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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우리 고향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 올 무렵/송찬호
마당가 분꽃들은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저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였다
울타리 오이 넝쿨은 5촉짜리 노란 오이꽃이나 많이 피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닭장 밑 두꺼비는 찌르르르 푸른 전류가 흐르는 여치나 넙죽넙죽 받아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 드디어 장독대 옆 백일홍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이제 꽃이 바람에 꺾이거나 시들하거나 하는 걱정은 겨우 덜게 되었다
궂은 날에도 꽃대궁에 스위치를 달아 백일홍을 껐다 켰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비 / 송찬호
나비는 순식간에
재크 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 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채송화 / 송찬호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 수염으로 알록달록 포도씨만 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 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데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뜰더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부치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을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소나기 / 송찬호
도둑을 쫓다 양철 지붕 빈집에 이르렀다
언제 사람이 살다 간 것일까
지붕은 붉은 페인트가 반이나 벗겨진 채
흙벽은 무너지고 문짝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저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비 올 때면 양철 지붕 빗소리 요란하고
옹색한 살림에 아이들은 많아 바람 잘 날 없었을테니
그래도 말이다 오늘은 그 시끄러운 소리 한번 들어보게
소나기 한줄금 시원하게 왔으면 좋겠다
소나기 오면 그 옛 소나기로 왔으면 좋겠다
어이 도둑놈아, 여기서 담배 한 대씩 태우고 가자
그러고 보니 우리도 참 시끄럽게
살았다 그렇지?
까맣게 그을음 올라앉은 정짓간 천장
거기 쓸 만한 서까래 몇 골라내면
고요히 적막 한 채 지을 수 있겠다
소금 창고 / 송찬호
돈 떼먹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물어물어 여기 소금 창고까지 왔네
소금 창고는 아무도 없네
이미 오래전부터 소금이 들어오지 않아
소금 창고는 텅 비어 있었네
나는 이미 짐작한 바가 있어,
얼굴 흰 소금 신부를 맞으러
서쪽으로 가는 바람같이
무슨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온 건 아니지만,
나는 또, 사슴 같은 바다를 보러 온 젊은 날같이
연애 창고인 줄만 알고
손을 잡고 뛰어드는 젊은 날같이
함부로 이 소금 창고를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
가까이 보이는 바다로 쉬지 않고 술들의 배가 지나갔네
나는 그토록 다짐했던 금주의 맹세가 생각나
또, 여자의 머릿결 적시던 술이 생각나
바닷가에 쭈그리고 앉아 오랫동안 울었네
소금 창고는 아무도 없네
그리고 짜디짠 이 세상 어디엔가
소금같이 뿌려진 여자가 있네
나는 또,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랑에 기대는 법 없이
저 혼자 저렇게 낡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여기 소금 창고뿐이네
맨드라미 / 송찬호
맨드라미 머리에 한 뒷박 피를 들이붓는 계관식 날이었다
폭풍우에 멀리 날아간 우산을 찾아 소년 무지개가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앵두나무 그늘에 버려진 하모니카도 썩은 어금니로 환하게 웃는 날이였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맨드라미 동문들이 찾아와 축하를 해준 날이었다
봉숭아 금잔화 천일홍 등으로 구성된 장독대 악단의 찬조 공연도 펼쳐진 날이었다
우리도 가만있을 순 없지, 일요회 소속 맨드라미과 화가들도 풍경화 몇 점 남긴 날이었다
이건 약소한데요, 인근 슈퍼에서 후원한 박카스도 한 병씩 돌리는 날이었다
오늘 참 이상한 날이네 웬 붉은 깍두기 머리들이 이리 많이 모였지?
