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22살의 청년이다.
나를 야구라는 스포츠에 빠지게 하고
야구라는게 이렇게 재밌는것이다 라고 느낄수 있게 해준
이종범 선수에 관한 길다면 기고 짧다면 짤은 글을 써본다.
내가 프로야구라는 것을 처음 접했을때는
91년도 내가 8살때였다.
평소에 야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에
야구를 보게 되었고 빠지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경기도에서 태어났고 경기도에서 살고 있기에 태평양을 좋아했다.
이유는 내가 아버지한테 왜 해태를 좋아하냐고 물으니 고향이
전라도이기에 해태팬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고향이 어디냐고 하니
경기도니깐 태평양이나 서울팀좋아한다고 하셔서 나는 그냥 태평양을 응원하게 되었다.
김경기,김홍집,박정현,박준태 등의 선수들의 플래이를 좋아하며 태평양을 응원하던 나는
1993년도 태평양과 해태의 경기를 보면서 단 한선수의 플래이에 의해
좋아하는 선수는 물론 좋아 하는 팀까지 바뀌게 되었다.
바로 그 선수가 이종범이었다.
물론 난 그선수가 누구인지 어떤 선수였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유격수 수비플래이를 보고 한마디로 반해버렸다.
거기에 출루를 하면 여지없이 도루를 멋지게 성공 시켜버리는 플래이!!
어린 나이의 나는 그의 플래이에 완전히 매료 되었고
그 이후 내가 좋아하는선수는 이종범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팀 역시 해태가 되었다.
비록 신인왕이라는 타이틀을 양준혁선수에게 넘겨주고 도루역시 전준호선수에게
넘겨주어 너무 아쉬웠지만 93년도 해태의 우승의 기쁨을 누리고 신인으로써
한국시리즈 mvp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94년도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2년차 징크스는 야구 천재라는 바람의 아들이라는 이종범에게는
전혀 무슨 헛소리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에 아무 적용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1994년 그는 야구천재로써 야구의 모든것을 보여준다.
타율 0.393 안타 196 도루 84 득점 113 홈런 19 타점 77 출루율.0.452.........
정말 최고의 수위 타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데뷔2년차의 선수가 전통 명문구단이 해태의 타선을 이끌고,
대한민국 타자중 최고라니......
저 19홈런도 정말 그당시 이종범이 좀더 노력 했더라면 충분히
더칠수 있었다. 하지만 팀을 위해 무엇이 장타보다 확실한 단타가 더 중요했기에
그는 홈런보다는 정확한 단타, 출루율등에 신경을 썼기에
전반기에 10개의 홈런을 넘기고도(정확한 갯수는 잘기억이 나지 않는다.)
20개를 못쳤다는건 그가 부족했던게 아니고 그렇게 하지않아서였다.
물론 홈런을 자제하고 단타에 신경을 써서 0.393리 196안타 84도루 0.452출루율로
타격 4관왕을 차지하며 데뷔 2년차에 페넌트레이스 mvp를 차지한다.
그런후 1995년 방위 근무로 반시즌만을 보내고
1996년 그는 소집해제와 함께 팀에 복귀를 한다.
모든 전문가들이 1996년시즌 해태를 말하기를 이종범이 돌아오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라고 입모아 말을 했다.
정말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비록 선동열 김성한 한대화등 93년에 우승 주축이었던
선수들이 은퇴를 하고 다른 팀으로 옮겼지만
아직 건제한 조계현,이강철,김정수 그리고 젊은 호랑이 이대진,임창용,김상진,김종국
등등과 함께 기아의 8번째 우승을 일궈낸다.
타율 0.332 안타 149 도루 57 득점94 홈런 25 타점 76 이라는 역시 대단한 기록을 만들고.....
1997년도 역시 기아의 9번째 우승을 일궈낸다.
타율 0.324 안타 157 도루 64 득점 112 홈런 30 타점 74라는 멋진 기록으로
97년도를 회상해보자면 그는 모든 타격부분에 서 3위안에 있었다.
