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은月隱에서
이영선
달 속의 푸른 기운과 그것을 덮고 있는 흰 구름이
단지, 곁에 있다는 이유로 온도가 같아진다면
나무가, 빈집이, 숭숭 뚫린 담벼락이
텅 빈 외양간에서 서로의 털을 핥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단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도가 같아진다면
어둠을 흔들며 월은 2길을 빠져나가던 버스가 덜컥 멈춘 마을 어귀,
참깨 꽃 자잘하게 차르륵 거리는 그 연분홍 꽃 속에 숨어든 달빛이 월은의 온도라면
시커먼 물웅덩이에 허옇게 드러누운 달빛을 첨벙첨벙 깨우는
내 발목 창백하게 적시는 것이 월은의 온도라면
그리하여 반짝이지도 뜨겁지도 않은 저 달빛이
무수히 꿈틀거리는 내 마음이라면
--애지사화집, 김선옥 외 {꽃밥}에서
온도란 무엇인가? 기온은 대기의 차고 더운 정도를 말하고, 온도는 몸이 차고 더운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가 온도를 감지하는 것은 우리 몸에 온도 감각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새나 포유동물처럼 항상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물이며, 환경조건이나 신체활동이 심하게 변하더라도 그 체온이 유지되며, 건강한 인간이라면 35.8도에서 37.2도의 체온을 갖는다.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어느 곳이고, 그곳의 기온은 어떠해야 할까? 넓고 비옥한 영토와 수만 리의 금수강산을 갖고 있는 곳이 가장 좋을 것이고, 사계절이 분명하고 삼한사온의 온대지방이 가장 좋을 것이다.
봄과 가을에는 영상 15도에서 30도, 한여름에는 30도에서 36도, 한겨울에는 영하 10도에서 20도인 우리 대한민국이 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기후와 풍토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이영선 시인의 [월은月隱에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온도이며, 이 온도는 그가 살고 있는 월은에서의 적정 온도라고 할 수가 있다. “달 속의 푸른 기운과 그것을 덮고 있는 흰 구름이/ 단지, 곁에 있다는 이유로 온도가 같아진다면”이 그것이고, “나무가, 빈집이, 숭숭 뚫린 담벼락이/ 텅 빈 외양간에서 서로의 털을 핥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단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도가 같아진다면”이 그것이다.
모든 역사는 지리에서 시작되고, 인간의 성격과 취향과 기후와 풍토를 좌우하는 ‘지리’가 최종심급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지리산의 동쪽의 경상도와 지리산의 서쪽의 전라도가 서로 다른 말과 함께, 그 전통과 풍습을 갖고 있듯이, ‘지리’는 그 고장의 말과 함께, 서로 다른 전통과 풍습을 낳는다. 따라서 이영선의 시인의 [월은에서]의 온도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함께 살아가야 할 적정 온도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가 있다. “어둠을 흔들며 월은 2길을 빠져나가던 버스가 덜컥 멈춘 마을 어귀/ 참깨 꽃 자잘하게 차르륵 거리는 그 연분홍 꽃 속에 숨어든 달빛이 월은의 온도라면” 그 온도에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이고, “시커먼 물웅덩이에 허옇게 드러누운 달빛을 첨벙첨벙 깨우는/ 내 발목 창백하게 적시는 것이 월은의 온도라면” 그 온도에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반짝이지도 뜨겁지도 않은 저 달빛이/ 무수히 꿈틀거리는 내 마음이라면” 나는 이미 월은의 달빛과 ‘일심동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정신의 발이 자유자재로 활동하느냐, 아니면 절룩거리느냐에 따라 신진대사의 ‘속도’는 그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은 신진대사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기지를 가진 사람이 살거나 살았던 장소, 위트와 섬세함과 악의가 행복을 이루고 있는 그러한 장소, 천재가 필연적으로 자기의안식처를 삼는 장소를 한번 열거해보자. 그 모두가 탁월한 건조한 공기를 가지고 있다. 파리, 프로방스, 플로렌스, 예루살렘, 아테네----이러한 지명들은 무언가를 시사해준다. 무엇인가 하면 천재는 건조한 공기, 청명한 하늘, 말하자면 급속한 신진대사,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힘을 끊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가의 가능성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니체, {이 사람을 보라})
에덴동산은 기독교인들의 지상낙원이고, 극락의 세계는 불교인들의 지상낙원이다. 올림프스산은 그리스인들의 지상낙원이고, 이데아의 세계는 플라톤의 지상낙원이다. 지구가 둥글듯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면 ‘월은’은 이영선 시인의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월은에서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같이 동일한 기후와 동일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고, 모든 인간들이 모두가 다 함께 존경하고 찬양을 하는 역사와 전통과 풍습의 미덕을 창출해내야 할 것이다.
아름답고 멋진 들판과 금수강산, 아름답고 멋진 기후와 풍토, 아름답고 멋진 사람들이 시와 노래를 부르며, 그 어느 것 하나 군더더기가 없는 예술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영선 시인의 ‘월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풍토 속에서 텅 빈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곳, 나무가, 빈집이, 숭숭 뚫린 담벼락과 텅 빈 외양간에서 서로의 털을 핥고 있는 길고양이들, 어둠을 흔들며 월은2길을 빠져나가던 버스가 덜컥 멈춘 마을, 시커먼 물웅덩이에서 허옇게 드러누운 달빛을 첨범첨벙 깨우는 내 발목을 창백하게 적시는 월은----.
월은, 월은, 이영선 시인의 ‘월은’이 과연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이상낙원이 될 수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