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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목차
1. 개요
2. 명칭
3. 전시품
3.1. 이집트, 수단 전시관
3.2. 그리스, 로마 전시관
3.3. 중동 전시관
3.4. 아시아 전시관
3.5. 영국, 유럽, 선사시대 전시관
3.6.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전시관
4. 침략과 강탈의 역사
5. 위치
6. 브리티시 라이브러리와의 관계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1759년 현재의 자리에 개장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서유럽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꼽힌다. 영국의 여러 주요 박물관들처럼 입장료는 무료다. 박물관에는 입장료 대신 박물관에 기부해 달라는 차원에서 입구나 출구에 기부함이 놓여있다. 기부인 만큼 돈을 내는 것은 자유이며, 내는 사람들은 보통 5파운드나 10파운드 지폐 한 장을 넣는다. 세계적인 박물관이고 전 세계에서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만큼 기부액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유지, 보수 비용이 워낙 커서 영국 예산에서 일정 부분이 지출된다. 한국에서는 박물관 입장료가 그렇게 비싸지 않지만 외국의 여러 사설 박물관들은 유지비 때문에 입장료가 살인적으로 높은 경우가 많아 5파운드라 쳐도 저렴한 편이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박물관이었으나, 과거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뻗어나감에 따라 타국에서 쉴 새 없이 영국 본토로 들어오는 유물들을 수용하기 위해 점점 부지를 넓히고 규모를 키운 결과 오늘날의 크기에 이르렀다.
2. 명칭
대영박물관의 영어 명칭은 '브리티시 뮤지엄(the British Museum)'으로, 일반적으로 '대(大)'로 번역하는 'Great' 등의 수식어는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박물관 측의 공식 한국어 안내문에서도 '대영 박물관'으로 표기한 바 있고, 국내 대다수 언론이나 서적에서도 대영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번역명은 한자어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이다.
일각에서는 원어를 살려 '대영박물관' 대신 '영국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며, 일부 여행 가이드북이나 교과서 등에서는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박물관'이라는 명칭은 '영국 소재의 박물관'이라는 일반명사로 혼동될 여지가 있으며, 어휘 브리튼(Britain)을 '영국'으로 번역하는 것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대영제국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원래 '영국'은 '영길리' 즉, 잉글랜드의 음역이다. 알다시피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연합 왕국)을 이루는 일부인데, 잉글랜드가 영국 전체 중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그레이트 브리튼을 '영길리국(英吉利國)' 즉 '영국'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구분을 위해서 연합 왕국 전체를 지칭할 때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도 쓰곤 했으며, 이것이 '대영박물관'이라는 번역의 유래가 되었다.
이 밖에 음차하여 '브리티시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국립중앙박물관 국제교류홍보과의 한 보도자료에서는 '영국 브리티시박물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3. 전시품
박물관이 매우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구글 스토어나 앱 스토어에서 British Museum Audio 앱을 다운받아 사용하면 된다. 더 이상 오디오 가이드 대여 서비스를 하지 않으므로 앱을 미리 다운받아 가는 것을 권장한다. 단 오디오 가이드 설명은 한국어가 없으므로 관심있는 유물에 대한 정보는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앱은 무료이지만 컨텐츠를 보려면 4.99파운드를 결제해야 한다. 결제전에는 일부 컨텐츠만 미리 볼 수 있고 저렴한 옵션을 선택하면 해당되는 유물만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그냥 4.99파운드 옵션을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결제 후에는 데이터를 미리 저장하고 오프라인으로 플레이도 가능하니 미리 설치하고 데이터를 미리 다운로드하는 것을 추천한다. 로비에서 대여해 주는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서 한 바퀴 돌고, 관심 있는 부분은 나중에 별도로 관람하는 것이 시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안내기를 만들 때 대한항공이 협찬해서, 스카이패스 카드가 있으면 대여료가 할인된다. 오디오 가이드에 한국어가 포함된 것도 이 덕분이다. 유리관으로 씌워지지 않은 유물들도 옆에 만지지 말라고 써 있으니 만지지 말자.
입구에서 지도를 판매하는데 지도는 안쪽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다만 무료로제공되는 지도는 흑백버전으로만 제공되고 컬러버전으로 된 지도는 시대별로 칼라로 구분해 주기 때문에 보기 편하다. 하지만 오디오가이드 앱에서도 칼라지도를 제공하므로 흑백지도만으로도 관람이 충분하므로 지도를 구입하기보다는 안쪽 도서코너에서 한글판가이드북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함 (15파운드)
전시품이 워낙 방대해 로테이션이나 연구 목적으로 전시 유물들이 꽤 자주 바뀐다. 리모델링이나 공사도 잦아서 기껏 보러간 유물이 박물관 어디에도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 이 점 유의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공식앱에서 추천하는 탑10 관람물은 로제타석(204), 아시리아의 사자사냥부조(214), 엘긴 마블(252), 모아이(252), 왕의 머리(184), 아즈텍의 쌍두사(141) 스리랑카에서 훔쳐온 타라 불상(611), 데이비드 화병(331), 카테벳 미라(361), 루이스 체스맨(502)이다.