원래 타율,최다안타,도루,득점,출루율부분에서는 언제나 상위권이거나 독보적 이었지만
그런 그가 정말 그냥 단타만 잘치는 타자가 아니라고 제대로 보여준것다.
30개의 홈런은 이승엽에 이은 2위(이 역시 마지막에 잡힌것이지 시즌내내 1위에 있던
선수는 이종범이었다) 장타율 역시 3위권에 드는 성적이었다.
별로 크지 않은 체구이지만 엄청난 손목힘과 정확한 임팩트 그리고 빠른 스윙속도 등으로
그는 1번이지만 4번타자 같은 강한 파워 까지 뿜어 내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시즌에서 또 주목해햐 할것은 30개의 최다 고의 사구라는 것이다.
고의 사구로는 우리나라 역대 최고 인것이다. 이 기록은 물론 아직 까지 존재한다.
팀의 1번타자에 30개의 고의 사구라..... 차라리 클린업과 붙으면 붙었지
이종범은 피해야 한다는 심정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아니 앞으로도 이렇게 대단한 수위타자가 나올수 있을까??
이번 시즌 박용택 선수가 4번타자로써 도루왕을 하였다고 마니 나오던데
이종범은 타순만 1번이었지 활약이나 그의 포스는 4번 과도 다름이 없었다.
홈런2위에 도루 1위 이런 기록을 할만한 선수가 다시 나올까??
이렇게 멋진 1997시즌을 마친후 그는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해태의 않좋은 회사사정과 연봉문제 그리고 새로운 무대 정복을 위하여,
자신의 선배인 선동렬이 있는 주니치로 가게 된다.
여기서 사람들이 기억 하는 것은 이종범은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이종범의 실력이 모자라서 일본에서 실패 했다고 한다면
정말 그건 잘못알고 있는것이다.
그는 일본 무대에서도 야구 천재 바람의 아들이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야구천재, 바람의 아들이라는 명성에 맞게 일본으로온 첫해 그는 3할에 가까운 타율과
9개의 홈런 그리고 17개의 도루 등 주니치로 가서도
타율,홈런,타점,도루 4개부분을 팀내톱으로 달리고
올스타 투표에서도 유격수 부분1위 전체 4위를 달리고 있었다.
바로 데뒤 첫해에 말이다!!!
그런 그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에서의 실패는
바로 1998년6월23일 한신의 가와지리의 공에 팔꿈치를 강타 당한후 부터다.
이것은 일본에서의 이종범의 4번째 데드볼이었다.
1997시즌 한국에서 한시즌동안 3개의 데드볼을 당했었는데
일본에 가서는 반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4개의 데드볼.........
일본에서의 이종범 견제가 얼마나 심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하튼 이런 데드볼이 있은후로 이종범은 마니 달라졌다.
주루플래이나 수비능력은 역시나 최고였지만
문제는 타격이었다. 흔히들 얼굴에 맞는 공이나 공포증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종범처럼 팔꿈치가 완전히 나간경우 몸쪽공에 공포증은 물론
스윙이 나가려는 순간 맞은것이기에 스위을 하는 동작에도 자신도 모르는 변화가
있을수 있기에 그는 예전에 같은 모습을 한동안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2000년 그는 다시 부활한다. 물론 한국에서와 일본데뷔 초반과 같은 활약은
아니었지만, 빠른발을 이용한 주루플래이로 팀의 활기를 넣으며
일본의 한 유력 스포츠지에서 선정한 주니지 음지에 mvp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재계약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가을 훈련캠프 불참가 등으로
조금씩 쌓여온 호시노 감독과의 보이지않는 갈등으로
그는 경기 출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호시노 감독은 부상이전까지
이종범을 누구보다 극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상이후 찬사는 점차 옥평으로 바뀌었다.
카리스마적인 호시노 감독과의 대화 채널이 막힌 이종범은 2군생활을 하다
1군으로 복귀를 했으나 어떻게든 출전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상황에서 그의 스윙은 번번히 빗나가기 일수 였다.
