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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여행객은 요구가 많지만, 순례자는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요셉 성인의 이름 뒤에는 몇 가지 중요한 닉네임이 붙습니다. 마리아의 아내, 예수님의 양부, 나자렛 성가정의 수호자, 임종자들의 수호자, 성교회의 보호자...
구세사 안에서 요셉 성인의 공로와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던지 미사 경문 내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성찬 예식 내에 그분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과...”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마리아 못지 않게 요셉 성인의 삶도 참으로 기구하고 혹독했습니다. 그가 꿈꾸고 있었던 평범하고도 단란한 결혼 생활은 하느님의 초대로 인해 일찌감치 물건너 갔습니다.
어찌보면 그는 닭쫓던 개처럼, 낙동강 오리알 같은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결혼한 것도 아니고 결혼 안한 것도 아니고. 그는 하느님으로 인해 평범한 한 인간 존재로서 기본적인 욕구나 희망이 모두 차단되었습니다. 대신 그에게 성가정을 위한 봉사와 헌신, 침묵만이 요구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요셉 처지였다면, 입만 열면 불평불만에 하소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과묵했습니다. 충실했습니다. 하느님의 요청에 흔쾌히 순응하며, 그렇게 순탄치 않은 신앙 여정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요셉 성인에게서 강하게 풍기는 덕행은 순례자로서의 충실함입니다. 그의 모습에서 성조 아브라함의 신앙을 느낍니다. 일어나라니 즉시 일어났습니다. 떠나라니 군말 없이 떠났습니다.
요셉 성인은 부단히 자신의 의지와 계획을 접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추구했습니다. 언제나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 안갯속같은 여정이었지만, 기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그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행객은 요구가 많지만, 순례자는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2025년 다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기도의 성 요셉: 고민을 오래 하지 말고 회의도 길게 하지 말라>
복음: 마태오 1,16.18-21.24ㄱ
지금까지 성 요셉의 의로움과 정결함에는 많은 강론을 하였으나, 성 요셉의 기도라는 부분에서는 크게 묵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는 기도가 필수적이고, 성 요셉에게서도 그 특징은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우선 기도하지 않는, 혹은 잘못된 기도를 하는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고민을 오래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단호합니다. 일생일대의 결정 앞에서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셨고, 예수님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아가 강한 사람은 언제나 우유부단하고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를 결정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비됩니다. 그래서 저는 회의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기도하고 결정이 된 상태에서 와야 하고 책임자는 기도를 통해 빠르게 나아갈 길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전쟁이나 기업과 같은 경쟁 상황에서 빠른 판단력은 필수적입니다. 빠른 판단력이 사라지는 이유는 신앙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대관식 이후부터 자신감을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1804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된 대관식에서 스스로의 손으로 황제의 왕관을 머리에 얹었습니다. 그 자리에 교황 비오 7세가 있었지만, 나폴레옹은 하느님의 축복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로부터 11년 후인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그러한 교만함과 홀로 결정해야 하는 지도자의 외로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아프게 경험하게 됩니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돌아와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른바 ‘백일천하’의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군대는 약 7만 3천 명이었고, 상대편 연합군은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과 네덜란드, 벨기에군 연합 6만 8천 명, 그리고 블뤼허 장군이 이끄는 프로이센군 5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은 이 양쪽 군대가 합류하기 전에 신속히 공격하여 각개격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투 당일인 6월 18일, 새벽부터 내린 비로 전장이 심하게 질척거렸고, 포병과 기병의 이동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나폴레옹은 오전 6시부터 공격을 망설이기 시작했습니다. 측근의 많은 장군들은 즉각 공격할 것을 조언했지만, 모든 결정을 홀로 내려야 하는 황제였던 그는 쉽게 결단하지 못한 채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나폴레옹은 조금 더 좋은 환경이 오기를 기다리며 공격 명령을 계속 미루었고, 그렇게 결정적인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나폴레옹은 무려 6시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끝에,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첫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의 지연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공격이 늦어지는 동안, 18km 떨어진 곳에 있던 프로이센군 5만 명은 전장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공격을 지연한 사이, 프로이센군은 오후 4시경부터 전장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했습니다. 결국 저녁 7시가 될 무렵에는 영국군과 프로이센군의 병력이 완벽히 합류하여 총 11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반면, 전투를 너무 늦게 시작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미 피로와 혼란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고, 단 하루의 우유부단함으로 자신의 운명뿐 아니라 프랑스 제국 전체를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다시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추방되었고, 쓸쓸히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만약 그가 홀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외로운 왕좌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하고, 신중하지만 빠르게 결단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눈치채고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이것은 ‘묵상’기도입니다. 마리아의 잘못을 자기가 다 끌어안겠다는 엄청난 결단입니다. 묵상기도를 통해 여기까지는 도달할 수 있지만, 관상의 단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바로 그 잉태가 곧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하십니다. 요셉은 그렇게 합니다.