타국이 반환을 요구하는 약탈문화재는 ☆표시.
3.1. 이집트, 수단 전시관
로제타석(Rosetta Stone)
대영박물관의 명실상부한 간판급 유물이자 가장 유명한 유물. 1799년 7월 15일에 프랑스 육군 중위가 발견한 것을 후일 영국이 가져와 연구했으며, 이후 언어학자인 샹폴리옹이 로제타석을 통해 베일에 싸여 있던 히에로글리프 해독법을 깨우치면서 대대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내용은 대략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사제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찬양하는 내용이지만 똑같은 내용이 히에로글리프,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로 3번씩이나 반복해서 쓰여 있어서 비교 대조를 통해 해독을 할 수 있었다.
람세스 2세 흉상(Bust of Ramesses II)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석조 흉상. 1816년 조반니 벨조니가 룩소르 신전 유적에서 발굴해 영국으로 옮겨왔다. 이 흉상을 보고 인생 무상과 권력의 덧없음을 말하는 시 오지만디아스가 쓰이기도 했다. 흉상 오른쪽 가슴에 뚫린 구멍은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흉상을 프랑스로 옮겨가려다 실패한 자국이라는 말이 있다. 무게는 7.25톤에 달하고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제작되었다.
미라 진저(Gebelein predynastic mummies)
기원전 3400년경 이집트 선왕조 시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 6구. 그 중 가장 유명한 미라는 붉은색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미라 '진저'로, 머리색 때문에 생강이라는 뜻의 진저라는 별명이 붙었다. 1901년부터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진저'라는 별명으로 부르진 않지만 여전히 별명이 유명하다. 한때 발견자가 자기 동생을 죽여 미라로 만들어서 박물관에 납품한 것이라는 괴담이 돌기도 했다.
대피라미드의 외벽(Casing of Great Pyramid of Giza)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기자의 대피라미드 바깥을 덮고 있던 석회암 외벽 조각들 중 하나이다. 1838년에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떼와서 대영박물관에 안치했고, 보존 상태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한다. 워낙에 이집트 관련 유물이 많아서 박물관 내에서 유물들을 순환 배치하면서 전시하고 있는데, 외벽 조각은 현재 전시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대스핑크스의 턱수염(Beard of Great Sphinx of Giza)☆
기자의 대스핑크스의 턱수염이다. 영국이 1800년대에 오래전 파손되어 앞발 사이에 떨어져 있던 스핑크스의 턱수염 조각을 본국으로 가져왔으며, 그이래 대영박물관에서 인기 있는 유물들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대스핑크스의 석질과 색을 추정해 본 결과, 처음부터 스핑크스에 턱수염이 달려 있던 것은 아니고 후대의 파라오들이 만들어 붙였던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가 정부 차원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연히 영국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무덤 벽화(tomb-painting)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대 이집트 예술품 중 가장 유명한 네바문의 무덤 벽화다,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테베 인근의 신전에서 일하던 관료 네바문의 무덤에 그려져 있던 벽화가 1820년경 도굴되어 세계 각지로 팔려 나갔는데, 벽화 파편 중 다수를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가족을 이끌고 새 사냥을 하는 네바문, 연회에 불려온 악공과 무희들, 상차림과 가금류, 생선 등 당대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호르네드즈테프의 미라(Mummy of Hornedjitef)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신관 호르네드즈테프의 미라와 목관이다. 기원전 220년 경에 만들어졌고, 정교한 수준의 목관과 미라, 그리고 데스마스크 덕분에 유명해졌다.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것에 비하면 훨씬 덜하지만 확실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3.2. 그리스, 로마 전시관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온 조각상들과 부조 조각. 수와 규모가 상당해서 그리스 정부가 틈날 때마다 반환을 요구하지만 영국 정부가 묵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에게 식민지배당하던 시절, 엘긴 경이 7만 파운드를 들여 파르테논에 남아 있던 조각들을 쓸어왔고, 그이래 대영박물관에서 쭉 전시 중이다.