이런후 대타나,대주자로 전전긍긍하던 상황에서 한가지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종범이 국내로 복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신났었다.
그동안 이종범이 없는 해태와 이종범이 없는 야구에 별다른 흥미를 못 느끼던 나에게
이종범 컴백이라는 것은 정말 나에 일상에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위 아이들은 내가 들떠서 이종범 온다고 좋아 하고 있으면
역시 말한다. 이종범 실패하고 돌아오는것 아니냐고.....
그래 솔직히 냉정히 말하자면 실패다.
하지만 변명이 아니라 앞에 말하였듯이 그럴수밖에 없어던 상황이 있지않는가??
일본투수들의 지나친 견제속에서도 빼어난 활약을 보여 주었지만
가와지리의 팔꿈치 데드볼로 인해 한동안 전과 같은 감각을 찾기 힘들었다.
그후 전과 같은 감각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더이상 그에게 기회는 없었다.
2년연속 가을 훈련캠프가 아무래도 결정적이었다.
이종범은 용병으로서 당연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참가 하지않았는데
이것이 호시노 감독눈에는 거슬린것이다.
일본에서 용병을 보는 관점이 이러하다. 다른 서양의 용병은 훈련을 거부 한다해도
별다른 말이 없다 하지만 한국이나 중국,대만 동양권 용병 선수들이 그런다면
이처럼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종범은 이와같은 처우에 정면으로 대응을 한것이다.
이와같은 이종범은 태도에 호시노는 미워한다는 것을 대놓고 보여준다.
당시 이종범과 같은 용병이었던 닐슨 티먼스 언로등이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어도
그는 그들을 계속 기용했었다. 특히 티먼스의 타율이 체 1할이 되지 않을 때도
호시노는 여전히 그를 선발로 내보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1군으로 올라가서 하고 싶은 야구를 하기를 바랬으나
이종범은 더이상은 그런식으로 있을순없었다.
이런 이후로 주니치와 결별은 한 이종범은 나에게 다시 충격을 안겨준다.
바로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를 가겠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닌 마이너에서 뛰는한이 있더라도 그쪽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이종범의 이와같은 언행을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언론에서는 떠들어댔다. 하지만 이종범은 말하였다.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러겠어? 일본에서 힘들때도 많았지만
한국에서는 상상할수 없던 돈을 벌었다고, 당장 야구를
그만두더라도 내아내와 자식을 먹여살릴 돈은 있다고.
자신의 미국도전을 몸값올리기로 본다면 정말 억울하다고...."맞는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였다.
이종범선수는 어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때
그는 항상 순탄하게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던 선수였다.
데뒤5년차에 팀을3번이나 우승으로 이끌고 일본으로 떠났을때
사람들은 이종범이 일본에서도 성공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처음에는 역시 이종범이었다!!
하지만 누누이말한 가와지리의 한방과 호시노의 태도등의
이유로 실패아닌 실패를 하며 일본야구를 떠나게 된다.
그런 그가 그런 모습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을까??
그도 싫었을것이다. 그래서 그는 메이져리그쪽으로 방향을 선회한것이다.
정말 생활을 어려울지라도 맘편하게 야구만을 하면서
다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떨어진 명예를 실추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가족과 팬들 선배들의 설득과 만류에 결국은 한국행을 결심하고
해태를 인수하는 기아타이거즈에 입성을 하게된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것이 분명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관심을 갖는 메이져리그팀이 없어서 한국으로 온것 아니냐고......
분명하게 말하자면 절때 아니다!!
언론에 공개된 그에게 관심을 갖었던 팀은 두팀이다
먼저 애리조나에서는 그를 당신 뉴욕매츠의 신조 보다 높게 평가하며 관심을 보였고
뉴욕양키즈 역시 신죠보다 좋은 선수라며 관심을 갖었다.
양키즈에서는 연봉액수까지 제안했었다. 해태가 기아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계약협상에 진전이 없자 양키즈는 2년에 135만달러라는 액수는 제시했다.
