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재,
여기부터 인수산장 가는 길은 경사가 별로 없는 아늑한 길.
겨울철에는 얼어붙어 고생도 하지만.
인수산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돌 무덤만 남아 있고 팻말이라도 하나 세워두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위의 산악경찰건물과 가건물인 인수암은 오히려 정취가 없다.
어지럽게 흐트러진 야영장도 그렇고.
독경소리 들리는 모양없는 가건물 인수암에는 스님이 독경 중이고
그 앞에는 신도가 역심히 절을 하고 있는 걸보아 무슨 제를 올리는 듯.
여기에서 다시 한번 인수봉을 바라본다.
인수 B코스의 대 슬랩을 지나 보이는 오아시스.
저 슬랩은 겁먹지 않고 올라가면 되는데
경사감으로 초보자들은 확보가 없으면 얼리는 곳이다.
전에 어느 여자 탈렌트가 촬영 중 저기에서 슬립 다운하여서 중상을 입었다지.
오른쪽 숲이 별칭 "오아시스"
비가 몹시 퍼붓는 어느 토요일 밤 야간산행을 하다가 비를 피하러 들른 이곳 바위 틈,
그 속에서 소주와 튀김 먹으며 좋다고 하였는데.
그 때 한 친구가 백운 산장이 짓느라고 그 앞에 커다란 천막을 쳐 놓았으니 거기에 가자하여
온통 폭포로 변한 골짜기를 간신히 올라가니까 정말 텐트 속에는 임시로 장사하느라 펼쳐놓은 식탁과 걸상 들,
텐트 위에 등을 매달고 목삼겹살에 내가 기지고 간 비싼 브랜디(Otard XO)까지 마시고 있는데 들리는 비명소리,
“사람 살려” 너무나 폭우가 심하여 우리가 내려가더라도 구조도 어려운 상황이라 그걸 무시하고는
한동안 게름찍하게 생각하였지요. 다행히 사고소식이 들리지 않아 안도하였지만.
마지막으로 생생면까지 끓여먹고 식탁위에서 자다가 두런두런 소리에 놀라깨니까
이른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처가에 간 식구때문에 혼자 두고 간 나의 애견을 돌보러 먼저 내려가서 한숨을 자고 일어 났더니
TV에서는 문산, 파주에 물난리를 보도하였다.
막아 놓은 곳이 그 유명한 "깔딱고개"의 원조.
통행이 풀리면 제일 먼저 한번 가보아야지.
인수봉을 올려다 보니 바위만 보인다.
경사가 좀 있는 계곡길을 지나면 백운산장.
이 길은 겨울에 얼어 붙어 아이젠을 하여도 미끄러운 길이다.
백운산장에서 오랜만에 먹어보는 심심한 국수와 신김치.
아주하여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하산을 준비한다.
다른 친구들은 위문을 넘어 용암문-북한산장 대동문 쪽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백운산장을 들러본다.
손기정씨의 글씨구나.
백운대 오른 뒤 하산하면 마셨던 늘 달고 시원하던 샘물도 이제는 음용불가 팻말이 붙어 있다.
건너편 화장실에서 바라 본 백운산장.
이층의 대피소에서 하루쯤 자보았으면 좋겠는데.
전에 이 자리에 아까 적은 임시 대형천막을 설치해 놓았다.
백운의 혼 탑
다섯명은 위문-용암문-대동문코스로 가고
내려가서 저녁 일정이 잡혀있는 나와 최선생, 김선생은 우이동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다시 하룻재로 와서 백운능선과 도선사 갈림길에서 백운능선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는 이 길을 항상 깜깜한 새벽이나 야간산행 시 어두운 밤길을 오르기만 하였었는데
내려가도 좋은 아름다운 길이다.
이 코스가 한동안 폐쇄되었다가 열린지 얼마되지 않는다.
왼쪽에 보이는 영봉능선
중간에 만나는 쉼터에서 바위에 앉아 있는 최선생.
가다 만나는 보기좋은 바위 들.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취미로 활동하였던 동문들은 만나면 스스럼이 없다.
여자대원들도 형, 둥생하며.
나온 이야기 중 하나.
최선생, 선배중에 동명이인이 있었잖아.
지금은 어디에 있지.
미국에서 전문의과정 끝나고 한때는 우리병원에서 같이 근무를 하였고
왜 정치인 누구랑 결혼한 후배말이야.
제가 몇년전 닥터 최를 찾는 국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선배를 찾는 전화였다고.
같은 대학 같은 방사선과 이름도 같으니 이쪽으로 연결이 된것.
이유인즉 딸아이 혼사로 의논이 필요해서 전화를 했는데
아마 딸은 애비가 데려간 모양이지.
그러고보니 이 동문은 이혼 후 재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이제는 다 내려왔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아스팔트길.
한 이십년전에 우리 중고등 등산팀이 항상 새벽에 만나던 "선운상점"
추운 겨울이면 드럼통 나무난로에 불을 쬐던 곳도 현대화 되어
그 젊은 주인(?), 아니 이제는 같이 나이를 먹었겠지만, 보이지 않고
또 다른 젊은 주인이 보인다.
텅텅비었던 가게 앞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세월의 무상함 이란.
나의 자가용 144번 버스를 타고 깊은 잠에 빠졌는데
저녁 약속을 주제하는 친구한테 온 전화가 잠을 깨운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한시간 반만에 집에 돌아왔다.
첫댓글 겨울철 산행은 더 추울것 같은데, 열심히 다니십니다. 산에 빠지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일이라 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