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외 2편
박병대
평촌 아트센터
포도예술제 전시회 오프닝
작가들 앞에서 단소 불며
한풀이 한 자락했다
영원을 상기하는 기억
오늘의 순간도 박제되어 남을 것이다
숨 쉬고 있음을 잊지 않아
고통의 푸른 멍으로 일어서나 보다
무아지경
순간의 감성이 영겁으로 흘렀다
벽에 걸린 색채는 단소 음률에
아우성으로 춤추며 풀처럼 흔들렸다
저 웃음에 감춰진 아픔
아름다움을 향하는 처절한 몸부림
심장은 벌떡대는데 노을이 곱게 물들고 있다
예술의 평화는 언제 오는 가
정릉천
너덜겅 물길 낙차 하는 곳마다
물소리는 물왕水王으로 달려가는 물민水民의 함성이었다
몸 보시하여 생명 살리겠다는 물 몸의 아우성이었다
물줄기 음성은 저마다 달랐고
부유하여 합체된 소리는 한소리였다
낙차 하는 곳마다 멈추어
보고 듣고 눈감고 들으며
물소리와 함께 날갯짓하였다
정릉천 오케스트라 생명의 하모니
쏴르르 꿀럭 꿀꾸럭 꿀럭꿀럭 꿀꾸럭 꾸르륵 꿀꿀꿀
조르르 졸럭 졸졸 조르럭졸럭 조르랑 졸졸 졸럭졸럭
졸락졸락 졸졸졸 조르락 올랑졸랑 졸졸 조르락 졸락
조르랑 졸졸 졸랑왈랑 와라랑 왈랑 올랑졸랑 조르랑
꼬르르 꼬륵 꼴렁꼴렁 꼬르렁 꼴꼴 올랑올랑 오르랑
쏴아아 쏼락쏼락 쏴라락 쏴아 꼴락울락 쏴라락 쏴아
조르릉 조렁조릉 졸렁졸랑 조르렁 올랑 졸랑 조르락
꾸르르 꾸르럭꿀럭 꾸르럭 꿀꿀꿀 꾸르르 꿀럭 꿀럭
둠벙에서 잉어가 유유하다
물에 앉은 노을은 저물어 가는데
이끼 앉은 바위는 오는 물, 가는 물 무심으로 보는 구나
무심한 세상은 무심하게 보아야 한다
무심히 솟은 인수봉도 무심하지 않더냐
유심한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무심인 것을
그럼에도 인수봉 끌어안고 애면글면하는 사람아
무심에 어이 유심이 있겠느냐
카페
눈동자가 맑았다
천진한 웃음소리는 맛깔스러웠다
배움의 열망이 예리한 칼날처럼 번쩍거렸다
보도블록 틈새에 솟은 낮은 풀이었고
낮은 데로 흐르는 물이었다
극기로 연명하는 푸르고 싱싱한 삶
꽃 뿌리 딛고 꽃핀다는 믿음 간직한
그녀는 리틀 피플 카페 사장님
낮은 것을 사랑하여 간판도 낮았다
시詩 쓰고 싶다고 말하였다
아메리카노 마시며
낮은 것들 보듬고 눈물도 흘릴 거라는 믿음 심었다
카페 나서는데
다음부터는 꼭 커피 안 드셔도 되어요
상냥한 미소로 말하였다
하늘을 보니 맑았다
리틀 피플은 푸른 생명을 보듬고 있었다
처음 카페에 갔을 때 그녀에게 물었었다
마음이 얼마나 예쁘길래 아름다운 카페를 하나요
낮음의 미학
예술의 동질성으로 하여 글이나 그림이나 서로 다른 장르의 길을 가기는 하여도 내면의 지향점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글은 책에 갇혀지고 그림은 액자에 갇혀진다고 해야 할까? 시인이나 화가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길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하얀 종이에 날 새는 줄 모르게 글 쓰는 것이나 색채를 캔버스에 입히며 아름다움을 드러내 밝은 세상을 지향하는 고통을 모든 작가들이 감내하는 것은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가꾸기 위함일 것이다. 작품의 창작과정을 작가에게 청하여 들을 때는 가슴 먹먹한 아픔이 찾아왔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수고와 위로의 말을 건넸을 때는 작가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예술의 아픔을 한풀이 하듯 단소를 불었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거나 평화를 지향하는 것에는 아픔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게 한 섭리가 미웠다. 예술의 평화는 언제 오는가?
내면과 외면의 세계를 넘나들며 주어진 삶을 보듬고 외면의 세상이 내면에 들어와 되새김으로 삭임질하며 많은 밤을 별과 함께 노래하였다. 세월에 장사 없듯이 쇠해지는 기력을 인식하고 산책을 시작하며 사유하는 자연으로 하여 내면의 농사를 지었다. 북악스카이웨이, 신덕왕후 잠든 정릉, 정릉천이 나의 산책길이다,
사계절의 모습으로 자연을 호흡하며 추위를 감내하고 돋아나는 여린 생명의 푸름을 볼 때는 반갑고 정겹고 눈물겨웠다. 너덜겅 흐르는 정릉 천 물소리는 낙차 하는 곳마다 다른 소리를 하는데 무심한 세상같이 정릉 천 바위는 무심하였고 그런 바위를 타고 겸손을 지향하며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아우성으로 생명 살리는 몸 보시였다.
산책 후에 카페에 들러 차 마시며 리틀 피플 사장님과 담소하며 그녀의 만학 열에 감동하고 낮은 곳을 무한히 지향하는 모습에 또 감동하였다. 그녀의 모습에서 세상이 보였다. 낮은 사람들 보듬는 따뜻한 마음에서 상호도 리틀 피플 이라고 했다는 것을 짐작은 했지만 담소하는 가운데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카페에서 나오니 하늘이 맑았다. 푸른 삶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에 시달리다 보면 피폐해지는 영육으로 하여 푸른 희망을 지향하는 생각마저 못하는 타성에 젖은 생활만 있을 것이다. 부단히 푸른 꿈을 가꾸는 모습이 아름다워 푸른 웃음 웃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