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아 대통령 부인, 아스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 Assad,50)의 부인인 아스마 알 아사드(Asma al Assad,40)는 런던 태생의 시리아 수니파 무슬림이다.
아스마는 영국 명문 킹스칼리지에서 컴퓨터공학과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1992년 런던에서 안과학 박사과정을 밟던 바샤르를 처음 만나 2000년 12월에 바샤르와 결혼했다.

프랑스 잡지 '보그(Vogue)'는 아스마를 '사막의 장미'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아스마는 평소 시민활동을 이끌고 시리아 개혁,개방정책을 홍보해왔다.
하지만 시리아 반체제 시위에 대한 유혈 탄압이 시작되자 아스마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친정부 시위에 참가했다.
당시 AFP통신은 "아스마는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아스마의 해외 탈출설,사망설이 한때 제기되기도 했다.


북한 김정은 부인, 이설주
이설주는 그동안 북한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의상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장본인이다.


앙골라 대통령 부인, 아나 폴라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 조제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Jose Eduardo Dos Santos,73)는 1979년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40년째 재임중이다.

전 패션모델이었던 아나 폴라 도스 산토스(Ana Paula Dos Santos,52)는 앙골라 대통령전용기 에어 호스티스였다.
그녀가 대통령전용기에서 일하면서 서로를 알게됐다.
1991년 5월17일 결혼해서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요르단 국왕 부인, 라니아 왕비
아마도 라니아 알 압둘라(Rania Al-Abdullah,45) 왕비를 모른 분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유명하고 평판이 높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2세(Abdullah II,53)의 배우자로서 중동의 '그레이스 켈리'로 불릴 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왕비이다.

라니아는 이집트의 명문대학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AUC)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씨티은행,애플 요르단지사에서 마케팅부서 직원으로
일했다. 그녀는 1993년 애플 직원 자격으로 요르단 왕가에서 여는 만찬에 참석했다가 국왕 압둘라2세(당시는 왕세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달 후 결혼 발표를 했다.
1999년 아버지인 후세인 국왕의 서거로 압둘라2세는 당시 3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고 라니아도 왕비가 됐다.


카메룬 대통령 부인, 샹탈 비야
샹탈 비야(Chantal Biya,44)는 카메룬 대통령 폴 비야(Paul Biya,82)의 배우자로 카메룬 Dimako 태생이다

1994년 4월23일 폴 비야 대통령과 결혼했다. 폴 비야는 1992년 첫 부인을 사별한 후 2년만의 재혼이다.
샹탈 비야는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는 Dior와 Chanel을 좋아하고 다양한 모임과 고급 이벤트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여러 개의 자선기구를 설립하였고, 그 중에는 African Synergy, Chantal Biya Foundation이 있다.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부인, 메흐리안 알리예바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54)는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를 나와 역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0년까지 이 대학에서 강의를 한 바 있다. 그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가 유창하다.
안과의사인 메흐리반 알리예바(Mehriban Aliyeva,51)는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54)의 부인이다.
1983년 결혼하여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Leyla는 러시아 기업인의 아들과 결혼했다.

메흐리반은 Heydar Aliyev Founation 수장직을 맡고 있으며 근래에는 '2015 바쿠 유럽게임' 조직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지난 2015년 6월29일에는 대통령이 자신의 아내에게 제1회 유럽게임 성공적 개최한 대한 공로로 국가최고훈장을 수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젤바이잔 공화국의 문화,교육,보건,체육 발전에 기여한 창조적 활동을 높히 평가하고, 국제사회에 아제르바이잔 인민들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고 제1회 유럽게임을 잘 조직한 커다란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서 훈장을 수여한다" (2015.6.29 대통령 서명)

스와질란드 국왕의 서열 12번째 부인, Ntanda Dube
스와질란드 국왕 음스와티 3세(Mswati III,47)는 현재 15명의 부인을 두고 있다.
이중 가장 주목할 부인은 서열 12번째 부인인 Ntanda Dube이다. 그녀는 화장 안한 얼굴로도 미인이다.



