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鼎 이야기
기원전 605년에 야심만만한 초나라는 周의 수도인 낙양부근까지 군사를 몰고 왔다. 이때의 周는 명목만이 天子國이었지, 풍전등화의 운명이었다. 어쨌거나 주의 천자는 왕손만을 보내서 제후국인 초의 왕을 위무했다. 이때 초왕이 물었다. ‘그대는 내게 九鼎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 줄 수 있느냐?’ 이 질문은 무서운 뜻이 들어 있었다. 구정은 천자국의 상징이었고, 그 구정을 나에게 물려줄 수 있느냐의 뜻을 담고 있다. 이때 왕손만이 말한 대답이 춘추좌전에 실려 있다. 조금 길지만 옮겨 보겠다.
“鼎(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德이 중요합니다. 옛날 夏나라에 덕이 많았을 때 먼나라 들은 그들의 物(아홉 지역에서 생산되는 여러 물건들을 구정에 새겨 두었다. 物은 단순히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상이 아니고, 그 지역의 토템, 제후 家의 enblem, 상징물 등등이다. 그러므로 구정은 단순히 솥의 의미가 아니고, 중국의 여러 제후국을 아우를 수 있다는 상징물이 구정이다.)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바치고, 아홉 개의 지역에서는 銅을 공물로 바쳤습니다. 鼎은 그 물건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조되었습니다. 백 가지 물건들이 그려졌고, 빽성들은 그 때문에 신성함과 악함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생략 —덕이 담긴 도리를 말하였다.)
그런데 夏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桀)의 덕이 흐려져서 九鼎은 상나라로 옮겼습니다. 그후 600년을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상의 주(紂)왕이 포악해서 구정은 다시 周나라로 옮겼습니다.
德이 훌륭하고 밝으면 비록 작다 하더라도 무거운 법이고, 간사하고 쇠약하면 비록 크다 하더라도 가벼운 법입니다. 하늘은 名德에 축복을 내리고,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주나라 成王이 주의 수도에 鼎을 안치하고 난 뒤에 점을 보니 周왕조가 30世 700년 동안 지속되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주가 맡은 天命입니다. 지금의 周가 옛날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지만 天命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鼎의 무게는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에서 구정은 하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가 구정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은 천하가 주에 복속해야 한다는 뜻이다.(구정을 옥쇄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구정을 소유한다는 것은 왕권을, 국가 권력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구정을 가진다고 하여 천하가 복속하는 것이 아니고, 덕을 갖추어야 복속한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유학의 입장에서 왕권을 말한 것이다. 왕손만의 말은 후대에 아주 많이 인용하는 유며안 말이 되었다.
(전설에 구정은 진시황 때 물에 빠뜨린 후에 없어졌고,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의 화상석은 그 장면을 보여준다.)
*중국 고대사에서 구정은 왕권을 상징하는 옥쇄처럼 왕조의 전통성을 상징했다. 구정이 사라졌다는 것은 ---
첫댓글 구정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제 곁에 서예하는 사람이 있어서, 서예를 어깨너머로 보고 있습니다. 서예하시는 분은 중국의 역사, 철학,, 문학 미술 그리고 한문과 漢學까지 두루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만큼 험하고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존경받는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九鼎이야기를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