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강의 마징가
서울공대지 2018 Autumn No. 110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 산업에
진출 여부를 검토하고 있던 강원탄광에 취업하였으나 회사의 사업방향을 철강 산업으로 결정하게 되어 1968년 4월 사직하였다. 모교의 조교로 임용될 기회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학과로 돌아와 임상전 교수 연구실에서 추진하고 있던 선박 설계 작업에 참여하며 조교임용기회를 기다리게 되었다. 당시
설계 작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바 있는 상륙용 주정 LCVP를 모사 설계하는 작업이었다. LCVP(landing craft for
vehicle/personnel)은 차량이나 소대 규모의 병력을 상륙시키는 선박인데 미 해군에서는 이를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로 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실용화 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유리섬유와 플라스틱으로 선박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기술은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상 신기술이었으므로 참여자 모두가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1968년 1월 21일에는 북한의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기습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어서 1월 23일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 되는 등 남북관계는 준전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LCVP를 개발하게 되었던 것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교량만으로는 전략물자의 운송이나 시민 대피에 대처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한강 비상도강 수단을 마련하는 일에 참여한 것이었다. 선박 설계개발이 진행 중이던 1968년 10월에는 울진 삼척지구에 공비침투사건이 발생하였고 1969년 4월에는 미군의 정보기가 피격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새로운 형식의 선박을 설계하였지만 새로운 공법을 개발하여 건조시설을 마련하고 실제로 선박을 건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당시 정세가 심각하여 정부는 선박 배치가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1970년대 초반에 새로이 설계한 선박이 아니라 종래의 방법에 따라서 철판으로 선박을 건조하였다. 정세에 따라 잠실 광나루, 한남진,
동작진, 노량진, 마포, 양화진과 같이 나루가 있던 지역에 순차로 비상도강선박을 배치하고자 하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상륙병력을 수송하는 LCVP와 미 해군의 선박 설계 개념도
전쟁위험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기에
1970년대에는 전 국민이 민방위 훈련에 참여하여야 하였으며 대학에서는 교련교육이 강화되어 있었다.
학생들의 사열식에 지도교수가 입회하여야 하였을 뿐 아니라 행군훈련에는 지도교수와 학과장이 행군대열을 따라가야 하였다. 한강 연안에는 일정간격으로 벙커가 구축되었으며 교량과 인접하여서는 대공포 진지가 배치되었다. 주요 교차로에는 규모를 갖춘 벙커가 구축되었을 뿐 아니라 주택을 신축할 때는 지하실을 설치하여야만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신축건물에는 최소한 1개월분의 식수를 비축할
수 있는 식수 탱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만 하였다. 영동대교로부터 중랑천과 나란하게 공릉동을 거쳐
수락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전방까지 이어지는 군 작전용으로 중요성이 인정되어 군용차량이 엄폐물로 사용하기 좋은 버드나무가 가로수로 심겨 졌다. 도로 연변에 건축되는 모든 건물에는 시가전이 일어나는 경우를 대비하여 옥상이나 건물 상층부에는 총안을 가진
장식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만 하였다.
한강의 몇 개 지점은 갈수기에는 수심이 얕아 쉽게 걸어서 건너 다닐 수
있었으나 장비나 병력이 쉽게 도강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상류에 잠실 수중보가 설치되었고 하류에는 신곡수중보가 설치되었다. 수중보의 북측 연안을 연하여서는 수중보 상류와 하류를 연결할 수 있는 갑문식 운하를 설치하였다. 용이한 도강을 막기 위한 수중보를 설치한 후 한강은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었으나 수도 방위를 생각하여
설치한 수중보가 오히려 역으로 도강장비를 필요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영동대교인근을 비롯한 몇 곳에 비상시 도강을 지원하기 위한
선착장이 건설되었고 도강용으로 서둘러 건조한 철제 상륙용 선단이 배치되었다. 모처럼 선박 설계업무에
조금이나마 참여하였었고 새로운 기술이 반영된 LCVP가 FRP로
건조되지 못하고 철선으로 건조되어 배치된 것이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었다. 공개되지는 않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으나 한강변에 배치되어 있던 LCVP들은 사용되는 일이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시민 안전을 지켜준 한 축을 담당하였다.
한강변에서 사용되지 않고 자리만 지키던 선박을 사용하게 된 것은 88올림픽에서 개막식 앞머리에 잠실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배들로 역할을 한 것이 이들 선박의 기억에 남는 역할이
되었다. 하지만 이 역할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정박되어있던 배들을 행사에 참여하도록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급하게 건조하였던 선박들은 15년 이상 경과하며 노후화되어 수년 내에 교체하여야 한다고 판단되었다.
결국 선박의 관리책임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는 새로운 선박으로 개체하는
계획을 세워야만 하였다. 15년 이상 지나도록 계류되어 자리만 지켰을 뿐 특별한 역할이 없었으므로 서울시의
담당자는 새로이 건조되는 선박은 효율적으로 활용되는 선박으로 건조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서울시는
선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활용방안을 유관기관에 공모하고 선박의 사용방안으로 통합한 후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선박 설계를 발주하였다.
