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돼지의 새 발견<1>
췌도·각막·심장·간·폐……돼지 장기 인간 이식 막 올랐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0호(2019. 01.15)
돼지 연구하는 서울대인들
이종 장기이식 임상시험 눈앞 - “관련법
정비 걸림돌 없애야”
인류의 오랜 육류공급원인 돼지는 21세기 들어
이종장기이식의 공여자로 부상했다. 사진=다비육종 제공
돼지는 전 세계에서 사육되는 인류의 오랜 육류 공급원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고사 상에 돼지머리를 올렸던 옛 풍습은 차치하더라도 편육, 보쌈, 족발 등 돼지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이 즐비하다. 특히 삼겹살은 식재료를 넘어 식문화의 한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렇듯
아낌없이 주는 돼지가 21세기 들어선 이종장기이식의 공여자로 부상했다.
돼지의 생김새는 인간과 확연히 다르지만 몸 속 구조는 서로 비슷하다. 또한 임신기간이 114일로 짧고 한번에 5~12마리의 새끼를 낳으므로 경제적이다. 오랜 기간 인류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동물원성 감염병 위험도 적다. 원숭이를 비롯한 영장류는 멸종위기 종일 뿐 아니라 사람처럼
한 배에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하며 성장속도도 느리다. 영장류의 장기는 사람에게 이식하기엔 크기도 작고
세포 속에 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나 세균 등에 의한 감염 위험 또한 높다.
반면 돼지는 ‘미니돼지’로 작게 개량돼 이식에 적합한 크기의 장기를
얻을 수 있고,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해 ‘형질전환돼지’로 만들 수 있다. 박정규(의학81-87)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는 바이오 이종장기 개발사업단(이하 사업단)은 바이러스나 세균 등 사람에게 전염 위험이 있는 병원균까지 없앤 ‘무균돼지’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장기이식원 권고기준을 만족시킨 이 돼지의
이름은 ‘서울대 미니돼지’. 김윤범(의학52-58) 미 시카고의대 교수가 정년퇴임하면서 서울대에 기증한 돼지를 강병철(수의학91-96) 의생명 동물자원 연구센터 센터장이 연건캠퍼스에서 돌보고 있다.
이종이식이 전망되는 돼지의 신체기관은 췌도, 각막, 심장, 간, 폐, 신장 등이다. 췌도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세포로 돼지의 췌장에서 이를 분리해 간을 관통하는 혈관 즉 간문맥에 주사해 이식한다. 사업단은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 5마리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했고, 이들
모두 6개월 이상 정상 혈당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중
한 마리는 3년 가까이 정상 혈당을 유지해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이 세운 최장기록인 396일을 훌쩍 넘어섰다.
각막 이식 또한 유인원에 적용하는 전 임상단계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WHO의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세계 최초로 충족시켰던 것. WHO는
임상시험에 앞서 영장류 8마리에 연속으로 이식실험을 해서 이중 최소
5마리의 이식 각막이 6개월 이상 생존해야 하고 또 이중 한두 마리는 12개월 동안 생존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이를 준수한 연구는 국내 사업단이 유일하다.
사업단의 연구는 이종이식과 관련된 법 규정이 없어 좌초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종이식 특성상 혹시 모를 감염과 그에 따른 책임 소재를 규명해주지 않으면 연구자가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할 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도 보호할 수 없다. 임상시험이 가로막히면 사실상 연구가 중단되는
것. 위기의 순간에 식약처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심장, 간, 폐 등 고형 장기를 제외한 췌도, 각막에 한해 세포치료제의 일종으로 취급, 임상시험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박정규 단장은 “올해 1, 2월로 계획했던 임상시험이
올 상반기나 그 이후 즈음으로 미뤄지긴 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더 활발한 연구를 위해선 관련 법안 마련이 여전히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첨단재생의료 및 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이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이종이식과 관련한 소관 부처와 규제가 정해져 임상시험을 실시할 근거가
마련된다. 그러나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무관심
속에 폐기됐고 이번 20대 국회서도 방치돼 있다. 박 단장은
“장기 기증자를 찾지 못해 매일 4.4명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고도 정작 쓰지
못한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초기 이종장기사업단을 이끌었던 안규리(의학74-80)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도 “바이오사이언스는 그 연구성과가 환자한테까지 도달해야 의미가 있다”며 “의사와
과학자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김기범(의학92-98) 소아청소년과 교수, 김용진(의학69-75) 소아흉부외과 교수,
임홍국(의학91-95) 전 흉부외과 교수로 구성된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의료기기업체와 공동으로 돼지 심낭으로 만든 인공심장판막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수입산보다 저렴하고 개흉 수술이 필요 없으며 면역거부반응도 제로에 가깝다. 연구팀은 지난 2004년 돼지의 대동맥 판막을 이용해 차세대 심장판막
개발을 시작해 14년 동안의 연구 끝에 결실을 맺었다. 이종이식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면역거부반응이 전혀 없는 사실상 ‘인간화’된 생체조직으로 심장판막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