조건은 우선은 트리플a팀인 콜럼버스 클리퍼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올해 연봉 35만달러
그리고 남은 1년은 마이너든 매이져든 상관없이 100만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가족들의 만류와 지인들의 설득으로 한국행을 결심한 그이기에
이조건은 아쉽지만 그는 기아타이거즈에서 제2의 선수 생활을 하게 된다.
연봉3억5000이라는 최고 대우액수를 받고 2001시즌 후반기 그는 화려하게 컴백한다.
그가 경기를 갖는 구장은 이종범을 보기 위한 관중들로 꽉꽉차기 일수였다.
말 그대로 이종범 신드롬이 었다. 광주 뿐만이 아니라 전국 어느구장이든
기아와 붙는팀은 이종범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필자도 한동안 야구장을 별로 안갔었는데 이종범이 컴백하였을때는 잠실구장을 찾았다.
LG와의 경기 였는데 3연전 모두 보러 갔다. 이종범을 보기위해서.......
보통 야구장을 갈때는 시간에 거의 맞혀서 갔는데
이때는 연습하는 것도 보고 싶고 해서
쫌 일찍갔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지 경기가 시작하려면 1,2시간 정도 남았는데
이미 기아측 3루 응원석은 거의 꽉꽉 차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 할때쯤 되니 구장은 만원이었다.
포스트 시즌도 아니고 개막전도 아니고 어린이 날도 아닌데 만원 관중이라....
정말 오랫만이 었다. 잊지 못 할 추억이다.
이와같은 이종범의 효과는 정말 한국야구의 부활이 었다.
차세대 유망주들의 메이져리그 진출과 메이져리그 선수들의 활약으로
조용조용햤던 한국야구가 오랫만에 활기를 뛰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야구 천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플래이를 맘껏 펼쳐 보였다.
후반기 45경기에 출전해서 0.340이라는 타율과 64안타 11홈런 등
그토록 그를 기다려온 팬들을 실망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이종범은 그톡록 원했었던 최고연봉을 달성하고 2002시즌은 준비한다.
93년부터97년시즌까지 5시즌을 뛰면서 그의 연봉이 최고 였던 적은
아니러니 하게도 한번도 없었다.
(2001시즌은 후반기 부터니깐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그누구보다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도 연봉협상 때만되면 항상 최고가 될수 없었다.
96시즌 팀을 우승시키고 이종범은 야수 최고대우를 요구했다.
하지만 양준혁선수가 1억2000만원에 도장을 찍을때
그는 1억 1000만원에 찍을 수 밖에없었다.
이런후 이색 설문이 있었다. 두 선수가 만약 같은 팀이었으면 누가 더
많은 연봉을 받았을꺼 같은지를 물어 보는 설문이었다.
설문은 이종범의 압도 적인 지지였다.
이와 같이 이종범은 최고의 활약을해도
기업의 사정으로 인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기아라는 큰 기업에서는
이종범의 자존심을 지켜줄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져도 돌아온 이상훈의 4억 7000만원에 눌리긴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2002시즌은 시작한다.
기아는 이와같은 이종범의 활약에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올스타전에서도 무려 기아소속선수 8명이 팬투표로만 뽑히는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던 그에게 다시한번 시련이 온다.
바로 6월3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그만 김장현 선수가 던지공이
안면에 맞아 광대뼈 함몰이라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종범의 팬인 나로서는 그가 일본에서 가와지리의 공에 팔꿈치를 다친후
힘들어 했고 제컨디션을 찾지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던걸 알기에
걱정이 안될수가 없었다. 다행이 아주 심한것은 아니라서 수술까지는 안해도 된다고
했기에 한시름은 놓았었지만 그래도 걱정은 계속이었다. 안면에 공을 맞았는데
예전처럼 타격하는데는 또 무리가 생기는건 아닌가하고.........
이종범은 결국 안면보호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전을 하였다.