한국해사기술이 조달청을 통하여 발주된 새로운 선박설계를 수임하였는데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선형을 설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발주된 선박이 갖추어야
하는 주 기능은 상당수의 병력과 장비 또는 시민을 신속히 도강 시키는 일인데 한강에서 조난당한 사람을 구하는 일에도 긴급 출동을 하여야 하였다. 신속하게 인원의 도강작업을 하는 것이 주기능인데 정박하여 부유물을 수거하는 청소작업도 담당하여야 하였다. 도강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한 척의 동력선박이 3척 이상의 무동력
바지선을 담당하도록 계획하였다. 한 척에 짐을 싣는 동안에 짐이 실린 바지선을 예인하여 도강하여 하역하게
하고 하역이 끝난 바지선을 끌고 되돌아가도록 계획하여 다시금 운송할 짐을 적재하도록 계획하였다. 계획대로라면
한 척의 예인선이 여러 척의 바지선을 쳇바퀴 돌리듯 쉴 틈 없이 운용되도록 하자는 착상이었다. 그 외에도
연안 소방 업무, 수질조사 업무, 고수부지 순찰업무, 홍수 후 연안 청소업무 등 수많은 업무를 담당하여야 하였다.
때로는
바지선과 합쳐져 운용할 때는 트레일러트럭의 역할을 하여야 하고 때로는 단독으로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하는 순찰차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배 이었다. 때로는 인원을 수송하는 역할을 하여야 하는 공간을 쓰레기 수거 공간으로도 활용하여야 하는 배인 것이다. 선형의 설계과정에서 학과의 선형시험 수조실험실은 선형을 결정하는 일을 협력하여 왔으나 상충되는 기능이 많아
선형 결정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상충된 기능을 모두 충족하도록 하려면 상반되는 기능이 서로 최적조건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수많은 기능이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선형으로
결정되어야만 하였다. 사용하지 않고 계류하는 선박이 아니라 항상 쓰이는 선박을 만들자는 서울시의 구상과는
달리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더라도 비효율적인 선박이 되는 것이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현장에 한강의 마징가는 바지선을 끌고 출동하여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
선박은 높은 효율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서울시의 담당자에게 여러 차례
계획의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한강관리사업소를 찾아 홍수기와 갈수기의 한강의 수심과 유속 등의 조건을
조사하였으며 수도권 방위를 담당하는 군부대의 지휘관을 만나 의견을 교환하였다. 모든 조건에서 최적이
아닌 배를 설계하여야 하는 현실을 관계자들이 사전에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관계자들의 연석회의를 요청하였다. 서울시청에서 부시장 주관의 관계자 회의에서 단순기능의 최적선형으로 분리하여 건조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복합기능의 선박을 건조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용도로던 비효율적인 선박을 설계하는
것이 되어 옳지 않으니 계획을 수정하여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각 기관이 관심을 두는 선박의 기능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서울시는 계획변경에 수반되는 예산증가를 걱정하였다. 결국 서울시는 최초의 계획에
따라서 선박을 건조하여야만 하였다. 나는 이 선박을 인기를 끌며 장기간 방영되었던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징가 Z와 같이 “한강의 마징가”라고 부르고 있다.
한강변에 계류된 한강 마징가 선단으로 뚝섬 관공선 선착장과
뚝섬 119구조대의 일부 선박들이 합쳐 마징가로 변화된다.
1972년 12월부터 1974년 9월까지 92회에 걸쳐 방영된 만화영화의 주인공 “마징가 Z”
“한강의 마징가”는 1992년 제출된 설계도서에 따라 건조되어 취역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현장으로
출동하였다. “한강의 마징가”는 홍수기의 탁류를 헤치며 달릴 만큼 강력하게 설계되었지만 갈수기에 수심이 얕아지면 속도를 낮추어
운항하라 당부하였으나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선장은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얕은 수심의 현장으로 급히
접근하자 강바닥의 자갈들이 추진기로 빨려 들어가며 추진기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되었다.
한강의
마징가는 추진기를 수리하고 재 취역하였으나 건조 당시 의욕적으로 계획하였던 활발한 사용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결국
비축물자로 분류되어 있는 “한강도강장비 (예인선 10척, 바지선18척)”는
또 다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였으며 수명 20년에 다다르게 되었다. 윤활유의
누출과 같은 공해유발을 우려한 서울시는 2017년 3월 국민안전처에
공문을 보내어 노후된 한강도강장비를 비축물자 지정에서 해제할 것을 요청하였다.
한강의 마징가는 결국 한강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리라 생각되어 인터넷에서 NAVER 지도의 항공사진으로 검색해보았다. 영동대교 인근의 항공사진에 보이는 10척의 선박과 인근 ‘뚝섬 관공선 선착장’, ‘119 뚝섬 수난 구조대’ 등에 보이는 선박들이 바로 분체
되어 있는 한강의 마징가인 셈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비축물자 해제를
요청한 선박의 반은 항공사진에서 찾아 볼 수 없음을 깨닫고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매주 “마징가 Z”가 방영되던 당시 떠돌던 “여의도 국회의사당 돔을 개방하면 의사당 지하에 숨겨져 있는 마징가가 출동한다.”라던 괴담이 생각났다. 아마도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한강의 마징가”는 여의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상상해본다. 그리고 숨겨진 마징가는 1974년에 방영되던 모습으로 언젠가는 나타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