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 쌀을 몇 봉지(우리나라 설탕 넣은 것처럼 작은 패키지) 샀지만 며칠 지나다 보니 다 떨어지고 준비해 온 라면도 동이 났다. 식구들을 제 때에 밥을 굶기지 않고 먹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아이들을 깨워 나중에 가다가 맥도날드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텐트를 걷고 샤워장으로 가면서 어제 받았던 사이트 번호표를 반납하고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사이트 사용료는 어제밤에 43프랑(스위스) 지불하였는데 10달러가 채 안되는 저렴한 요금이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이 절약되니 출발시간이 빨라졌다. 호수가에 와서 그냥 떠나자니 아쉬워서 자동차를 타고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였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산책로 였다. 할 수 없이 되돌아 나와 한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요트 계류장이 나왔다.
넓은 잔디밭이 있고 주위엔 주차장이었다. 차를 타고 와서 산책을 하는 코스였다. 계류장 앞 화단에는 붉은 장미꽃으로 된 화단이었는데 꽃송이들이 탑스럽게 피어 있었다. 계류장에는 고급 요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돛대들이 열병 하듯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거울 같이 잔잔한 수면에는 백조와 오리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호숫가로 산보 나온 사람들이 간혹 보이기도 하고 아침 일찍 요트를 타고 나가려고 덮개를 걷어 손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몇 장 찍고 잔디밭 벤치에 앉아 빵조각과 나츠미깡으로 허기진 배를 조금 채운 다음 로잔으로 향하였다. 호수라고 하지만 바다나 다름없이 커 보였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쓰레기 한점 보이지 않았다.
투어 가이드에는 로잔(Lausane)시내에는 올림픽 박물관과 고딕식으로 된 성당이 유명하다고 되어 있었다. 시내로 들어서니 길가에 늘어선 건물들이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하였다. 하긴 건축물도 하나의 예술작품이 아닌가. 바르세로나에 있는 성가족교회(Sagrada Familia)건물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1882년에 착공하여 1891년 가우디가 이어 받아 지금까지도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지만 근래에 들어 외국 것의 마구잡이 수용으로 우리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정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여 주차할 곳을 찾았으나 마땅히 세울만한 곳이 없어 빙글빙글 돌고 있던 중 수퍼마켓을 발견하였다고 하여 공원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주차하는 곳에는 번호가 적혀 있었고 아마 티켓을 사야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티켓 파는데는 보이지 않았다. 우선 아이들을 화장실부터 다녀오라고 한 뒤 나는 수퍼마켓으로 찾아갔다. 어제부터 수퍼를 찾아 두 군데나 들렀으나 7시이후 시간이라 늦었다고 모두 문을 닫은 뒤였다.
네거리 신호등에서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잇는데 한참 기다려도 신호가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하여 살펴보니 신호등 아래 기둥에 푸시보턴(push button)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맹목적인 규제보다는 시민의 편에 서서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해 내기 위해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퍼에 들어가서 가서 쌀과 양초를 사려고 카운터 아가씨에게 물어보았으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장을 보러 나온 옆에 섰던 할머니가 통역을 하다가 그 외에 뭐 필요한 것이 없느냐면서 나를 일일이 끌고 다니면서, 쌀은 이게 맛이 좋고, 고기는 이것이 맛이 있고 좋더라며 추천까지 해 주는 것이었다. 자기 볼일을 제쳐두고 도와주는 마음씨가 고마웠다.
쌀 4봉지, 햄2, 맥주6캔, 와인 1병, 콜라1병, 양초2자루, 플랏쉬 바테리2개, 베이컨 2, 식빵3, 튜나 통조림1개, 초코렛3봉지 모두 76프랑이었다. 물건이 든 비닐봉지을 들고 우리가 주차했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주위가 온통 꽃밭으로 가꾸어진 정원이었다. 그리고 네모 반듯한 석조건물 옆으로 돌아가 보니 언덕 아래로 파란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아주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건물이름을 보니 "Justice Palace"였다.
산책하기에 좋아 뜰을 한바퀴 걷고 난 다음 뒷쪽에 오래된 성당으로 보이는 높은 첨탑이 붙은 건물로 찾아가 보기로 하고 방향만 대략 파악한 다음에 차를 몰았으나 길이 복잡하여 중간에서 골목길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인 베른(Bern)으로 향하였다. 표지판만 보고 일단 시내를 빠져나가 호수를 끼고 나아갔다.
로잔에서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어 베른을 생략하고 바로 인터라켄으로 가기로 했다. 도로표지판을 읽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치가 어딘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지도를 펴놓고 지명을 보고 있었다.
로잔에서 오른쪽으로 큰 호수를 낀 도로를 한참 달렸다. 주위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베베이(Vevey)라는 작은 읍내에서 잠시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언덕에 예쁜 호텔들이 저마다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듯이 서 있는데 어떤 것은 호텔지붕이 모자이크로 되어 있었다. 길가 공원에는 대리석으로 조각된 여체가 눈길을 끌었고, 한쪽에는 말을 탄 기사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에이글(Aigle)이라는 산비탈 동네 앞에 다시 차를 세웠다. 호숫가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온통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아름다운 호숫가로 난 길을 달려 붉은 벽돌로 우람차게 지은 중세의 성 같아 보이는 어느 마을에 이르렀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정문으로 갔더니 입장료가 어른 한사람에 7프랑이었다. 알고 보니 안쪽에는 와인 만드는 와인양조장이었다. 산비탈에는 계단식으로 된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밭을 일구어 포도를 심고 와인을 빚어 세계시장에 내어놓는 스위스인들의 알뜰한 정신이 오늘날의 부국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정밀공업의 대명사인 고급시계 뿐만 아니라 바다도 없는 나라에서 술저(SULZER)라는 선박용 주기관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석권하지 않았는가.