팔꿈치 보호대에 안면보호대까지 쓰면서 경기하는 이종범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까움에 연속이었다. 이런상황에서도 이종범은 팀을 이끌며
정규시즌 2위라는 성적을 팀에게 안기고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활약으로
우승이라는 큰일을 해낸다.
그런후 펼쳐진 플래이오프에서는 정말 김응룡감독 조차도
그는 야구의 신이다라고 표현할정도로 재미는 없지만
정말 이기는 야구를 구사했던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에 무릅을 꿇고 만다.
정말 아쉬웠던 포스트 시즌이었다. 중심타선이 조금만 더 쳐주었더라면.....
김진우가 경험이 있어서 조금만더 침착했더라면
광주구장 관중석에서 불을 지르는 일은 없었을텐데....
(실로 이때 5차전에서 다시 김진우가 구원으로 나온후 기아의 패색이 짙어지자
이에 흥분한 팬이 불을 관중석 의자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기아가 떨어진후 삼성이 정말 드라마틱한 우승을 한후 2002시즌은 막을 내린다.
2002시즌 이종범은 타율 0.293 도루 35 안타 132 홈런 18개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
그리고 외야수로서도 골든 글러브를 찾이하는 선수가 됐다.
그리고 2003,2004시즌 그는 팀을 플래이오프까지는 성공 하였으나 아쉽게도 우승까지는
이끌지 못해 기아팬의 한사람으로서 아쉬움을 달래게 했다.
그래도 2003시즌에는 최고령 20-20클럽도 달성하고 국내선수로는 유일하게
정규시즌,한국시리즈,올스타전 트리플 MVP를 달성하기도 했지만
2004시즌에는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은 친다는 소리를 듣던 그가 0.260이라는
정말 이종범이라는 이름에 걸맞지않는 데뷔이래 최악의 타율로 시즌을 정리했다.
시즌 중반 더블 포지션이라는 부담과 투수들의 몸쪽견제 그리고 쳐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나가기만 하자는 생각이 앞서서
(타율은 낮았지만 그래도 득점은 100점 이었다)그랬을수도 있지만
야구천재 이종범으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래서 그는 데뷔이래 처음으로 연봉삭감이라는것을 격게 되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5시즌 기아타이거즈는 전신 해태 시절까지 통틀어서 처음으로 꼴지를 하게 된다.
이종범은 잔부상속에서도 3할때를 유지했지만 기아 타이거즈는 정말 말이아니었다.
정말이지 게임을 보고 있으면 이정도로 안풀릴수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정도로
타선이 좀 쳐주면 마운드가 무너지고, 마운드가 지켜줄라 하믄 타선이 침묵하고.....
정말이지 기아의 팬인 나로서 이번 시즌은 정말 악몽 과도 같았다.
꼴지를 함에도 이종범 선수를 보러 수원구장에 기아가 올때마다 가서 소리질러 가며
응원했지만 정말이지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물론 프론트진과 유남호 감독의 이해할수 없는 트레이드와 용병술도 한목 했다.
정말 리오스의 트레이드는 대체 왜 한것이지.....
이렇게 너무도 실망스런 2005시즌을 마치고 이종범선수는 드디어 FA가 되었다.
나는 기아가 꼴지를 했을지라도 FA라는게 꼭 한시즌만을 놓고 보는 것은 아니기에
여지껏 해태와 기아를 위해 이종범이 한 성과와 아직도 그의 수많은 팬들을 고려해
이종범이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처음 협상에서 이종범이 3년에 23억원을 제시했는데
기아 측은 2년에 3년차 바이아웃 그리고 코치 연수들을 제시 해서 결렬이 났다.
나는 아 이종범의 저정도 요구조차 받아 주지 못하는 기아가 야속했다.
그런후 또 나온것이 양준혁과 송진우의 백지위임으로
이종범이 협상하는데 곤란 할수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이종범은 생애 첫 FA인데 백지위임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기아의 꼭 필요한 선수이기에
기아에서는 꼭 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후 얼마 안있다가 결과가 나왔다 2년에 18억........