이 외에도 헤로데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 꿈을 꾸고는 바로 짐을 싸서 이집트로 피신합니다. 다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기도할 줄 모르는 교만한 사람이었다면, 성모님과 결혼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결혼했다면 시간을 끌다가 메시아를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이는 모두 결단력이 좋고 빠릅니다.
1805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원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기사로서의 명예와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았지만, 전쟁터에서의 패배와 포로 생활을 통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1205년 어느 날, 아시시 외곽에 버려진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깊은 기도에 잠겨 있던 프란치스코는,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프란치스코는 망설이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즉시 자신의 화려한 옷을 벗고 거친 옷을 입었으며, 아버지의 재물을 포기하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돌 하나하나를 손수 쌓아 올리며 산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기 시작했고, 그의 단호한 결단에 감동한 동료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무너져가는 당신 집은 결국 탐욕으로 기울어져 가는 교회를 재건하라는 것이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저 작은 하느님의 집은 다미나노 경당을 재건하기 시작한 그의 결단력은 바로 요셉 성인과 같은 기도에서 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더 데레사도 있습니다. 그녀는 1929년 열아홉 살의 나이에 인도의 콜카타로 파견되어 로레토 수녀회 소속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며 평범한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6년 9월 10일, 데레사 수녀는 다르질링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깊은 묵상 중에 강력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수도원의 울타리를 넘어 길거리의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소명을 명확하게 전하셨습니다.
데레사는 이 부르심을 듣고 즉시 결단을 내렸으며, 자신이 20년 가까이 지냈던 수도원과 안정된 생활을 떠나 콜카타의 빈민가로 뛰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맨손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결단력 있는 행동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전 세계에 가난과 사랑의 가치를 전하며 노벨 평화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 프란치스코와 마더 데레사의 삶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았다면 절대로 주저하지 말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요셉 성인과 이 성인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느님께 묻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즉시 겸손과 용기로 결단하여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고민을 많이 하지 말고, 회의를 길게 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분이시기에 항상 주저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일어나 가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1,16.18-21.24a: 요셉은 천사가 일러준 대로 하였다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18절). 이 잉태는 신비이다. 이 잉태로 인해 요셉은 조금도 마리아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해결하려 한다. 약혼은 했지만, 마리아와 혼인을 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일을 드러내어 마리아를 재판에 넘긴다면 마리아가 죽을 수도 있어서 조용히 파혼하려 했다. 이때 천사가 꿈에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20절) 하였다. 이것은 요셉이 마리아의 순결을 의심하지 않도록 그 신비를 알려준 것이다. 요셉은 의심이라는 악을 떨쳐버리고 신비라고 하는 선을 받아들였다. 요셉은 이제 마리아가 아무 죄가 없다는 것과 동정 잉태를 인정할 수 있었다. 요셉이라는 뜻은 흠잡을 데 없는 이라는 뜻이다.1)
천사는 또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21절) 하였다.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했는데 그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 구원자라는 뜻이다. 이는 하느님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 이름은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분의 육에 붙여진 이름이다. 요셉은 천사에게서 계시를 받고 기쁘게 하느님의 뜻에 따른다. 그는 마리아를 맞아들이고 기쁘게 하느님의 뜻을 이룬다. 요셉이 의롭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채우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요셉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데 협력하셨던 삶을 본받아,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에 주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하며 그분을 본받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응답이 되어야 한다. 요셉이 자기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듯이,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듯이 주님의 뜻을 따르며 주님의 뜻을 따르려 노력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살면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이, 조그마한 행위 하나하나가 하느님 구원사업에 협력하는 순간이 된다. 요셉 성인과 같이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이루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깨어있는 삶을 되어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책을 읽고 있으면 크게 와 닿는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내용을 통해 쓰고 싶은 것도 떠올려집니다. 