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견디기 힘든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 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 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들어 가고 삶의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에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三南에 내리는 눈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 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 기
하루종일 눈. 소리없이 전화 끊김. 마음놓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음. 길 건너편 집의 낮불, 함박눈 속에 켜 있는 불, 대낮에 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불, 가지런히 불타는 처마. 그 위에 내리다 말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눈송이도 있었음.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비채를 휘두르며 불길을 잡았음. 불자동차는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달려옴. 이하 생략. 늦저녁에도 눈. 방 세 개의 문 모두 열어놓고 생각에 잠김. 이하 생략. "혼자 있어도 좋다"를 "행복했다"로 잘못 씀.
조그만 사랑 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떠돌이 별
천문학자들은 항성을 행성보다 더 큰 일로 다루지만 나는 떠돌이별, 저 차돌 같은 싱싱한 지구 냄새에 끌려 늦봄의 김포와 강화를 떠돌았습니다. 길에는 붓꼿이 필통처럼 모여 피어들 있고 산 밑에는 수국(水菊)이 휘어지게 달려 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밤중에 마니산 중턱에 올라 모든 별이 폭발하듯 떠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떠돌이별 하나가 광채도 없이 마니산 중턱에서 숨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무 것도
오늘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침에 편지 반장 부쳤을 뿐이다 나머지 반은 잉크로 지우고 <확인할 수 없음>이라 적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주소뿐이다 허나 그대 마음에서 편안함 걷히면 그대는 無名氏가 된다 숫자만 남고 가을 느티에 붙어 있는 몇 마리 까치가 남고 그대 주소는 비어 버린다 아침은 걸르고 점심에 소금 친 물 마셨을 뿐이다 우리에 나가 말 무릎 상처를 보살펴 준다 사면에 가을 바람 소리 울타리의 모든 角木에서 마음 떠나게 하고 채 머뭇대지도 못한 마음도 떠나고 한 치 앞이 캄캄해진다 어둠 속에 서서 잠든 말들의 발목이 나타난다 내일은 늦가을 비 뿌릴 것이다
풍장(風葬)
1
70
냇물 위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 끝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알 식탁에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노란 유채꽃이 땅의 가슴 언저리 간질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것. 겁 없이.
밤 여울
아주 캄캄한 밤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마음속이 온통 역청 속일 때 하늘에 별 몇 매달린 밤보다 아무것도 없는 길이 더 살갑다. 두 눈을 귀에 옮겨 붙이고 더듬더듬 걷다 갈림길 어귀에서 만나는 여울물 소리, 빠지려는 것 두 팔로 붙들려다 붙들려다 확 놓고 혼자 낄낄대는 소리. 하늘과 땅이 가려지지 않는 시간 속으로 무엇인가 저만의 것으로 안으려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놓아버리는 소리.
시 월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탁족(濯足)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팔과 종아리에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어느 蘭의 데스마스크
낮에 잠깐 품었던 잠을 깬다. 어디 딴 세상 소리처럼 트럭 경음 들리고 무언가 메마른 것이 몸을 적신다. 우박이 내리는가 모르는 사이 베란다 쪽이 어두워지고 유리창이 자못 소란스러워진다. 베란다 화분에 빈 심지로 꽂혀 있는 며칠 전 죽은 난, 마른 줄기들.
깨긴 깨었는가? 베란다의 소리 적이 가라앉고 소리 줄어든 만큼 주위가 환해지고 화분 위엔 전에 못 보던 다리 긴 발 약간씩 뒤틀린 새들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 자코메티 풍의 꼿꼿한 새들, 천천히 고개를 든다.
고개 들면 어디로 가겠는가? 유리창 소리가 가시고 베란다가 환해진다. 햇빛 드는 화분 위엔 꼿꼿이 삭은 심지의 촉루, 그래 어디로 가겠는가? 어디로? 갈 데 없는 난의 얼굴에 갈데없는 인간의 얼굴을 부비리라.
