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프라하
윤대녕
1999년 1월과 2월에 걸쳐 나는 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1997년 여름에 이미 한 차례 서유럽을 돌아본 경험이 있는 나는 이번엔 동유럽 쪽으로 가 볼까 싶어 런던과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베를린에 며칠째 머물고 있었다. 베를린은 어디를 가나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날씨는 연일 비가 내리거나 음울했다. 어느 날 나는 골목 허름한 카페에서 저녁을 먹다 프라하로 가기로 결심했다. 일정을 짜 놓고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때 그저 나는 베를린에 잠시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늦도록 어두운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나는 카프카를 생각했다. 프라하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중학교 때 처음 카프카의 『성』과 『변신』을 읽었다. 또한 고등학교에 들어가 습작을 시작할 무렵부터 나의 책장엔 늘 카프카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 액자를 가지고 있다. 문학하는 사람 치고 카프카에 한 번쯤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오직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나는 다음 행선지를 프라하로 정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베를린 역에서 기차를 타고 일곱 시간을 갔던가. 프라하 역에 내리자 밤이었다. 기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웬 청년이 다가와 숙소를 구해 주겠다고 하며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펜션식의 조그만 호텔이었다. 건물은 낡았지만 매우 정갈하고 조용했다. 창문을 열자 구시가지의 밤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 블타바 강이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그 유명한 카를 교를 건너 프라하 성까지 가 보았다. 밤비가 내리고 있었고 성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마치 측량 기사 K가 된 심정으로 나는 다시 카를 교를 건너 카프카가 생전에 생활했던 구시가지의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돌이 촘촘히 박힌 좁은 골목들은 희미한 가로등빛에 검은 금속처럼 빛나고 있었고 상점과 세탁소와 심지어는 경찰서까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다 나는 길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나는 유대인 지구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블타바 강에는 흰 새떼들이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카프카의 짧은 소설 「판결」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죽으라고 명령하자 주인공이 곧바로 집을 뛰쳐나와 강에 몸을 던지는 충격적인 장면이. 무엇이 그를 그토록 절망에 사로잡히게 했을까.
어찌어찌 숙소까지 돌아와 나는 이내 잠이 들었고 새벽에 곧 잠이 깼다. 무엇에 홀린 것인가. 나는 그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다시 카를 교를 건너 성으로 갔다. 여전히 성문은 닫혀 있었다. 춥고 배고픈 새벽 다시 카를 교를 건너오는데 낡은 바바리 코트를 입은 웬 동양인 청년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는 영화를 공부하러 온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성에 다녀오시는군요. 이렇게 말하고 청년은 곧 발길을 돌려 성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날이 밝자 카를 교 위에 화가와 악사와 예술품을 파는 장인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블타바 강을 사이에 두고 카프카는 이렇듯 구시가지와 프라하 성을 자주 왕래했을 것이다.
나는 프라하에서 8박 9일을 머물렀다. 그동안 카프카가 1906년부터 약 10개월 동안 근무했던 아시쿠라지오니 제네랄리에 가 보기도 하고 스메타나 박물관에 가 보기도 하고 또 드보르작 홀에서 연주회를 관람하기도 했다. 세계 대전 때 전화를 모면한 프라하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호텔 창에서 내다보이는 아침의 붉은 지붕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나타나는 블타바 강가의 보헤미안들, 어딜 가나 미궁처럼 이어진 어두운 골목길들, 열흘 가까이 그곳에 묵다 보니 분명 카프카의 혼령이 자주자주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이었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42살에 요절한 희대의 천재 작가. 그는 끝내 낯선 이웃들이 머무는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미완의 소설 『성』을 남기고 외롭게 죽었다. 그렇다면 프라하는 그에게 과연 어떤 도시였을까. 그곳도 역시 낯선 동네였을까?
‘카프카’는 체코 어로 ‘까마귀’라는 뜻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카페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나와 프라하 역에서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무대인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에 몰래 올라탔다.
윤대녕 - 소설가.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창작집 『은어낚시통신』『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남쪽 계단을 보라』,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사슴벌레 여자』『미란』『눈의 여행자』, 여행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등을 펴냈다. 1994년 제2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6년 제20회 이상문학상, 1998년 제43회 현대문학상, 2003년 제4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 북새통에서 얻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