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수집·산출 조사기관마다 차이… 공표된 정보 의미 올바르게 해석해야-
갑자기 몰아닥친 ‘노무현 돌풍’을 둘러싸고 여론조사의 힘을 새삼 실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 경선과 함께 남쪽 지방에서부터 불어온 이른 바 ‘노풍’은 지난 3월 13일 SBS TV가 조사기관인 TNS에 의뢰해 보도한 저녁 8시뉴스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SBS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노무현 고문이 맞붙 는 가상대결 결과 노 고문이 41.7%로 40.6%를 얻은 이회창 총재를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보도 했다.
조사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이날 뉴스에서 발표한 조사결과는 표본크 기와 오차범위 등을 따지면 실제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어 통계적으 론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결국 시청자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접할 때 필요한 정보를 감안했더라면 크게 놀라지 않았을 지지율 차를 과민 하게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회창 총재와의 가상대결에서 항상 민주당 이인제 고문에 처졌던 노무현 고문이 이 총재를 박빙의 차로 앞서게 됐다는 것은 분명 뉴스거리였다.
‘노무현 돌풍’은 이날을 전환점으로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 사흘 뒤 이루어진 광주경선에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를 촉발시켰다. 여러 조사기관 및 매스컴은 앞다투어 유사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불 과 2주일 만에 노 고문은 이 총재의 지지도를 15~20% 상회하는 대역 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런 단시간의 지지도 변화는 최근 유례를 찾기 힘든 현상이다. 일각 에서 제기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음모설’이 충분히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과연 인정할 만한가.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노엘레 노이만(Noelle Neumann)은 ‘침 묵의 나선 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했 다.
▲충분한 시간 표본 확보해야 정확
“대다수 사람들은 타인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타인에 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따라서 특정 이슈에 대한 태도에서 지배 적인 의견에 자신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확신이 생기면 공공연히 견 해를 표방하지만 소수에 속하면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
노이만이 지적한 대로 자신의 견해가 소수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를 은폐 또는 위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 이 여론조사 대상이 될 경우 이들의 응답 신뢰성은 신중히 검토해야 하며 정치적 태도에 대한 여론조사일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 지게 나타난다.
2000년 4월 총선 출구조사에서 수집한 여론조사 데이터는 이같은 측 면에서 신뢰성의 문제가 제기됐다. 야당에 투표한 일부 유권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후보에 대한 정보를 출구조사에서 면접원에게 정확하 게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출구조사는 예측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투표를 한 사람들에게 “누구를 찍었느냐”를 묻는 것이므로 정확성이 필요했지만 이런 기 대는 빗나갔다. 매스컴들도 지나친 보도경쟁으로 인해 공신력에 큰 상처를 남겼다.
유권자들의 여론조사 거절과 여론조사시 태도를 유보하는 계층의 이 해를 위해 정확한 여론조사는 충분한 시간과 표본을 확보해야 한다.
자료에 따르면 전화조사의 경우 첫번째 전화면접의 성공률은 일반적 으로 17.6%에 불과하다. 조사거절(15.9%), 통화중·부재(48.3%), 결번 (18.2%) 등으로 최초의 면접은 대부분 실패한다. 실제로 면접에 끝까 지 응하는 유권자들의 경우에도 지지후보에 관해 ‘모름·밝힐 수 없음’으로 응답한 경우도 15~35% 정도로 집계된다.
이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블랙박스군’의 유권자 태도 를 분석하는 기법으로 각 조사기관들은 판별분석·신경망 모형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기법으로 면접의 성공률을 늘 리고 태도 유보층을 분석하느냐에 따라 조사기관마다 조사수치 산출 이 달라진다.
한편 응답자의 중립적인 응답에 면접원들은 캐어묻기(probing) 과정 을 통해 억지로 어느 후보로든 지지자를 선택케 하는데 이 방법 역 시 조사기관마다 다르다. 결국 태도 유보층의 크기가 조사기관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확한 여론조사와 보도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국 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첫째, 정확한 여론조사의 집행이다. 모집단의 정의와 표본추출 과정, 질문지의 타당성과 선택지(보기)의 포괄성, 면접원 교육 및 관리감독 등이 정확한 조사를 할 수 있는 주요 체크리스트이다.
조사기관은 조사 결과를 의뢰인에게 제공할 때 표집방법·조사시기 와 조사지역·표본 크기 및 산정방법·조사방법·표집오차·응답 률·질문지 등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또 의뢰인의 요구가 있을 경우 설문지 및 1차 데이터 전부를 제공해야 한다.