물론 2년계약중에 최고이고 결코 적지 않은 액수 이지만 그래도 나는 아쉬웠다.
물론 프로는 실력으로 말한다. 이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의 그이기에
더많은 투자는 어렸웠다고 말한다. 아니 이 액수도 많은 것이라고 말하는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틀리다.
우선 실력으로도 그는 이정도 액수는 충분히 받을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꼭 실력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종범선수만은!!
이종범선수를 실력이상을로 보게 하는것이 바로 그의 팬들이다.
나를 비롯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은 다른 팀을 좋아하다 이종범의 플래이에 반해
해태, 기아를 좋아하게 된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를 보기위해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관중동원력이 있는 선수는 찾기 힘들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프로 입단당시 다른 라이벌들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입단 할때도 그는 7000만원을 받으며 입단을 했고,정말 야구에 모든것을 보여주며 활약 했을때도 그는 항상
기업의 사정으로 인해서 실력에 못미치는 액수에 싸인을 하곤 했었다.
이런 그에게 나이가 있다는 이유로 그럴순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아직도 나에게 그는 최고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기록
한시즌 최다 안타 - 196 안타(94년)
한시즌 최다 단타 - 146 단타(94년)
한시즌 최다 2루타 - 43개 (99년)
한시즌 최다 도루 - 84 도루(94년)
한경기 최다 도루 - 6개(93년)
연속 도루 성공 - 29 연속 도루(97년)
한시즌 최다 고의 사구 - 30개(97년)
보는 바와 같이 이종범은 많은 한시즌 기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걸 보면서 또 아쉬운것이 있다.
바로 그가 해태의 재정사정이 좋아서 계속 한국에 남아있었더라면
이렇게 한시즌최다 기록 뿐많이 아니라
역대 최고라는 타이틀도 많이 가질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다.
특히 안타와 도루 그리고 득점 부분에서는 정말 엄청난 기록을 세울수 있었을텐데.....
실로 그는 한국에서 기록상으론 10시즌을 뛰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95시즌과 2002시즌은 절반만 참여했기에 9시즌 정도 뛰었다고 볼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격의 거의 전부분에서 20위건안에있다.
안타부분에서는 통산 10위이고
(그보단 적은 시즌이나 같은 시즌을 뛰고 그를 앞지르고 있는 선수는 없다!!)
도루부분에서는 통산 2위이다.
(이기록은 11시즌을 뛴 정수근 선수보다 높은 수치이다.)
득점부분에서는 통산 5위이다.
(이승엽선수가 조금 앞서 있을뿐이다.)
이처럼 정말 그냥 한국야구에서 뼈를 묻었으면
정말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하는 아쉼움은 어쩔수 없이 항상 남는다.
그리고 그가 떠나지 않고 한국에 있었더라면 해타라는 이름으로 v10을 달성 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렇게 길게 이종범 선수에 선수 생활을 써 보았다.
이런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더느끼지만 정말 대단한 선수이다.
비단 기록을 중심으로 글을 썼지만 그는 기록으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에서
더 무서운 선수 일수있다.
우선은 바로 그의 수비력이다.
유격수와 외야수에서 모두 골든 글러브를 찾이한
그의 수비는 정말 판타스틱이다. 말그대로 판타스틱이다.
우선 유격수를 볼떄 그의 수비는 상상 초월이었다.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공을 그야말로 그냥 안타였다하는 볼을 잡아내기 일수 였고
남들 그냥 포기하는 공도 그의 수비 앞에는 글러브 속에 들어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종국의 합류이후 둘이 보여 주었던 키스톤 플래이는
내가 야구를 본이래 최고의 키스톤 플래이었다. 아니 아마도 이보다 더 좋은
키스톤 콤비가 있었을까??
항간에 사람들은 이종범은 실책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건 결코 그가 수비를 못해서가 아니다.
그가 실책이 많은것은 남들은 그냥 손도 못대고 말 공을
잡으려 하다 보니깐 생기는 것이다.결코 그의 수비에 실수가있어서가 아니라.....