[유럽 인문학 기행] 대영박물관 엘긴 마블스, 파르테논 신전에 언제 돌아가나
부산일보 기사 입력 : 2021-10-22 11:40:47 수정 : 2021-10-22 11:50:21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는 ‘엘긴 마블스’라는 게 있다. 엘긴 대리석, 파르테논 마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BC 400년 무렵 그리스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였던 피디아스가 친구 겸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의 부탁으로 만든 고대 그리스 조각품이다.
엘긴 마블스는 원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붙어 있던 조각품이었다. 그러나 1801~12년 엘긴 백작이었던 토마스 브루스가 파르테논 신전은 물론 프로필리아와 에렉티움에 붙어 있던 조각 가운데 절반 가량을 떼어와 영국에 가져왔다고 해서 ‘엘긴 마블스’라고 불리게 됐다.
■엘긴 백작의 반달리즘
엘긴 마블스 이야기는 1798년에 시작한다. 당시 엘긴 백작은 ‘대영제국의 터키 파견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돼 터키가 점령하던 그리스로 가게 됐다. 영국을 떠나기 전 그는 정부에 흥미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모형 제작자, 제도사, 모작 전문가 등을 함께 데려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파르테논 신전 같은 고대 그리스 보물들의 모작을 만들어 가져오거나, 조각‧건축물 등의 그림을 그려와 영국에서 복사본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면 영국 문화‧예술계에 놀라운 충격을 던져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 정부는 인건비가 과도하게 들 것을 우려하면서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할 수 없이 엘긴 백작은 개인 재산으로 직접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는 지오바니 바티스타 루시에리라는 이탈리아 전문가를 고용해 그리스 작품 모작 활동에 필요한 일을 맡겼다. 루시에리는 나폴리 출신의 풍경 화가였다. 시실리에서는 궁정화가로 일하기도 했다.
엘긴 백작의 의도는 파르테논 신전의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여러 조각품의 모작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현지에 도착한 그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떨어진 조각들이 조금씩 풍화돼 석회로 돌아가거나 아테네의 현대식 건물을 짓는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일부 아테네 사람들은 파르테논 신전에서 조각품 조각을 몰래 훔쳐내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기도 했다. 엘긴 백작은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뒤 한탄했다.
‘이러다가는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을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겠구나!’
엘긴 백작은 파르테논 신전과 주변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루시에리가 일을 총괄적으로 담당했다. 그는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던 터키의 술탄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발급받았다는 허가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엘긴 백작이 이후 엘긴 마블스라고 불리게 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들을 옮기는 모습을 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의 행동을 칭찬했다. 한 작가는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대부분 사람들로부터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여기에 무관심했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유물이 부식과 파괴로부터 보호받게 됐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교양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서진 그리스 예술품 조각들이 아주 귀중하게 여겨졌지만, 터키인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는 조각품을 사가려는 다른 상인들이 흔했다. 만약 엘긴 백작이 조각품들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프랑스 파리로 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엘긴 백작의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엘긴 백작이 조각품들을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갈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영국의 시인이자 정치인인 바이런이었다.
바이런은 그리스를 여행하던 중 엘긴 백작이 모은 조각품들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의도적으로 떼어낸 프리즈, 메토프 등이었다. 프리즈는 방, 건물 윗부분을 띠처럼 장식한 그림, 조각이다. 메토프는 도리아 건축 양식의 프리즈에 붙은 사각형 패널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부조 조각 등으로 장식했다. 바이런은 조각품들을 둘러보면서 분노했다.
“엘긴 백작의 행위는 반달리즘(문화 파괴 행위)이다.”
엘긴 백작은 조각품들을 런던으로 실어 보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1802년 9월 조각품을 실은 범선 ‘멘토 호’가 런던으로 향하던 중 키티라 인근에서 침몰하고 만 것이다. 이 배에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등에서 뜯어낸 조각과 대리석 좌대 10여 개가 실려 있었다. 엘긴 백작은 현지에 있던 영국 부영사관인 칼루치를 매수해 바다에 빠진 조각품 등을 찾도록 했다. 2년 동안 여러 차례나 시도한 끝에 칼루치는 보물을 건져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현지의 수영 전문가들에게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물론 그 돈은 엘긴 백작이 냈다.
엘긴 백작은 보물들을 단순히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보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802년 5월 한 영국 신문은 엘긴 백작의 작품들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면서 그가 왕에게 보여줄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범선에 실린 진귀한 물품들이 목요일 포츠머스의 도크야드에 하적됐다. 클레오파트라의 관, 4000년 된 고대 이집트 수도 테베에서 발굴한 람세스의 두상, 카이로에서 가져온 피라미드 두 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석상, 스키피오 대리석 석상.’
