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에 뜨는 집인 플로팅하우스(Floating House)로 해수면 상승을 이겨낼 겁니다. 집뿐만 아니라 스포츠 스타디움, 공항까지 전부 물 위에 뜨는 시설로 만듭니다. 로테르담은 세계 최고의 명품 도시가 될 겁니다.”높은 제방을 쌓아 풍차로 물을 빼낸 다음 땅을 만든 나라가 네덜란드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전 국토가 물에 잠길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들은 물에 뜨는 집으로 해결하겠다는 기막힌 발상을 했다. 수위가 오르면 집이 떠오르는 플로팅하우스(Floating House)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자연에 적응하면서 창의적인 발상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네덜란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지도 100여 년이 지났다. 이 당시 프랑스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태양왕 루이 14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국력을 신장시켰고, 군사적으로도 뛰어난 능력을 과시한 국왕이었다. 영토에 대한 야심이 컸던 루이 14세는 라인 강과 알프스·피레네 산맥에 걸친 천연적인 국경선까지 영토를 확장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서서히 강국으로 부상하는 네덜란드가 걸림돌로 다가왔다. 그는 네덜란드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네덜란드를 침공하기 위해 프랑스는 영국·독일과 손을 잡았다. 1672년 5월, 바다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함대가 네덜란드 해군을 공격했다. 육지에서는 12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육군이 네덜란드로 진격했다. 네덜란드는 막강한 해군을 갖고 있었으나 육군은 매우 약했다. 세계 최강의 육군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정예군 12만 명이 암스테르담을 향해 진격했다. 독일에서도 2만5000명의 병력으로 프랑스를 도왔다. 고작 1만5000명의 병력밖에 없었던 네덜란드 육군은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투마다 패배하면서 지리멸렬하고 말았다.프랑스군을 막기 위해서는 다시 물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네덜란드는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긴 수로(water line)에 물을 끌어들여 막기로 했다. 그러나 이 해 여름은 너무 건조했다. 충분한 물이 없어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할 수 없었다. 100년 전 1차 독립전쟁에 사용했던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다로 프랑스와 싸우게 하라’ 네덜란드인들은 대서양을 가로막은 제방을 무너뜨렸다. 바닷물이 네덜란드의 육지를 뒤덮었다. 7월 초 우트레헤트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겨우 35km 거리에 암스테르담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는 폭이 20km나 되는 바닷물이 차 있었기 때문이다.프랑스는 겨울이 돼 물이 얼어붙었을 때 공격하기로 한다. 12월 27일 범람해 있던 물이 얼어붙었다. 프랑스군은 전 군을 동원해 암스테르담으로 진격했다.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인 28일부터 차가운 동풍 대신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었다.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비가 내렸다. 얼어 있던 얼음들이 금이 가고 깨지기 시작했다. 진군하던 프랑스군의 많은 병력이 운하와 수로, 소택지에 빠져 죽었다.이런 날씨는 1673년 1월까지 계속됐다. 많은 병력과 물자 손실을 본 프랑스는 할 수 없이 후퇴를 결정한다. 루이 14세가 벌인 전쟁에서 첫 패배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기후학자인 맨레이와 램이 당시의 자료를 분석해 보니 이 해는 다른 해에 비해 따뜻했었다. 따뜻한 날씨가 국가를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막아 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빙하기가 맹위를 떨치던 기간 중에 짧은 온난화로 말이다.국토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선과 같은 제방을 터뜨리면서도 주변 강대국들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기개로 맞선 네덜란드인들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와 그리도 닮았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