그리고 외야 수비 역시 만만치 않다.
빠른 발을 이용한 폭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어깨 그리고 야구천재다운 예측수비가
장점이라 할수 있겠다.
기억하는가?? 올스타전에서 정수근이 거의 바가지성 타구를 쳐서 안타라고
생각해었는데 그위치에 미리 가있어서 잡아낸 이종범의 플래이를.......
그리고 그는 모든 포지션의 수비를 할수 있다.
그냥 하는게 아니라 시합에 내보낼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다.
유격수로 시작해서 그는 해태에서 팀이 필요로 할때는 포수를 보기도 했다.
그런후 일본에서 돌아온후로는 외야수로 활약을 했고
팀이 필요로 할때는 3루를 보기도 했다.
비록 포수를 계속한것이 아니기에 확정적으로 말은 못하나
그는 팀이 필요로 할때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그의 대단함은 주루 플래이다.
그는 비단 도루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다.
물론 도루역시 최강자이지만
(아마도 그가 세운 한시즌 최다도루는 앞으로 깨지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의 주루 플래이가 왜 대단하냐 하면...... 빠른 발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허를 찌르기 때문이다. 예전 엘지와의 경기에서 1회에 이종범이 진루한다음 도루를 해서
2루에 진출한후 그다음 타자의 유격수 땅볼때 홈으로 들어온것을 볼 수있었다.
스타트를 빨리 끊은후 그냥 홈으로 들어와 버린것이다. 당연히 3루에 멈춰있을줄 알았던
엘지 수비들은 당할수 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평범한 안타를 치고 외야수들은 당연히 1루에서
멈출줄 알고 천천히 플래이를 하는데 어느새 그냥 2루로 가버린다거나,
보내기 번트 상황에서 곧장2루를 돌아 3루로 가버리는 플래이
정말 그가 루상에 나가면 모든 수비수들은 긴장을 안할수가 없다.
그냥 평범한 3루 보내기 번트를 대노라면 포수는 재빨리 3루로 커버를 들어가야하고
평범한 안타를 외야수들은 편하게 처리할수가 없기에 그는 진루 만으로도 상대팀을 혼란스럽게 해버린다.
당연히 이와같은 그의 주루플래이는 상대팀은 흔들어 놓고,
자신의 팀에는 승리를 안겨주곤 했다.
그리고 또 무서운점은 타격능력 그리고 클런치 능력이다.
4할에 가까운 타율을 보여주고 1년에 196개라는 안타를 때려내고
그외소한 몸으로 30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것을 봤다면
그의 타격능력은 따로 말할것도 없을 것이다.
작은체구의 약점을 극복해 버리는 스윙 스피드와 정확한 임팩트 능력
정말 그는 타격에서도 흠잡을 것이 없다.
비록 가와지리의 일격과 계속되는 위험한 사구, 그리고 집요한 몸쪽 승부등으로
요 몇년가 약한 모습도 봤지만 그래도 그는 이번시즌에 3할의 타율을 유지했고
앞으로도 충분히 그럴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의 타격에 강점은
물론 저런 앞으로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도 설명할수 있지만
기록으로는 표나지 않는 클런치 능력에 있다.
클런치 능력이란 중요할때 실력을 보여주는 것을 말하는데
이게 이종범 선수의 강점이다.
신인때에도 프구야구의 축제이자 제일 큰경기인 한국시리즈 mvp!!
그것도 7차전 경기에서는 3연속 2루타를 때려 냈었다.
그리고 96년도 우승할때에도 연타석 홈런등으로 우승 트로피를
가져 오곤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가장 결정적인 클런치 능력을 봤을때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96년도 한화와의 페넌트레이스에서
봤던 경기다.팀이 5대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초 공격이었는데
어쩌어쩌 하다가 2아웃 만루 5대2 라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상황에서 상대투수는 정민철선수 였다. 선발로서 완투로 정민철선수가
있었던 것이아니라 한화가 꼭이기기 위해서 내보낸것이었는데
그는 그상황에서 담장을 넘겨 버리는 홈런을 친것이다. 정말 드라마처럼......