예전에는 책에 밑줄을 그어서 기억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책에 표시하면 단점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는 사람(다시 읽는 본인도 마찬가지)에게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표시에 매여서 자기 것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표시에만 집중하게 되어서, 새로운 것을 찾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다 읽은 책을 본당 도서관에 기증하고 있어서 더 깨끗하게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밑줄보다 클립을 꽂아두었습니다. 이 클립으로 표시한 곳을 나중에 쓰면서 정리할 목적이었습니다.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읽으면 왜 클립을 꽂아두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분명 크게 와 닿는 구절이었는데, 다시 보면 별 내용이 아닙니다. 이제는 곧바로 적습니다. 지금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미루면 잊어버립니다. 소중할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뒤로 미루곤 합니다. 그 순간에 해야 할 것인데도 나중에 해도 충분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생명을 유한하게 만드신 것이 아닐까요? 너의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사랑의 실천은 결코 뒤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고,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 실천하는 결정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을 지냅니다. 요셉 성인께서 간직하셨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강림’이라는 하느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약혼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하지 그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의로운 사람, 법대로 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성인이기에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하기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간음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세우거나 율법 학자들에게 고발해서 돌로 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파혼으로 인해서 그 사랑이 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천사를 보내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계시에 곧바로 요셉은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버리지 않고, 또 사랑을 즉시 실천하는 그 모습에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뒤로 미뤄서도 또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계속해야 하는 사랑이고, 즉시 실천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명언: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해줄 수 없다(캐롤 버넷).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 1,24 ㄱ)
굳은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 앞에
과감히 내려놓고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는 이를
성경에서는
의로운 사람이라 한다네.
우직하게
성가정을 지켜낸
의로우신 성 요셉은
성자의 아버지이시자
성모마리아의 남편이셨으니
그 이상 복된 이가
세상에 또 어디 있으리.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우리의 신앙은 바로 결단이요,
용기여야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포기’만을 강요하고,
‘회피’만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절대 우리의 신앙일 수 없습니다.
주님, 가끔 전 제가 처한 상황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조용히 잠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참 비겁하지요?
남자가 갑바가 있지...
아마 요셉 성인께서도 이런 저의 마음에
몇 배, 몇 십 배는 더 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요셉은 거뜬히 이겨내지 않습니까?
바로 신앙의 힘으로...
주님, 육화의 신비를 이해하기 이전에
먼저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믿음을 제게도 허락해 주소서.
주님, 지금 제 상황을
이해시켜달라고 조르기보다
깊은 주님의 뜻을 헤아리게 하소서.
주님, 겸손과 순종의 맘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소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신앙을 살게 하소서.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 1, 24)
삶이 힘들 때
요셉 성인을
만난다.
삶이란
때론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우리를
계속 찾아올
때가 많다.
우리의 시간이란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우리들에게
먼저 당신
삶으로
이야기 하는
요셉 성인이시다.
진실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진실한 삶이란
자신의 자리를
잘 다듬고
잘 간추리고
잘 순명하며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과 함께
풀어가는 삶이다.
하느님을 향해
열려있는 삶이다.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다.
새로운 탄생은
쉬이 오지
않는다.
고통과
아픔을
거친다.
요셉 성인은
정직하다.
하느님을
어려워 할 줄
알았고
땀 흘린
고동의 댓가로
삶을 성실하게
살아갔다.
참다운 신앙은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
스스로
믿음의 사람이
되어갔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성찰의 삶이다.
말씀을
따르는 삶이
가장 힘있는
삶이다.
그 일을
해낸 분의
삶을 만나는
오늘이다.
하느님 말씀의
적용과 실천이
필요한 사순의
삶이다.
새롭게
거듭나는
탄생의 곁에는
지극히 진실한
한 사람이 있다.
성 요셉같은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진실로
변화된다.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이다.
말씀이
한 사람을
빚어내고
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사순이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루카 1,32 참조).>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7,4-5ㄴ.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