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자장이 묻기를 “선비가 어떠해야만 그를 일컬어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達者 德孚於人而行無不得之謂 達이라는 것은 그 덕이 남에게 믿음을 받고 행하여 하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을 일컬어 말한 것이다.
問達爲所行通達 何也 朱子曰 其在邦也 事上則獲於上 治民則得乎民 其在家也 父母安其孝 兄弟悅其友 凡吾之見於行者 莫不通達 而無所繫礙焉 斯可謂之達矣 누군가 묻기를, “達이란 ‘행한 바가 통달하는 것’이 됨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어떤 사람이 나라에 있어서, 윗사람을 섬기면 윗사람에게 믿음을 받고,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에게 신뢰를 얻으며, 그 집안에 있어서는 부모가 그 효도를 편안히 여기고 형제는 그 우애를 기뻐한다는 것이다. 무릇 내가 행한 것에 발현된 것이 통달하지 않음이 없고 여기에 얽매이거나 가로막힘이 없다면, 이것을 일컬어 達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말하는 달(達)이란 무엇을 일컫는 것인가?”라고 하셨다.
子張務外 夫子蓋已知其發問之意 故反詰之 將以發其病而藥之也 자장은 겉에 힘썼는데, 공자께서는 아마도 이미 그가 드러내어 묻는 뜻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물음으로써 장차 그 병폐를 드러내어 고치고자 한 것이다.
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자장이 대답하여 말하길,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고,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言名譽著聞也 명예가 현저하게 소문나는 것을 말한다.
子曰 是聞也 非達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聞이지 達이 아니다.”
聞與達 相似而不同 乃誠僞之所以分 學者不可不審也 故夫子旣明辨之 下文又詳言之 聞과 達은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것으로서 이는 곧 정성과 거짓을 나누는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잘 살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이미 그것을 밝게 구별해주었고, 아래 문장에서 다시 상세하게 말씀하셨다.
雙峯饒氏曰 聞是求聞於人 達是人自信己 쌍봉요씨가 말하길, “聞이란 남에게 소문이 나기를 구하는 것이고, 達이란 남이 저절로 나를 믿어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무릇 達이라고 하는 것은 질박하고 올곧으며 의로움을 좋아하고,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살피며, 잘 헤아려서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達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達하는 것이다.
內主忠信而所行合宜 審於接物而卑以自牧 皆自修於內 不求人知之事 然德修於己而人信之 則所行 自無窒礙矣 안으로 忠과 信에 주안점을 두어서 행하는 바가 도에 합치되고 마땅하게 하며, 외물과 접하는 것을 잘 살피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기르는 것은 모두 안에서 스스로를 닦는 것일 뿐, 남이 알아주는 일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덕을 내 안에서 닦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준다면, 행하는 바에 막히고 걸리는 것이 저절로 없게 될 것이다.
慶源輔氏曰 主忠信 質直也 所行合宜 好義也 此存乎中以應乎外也 審於接物 察言觀色也 卑以自牧 慮以下人也 此審乎外以巽乎內也 內外交相養而厥德修罔覺 此豈求人知者之所爲哉 然德修於己 而人自信之 則行於邦家者 自然無所窒礙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忠信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은 질박하고 올곧다는 것이고, 행한 바가 道에 부합하고 합당하다는 것은 의로움을 좋아한다는 것이니, 이것은 가운데에 보존함으로써 밖에 대응하는 것이다. 외물을 접함에 잘 살피는 것은 말을 살피고 안색을 살핀다는 것이고, 나를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기른다는 것은 잘 헤아림으로써 나를 남보다 낮춘다는 것이니, 이는 밖을 잘 살펴서 안에서 공손해하는 것이다. 내외가 번갈아 서로 길러지고 저 덕이 닦여도 깨닫지 못하는 것, 이것이 어찌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사람의 행위이겠는가? 그러나 덕이 자기에게 닦여짐에도 남이 저절로 그를 믿어준다면, 나라와 집안에서 행하는 것에는 자연히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質直只是無華僞 質是朴實 直是無偏曲 주자가 말하길, “質直이란 그저 화려함과 거짓됨이 없다는 것이니, 質이란 질박하고 착실한 것이고, 直은 치우침과 굽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質直好義 便有觸突人底意思 到得察言觀色慮以下人 便又和順低細 不至觸突人矣 慮謂思之詳審 常常如此思慮 恐有所不知覺也 聖人說話都如此周徧詳密 질박하고 올곧으며 의를 좋아하면 곧 남에게 부딪힌다는 뜻이 있지만, 말을 잘 살피고 안색을 살펴서 헤아림으로 남보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지경에 이르면, 곧 다시 화목하고 온순하며 자신을 낮추고 섬세해져서 남과 부딪히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될 것이다. 慮는 생각함에 있어 상세하게 잘 살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항상 이와 같이 思慮한다 할지라도, 아마도 지각하지 못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성인의 말씀은 항상 이와 같이 두루 다 미치면서도 상세하고 엄밀한 것이다.