▲여론조사의 정확한 집행 과정 중요
또 방송국·신문사가 의뢰인이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경우에 도 위의 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여론조사는 필연적으로 모집단에서 일정의 수를 선택해 실시하는 표본조사이므로 국민들이 매스컴 보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뢰도 수준과 허용 오차에 관한 통계적 이해가 필수적이다.
신뢰수준이 95%라는 표본은 100번의 동일한 조사를 실시할 경우 95 번은 발표된 수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신뢰수준이 높으 면 허용오차는 그만큼 더 작아진다.
다음의 예를 통해 오차범위에 대해 알아보자. 이회창 총재와 노무현 고문의 가상대결 결과 노 고문이 41.7%로 40.0%를 얻은 이회창 총재 를 오차범위(±3.1%) 내에서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고 발표했다고 가 정하자. 노 고문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연령별·직업 별·지역별 판세분석 결과도 발표한다. 연령별·직업별·지역별 조사 결과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오차 한계를 표현하지 않거나 전체 표본 수로 산출한 오차범위를 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차범위는 조사방법이나 표본 수에 따라 산출 값의 차이가 크다. 만 약 전체 표본수가 1,000명일 경우 연령별·직업별·지역별로 구분된 표본 수는 작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오차한계가 아래 표와 같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결과 분석시 연령별·지역별·직업별 등 세부적 판세분석에 는 반드시 세부 표본 수를 기준으로 오차범위를 제시하고 이를 감안 한 결과분석이 필요하다. 오차범위가 큰 경우 근소한 차이의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은 신뢰도 및 허용오차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데 이터의 통계적 의미를 곡해할 여지를 없앨 수 있다.
국민들은 현재 여러 곳에서 수행되고 있는 대선 관련 여론조사의 수 치를 접하면서 공표된 정보의 의미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에 미국 정치학자와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투표행위에 관 한 연구에서 밝혀낸 주요 개념의 하나가 ‘관여도(involvement) 이 론’이다. 이에 따르면 유권자의 투표행위는 선거 관여도 정도에 따 라 각각 다른 유형으로 나타난다.
관여도는 개인의 심리와 같은 상황적 변수일 뿐 아니라 선거양식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구조적 변수이기도 하다. 예컨대 대통령선거는 ‘고(High)관여도’ 커뮤니케이션 패턴이지만 지방의회선거는 ‘저 (Low)관여도’ 커뮤니케이션이다. 저관여도 커뮤니케이션에서는 후 보자에 대한 인지도가 높을수록 유권자는 긍정적인 투표를 한다. 그 러나 대선과 같은 고관여도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는 후보자의 인지 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후보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의 양이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는 고관여 커뮤니케이션
관여도 이론에 따르면 현재 대선 정국은 고관여도 커뮤니케이션 유 형에서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그동안 투표행위 때까 지 자신이 정보를 취득하고 검색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저 관여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불기 시작한 민주당 의 경선과 경선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적극적 보도에 영향을 받아 갑 작스레 고관여의 과열 단계로 접어든 격이 되었다. 특히 노무현 고문 이 민주당 경선에서 선전,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고관 여 커뮤니케이션 패턴으로 대선 정국을 앞당긴 셈이다.
이런 고관여의 상황에서 실시되고 보도되는 여론조사의 수치는 매우 유동적일 수 있다. 과거 대선자료를 보면 태도 유보층은 선거 수일 전까지 약 20%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상 맞대결 상황에서 태도 유보층은 약 13%이다. 태도 유보층이 상대적 으로 적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현재 많은 유권자가 여론조사에 임 할 때 중립적인 태도를 버리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선후보들의 가상맞대결 지지도 수치에 대한 해석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들은 한 국가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후보자간의 차이를 이해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으므로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정보검색을 시작한다.
그 시점에 이르면 태도 유보층의 크기는 상반되는 정보의 과부하로 오히려 증가한다. 그만큼 유권자들도 정보취득 과정에서 심리적 갈등 의 기간을 갖는다는 뜻인데, 관여도가 높은 대통령선거의 경우에는 이 갈등이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선택 뒤 따르는 위 험요소가 너무 크다는 것을 민주화 과정에서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 다. 따라서 현재 경주마 달리기식의 가상 맞대결에서 나오는 여론의 수치는 후보자에 대한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크게 변화할 수 있다 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