현재 이 문서가 존재하고 있는지 여부를 국편위에서 조사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레이크뉴스 2018년 1월 3일자 "일제강점기 남만주 독립운동
단체 대한족노동단 재조명" 제하의 칼럼을 파일로 첨부합니다.
2.신민부.
신민부 박경순 선생같은 경우는 1928년 1월 25일 북만주 하얼빈
석두하자에 위치한 신민부 본부에서 일본과 중국 경찰의 연합작전에
의하여 기습을 받아 김혁 중앙집행위원장을 비롯하여 10인이 체포될
때 함께 체포된 것으로 나옵니다.
체포가 된 것을 팩트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후에 어디로 압송되었는지
여부를 비롯하여 재판을 받은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1954년
신민부원들의 공동증언록으로 알려진 "신민부 약사"에는 박경순 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민부원들이 공동으로 증언한 것이니 근거가 있을 것으로 믿고
싶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러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개인적인 역량의 부족이라는 점을 절실히 느끼면서
국편위에서 박경순 선생의 사형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을 조사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한족노동단 박경순과 신민부 박경순의 행적을 꼭 확인하고
싶은 이유는 연천 출신의 박경순 선생과 동일인물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국편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2018년 1월 10일(수) 박관우 브레이크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