質與直是兩件 質就資性上說 直漸就事上說 到得好義 又在事上 直固是一直做去 然至於好義 則事事區處 要得其宜 這一項都是詳細工夫 質과 直은 서로 다른 두 건의 사물이다. 質은 자질과 천성 위로 나아가 말한 것이고, 直은 점점 일 위로 나아가 말한 것이다. 의를 좋아하는 것에 이르러도, 또한 일 위에 달려있는 것이다. 直은 본래 줄곧 해나가는 것이나, 의를 좋아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일마다 구분하여 대처함에 있어 그 합당함을 얻어야 한다. 이 하나의 항목은 전부 상세한 공부다.
察人之言觀人之色 乃是要驗吾之言是與不是 今有人自任己意說將去 更不看人之意 是信受他還不信受他 如此 則只是自高 更不能謙下於人 實去做工夫也 大抵人之爲學 須是自低下做將去纔自高便不濟事 남의 말을 살피고 남의 안색을 살피는 것은 곧 내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증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있는데, 스스로 자기의 뜻에 맡겨서 말해 갈 뿐, 남의 뜻이 그를 믿어주는지 아니면 믿어주지 않는지 더 이상 잘 살펴보지 않음이 이와 같다면, 이는 그저 스스로를 높이는 것일 뿐이니, 다시는 남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서 실제로 가서 그런 공부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저 사람이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스스로를 낮추어 가야만 하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높인다면, 곧바로 일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察言觀色 只是察人言觀人色 若照管不及 未必不以辭氣加人 此只做自家工夫 不要人知 旣有工夫以之事親 則得乎親 以之事君則得乎君 以之交朋友而朋友信 雖蠻貊之邦行矣 此是在邦在家 必達之理 子張只去聞處著力 聖人此語正中其膏盲 質直好義等處 專是就實 色取仁而行違 專是從虛 말을 살피고 안색을 살피는 것은 그저 남의 말을 살피고 남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니, 예컨대 그를 상관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辭氣로 남에게 더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스스로 공부할 뿐이지, 남이 알아주는 것을 요하지 않고, 이미 이러한 공부가 되어 있어서, 이로써 부모를 섬긴다면 부모에게 신뢰를 얻고, 이로써 임금을 섬기면 임금에게 믿음을 얻으며, 이로써 친구를 사귄다면 친구들이 믿어줄 것이다.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고 하여도 행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와 집안에서 반드시 통달하게 되는 이치다. 자장은 그저 聞이 있는 곳으로 가서 힘을 썼을 뿐인데, 성인의 이 말씀은 바로 그 병의 핵심을 맞춘 것이다. 質直好義 등의 부분은 오로지 실제에 나아간 것이고, 色取仁而行違(겉으로는 仁을 취했지만 행실은 道에 거스름)는 오로지 헛된 것을 따른 것이다.
雙峯饒氏曰 質直忠信底人 固難得 但亦有直情徑行不去 隨事裁度 而所行容有不合宜處 故忠信又要合義 察言觀色 慮以下人 是一件事 子張常愛居人上 故告以謙退詳審之意 쌍봉요씨가 말하길, “질박하고 올곧으며 충실하고 미더운 사람은 본래 얻기가 어려운 법이지만, 그러나 또한 감정대로 곧장 행하여서 일에 따라 재단하고 헤아리지 않음이 있으면서, 또 행한 바가 도에 부합하지 않아 합당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충실하고 미더워도 또한 義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다. 말을 살피고 안색을 살피는 것과 잘 헤아림으로써 자신을 남보다 낮추는 것은 하나의 일이다. 자장은 항상 남의 위에 거하는 것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겸손하게 물러나서 상세하게 살피라는 뜻으로 알려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무릇 聞이라는 것은 얼굴 빛은 仁을 취하나 행실은 그에 어긋나고, 그대로 거기에 머물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으면 반드시 소문이 나고,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善其顔色以取於仁 而行實背之 又自以爲是而無所忌憚 此不務實而專務求名者 故虛譽雖隆 而實德則病矣 그 안색으로써 仁을 취하는 것은 잘하지만 행실은 실제로 그에 위배되고, 또한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서 거리낄 것이 없어 하는데, 이것은 실제에 힘쓰지 않고서 오로지 명성 구하는 것에만 힘쓰는 것이니, 그러므로 헛된 명예는 비록 융성하지만 실제 덕은 병든 것이다.