■박물관으로 간 그리스 유적
그리스 유적 발굴 작업은 1801년 시작돼 1812년 끝났다. 엘긴 백작은 이 작업에 7만 파운드를 투입했다. 처음에는 스코틀랜드 던펌라인에 있는 그의 저택인 브룸홀 하우스를 조각품으로 장식할 생각이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엘긴 백작은 부잣집 딸이었던 부인과 이혼하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그녀의 지원 없이는 조각품 발굴 작업 진행은 고사하고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조각품을 구매할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초 영국 정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의회의 생각은 달랐다. 의회는 엘긴 마블스 구매 방안을 논의했다. 엘긴 백작이 가져온 조각품은 75m 분량의 프리즈와 메토프 15개, 박공벽 조각 17개였다. 불행히도 박공벽 조각은 이송 과정 등에서 손상을 입는 바람에 온전히 남은 것은 토르소 하나뿐이었다. 이 때문에 구매 논의가 시작됐을 때 의회는 엘긴 마블스의 가치를 저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한 의원은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구매 논의가 시작됐을 때 작품의 상태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모두가 머리에 그리고 있던 아름다운 그리스 조각품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엘긴 백작이 아테네에서 조각품 등을 가져온 게 법적으로 타당하냐는 논란도 일었다. 그는, 터키 정부가 발행한 허가증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사본을 서둘러 의회에 제출했다.
“원본은 이미 아테네의 사법관과 총독에게 제출했습니다. 남은 건 이 사본뿐입니다.”
엘긴 백작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허가증 내용을 다르게 해석했다.
“허가증의 의도는 단지 조각품들의 본을 뜨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프리즈, 메토프, 박공벽 조각을 떼어가라는 게 아닙니다. 정부는 엘긴 백작의 수집품을 사들여서는 안 됩니다. 법적 정당성에 불확실한 게 너무 많습니다.”
반면 엘긴 백작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1813년 <젠플맨의 매거진>이라는 잡지사 편집국장에게 그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썼다. 편지는 잡지에 기사로 실렸다.
‘엘긴 백작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은 일부 불평이 많은 여행자들의 실망에서 기인합니다. 그들은 그리스의 영토에서 고대 건축물이 있었던 터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옛 영광을 모두 잃어버리고 공허함만 남은 그리스를 발견했습니다.’
엘긴 백작도 자신을 옹호하는 글을 출간했다. 결국 의회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그의 조각품을 사들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엘긴 마블스가 자유로운 정부 아래 망명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엘긴 백작과 의회의 협상은 1816년 6월 타결됐다. 의회는 엘긴 백작에게 3만 5000파운드를 지불하기로 했다. 그가 엘긴 마블스를 구하느라 투입했던 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영국 정부는 엘긴 마블스를 구입한 뒤 대영박물관에 비치했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러갔고 그 중에는 시인 존 키츠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1817년 ‘엘긴 마블스를 본 뒤’라는 시를 지었다.
이탈리아의 유명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도 엘긴 마블스를 보러 영국에 갔다. 그는 엘긴 마블스를 본 뒤 엘긴 백작에게 편지를 썼다.
‘런던에서 소중한 대리석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대영박물관에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저는 모든 순간을 다 바쳐 고대 예술의 유명한 양식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구현된 자연의 진실을 찬양하게 됐습니다. 이 작품의 모든 부분은 가장 정밀한 기술 덕분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나체 조각품은 진실로 아름다운 인체를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제 눈으로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엘긴 마블스는 지금도 여전히 대영박물관에 남아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그리스 정부는 작품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엘긴 백작이 작품을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갈 자격이 있었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남태우 선임기자]
원반 던지는 사람(Discus Thrower)
기원전 450년경 고대 그리스에서 미론이 만든 청동 조각상을 원본으로 만들어진 고대 로마 시대의 대리석 복제품.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기원후 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름다움이 뛰어나 미적 가치는 충분하다. 1700년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이후 1805년에 대영박물관으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 발굴 당시 현재와는 달리 머리와 코, 발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지만 이후 복원했다.
마우솔레움 조각(Mausoleum of Halikarnassos)☆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마우솔로스 영묘를 장식하던 대리석 조각들. 마우솔로스 왕의 조각상, 그리스와 아마존 여인들 사이의 전투를 묘사한 부조, 마우솔레움 가장 꼭대기에 세워져 있던 사두마차를 끌던 말 한 마리의 조각도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는 폐허에 불과한 마우솔레움의 얼마 남지 않은 유물들 중 하나로 굉장히 그 가치가 높다. 튀르키예 정부에서 꾸준하게 반환을 요청하고 있지만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 조각(Temple of Artemis)☆
역시 위의 마우솔로스 영묘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극히 희귀한 유물들 중 하나이다. 주로 신전의 기둥들을 받치던 화려하게 조각된 기둥 받침 1개, 그리고 이오니아 양식으로 만들어진 기둥주 장식 하나가 1872년 이래 쭉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기둥 받침에 새겨진 인물들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페르세포네 등이라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반환을 요청했지만 물론 무시했다.
