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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만나기만 하면 강력한 경고 말씀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강도 높은 날 선 발언의 이유들은? 거룩함을 가장한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말과 실제 삶 사이의 큰 간극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는 이중성 때문이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강력한 경고 말씀 앞에 저 역시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도, 요즘 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덕에, 그리고 조금 나이가 든 덕에, 이런 측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시골에 살다 보니 어깨 힘줄 일도 없고 폼 잡을 일도 없습니다. 주로 하는 일이 허드렛일에다 수렵 활동이다 보니, 늘 입고 다니는 옷은 시장표 작업복이요 추리닝입니다. 요즘 와서 결심한 것이 제일 힘든 일, 제일 궂은 일, 제일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내 일이다, 생각하고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몇 년째 배수로에 켜켜이 쌓이고 또 쌓인 낙엽더미를 제거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시키지 않고 제 스스로 뭐든 하니 세상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어 보니, 참 좋은 것이 많습니다. 넘어져도 크게 충격받거나 다치지 않습니다. 높은 데 있다가 급추락하는 사람들은 기본이 전치 8주인데, 낮은 데 있다 보니, 넘어져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훌 털고 즉시 일어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니 정말 편하고 부담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바처럼 내가 이렇게 산다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위선적인 마음,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스며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가난한 사람들, 절박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어린이들, 작은 이들, 낮은 이들은 대체로 교만하거나 위선적이지 않더군요. 그들의 삶은 그저 단순하고 솔직합니다. 기대치가 크지 않으니, 삶이 소박하고 겸손합니다.
반면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미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지도자들, 고위층 인사들의 언행을 보니 엄청나게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경향이 컸습니다.
어떻게든 높이 올라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봐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에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지 모르니 말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2025년 다해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복음: 마태오 23,1-12
나폴레옹은 종교가 가톨릭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황제’라는 칭호를 가지고는 보통 왕관을 씌우는 의식은 교황이 주례를 맡게 되지만, 나폴레옹은 스스로 왕관을 씌우며 자신이 모든 권력의 근원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황제란 자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자신의 노력을 이룬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의 황제 즉위 후, 그는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하고, 자신의 황제 권위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리한 전쟁은 결국 패배와 몰락을 초래하게 됩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의 패배는 그가 칭호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킨 결과로, 그의 군은 대패했고 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국 1814년,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며, 엘바 섬으로 유배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죽기까지 가톨릭 신앙을 주장했지만, 자아를 누르지 못하는 그냥 종교를 가진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종교가 그 사람을 바로잡아주었던 예도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본래 깊은 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교회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거나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청년 시절 링컨은 오히려 의심과 회의 속에서 살아갔고, 성경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정치적으로 여러 번 실패를 겪고, 개인적으로도 가족의 죽음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그는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으며 방황하는 인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난 이후,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닥뜨리자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국가가 분열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링컨은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부담감은 그의 내면에 깊은 신앙을 일깨웠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의 뜻을 찾기 시작했고, 특히 전쟁 기간 동안 시편과 복음서의 구절들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전쟁의 무게와 책임을 온전히 혼자 짊어질 수 없음을 느끼고 점점 더 하느님께 의지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겸손해지고, "나의 관심은 하느님께서 우리 편에 서 계신지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느님의 정의와 섭리를 정치적 결단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또 이같은 신앙으로 게티스버그 연설에서는 “하느님 아래 새로운 자유가 탄생하도록,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헌신할 것을 굳게 다짐합시다.”라는 훌륭한 말을 남겼습니다.
