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馬祖(마조)이야기
臺灣(타이완) 苗栗縣(미야우리쎈) 四湖鄕(시후쌍)마을에 있는 天上聖母(馬祖像)像입니다. 높이가 약 30여 미터나 되는 어머어마한 크기입니다. 여기 四湖鄕마을이 바로 1999년 9월에 일어난 대만 대지진(진도 7.3)의 진원지라고 합니다. 그때 2440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1100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저가 처음 대만에 갔을 때는 2001년 7월이었는데 그 다음해 봄에 지진이 한번 일어났습니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말로만 들어오던 지진이라는 것이 어떤 맛인지 확실하게 맛을 톡톡히 잘 보고 왔습니다.
(위의 사진은 제가 대만에 근무할 때인 2001년 12월 16일 촬영한 마조상의 사진입니다. 6000화소짜리 디지털 카메라라 화질이 영 좋지 않습니다. 요즘은 몇 백만 화소를 넘어 1억화소짜리 카메라도 있습니다.)
○ 다음은 마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가(道家)의 하늘 황후인 천후성모(天后聖母) 마조파(媽祖婆. 마조할머니)는 뱃사람들의 여신이며 뱃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날씨와 안전운행을 빌거나 제사를 올립니다.
그녀는 몇 세기 전 복주(福州. 중국본토) 근처에서 살았던 林이라는 이름의 처녀였다고 하며 자연의 원소들을 통어(通語)한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바다의 여신은 복건성(福建省)의 한 어부의 딸이었다는데 그녀는 자기 부모의 머리에 축복이 내리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긴 노래로 불러 마지않았던 효성이 지극한 딸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부모님이 고기잡이 나간 동안 혼자 집을 지키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꿈을 꾸었는데 꿈을 꾸고 난 뒤 그녀는 부모님이 먼 바다에서에서 풍랑을 만나 위험에 빠진 것을 알아 차렸답니다.
그 길로 그녀는 해변가로 달려가 꼼짝도 않고 부모가 타신 배를 가르키니 고기잡이 배 중에 그 부모님이 탄 배만이 무사히 해변가로 귀환하였답니다.
그녀가 신이 된 다음에는 용한 의사의 의술로도 낫지 않았던 병든 황제를 치료하였다고 한다.
그녀를 한결같이 천리안(千里眼)을 가지고 있었고 순풍이(順風耳)는 비정상적일만큼 예민한 시각과 청각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마조신에겐 음력 3월 23일 고기잡이 계절의 첫 번째 항해를 하기에 앞서 예를 올리며 그때는 향과 촛불을 밝히고 닭고기와 돼지를 구어 깊은 바다에서 보호해 줄 것을 빌며 제물로 바친다. 성모를 위한 사원과 사당은 나라 곳곳에 물길을 따라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그물이 만들어지거나 낡은 그물을 고치게 되면 소유자는 그것들을 밝히기에 앞서 여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제물을 바친다.
제를 지낼 때는 제물의 앞에 여신의 초상을 반드시 비치한다. 때때로 고기잡이배의 모형이 앞으로 얻게 될 이익이나 이미 얻은 이익에 감사하는 표시로 그녀를 모시는 사당에 바쳐진다. 어떤 돛배가 오랜 기간 항해를 떠나려할 경우 여신상을 모시고 사당을 향해 행진을 하며 많은 제물을 그녀 앞에 차려 놓는다. 항구를 떠나 항해를 시작할 때 종이로 만든 돈을 고물에서 던지며 지남침에 예를 올린다. 이 신은 또 "도량의 할머니(마고할미,斗女+老,두고)"라 불리는데 불교의 여신 마리치(摩利支)에 비견한다고 합니다.
○ 마조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마조(瑪祖)의 본명은 임묵랑 송(宋)대 건릉 원년(960년) 음력3월 23일에 탄생했다. 그녀는 생전에 늘 남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일기변화를 예보해 줌으로써 어민들의 피해를 적게 했다. 임묵랑이 28살을 일기로 음력 9월9일 사망된 후 사람들은 그녀의 덕성을 추모하여 그녀를 신고(神故)와 성모라 부르며 미주도에 마조묘를 건조 했다.
음력 3월 23일과 9월9일은 마조의 생일과 기일이다. 매년 이날이 오면 수 만명의 중국본토와 대만주민들이 미주도의 마조묘에 찾아와 참배한다. 이 기간 마조제사, 마조문화세미나, 공예품전시판매 등 행사가 있다.
주] 일부는 인터넷에서 2002년에 퍼와서 저장해 놓은 것을 다시 꺼집어 내어 편집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