랠리의 비너스(Crouching Venus)
영국의 화가 피터 랠리가 소유했던 수집품들 중 하나여서 '랠리의 비너스'라고 불리지만, '웅크린 비너스'라는 별칭으로 더더욱 유명하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목욕 중 자신의 모습을 들키자 놀라 제 나신을 가리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해서 비너스를 묘사한 수많은 조각들 중에서도 잘 알려진 편에 속한다. 서기 1세기경 로마인들이 그리스 조각을 베껴 만든 것으로 현재는 영국 왕실에 소유권이 있다.
에레크테이온 여인상(Erechtheion Statue)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떠받치던 6개 여인상들 중 하나. 1816년에 영국이 아크로폴리스에서 여인상들 중 하나를 통째로 뜯어와서 영국으로 가져왔다. 그리스 측에서는 여인상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영국 정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아서 진전을 보고 있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기원전 400년경에 만들어졌고 높이는 약 2m 정도로 실제 사람의 크기와 비슷하다.
3.3. 중동 전시관
님루드 렌즈(Nimrud Lens)
아시리아의 님루드 왕궁 유적에서 발견된 수정 렌즈 유물로, 독특하게도 볼록렌즈의 효과를 내어서 세간에 유명세를 탔다. 이게 왜 대단한 것이냐면 볼록렌즈 자체의 발견이 10세기 경에 이루어졌고 볼록렌즈 안경은 12세기가 되어서 나왔는데 해당 유물은 무려 기원전 8세기의 것이기 때문. 다만 학계에서는 님루드 렌즈의 효과는 우연의 산물 정도로 추정하고 있고, 희귀한 장식 정도로나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 중이다.
우르의 군기(Standard of Ur)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도시 우르에서 발견된 수메르 유물. 조개 껍질과 청금석 모자이크가 박힌 나무 상자다. 세계 최초의 문명이 만든 유물답게 그 나이가 무려 4,600살에 달한다. 전쟁과 평화의 모습을 새겨넣었고 1920년대에 우르의 왕릉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대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길가메시 서판(Gilgamesh Flood Myth)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들 중 홍수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토판이다. 대략 기원전 7세기경에 만들어졌고 영생을 얻기 위해 떠나는 길가메시의 여정을 담아냈다. 니네베의 유적에서 발굴했고 현재는 대영박물관 55번 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다.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Library of Ashurbanipal)
아시리아의 왕궁 유적에 소장되어 있던 3만 점이 넘는 토판을 통째로 가져왔다. 그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도 여기 포함되어 있었다. 행정 문서부터 소설까지 장르도 다양하며 엄청나게 방대한 양 덕분에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구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유물들 중 하나로 꼭 꼽힌다.
키루스 원통(Cyrus Cylinder)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정복한 직후 남긴 칙령과 업적을 새긴 원통으로, 1879년 이라크에서 영국 조사단이 발견했다. 발굴 당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있던 것을 큰 조각 2개로 합친 후, 두 조각을 합쳐 원래의 원통 모양으로 복원한 것이다. 힘과 무자비함을 강조한 아시리아 아슈르바니팔왕의 비문과는 달리, 바빌론의 군주가 신들을 노하게 하고 백성을 괴롭힌 걸 키루스 2세가 올바르게 바로잡아 평화를 되찾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바빌론의 외국인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는 대목이 있어 키루스 2세가 바빌론 유수를 끝내고 유대인들을 해방했다는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팔레비 2세의 적극적인 홍보로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으로까지 여겨지고 있으며, 원통의 복제품이 UN본부에 전시되어 있다.
3.4. 아시아 전시관
일본 회화(Japanese Prints)
일본에서 들어온 여러 점의 회화 작품들이 전시 중에 있다. 여러 개가 전시 중이지만 단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일본 에도 시대의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단순히 에도 시대뿐만 아니라 일본 회화 작품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그 판본 중 하나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도 여러 점의 명작들이 대영박물관의 아시아 전시관에 소장 중이다.