결국 링컨에게 종교는 단순히 개인의 위안이나 심리적 안정제가 아니라, 그가 대통령으로서 역사적 결정을 내릴 때 도덕적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대통령 이전의 링컨이 종교에 무관심하거나 회의적이었다면,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고 의지하는 신앙의 지도자로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과의 깊어진 관계가 링컨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자, 노예제 폐지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합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전쟁터에 있을 때는 부하 병사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며 가장 앞장서서 적과 맞서는 용맹하고 현명한 지도자였지만, 평화가 왔을 때 그는 종신 독재관이 되고자 했고 점점 독재자의 모습을 띠었고 공화정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이들은 국민 영웅인 그를 암살하였습니다.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칭호를 가지게 되었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은 모습이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더 악한 모습이 되어갑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려는 지에 대한 그 뜻에 달려있습니다. 그 사람이 섬기는 ‘신’ 때문입니다. 자아를 섬기는 사람은 자아가 원하는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선한 신을 믿고 지향하는 사람은 그 모습이 되어갑니다. 사울 왕이 왕이 되고 점점 나빠졌던 이유는 자아를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고, 다윗이 왕이 되어 점점 겸손해진 이유는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를 형성해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교만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라고 하시고,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러면 아버지만을 스승으로 부르시고, 아버지만을 아버지라 불려지기를 원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당신이 주님으로 불리셨고, 또 제자들을 “아이들아!”(요한 13,33: 21,5)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데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만큼 겸손하셨던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에서 아무리 위치가 바뀌더라도 그것들은 다 하느님 자녀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하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신앙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자아를 섬기기에 자리에 따라 자기가 바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치인을 뽑을 때는 그 사람의 신앙이 무엇인지 아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겉모양의 종교가 아닌 참으로 섬기는 신이 어떤 신인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오직 신만이 그 사람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의 지위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자아는 신이 되려는 존재기 때문에 자아를 누를 수 있는 분은 신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속,육신,마귀를 누르지 못하면 자신이 믿는 신은 그 사람 안에서 아직 신은 아닙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2절). 자리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거룩하게 만든다. 자리에 앉아 훌륭히 처신하는 이는 누구든지 그로 말미암아 영예를 받을 것이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3절) 나쁘게 처신하는 지도자들 때문에 훌륭한 지도자들까지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선을 이루려다 의로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보다는 의인들을 지켜주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들의 가르침은 취하고 그들의 행실은 버릴 수 있으면 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사람들에게 율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워 놓고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말하기 전에 행하고 현명하게 이야기하며 혼란에 빠진 자들을 인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자애로운 짐을 얹는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 먼저 가장 무거운 짐을 진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허영을 꾸짖으신다. 이 허영은 그들을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였고, 오로지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일을 하게 하였고, 타락하게 했다. 결국 그들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들에 목을 맨다. 성구갑과 옷자락 술이 그들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직 하느님께만 보이기 위해 행하였고, 그들의 손에 묶은 유일한 장식은 선행이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8-9절). 아버지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누구도 스승님이나 아버지로 불려서는 안 된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그분만이 아버지이시다. 그리스도만이 스승님이시다.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본성상 사용하는 아버지와 스승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11절) 먼저 우리 신앙인들이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고 세상을 위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될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낮은 자리는 바로 봉사하기 위한 자리이다. 진정한 권위는 섬김과 봉사에서 온다.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그리하여 사순시기가 은총의 기간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사순시기에 본당에서는 금요일마다 십자가의 길을 합니다. 지난주, 십자가의 길을 신자들과 함께 할 때였습니다. 5처에서 깊은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5처는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사형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된 것이지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형수인 예수님을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우연히 그 자리에 있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의지를 세워서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 안에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 삶 안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때가 많습니다.
형제 중 부모님 돌봄을 전담하게 될 때, 직장에서 사람들이 내게 자기가 할 일을 넘길 때,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억지로 하게 될 때,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해 나의 꿈이나 계획을 희생해야 할 때….
이런 상황일 때 “억울하다”라고 말합니다. 공평하지 않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행동하면 그 모든 보상을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키레네 사람 시몬의 억울함을 잘 보지 못합니다.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보상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억울함에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의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주님의 위로와 놀라운 힘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순되는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께 불충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는 말과 행동은 열심히 했지만, 정작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무조건 실천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데, 그들은 아예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자기 맘에 들어야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불편한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 뜻 안에 머무르고 또 실천할 때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갚아주십니다. 그러나 순간의 만족만을 그리고 나의 욕심과 이기심만을 드러내려고 할 때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하느님을 내게서 멀리 밀어놓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위로와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어린 가지가 구부러질수록 나무도 기울어진다(알렉산더 포프).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높아질 것이다.”(마태23,12)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정점이나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겸손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네.
거룩한 이들일 수록
날마다 변함없이
겸손의 덕을 쌓아갔으며
그 덕으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불공정과 불법이 통하는 세상에서는
그만큼 고통이 커지게 됩니다.
반면 상식이 지배하고
불공정과 불법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
그 고통과 인내는 쓰지만 달디단 열매를
공동체에 가져다 주게 될 것입니다.
근심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기쁨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근거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희망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진리와 정의를 따르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입니다.
행복한 삶의 비결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오늘을 사는 데 있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3.18.화."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 3)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실행에 힘을 실어주십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실행입니다. 진심을 말하고 진심을 삶으로 실행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참된 실행입니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좋은 실행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십자가의 실행입니다. 마음을 하느님께 옮기는 실행입니다. 마음을 비워내는 실행입니다. 실행으로 만들어가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실행은 말에 갇혀있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의 생활도 올바른 실행으로 아름다워집니다. 실행이 있기에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실행이 있기에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이 사순시기가 실행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아름다운 만남의 시간이길 기도드립니다. 착한 실행이 선물이고 은총입니다. |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1,10.16-20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좋은 소출을 먹게 되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마다하고 거스르면 칼날에 먹히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 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