朱子曰 聞者是箇做作底 專務放出外 求人知而已 如色取仁而行違 便是不務實而專務外 居之不疑 便是放出外而收斂不得 只得自擔當不放退 此其所以駕虛名而無實行矣 주자가 말하길, “聞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지어낸 것인데, 오로지 밖으로 내어놓는 것에만 힘쓰고 남이 알아주기만을 구할 따름인 것이다. 예컨대 안색은 仁을 취하되 행실은 도에 어긋난다는 것이 바로 실제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밖에만 힘쓰는 것이다. 그대로 거할 뿐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밖으로 내어놓을 뿐 거두어들이지는 못하는 것이니, 그저 스스로 물러가도록 방임하지 않는 것만 담당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헛된 명성에 얽매여서 실제 행동은 없는 까닭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色取仁而行違 不惟是虛有愛憐之態 如正顔色而不近信 色厲而內荏 皆色取仁而行違也 안색은 仁을 취하지만 행실은 道에 어긋난다는 것에는 헛되이 단지 사랑하고 연민하는 모습이 있는 것만이 아니다. 예컨대 안색을 바르게 하였지만 믿음에 가깝지 않는 것이나, 안색은 장엄한데 마음속으로는 취약한 것 모두 色取仁而行違인 것이다.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這只是粗瞞將去 專以大意氣加人 子張平日是這般人 故孔子正求其病 此章大意出不得 一箇是名 一箇是實 呂氏謂 德孚於人者必達 矯行求名者必聞 此說却好 안색은 仁을 취하지만 행실은 어긋나거나, 그대로 거하면서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들은 그저 거칠게 장차 속여나가면서, 오로지 큰 뜻과 기상을 남에게 더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그 병을 바로 구한 것이다. 이 장의 大意는 ‘하나는 명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다’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씨는 ‘그 덕이 남에게 믿음을 받는 자는 반드시 통달하고, 행동을 꾸며서 명성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소문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이 말이 도리어 좋다.
慶源輔氏曰 使其色取行違而中不安焉 則務實之心 猶未盡喪也 惟其自以爲是而無所忌憚 此見其專務於名 夫名生於實 則名亦何害 惟無實而徒有虛譽 則驕矜之意日生 而進修之力日怠矣 二者雖若相似 然所行通達者 名譽自然著聞 名譽著聞者 所行未必通達 其實有不同如此 경원보씨가 말하길, “만약 그가 색은 仁을 취하되 행실은 어긋나면서도 속으로는 이것에 불안해한다면, 실제에 힘쓰는 마음은 그래도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직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서 아무것도 꺼리는 바가 없다면, 여기에서 그가 명성에만 오로지 힘쓴다는 것이 보인다. 무릇 명성이 실제에서 생긴다면, 명성도 또한 무슨 해가 되겠는가? 오직 실질이 없으면서 그냥 헛된 명예만 있는 경우라면, 교만하고 뽐내는 뜻이 날로 생겨나는 반면 덕에 나아가고 닦는 힘은 날로 게을러질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비록 서로 비슷하지만, 그러나 행한 바가 통달한 사람은 명예가 자연히 드러나 소문이 나는 반면에, 명예가 현저하게 소문이 난 사람의 경우는 행한 바가 반드시 통달한 것은 아니다. 그 실체에 같지 아니함이 있는 것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色取仁之色與觀色之色不同 觀色專主顔色言 色取說得濶 凡發出來可見處 皆是色 色者見於外 行者行於己 見於外者皆似合於仁 檢點他行己處却不實 只是欺人而已 居之不疑 示人以不疑也 此乃求名之人要人信己 故自居之不疑 若自居於疑 又誰信之 쌍봉요씨가 말하길, “색은 仁을 취한다는 말의 色은 색을 살핀다는 것의 色과는 다르다. 觀色에서는 오로지 안색에 주안점을 두고 말한 것이고, 色取에서는 넓게 말한 것이니, 무릇 드러내어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色인 것이다. 色이라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고, 行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행하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것은 모두 마치 仁에 부합하는 것 같아도, 자신에게 행하는 부분를 점검해보아서 오히려 진실하지 않다면, 이는 그저 사람을 속이는 것일 따름이다. 거하면서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음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명성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거하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의심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면, 또 누가 그를 믿어줄 것인가?”라고 하였다.