허공의 불타 - 관룡사 용선대에서
바위에 붙어 있는 풀들도 허공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민 팔들이 질긴 것 같지만 허공 쪽에서 잡으면 팔을 탁탁 끊어버린다. 그렇다. 밖으로 내민 것 끊지 않고 허공 앞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저 아래 새들이 날고 그 밑에 바위 그림자 가라앉을 때 등 뒤에서 태양이 머뭇거릴 때 늦가을 산정(山頂) 바람 예리한 칼끝은 줄곧 옷가슴을 들치며 심장이 여기지, 여기지, 묻는다. 불타와 예수의 앞자리치고 위험치 않은 자리 어디 있으랴? 허공에 나앉은 불타, 몰래 밖으로 내미는 인간의 팔 탁탁 끊어주소! 나무뿌리에 되우 낚아채인 다리 후들거림 멎으며 허공이 텅 빈다.
황동규 黃東奎 (1938. 4. 9 - )
1958년 서정주(徐廷柱)에 의해 시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가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초기에는 대표적인 연시 《즐거운 편지》를 비롯해 첫시집 《어떤 개인 날》(1961)에 실린 연작시 《소곡》과 《엽서》 등 사랑에 관한 서정시가 주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사랑과 미움으로 정형화되어온 전통적 연애시의 정서와는 달리 신선한 정념의 분위기를 형상화한 시인 특유의 독특한 연가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어 두번째 시집 《비가(悲歌)》(1965)에서는 초기 시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수용의 자세와는 달리 숙명적 비극성을 담백하게 받아들여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좀더 성숙한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1966년 정현종(鄭玄宗) 등과 함께 동인잡지 《사계》를 발행했다.
1968년 마종기(馬鍾基), 김영태(金榮泰)와의 3명의 공동시집 《평균율 1》을 출간하고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열하일기》 《전봉준》 《허균》 등의 시를 비롯한 이 시기 이후의 시에서는 연가풍의 애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모순을 역사적·고전적 제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로 이어져 모더니즘으로 자리잡았으며,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에서 더욱 확실히 나타난다.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노래한 《계엄령 속의 눈》 등의 사회비판시는 예각적인 상황의식을 표출하기보다는 암시와 간접화의 표현법을 사용함으로써 사회문제를 한차원 높게 작품화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이어 나온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에서는 작가의 독특한 시법인 극서정시의 실험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995년 《현대문학》에 연작시 《풍장 70》을 발표함으로써, 1982년 《풍장 1》을 시작으로 14년에 걸쳐 죽음이라는 주제를 계속적으로 발표해 문단의 화제가 된 연작시를 마감했으며, 이 연작시는 시집 《풍장(風葬)》(1995)으로 발행되었다. 시인의 죽음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시집은 독일어판으로도 출간되었다.
새로운 변화를 시적 생명력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시인은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개성적인 극서정시와 장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해 문단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대문학상(1968), 한국문학상(1980), 연암문학상(1988),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상(2002)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시집 《열하일기》(1972), 《삼남에 내리는 눈》(1975),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1988),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노래》(2000) 등이 있다. 이밖에 시론집 《사랑의 뿌리》(1976)와 산문집 《겨울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4), 《시가 태어나는 자리》(2001),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2003) 등이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 작가 이야기
탄생과 죽음 사이의 시간 간격에 대한 올곧은 인식과 유한한 인간 실존의 한계에 대한 겸허한 수용을 목표로 시작한 이 여행의 첫 길목에서, 시인은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화장(火葬)도 해탈(解脫)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다오."('풍장 1')라며 '즐거운 고행'을 위한 출진가를 작곡한다. 숨쉬는 길(생명의 길)의 끝은 명부(冥府)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소멸의 길, 그 어두운 터널의 출구는 다시 신생의 탯줄과 기맥(氣脈)을 통하기 마련이라는 도저한 각성이 돋보인다. 토마스 만이 말했던가. "죽음의 체험이 결국은 삶의 체험이 되고 인간에의 길이 된다"고.
최근 나온 시집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에서 시인은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를 뜻하는 '홀로움'이란 신조어를 조탁한 바 있다. 그리고 마음을 다져 먹는다.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한번 다르게 살아보자고/나를 떼어놓고 살아보자고, 느슨히 살아보자고"('지상(地上)의 양식') 여기서 이런 '홀로움'의 미학은 추억의 부력으로 유지되기 마련이 아닌가. 그래서 시인은 한달음에 토해 낸다. "추억은 인간을 사람으로 만든다."('산당화의 추억') 오늘도 시인은 저 홀로움과 추억이 맞닿는 길을 찾아 여전히 끝없는 떠남 속에 있다. (류신/문학평론가)
|
출처: 화타 윤경재 원문보기 글쓴이: 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