히틀러의 연인, 올가 체코바
나치 독일을 패망으로 이끈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당대 독일 최고의 여배우인 올가 체코바(Olga Chekhova)였다. 히틀러의 옆자리를 지킬 정도로 최고의 배우였다.
올가는 1897년 소련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련에서 배우 생활을 하였고 독일로 이주를 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소련정보국 스파이였다는 것이다.

올가는 희귀병을 앓았던 자신의 딸을 소련정보국이 치료해준다는 조건으로 딸을 살리기 위해 스파이 목적으로 1922년 독일에 들어갔다.
올가의 임무는 독일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나치 고위 장교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내는 것이었다.
1933년 4월 아돌프 히틀러와 첫 만남을 갖게된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독일이 은밀하게 준비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정보를 알게됐고 이를 소련정보국에 알리면서 독일은 쿠르스크 전투에서 대패했다.
독일은 쿠르스크 전투 대패로 전력이 약화되면서 나치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됐다. 이 내용은 비하인드 스토리로 전해지고 있으나, 입증할 만한 문서는 아직까지 없다고 한다.

이멜다 마르코스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86)는 필리핀의 정치인이자 제10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1989년 9월29일 사망)의 부인이다.
절세미인 이멜다는 1953년 미스 필리핀 1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고인이 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1954년 결혼했다.

남편 사후 필리핀으로 귀국하여 2010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영부인 재직시의 부패 행위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솔리니의 연인, 클라레타 페타치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여인인 클라레타 페타치(Klaretta Petacci)는 무솔리니 보다 29살이 어리다.
클라레타는 로마 출신으로 교황의 개인 주치의이기도 한 의사의 딸 이었다. 우아한 실크옷이 잘 어울리는 후리후리한 몸매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했지만 2년만에 남편을 버리고 무솔리니의 애인이 되었다.
1945년 무솔리니와 클라레타는 해외 도피를 시도했으나, 빨치산에게 잡혀 총살당하는 운명이 되었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의 아내 엘레나의 정식명칭은 "인민의 자애로운 어머니."
한편 그녀는 "인민들은 마치 벌레와 같다. 아무리 먹여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는 발언을 했다.
차우셰스쿠일가가 해외에서 빌린 채무가 100억 달러에 이르자 "루마니아가 채무를 지고 있다는것은 국치다."라며 복지예산을 긴축하여 불과 9년만에 채무를 다 갚았다. 간단히 말해 빚을 국민에게 떠넘겨서 갚았다.
아들 니쿠는 각국의 외교관들이 모인 만찬에서 소변을 갈겨댔다.
아들 니쿠가 한 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탐탁찮았던 엘레나는 니쿠가 해외로 나간사이 병사들을 시켜 그 미녀를 윤간한 뒤, 그 사진을 니쿠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앵무새 중 한 마리가 훈련받은대로 "니쿠 바보"를 연발했다. 앵무새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에 끌려가 심문받은 뒤 사형당했다.

총살당하는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대통령 부부
훗날 기록을 보면 차우셰스쿠는 총살되기 사흘 전까지 민심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군중들을 모아놓고 충성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전례 없던 야유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상황이 겉잡을 수 없게 되자 차우셰스쿠 부부는 황급히 해외 도피를 시도한다.
이때 도피처로 거론된 나라가 북한이다. 결론은 실패. 붙잡힌 차우셰스쿠 부부는 총살 당하는 순간까지 "너희는 반역자다"라고 외쳤다.
이 부부에게 총을 쏘려는 지원자가 속출해서 몇 명만 추려야 할 정도였다. 부부의 몸에 박힌 총알은 모두 120발이었다.
첫댓글 다까끼, 전대갈, 물태우.. 푼수떼기들도 올려 주시길 기대 합니다.
최태민 말하는건가요! ㅋㅋㅋ
육영수 이순자 김윤옥
명박인 수준미달이니 빼주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