그전 과정도 데드볼을 두려워 하지않고 어떻게든 나가려는
해태선수들의 투혼을 그가 마무리 한것이다. 그런후 그는 포수마져 대타로
써서 포수가 없는 상황이 되자 포수마스크를 쓰고 임창요과 배터리를 이루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정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경기이다.
이렇게 기록으로는 표현할수 없는 부분에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
바로 우리에 이종범 선수이다.
이처럼 이종범 선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야구와
가까워질수 있게 해준 선수이고 나를 가장 기쁘게 해준 선수이다.
정말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것을 여러번 가르 쳐준 선수이다.
이제 그런 선수가 어느덧 새월이 흘러 이제는 최고참 위치까지 와있다.
이제 나는 더이상 그에게 4할때의 타율 200안타 등의 기록을 바라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그가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즐거운 플래이를 하며 기아의 이종범으로서 그라운드를 누비었으면 한다.
저랑비슷한나이와 비슷한 시기 비슷한 동기로 이종법의 팬이 되었네요...단 저는 아버지가 해태에 다니셔서ㅋㅋㅋ 어쨋든 이종범으 해태의 득점루트였져 이종법이 출루하고 도루하고 2번타자가 진루타쳐주고 희생타로 득점... 옛날 플레이중 2루에 있을때 평범한 땅볼때 2루에서 홈까지 파고드는 그의 주루플레이는
첫댓글 한경기 6도루 신기록 세울때 전주경기장에서 직접봤죠... 당시 초딩이던 저까지도 또 뛴다라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연거푸 성공....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당대 최고 선수죠
.393 타율 4할넘길수있었는데..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규정타석은 이미 다 채웠는데 만들어진 기록이란 소리듣기싫어서 계속나오다가 아쉽게 실패했죠...그당시 이종범안타치거나 못치면 바로바로 타율계산하던...ㅋ 치면 2리가 올라가고 못치면1리가 떨어지는..홈런20개는 부담감때문에 못친듯..
아마 94년 홈런왕이 24개정도였을겁니다 김기태인같기도(기억이 가물..;;) 진짜 욕심냈으면 전대미문에 홈런 도루왕탄생할뻔 타율, 최다안타 포함...헉...
김상호 아니었나요? 첫 서울 홈런왕
김기태는 홈런왕못했지 않나요? 타격왕은 했을거에요...홈런은 2위가 최고였던듯...순전히 제 기억상으로...^^;;
김기태 94년에 25개로 홈런왕 맞습니다. 이건 KBO자료실에 나와있고요 제 기억에 김경기가 23개로 2위 김재현이 21개로 3위였던거 같은데요. 뭐 2,3위는 틀릴수도 있지만 1위 김기태는 기록에 나와있으니까 확실합니다^^;;
야구는 9회말 2사 2스트라익 3볼 부터 시작된다는걸 알려준 종범 행님!!!
그래도 일본진출은 참 아쉬워여.. 한때 이치로와 비교되었는데.. 뭐 실력이외의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이좀번형님 중간에 방위인가만 안했으면..또 일본에서 안면함몰되는 큰부상만 아니였으면 정말 한국야구사에 한획을 그었을 형님인데.갠적으로 이종범형님 최고 전성기시절은 전 이승엽보다 더 포스가 강햇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완전 원맨쇼하던 당시 모습은 덜덜덜
저랑비슷한나이와 비슷한 시기 비슷한 동기로 이종법의 팬이 되었네요...단 저는 아버지가 해태에 다니셔서ㅋㅋㅋ 어쨋든 이종범으 해태의 득점루트였져 이종법이 출루하고 도루하고 2번타자가 진루타쳐주고 희생타로 득점... 옛날 플레이중 2루에 있을때 평범한 땅볼때 2루에서 홈까지 파고드는 그의 주루플레이는
정말 명장면이었는데.....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 오랜만에 듣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