齊氏曰 以質對色 則一眞一假 以直對違 則一順一逆 質直者 內有餘而外自見 色取仁而行違者 外若有而內實無也 제씨가 말하길, “質을 色과 대비시키면, 하나는 진실하고 하나는 가짜다. 直을 違와 대비시키면, 하나는 순응하고 하나는 거역하는 것이다. 질박하고 올곧은 자는 안으로 남음이 있어서 밖으로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고, 색은 인을 취하지만 행실은 어긋난 사람은 밖으로는 마치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 그 실질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聞者病在取字 凡物在外 則可取 仁者吾心之所固有 若曰可取 則是在外而不在內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聞이라는 것은 그 병폐가 取자에 있는 것이다. 무릇 사물이 밖에 있다면 취할 수 있다. 仁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곧 이것이 밖에 있고 안에 없다는 말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學者 須是務實 不要近名 有意近名 大本已失 更學何事 爲名而學 則是僞也 今之學者 大抵爲名 爲名與爲利 雖淸濁不同 然其利心則一也 정자가 말하길,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실제에 힘써야 하고 명성을 가까이해서는 아니 된다. 명성을 가까이하려는 뜻이 있다면, 큰 근본을 이미 잃은 것이니, 다시 무슨 일을 배운단 말인가? 명성을 위하여 배운다면 곧 이는 거짓된 것이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대체로 명성을 위하는 것 같다. 명성을 위하는 것과 이익을 위하는 것은 비록 맑고 탁한 것이 같지 않지만, 그러나 그 이롭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程子務實務名之論 可謂切當 爲吾之未能事親也 故學事親 爲吾之未能事長也 故學事長 爲吾之未能正心誠意也 故學正心而誠意 爲吾之未能齊家治國也 故學齊家而治國 是之謂務實 務實而學 則其修爲之誠 踐履之功 順序而進 忽不自知 其入於聖賢之域矣 欲吾之有孝名也 故勉焉以爲孝 欲吾之有忠名也 故勉焉以爲忠 欲吾之有廉名也 故勉焉以爲廉 欲吾之有信名也 故勉焉以爲信 是之謂務名 務名而學 則惟欲其名之有聞而已 所謂大本卽實理也 實理近於性具於心 要在反求而自得 學有向外近名之意 則失之矣 爲名而學 則是僞者 謂其不順實理 而務外妄求也 爲名雖若淸 爲利雖是濁 然一有爲之之意 則便是利心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정자의 실질에 힘씀과 명성에 힘씀의 논단은 절실하고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아직 어버이 섬김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버이 섬기는 것을 배우고, 내가 아직 어른 섬김을 잘하기 못하기 때문에 어른 섬기는 것을 배우며, 내가 아직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함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함을 배우고, 내가 아직 齊家와 治國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와 치국을 배운다면, 이는 실제적인 것에 힘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질에 힘써서 배운다면, 곧 닦고 행하는 정성과 실천하는 공력이 순서에 맞추어 추진되어, 홀연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성현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내게 효도의 명성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에 힘쓰는 것을 효라고 여기고, 내게 충성의 명성이 있고자 하기 때문에, 이에 힘쓰는 것을 충성으로 여기며, 내게 청렴한 명성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에 힘쓰는 것을 청렴으로 여기고, 내게 신의의 명성이 있고자 하기 때문에, 이에 힘쓰는 것을 신의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명성에 힘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명성에 힘쓰면서 배운다면, 오직 그 명성이 소문남을 바랄 뿐이다. 이른바 大本이란 곧 실질적 이치다. 실질적 이치는 천성에 가깝고 마음에 갖추어진 것이니, 그 요체는 돌이켜 구하여 스스로 터득함에 있는 것이다. 배움에 있어 밖을 향하고 명성을 가까이한다는 뜻이 있다면, 곧바로 그것을 잃고 마는 것이다. 명성을 위하여 배운다면 이는 곳 거짓이라는 것이니, 실질적 이치에 순종하지 않고서 밖에 힘써서 망령되이 구함을 일컬어 말하는 것이다. 명성을 위하는 것은 비록 깨끗한 것 같고, 잇속을 위하는 것은 비록 탁한 것일지라도, 그러나 일단 그것을 위한다는 뜻이 있으면, 이는 곧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尹氏曰 子張之學 病在乎不務實 故孔子告之 皆篤實之事 充乎內而發乎外者也 當時門人 親受聖人之敎 而差失有如此者 況後世乎 윤씨가 말했다. “자장의 학문은 실제에 힘쓰지 않는 것에 병폐가 있었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알려준 것이 모두 실제를 돈독히 하는 일이었으니, 안에서 충만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것들이었다. 당시 공자의 문인들은 성인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지만 어긋나고 잘못된 것이 있음이 이와 같았는데, 하물며 후세에 있어서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