신라 금귀걸이(Silla Ear-Ring)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외국으로 반출된 수많은 유물들 중 하나. 대영박물관의 소개에 따르면 1938년에 일본에게서 공식적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한다. 무려 1,600여 년 전 만들어진 유물치고는 굉장히 정교한 세공술을 자랑하는 대영박물관 내 대표적인 한국 유물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외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한국 고고학자들이 마음껏 분석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고 한다.
춤추는 시바 신상(Dancing Shiva Statue)☆
힌두교 파괴의 신 시바의 춤추는 모습을 조각한 신상. 인도 타밀나두 주에서 훔쳐왔다. 촐라 제국 시대인 11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주형틀에 녹인 청동을 부은 후 굳혀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현존하는 수많은 시바 신상들 중 가장 유명한 신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에 인도에서 가져왔고 한동안 여러 유럽인 수집가들의 손을 전전하다가 결국 1987년부터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시바 신의 발 아래에는 짓밟힌 악마의 모습이 조그맣게 조각되어 있고 세상 만물을 상징하는 순환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참고로 신상 왼쪽 어깨 위쪽의 아치가 약간 부서져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화병(David Vases)
대영제국시기에 활동한 사업가 퍼시벌 데이비드 경이 중국에서 구입해 런던 대학 에 기증한 원나라 시대의 청화백자로, 높이 60cm에 달하는 병의 목부분에 서기로 1351년 4월, 당대 옥산현에 살던 '장원진'이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도교사원에 제작해 바친 내역이 적혀 있다. 제작 연도를 정확하게 확인 가능한 몇 안되는 백자 유물이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 세계의 청화백자 유물 중 가장 오래된 유물로 꼽히고 있다.
한국관
2000년에 한국관이 개관했다. 근데 좀 심하게 외진 곳에 있어서 근처의 중국관, 일본관에게 규모 면에서 묻히는 듯하지만 삼성문화재단이 힘을 쓴 듯하여 다행히(?) 이곳의 문화재들은 영국이 잘 나가던 시절 약탈한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한국에서 대여받은 물건들이다. 당연하겠지만 유물의 질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컬렉션에 비하면 B급이다. 유물의 양도 유구한 한국 문화를 후다닥 보여주는 정도. 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세계인에게 한국을 홍보하기 위한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사실 중국관이 퍼시벌 데이비드 컬렉션을 위시한 수천 점의 당, 송, 원, 명, 청대의 도자기 걸작선에서 상나라시대의 청동기, 명, 청대의 공예품, 가구, 불상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와 퀄리티가 중국과 대만의 유명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는 반면, 한국관과 일본관은 자국 홍보관 성격이 아주 강하다. 당장 한국관만 보더라도 전시관 한 켠에 한옥과 온돌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디오라마가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관 역시 일본의 다도와 전통 다실을 홍보하는 공간이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다. 일본관은 특히 일본 만화가 전시관 한 켠에 꽤나 비중 있게 전시되고 있다.
3.5. 영국, 유럽, 선사시대 전시관
리쿠르고스 잔(Lycurgus Cup)
4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 제국 시대의 유리잔으로, 외부에서 반사광이 비춰지면 겉면이 녹색으로, 컵 안쪽에서 투과광이 비춰지면 안쪽이 붉은색으로 빛나는 것으로 유명한 유물이다. 유리에 나노 단위로 첨가된 금, 은 입자로 인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려면 컵을 조각 내서 내부를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서튼 후 보물(Sutton Hoo Treasures)
온통 외국 유물들 천지인 대영박물관에서 그나마 유명한 영국산 유물로, 1939년 영국 서포트 지방에서 발견된 중세 바이킹의 장례 부장품들이다. 당시 서튼 지역의 야산에 묻혀 있던 배 속에서[6] 발견되었으며, 개중 가장 유명한 '서튼 후의 투구'는 500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영국의 중세 암흑기 시절에도 브리튼 섬에 나름 발달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이어서 박물관 내에서도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다.
루이스 체스맨(Lewis chessmen)
대영박물관의 영국 유물 중 서튼 후 보물 다음으로 유명한 유몰로, 19세기 초반 스코틀랜드 루이스 섬에서 발견된 92개의 체스 놀이말 세트다. 이중 78개는 체스의 킹, 퀸, 비숍, 나이트, 폰을 그대로 의인화해서 만들었다. 12세기 ~ 13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모두 고래 이빨이나 바다코끼리의 이빨을 깎아 만들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판에서 해리 포터와 론 위즐리가 이 유물을 그대로 본딴 체스를 두는 장면이 등장한 이후 엄청나게 유명해졌으며, 대영박물관 기념품 샵에서도 해당 체스말을 본딴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성 아그네스 잔(Saint Agnes Cup)
에나멜과 진주로 화려하게 세공된 황금잔. 14세기 말에 프랑스 왕실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300여 년 동안 스페인에 있다가 나중에는 영국 왕실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며 1892년부터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높이는 23.6cm, 지름은 17.8cm, 무게는 1.935kg에 달하는 상당히 큰 크기의 잔이다. 잔에는 성 아그네스의 일생이 색색의 에나멜로 칠해져 있는데 만든 지 700년이 넘은 유물치고는 거의 새 것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고고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다. 컵 하단에는 4명의 복음 서기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컵 바닥을 보면 테두리 부분에 진주로 튜더 장미가 씌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 헨리 8세 시절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40번 전시관에 보관 중이며 상당히 유명한 유물들 중 하나에 속한다.
