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심장
선교사를 역임하신 지인 목사님께서 재미있는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아들이 있었답니다.
성장하여 취직을 했는데 회사에서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한테 불평을 늘어놓았답니다.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녔는데 부장이란 작자가 자기는 회전의자에 앉아서 전화 안 받았다고 화를 내며 잔소리까지… 세상 더러워서 못해 먹겠어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의 불평에 견디다 못해 아들을 공동묘지 무덤지기로 취직시켜 주었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하는 직장 요즘 드물다, 어때 좋았지?" 아들은 "좋기는요! 더러워서 못해 먹겠어요."
라고 불평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니 왜?" 라고 묻자 아들은 "나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데…
모두들 누워 있잖아요. 하더랍니다.>
위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관점과 가치관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런점에서 사복음서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방면으로 생각거리를 가져다주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치명적 문제는 상대적 열등감 때문이라기 보다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인 취리하는 자를 이용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살이에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점이 무엇일까를 우리는 달란트 비유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는 지혜와 판단력입니다.
얼마 전 찬양사역자로 활동하던 김상훈 목사라는 분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성서 학당에서 짖굿은 질문을 하던 캐릭터로 나오던 분이어서 개그맨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ccm 가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가사로 쓴 “고물 심장”이라는 찬양은
생전보다 오히려 그의 사후에 더 많이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54세의 일기로 소천한 그분은 심장 기능이 일반인의 10%밖에 기능하지 않는 질환을 앓고 있었다 합니다.
이런 절망 속에서 접한 하나님의 은혜에 '죽어서도 찬양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만든 찬양이 바로 고물 심장이라고 합니다.
<느리고 또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심장이/당신을 만나 사랑으로 움직이죠/ 금방이라도 멎을 고물 같은 심장이 /당신의 사랑으로 뛰네
내가 숨 쉬는 것도 내가 서 있는 것도/ 기적이기에 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무엇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들어 쓰시는 당신의 심장을 내게 주시네/ 금방이라도 멎을 고물 같은 심장이/ 당신의 사랑으로 뛰네
내가 숨 쉬는 것도 내가 서 있는 것도/ 기적이기에 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무엇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들어 쓰시는 당신의 심장을 내게 주시네/ 나를 쓰시는 당신을 위해서 수없는 그 고통도/ 나를 웃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해/ 내가 숨 쉬는 것도 내가 서 있는 것도/ 기적이기에 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무엇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들어 쓰시는 당신의 심장을 내게 주시네> (고물 심장, 김상훈, 2014년 발표)
“금방이라도 멎을 고물 같은 심장, 내가 숨 쉬는 것도 내가 서 있는 것도 기적”이라며, 그럼에도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다가 부르심을 받았던 김상훈 목사님의 삶을 접하며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고물 심장이냐 또는 일반 심장이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게 있는 심장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드리려 하느냐 아니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고물 심장을 품고서도 달려갈 길을 마치고 안식하신 고 김상훈 목사의 삶과 사연은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음을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삶의 타성에 젖은이들을 일깨워 준다 하겠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 내게있는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아내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해 줍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서 1:8)”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