스위스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도 없는 내륙의 조그만 나라에서 해운장관이 있다니 하고 웃음거리로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호수가 바로 바다와 같았다. 호수엔 하얀 돛단배들이 유유히 떠 다니고,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제법 큰 여객선들도 물을 차며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고 있었다.
길은 어느새 호숫가를 벗어나 산악지대의 큰 고개길을 돌아 오르는데 경사기 어찌나 심한지 기어를 2단으로 놓아도 차가 숨이 차는지 빌빌 거렸다.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까마득하여 정신이 아찔하였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니 하늘을 찌를듯한 침엽수림이 대낮인데도 햇빛이 차단되어 어두웠다.
산비탈길을 한참 돌아 내려가니 저 멀리 높은 산봉우리에 하얀 구름이 걸려있었다. 그 아래로 웅장한 바위와 절벽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골짜기로 쏟아지는 폭포는 맑은 물이 아니라 벌건 황토빛의 흙탕물이었다. 조금 있으니 산봉우리를 살짝 가리고 있던 구름이 귀한 손님이라도 찾아오는 듯 비켜나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사진에서만 보아왔던 융푸라우의 모습과 비슷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제법 편평한 곳이 나왔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의 출발지였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그림엽서 두 장을 샀다. 엽서를 보고서야 그 산이 융푸라우가 아니라 산더랜드(Sannder Land)라는 것을 알았다. 가게 옆에서는 불도저로 땅을 고루고 있는데 석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맨땅으로 보이는데도 석탄냄새가 심하게 나는 걸 보니 아마 땅속에는 석탄이 매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한참 가다보니 갈림 길이 나왔다. 표지판이 붙어 있었지만 지명을 알 수 없어 길가는 차를 세워 물었다. 일부러 샛 길을 택해 달렸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졌었다. 첩첩 산중의 산간마을이었다. 집집마다 장작을 패어 담장처럼 쌓아올려 놓고 있었다. 산자락 아래에는 연두색 초지 위에 띄엄띄엄 집들이 한 두채씩 보이는데 그림같이 아릅답게 보였다. 이런 산중에 살아도 집에는 온통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좁은 길이라 차가 비켜갈 수 있는 곳에다 잠시
차를 세우고 통나무로 된 집을 둘러보았다, 나무로 무늬를 넣은 창문 모양이며 덮개 창이 추운 겨울에 대비한 듯 하였다. 문앞에는 1902년에 지은 집이라는 조그만 팻말이 붙어있었다. 20 ∼30년도 안되어 허물고 새로 짓는 우리 나라 아파트에 비하면 그들은 자연에 동화되어 아무런 욕심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되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 보니 허룸한 작업복을 입은 어떤 할아버지가 모종삽으로 길모퉁이 화단에 꽃을 심고 있었다.
깨끗하게 보이는 길이며 아름답게 보이는 화단도 일일이 사람의 손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제대로 가꾸지도 않고 열매만을 따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정성들여 가꾸지 않은 나무에 열매가 열리겠는가.
당초 융푸라우를 거쳐 루체른에 들린 후 바젤에서 1박하기로 예정했던 것이 산골짜기를 빠져 나오는데 벌써 7시가 넘었다.
날이 저물어 우선 가까운 캠핑사이트를 찾아야 했다. 캠프 가이드북에는 인터라켄 주위에 캠프장이 많이 있다고 되어 있어 일단 인터라켄으로 가기로 했다.
산골짜기를 빠져나오니 큰 호수가 나왔다. 고속도로를 거쳐 인터라켄 OST로 접어들었다 OST가 무슨뜻인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찾기 쉬운 곳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내 라운드 어바웃드(로터리)에 들어서니 캠프표시가 붙어 있었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입구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셋이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예?"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한국사람이니? "하니까 그렇다고 했다. 우선 이런 오지에서 같은 동족을 만나다니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그들은 영국 맨체스터에 산다고 했다. 그들도 가족끼리 여행을 나온 것 같았다.
캠프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리셉션으로 갔더니 "closed" 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10분이었다. 8시에 문을 닫는데 조금 늦은 셈이었다. 사무실안에서 사람 소리가 나서 문을 노크했더니 관리인인듯한 사람이 나와사 지금은 사무실 문을 닫았으니 캠프장 위치를 가르쳐 주면서 찾아 들어가 자고 내일 아침에 문을 열면 다시 오라고 하였다.
안쪽으로 들어가 빈터에 텐트를 쳤다. 좋은 곳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먼저 와서 텐트를 치고 있었다. 초록색 잔디밭에 크고 작은 텐트들이 울긋 불긋 제각기 색깔을 뽐내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도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아이들은 풀밭에서 메뚜기를 잡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낮에 수퍼에서 사 온 쌀이 밥을 하려고 보니 안남미였다. 밥이 찰기가 없어 입으로 불면 바람에 펄펄 날아갈 듯 했지만 시장했던 터라 튜나를 넣고 끓인 찌게랑 모두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람을 쐬러 캠프장을 둘러 보았다.
은은한 달빛이 구름 사이로 높은 산봉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긴 옷을 꺼내 입고 잤다.(9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