3.6.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전시관
모아이(Moai)☆
이스터 섬에서 통째로 뜯어온 거대한 모아이 조각상. 대략 1000년에서 1200년대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라면 이스터 섬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할 석상이지만 1868년에 영국 탐험대가 이스터 섬을 탐험하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칠 선물로 모아이 석상 자체를 뜯어 배에 실어왔고, 빅토리아 여왕은 모아이 석상을 대영박물관에 기부했다. 이후 이스터 섬 측에서 반환을 요구 중이지만 영국 정부의 답변은 없다.
아즈텍의 쌍두사(Double-headed Serpent of Aztecs)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에서 만들어진 고대 뱀신의 유물. 귀중한 터키석으로 만들어졌고 홍합과 조개 껍데기들로 장식되어 있다. 아즈텍 제국의 몇 남지 않은 유물들 중 하나이며, 길이는 17인치, 높이는 8인치, 두께는 2인치 정도 되며 15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에 멕시코 유적에서 발굴되었으며 이후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현재까지 영국에 남아 있다.
약스칠란 24번 석비(Yaxchilan Lintel 24)
마야 문명의 유적 '약스칠란'에서 통째로 뜯어온 비석이다. 피의 의식을 치르고 있는 약스칠란의 군주 발람 3세와 카발 촉 왕비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1882년 영국의 고고학자 알프레드 모슬레이가 약스칠란의 한 건물 천장에서 뜯어왔다. 원래 다른 석비들도 있었지만 24번 석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멕시코로 돌아갔다.
이페의 청동 두상(Bronze Head from Ife)
1938년 나이지리아의 이페 유적에서 발굴된 14세기 경에 만들어진 청동 두상이다. 발견되었을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는데, 서구 학자들은 '미개'하다고 여겼던 아프리카인들이 이런 정교한 두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믿고 싶어하지 않아했기 때문이다. 왕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아프리카 문화의 뛰어남을 드러내는 단적인 유물들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카융 토템 폴(Kayung Totem Pole)
캐나다의 하이다족이 1850년대에 만든 토템 폴이다. 토템 폴에는 부족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빽빽히 새겨져 있다. 1903년 즈음에 식민당국이 대영박물관으로 전달했고 그 이래로 현재까지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삼나무 하나를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
베닌 브론즈(Benin Bronze)☆
나이지리아의 베닌 제국의 왕궁에 장식되어 있던 청동 조각품들이다. 대략 13세기부터 16세기에 만들어진 것까지 연대도 다양하며 단순 청동판, 조각 머리, 보석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청동판들은 본래 왕궁의 벽을 장식하던 것으로 왕실의 일대기와 베닌 제국의 역사를 연표식으로 담은 것이었는데, 영국이 약탈하는 과정에서 전부 섞여버려서 올바르게 배열하는 순서는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1897년 영국 원정 당시 강제로 훔쳐왔고 현재는 대영박물관 외에 독일과 미국의 박물관에도 상당수가 전시되어 있다. 나이지리아 측에서는 꾸준히 반환을 요구하는 중.
4. 침략과 강탈의 역사
이름은 영국 박물관인데 정작 영국 물건은 별로 없고 타국 유물이 더 많은 박물관이다. 그 타국 유물도 정당하게 구매하거나 대여해온 것이 아닌, 무단으로 약탈·훼손하여 가져온 것이 많아서 장물관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비슷하게 장물관 소리를 듣는 루브르 박물관은 그래도 명색이 프랑스의 중심 박물관답게 프랑스 물건도 많다는 점에서 대영박물관의 이러한 모습은 더더욱 비교되고 있다.약탈이 아니라 유물의 위치를 박물관으로 옮긴 것이라 카더라
로제타 석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유물부터 고대 로마 유물, 심지어 남태평양쪽 물건들도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온 장식물(엘긴 마블)들과 기둥으로 장식된 파르테논 관은 그리스에서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이집트,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자기들 문화재를 훔쳐가 전시한 것이라고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실제로 성화에 못 이겨 돌려주거나 배상금을 지불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반환을 거부하면서 버티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영박물관에서 영국 것은 건물과 경비원이 전부"라는 뼈 있는 농담도 있을 정도.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문화재를 빼앗긴 나라들 입장에서는 큰 원성의 대상이다. 대영박물관 신라 금귀걸이는 한국이 자국의 유물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로, 대영박물관의 소개에 따르면 1938년 5월 24일 당시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을 통해 정식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즉, 장물을 매입했다는 것.
