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안 (문예비전 편집장)
1) 들어가는 말
김창겸의 <사루비아 다방>프로젝트는 7,80년대 다방문화에 대해 영상을 통한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의 특성은 실물을 캐스팅한 석고모형에 그와 동일한 실물을 재현한 동영상을 오버랩시켜 실재와 非실재의 차이에서 오는 현상들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사루비아 다방’이라는 전시공간의 특성을 이용하여 다방문화의 기억 코드와 연결시켜 다방이라는 장소성이 갖는 문화를 얘기하고자 한다고 했다. 즉 80년대 다방문화에서 오는 기억, 향수, 역사, 사건, 에피소드를 들추어내어 회고적/낭만적인 요소를 미술로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전시개요
<사루비아 다방> 프로젝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 다방에 놓여진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사건들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인물중심으로 재현되고 있다. TV모형 화면에 홍수환의 세계 타이틀 매치 경기장면의 실제가 투사되고 그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비쳐지고 있다. 7,80년대 다방문화의 상징이 될만한 인물들을 인터뷰한 작품도 있는데 최백호의 인터뷰장면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작가, DJ, 다방 종업원 등이 있다.
또한 다방 이미지 재현이라는 관점에서는 다방을 구성하고 있는 사물들 예컨대 소파, 테이블과 커피잔 세트, 성냥곽, 재떨이, 거울, 어항, 장미꽃, TV 등을 석고로 캐스팅하여 공간에 다방 분위기를 배치했다. 테이블과 커피잔 세트 등의 모형이 실제의 이미지로 투사되고, 연인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손이 오가는 장면이 그림자형식으로 비쳐진다. TV모형 화면에는 홍수환 세계 타이틀 매치 경기 실황이 실제 이미지로 투사된다. 경기 장면 사이사이에 2002 월드컵 응원장면, 광주사태의 장면들이 언듯언듯 비친다.
또하나의 특징은 <사루비아 다방>의 대표작이라며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한 벽에 세팅된 거울, 어항, 장미의 모형에도 실제 이미지가 투사되고 동시에 거울 속에는 몇몇 사람들이 거울을 보는 장면(그 뒤로는 다방공간이 보인다)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어항장면에는 물고기들이 노닐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들이 그림자로 오버랩되어 보여진다.
작가인 김창겸은 자신의 인식 영역을 넓혀 가던 중, 돌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실제와 이미지의 개념에 관심을 갖게되었다고 한다. 그 관심은 곧 ‘개념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작업은 디지털로 하는 영상작업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을 독일에서 영상작업으로 한두 가지 실험을 하다가 97년 국내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이 작업에 뛰어든다.
3) 전시회비평
<사루비아다방>프로젝트는 기존의 전시회 개념을 깨는 이른바 ‘상황설정’만으로도 작품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즉 7,80년대 다방문화의 재현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물질적으로 확인가능한 작품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창출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도 작품으로 평가받고 전시가능하다는 새로운 시도의 전시회라고 여겨진다. <사루비아 다방>을 관람한 이후에 흔히 예술작품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도 고민해 볼 일이었다.
이 다방 프로젝트는 조형의 완성도를 추구하기 보다는 문화 현상을 주제로 하고 그 자체로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의 영상적인 언어를 이해하는 것 또한 이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는 셈이다. 매스미디어의 급격한 발달로 시대는 대중매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아울러 대중문화의 급속한 팽창으로 이 사회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시점에서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기존의 고급문화 즉 물질적인 예술작품이 비물질적인 효과에서의 미학적인 관점으로 확대되면서 그 향유조건이 달라지고 있다. 이는 문화적인 측면의 저변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작가는 7,80년대의 다방문화의 재현이라는 컨셉을 통하여 당시 사회의 구조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고 있는 홍수환이라는 인물은 TV가 집집마다 보급되지 않았던 가난하던 7,80년 시절, 꿈과 희망을 주던 존재론적인 입장의 신화적 인물로 등장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신화라는 개념은 롤랑 바르트르의 <신화>라는 에세이집에 잘 나타나 있다. 바르트르에 의한 신화란 한 문화가 현실이나 자연의 어떤 측면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해 사고하는 하나의 문화적 방식이자 이를 개념화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관련된 개념들의 다발’인 것이다. 홍수환에 대해서 갖는 신화는 유신정권 시절 암울하고 억압받는 의식의 폭팔로 희망, 꿈, 현실의 분출구, 안도감, 자신감, 승리감 등등의 개념의 다발을 포함한다. 특히 홍수환의 칠전팔기 링 플레이는 신비화라는 개념은 낳으면서 이차적인 의미작용을 통하여 대중들을 흥분시켰다. 나라안팎의 중요한 경기나 행사를 다방에 모여서 주로 보았던 사회적 환경으로 창출된 문화가 바로 다방문화인 것이다. 이를 문화비평적인 시각에서 보려고 했던 것이 작가의 영상적인 언어라 할 것이다.
이외에도 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다방문화의 향수를 전달하고 있다. 화려했던 음악다방시절 인기 가수로 대변되는 최백호와 그의 노래가사 속에 묻어있는 첫사랑의 상큼한 기억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80년대의 광주사태를 겪으면서 민주화를 외치던 젊은이들의 은신처 역할을 톡톡히 해 냈던 유일한 문화공간으로서의 다방문화도 터치하고 있다. 이 음악다방에서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며 높은 다락에 앉아 디스크 판을 돌리던 다방 DJ는 한 시대의 풍물적인 이미지의 재현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80년대 단순하게 찻잔만 나르던 다방레지들은 풍물과 향수를 지워버리고 현재는 티켓을 팔며 사회의 최하층 계급으로 전락해버린 사회구조적인 변모 양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시대를 거쳐오면서 2002년 월드컵을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 시청 광장에 모였던 군중들의 아직은 낯설음을 작가는 포착하였다. 이러한 모티브로 시대의 아픔을 함께 껴안고 존재했던 기억속의 다방문화를 디지털로 하는 영상작업의 성과를 낳게 되었다.
기존의 물질적인 전시형태를 가감하게 벗어난 이번 김창겸의 <사루비아 다방>의 영상전시를 보면서 미술시장 논리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논지에 도달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작가들의 실험정신이 보호받고 제도적인 지원을 받으며 육성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접한다. 조형완성도보다는 ‘상황설치’라는 미술에 대한 실험정신은 그 이상의 작품개념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계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관해 우선적으로 작가들의 영상언어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미학적 가치기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김창겸의 전시회를 둘러보았을 때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그러나 다시 전시회를 찾아 강의시간에서 얻은 짧은 지식과 견주며 작품을 마주했을 때 새로운 언어들이 내 의식에 던져졌다. 나도 7,80년대 다방문화를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누리며 겪어온 세대이다. 김창겸의 <사루비아 다방> 프로젝트는 한 세대의 단순한 문화현상이었던 다방문화를, 컨셉에 동조하고 있는 개개의 모티브들을 영상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그 이면에 이차적 의미작용을 내포하면서 개념의 연상작용을 이끌어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간 미술에는 문외한이었던 내게 새로운 시각적 세계를 열어준 이번 전시회는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