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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 왕비, 설립자(2.4)◀
1. 가톨릭 굿 뉴-스 성인록 ▷
성인명: 요안나 (Jane)
축일: 2월 4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왕비, 설립자
활동지역: 발루아(Valois)
활동연도: 1464-1505년
같은이름: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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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설명 :
• 발루아의 성녀 요안나(Joanna de Valois)는 1464년 4월 23일 프랑스 파리(Paris)에서 당시의 왕인 루이 11세(Louis XI)와 왕비인 사부아(Savoie)의 샤를로트(Charlotto)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육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더욱이 곱사등이에 마마 자국까지 있었기 때문에 국왕인 그녀의 부친은 그녀를 매우 냉대하였다.
· 그러나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오를레앙(Orleans)의 공작인 루이(Louis)와 결혼하기로 정해졌기 때문에 성녀 요안나는 12세가 되던 해에 여러 가지 정치적인 정황에 따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오를레앙의 공작은 그녀를 무시하고 혐오했으나, 이러한 모진 대우들을 그녀는 고결한 성품으로 이겨냈다.
후에 루이 12세로 왕위에 오른 오를레앙의 루이 공작은 자신의 결혼은 루이 11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그의 이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해 주었다.
결국 혼인무효와 함께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 베리(Berry)의 공작으로 봉해진 성녀 요안나는 자신의 영지를 왕국 안에서 가장 지혜롭게 운영하였다.
· 그녀는 가난한 병자와 전염병 환자 구호, 주거 시설 복구, 가난한 일꾼들의 급여 인상, 여자 어린이들의 교육,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 모금, 수도원 개혁 등을 계획에 따라 실천하였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작은 형제회 회원이자 자신의 고해사제였던 가브리엘 마리아(Gabriel Maria, 8월 27일) 신부의 도움으로 신심 깊은 10명의 여성들을 모아 관상 수도원인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 성녀 요안나는 자신이 세운 수녀원에서 1504년에 가브리엘라 마리아(Gabriella Maria)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했지만,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궁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녀는 남모르는 고행과 여러 번의 신비로운 종교체험을 한 후 1505년 2월 4일 부르주(Bourges)에서 사망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1742년 4월 21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50년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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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성인록 ▷
< 2월4일(2월14일)발루아의 성녀 요안나(3회) >
........ (안젤라 | 2010.02.04 Ud.)
▷ 축일:2월4일(2월14일)
< 발루아의 성녀 요안나(3회) >
- Santa Giovanna di Valois
- St. JANE of Valois
- St. Joan of Valois, Queen Widow Foundress
Also known as
Jeanne de Valois; Jéhanne de France; Queen Jane; Queen Joanna; Joan of France; Joan of Valois
(注: - 발 루아의 성녀 조반니
- 발 루아의 성녀 제인
- 발 루아의 성녀 조안, 여왕 과부, 창립자로서
발 루아 쟌느; 프랑스의 조안네; 여왕 제인; 여왕 조안나; 프랑스의 조안; 발 루아의 조안으로도 알려짐)
- Born: 1464
- Died: 4 February 1505 at Bourges, France
(注: - 출생 : 1464
- 사망 : 1505.2.4일 프랑스 부르 쥬,에서 선종)
- Beatified: 21 April 1742 by Pope Benedict XIV
- Canonized: 28 May 1950 by Pope Pius XII (her cause had been submitted in 1614)
(注: - 시복 : 1742.4.21일 교황 베네딕토 14세
- 시성 : 1950.5.28일 교황 비오 12서 (그녀의 청원은 1614에 제출했다)
* 위(注: `18.2.4일 - 아타시 韓 譯)
• 프랑스 루이 11세의 딸인 요안나는 발루아의 왕족이었다.
그녀의 일생은 참으로 굴욕적이었다.
아들을 원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실망감을 그녀에게 터뜨렸다.
그녀는 궁전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녀의 생명조차 위험에 처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5살 때 천대받던 공주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쳤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후에 그녀를 강제로 오레앙 공작에게 결혼시켰다.
무관심하고 부당한 남편에게 그녀는 언제나 성실하고 인내하였다.
그가 왕권에 반항하였기 때문에 반역자로 죽게 되었던 것을 그녀가 눈물로 구해주었으며 감금기간을 줄여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친절과 인내도 그의 굳은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그가 루이 12세로 왕좌에 올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는 요안나를 아내로서 거부한 것이었다.
22년 동안 비록 잔인하게 무시하였어도 그녀를 묵인해주었는데
그 후 자신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 그는 브르타뉴의 앤과 결혼하였다.
• 요안나는 이제 온 마음을 더한층 자신의 참된 주님께 바쳤다.
부르쥬로 물러가서 마침내 복되신 동정녀를 특별히 찬미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자신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영보 수도회'를 창설하고 이 수도회에서 자신의 여생을 천상 어머니께 봉헌하였다.
수녀회의 장상이었지만 그녀는 마리아의 모범을 본받아 다만 그들의 종이라고 불러주길 청하였다.
그녀는 1505년에 겸손한 성덕 안에서 하느님께 돌아갔다.
비록 왕후의 자주빛 예복을 입고 왕관을 머리에 썼지만 이러한 왕족의 옷차림 아래에 자신의 수도회 수도복을 입고 묻혔다. 1742년에 복자품에 올랐다가 그 후 성인품에 올랐다.
[ 기도 ]
• 오 하느님, 복된 요안나로 하여금 당신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녀의 덕을 본받을 수 있도록 거룩한 동정녀들의 새 수도회를 세우도록 하셨으니,
그녀의 공로와 기도를 통하여 그 덕행의 모범을 본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묵상 ]
• 또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들을 창조하셨음 같이,
우리들을 사랑하신 그 거룩한 당신 사랑 때문에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랑이신 그분을
영원히 영화로우시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사오며,
또한 그분의 십자가와 피와 죽음을 통하여
사로잡힌 우리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사오니 아버지께 감사드리나이다.
-작은 형제들의 제 1 회칙 23장-
(재속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홈에서)
♬가난함을 주소서-임석수 작사.작곡
차상옥 지휘· 우정성당 성가대 ▷ 가난참을 루소서☞
https://youtu.be/auHA9DQz2aY
ㅡㅡ끝.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