이러한 비난을 의식하고 있는지 최근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화재보다는 합법 구매가 가능한 근현대 미술작품 위주로 소장품을 추가하고 있다. 또한 수집가들에게 합법적으로 기증받은 컬렉션의 경우, 기증자의 프로필과 입수 경로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5. 위치
브리티시 뮤지엄(대영박물관)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세계구급 명성에 비해 박물관이 이면도로에 짱박혀 있어서 가기 힘들다. 입구 근처를 둘러보면 여기가 이렇게 유명한 박물관 들어오는 길목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여기 오려다가 길만 헤매고 허탕치는 관광객들도 상당한 듯. 주소는 50 Great Russel St. London, WC1B 3DG.
런던 지하철
토트넘 코트 로드 역: Charing Cross Road를 북쪽으로 조금만 따라가면 Great Russel Street가 나온다. 우회전 후 조금만 걸으면 박물관이다.
홀본 역: High Holborn을 서쪽으로 따라 가다가 삼거리에서 New Oxford Street으로 들어간 뒤, 길 끝에서 Museum Street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Great Russel Street이다. 홀본에서 걸어가려면 아주 조금 가깝긴 한데 복잡하므로 웬만하면 토트넘 코트 로드로 가자.
런던 버스
98: British Museum OA (ID 50334)에서 하차하면 바로 코앞이다.
98: British Museum W (ID 71840)에서 하차 후, 버스 진행 방향으로 그레이트 러셀 스트리트를 따라가면 건너편에 있다.
8, 10, 14, 24, 29, 73, 134, 390, N5, N20, N29, N73, N253, N279: Great Russell Street R (ID 50347)에서 하차 후, 버스 진행 방향으로 조금만 따라 내려가면 그레이트 러셀 스트리트가 나온다.
6. 브리티시 라이브러리와의 관계
자매품(?)으로 브리티시 라이브러리가 있었으나, 기존의 건물은 박물관과 합쳐지고 도서관은 유스턴에 새로 건물을 지어서 이사했다.
7. 여담
아무래도 대영박물관이 과거 그 잘나갔던 대영제국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국립 공공 박물관인데다, 보유 유물의 질과 수량 및 연간 방문객 통계 또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니 타 국가 간의 문화전쟁에 뜬금없이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대영박물관에서는 2009년 최초 행사 이후, 2016년부터 김치, 케이팝, 한가위 및 설날 축제 등 다양한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23년 1월 20일에 트위터로 한국의 설날과 한복에 대하여 '아름다운 코리아의 문화'라고 소개하는 글을 올리고 한영 우호 차원에서 박물관 내에 한국 설날 기념공연을 기획했다가 중국의 전통문화를 한국의 문화로 둔갑시켰다면서 중국인들의 집단 테러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1월 22일에 게시물을 다 내리고 '중국 설'이라고 새로 게시하면서 사실상 항복하고 말았다. 당연히 국내 누리꾼들은 분노 폭발. 이에 국내 누리꾼들은 댓글에 한국과 관련된 이미지를 넣거나 한국을 언급해 대영박물관과 중국인들을 비판하고 있고, 중국인들은 누리꾼들을 조롱해 두 나라 누리꾼글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와중에 글과 함께 영국이 2차 아편전쟁때 베이징을 함락시키면서 약탈한 그림을 올렸다.
2023년 8월 직원이 유물 약 2,000여점을 훔쳤다는 사실이 발각돼 런던광역경찰청이 조사에 나섰고 박물관 측에서도 자체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유물 여러 점이 이베이를 통해 팔려나간 것이 확인되었고 박물관은 유출된 유물들을 반환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2021년부터 도난과 관련된 보고가 있었던 게 밝혀졌고 하트윅 피셔 박물관장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점과 도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직원 1명은 해고당했다.
8. 관련 문서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국립고궁박물원
에르미타주 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로제타석(Rosetta Stone)
[이집트, 수단 전시관]
람세스 2세 흉상(Bust of Ramesses II)
[이집트, 수단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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