땀 뻘뻘 흘리며 나비 검침원이 여기저기 찔러보고 날아다니는 긴긴 여름날이었다
분홍 나막신 /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깍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만년필 / 송찬호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 대가리 눈 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의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 주거나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 ─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 ─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 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코끼리 / 송찬호
나는 거대하다
나는 천천히 먹고 잠자고 천천히 이동한다
벌써 나는 삼만 년째 석상石像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미 오래전 사냥꾼들에게 그림자를 빼앗겼다
그들은 내 몸을 마구 파헤쳤다 내 눈앞에서
초원은 시들고 강과 호수는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배로 열차로 군대로
내 살과 피를 조각내 운반해갔다
그들은 내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내 등에 그들의 의자가 놓여 있다
그들의 식탁과 사무실과 침대가 올라타 있다
그러나 보아라, 그들이 아무리 채찍을
휘둘러 재촉해도 나는 굳세게
천천히 먹고 잠자고 천천히 이동한다
나는 삼만 년째 석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거대하게 사라져간다
기록 / 송찬호
대체 서기(書記) 된 자의 책무란 얼마나 성가신 일인가 언젠가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코끼리 떼를 흰 종이 위로 건너오게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숫자, 나이와 성별, 엄니의 길이와 무게, 무리의 지도자 습성, 이동 경로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들의 길고 주름진 코로 노획한 물건들 ─ 옷핀, 금발 인형, 가발, 빈 콜라병, 탐정용 돋보기, 야구 사인볼, 샌들 한 짝, 담배 파이프, 테러리스트의 복면 등, 온갖 문명의 잔해들도 자세히 적었다
그들의 다리는 굵고 튼튼하다 포도주를 짓이겨 대지의 부은 발등에 붓고 거친 나뭇가지와 뿌리를 씹어 엽록의 공장을 돌리고 낫처럼 휘어진 거대한 비뇨기로 곡식을 베어 눕힌다
그들에게 실향이란 없다 황혼이 오면 그들은 목울대로 움직여 그들의 사랑하는 악기, 튜바의 삼각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천 개의 코끼리 강을 부른다 달콤한 무릎 관절의 샘이 흰개미를 불러 모으듯, 다이아몬드 광산이 총잡이를 부르듯,
홍해가 갈라지는 아침, 찢어진 범선 같은 귀를 펄럭이며 한 무리의 대륙이 새로운 길을 찾아 천천히 이동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송찬호의 기록은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시로 각인된 듯하다. 그러나 이 시에 대한 해설은 아직 부족해보인다. 일면 난해해보일 수도 있는 이 시는, 그래서 다양한 독법을 허락하겠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힌다면 꽤나 명료하게 읽힌다. 이 시와 짝을 이루는 [만년필] 에서 시인은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현실에 발을 닫지 못한 공상의 언어와 함께 자본에 사로잡힌 시장의 언어까지도 모두 성찰하고있다. 하지만 "공원묘지에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후회의 글"을 쓰는 것이 시인이 처한 비루한 현실일 뿐이다. 상처를 다독이고, 지난날을 정관적으로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는 현실의 광포한 힘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이때 "한 마리 푸른 악어"는 시의 의미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비로소 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니체와 달리, 시인의 펜이 찍어 쓸 잉크는 피가 아니라 이 도시 밑을 흐르는 썩은 폐수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기록 이다. '코끼리'는 문명의 온갖 더러운 폐수와 거품처럼 실체도 없이 무한히 확대 재생산되는 자본의 음흉한 거짓 기호, 텅 비어 있는 시물라크르 속에서 탄생한다. '코끼리'의 정체를 밝히고 나면 시의 전모는 의외로 쉽게 드러난다. '코끼리'는 근대 이성적 주체이며 파괴적인 문명이다. 지금 이곳에서 자본의 가속도에 올라탄 채 미친 듯이 질주하는 자들이다.
근대성이 이룩한 문명의 세목들은 "옷핀, 인형, 가발, 빈 콜라병, 탐정용 돋보기, 야구 사인볼" 등 하나같이 쓸모가 없는 것뿐이다. 심지어 "테러리스트의 복면"처럼 폭력을 은폐하고 있다. '코끼리'는 그 튼튼한 다리로 자연 자원을 왜곡하고 파괴하면서 "거친 나뭇가지와 뿌리를 씹어 엽록의 공장을 돌리고" 급기야 소비재 산업을 일으켰다. 소비자들은 사용가치가 아닌 텅 빈 기호가치를 구매하게 되고 채워질없는 욕망은 과잉 소비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같은 것을 욕망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시장원리주의는 자본의 무제한적 확대 재생산을 이룩하게 된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이나 국가, 종교 등의 장벽은 의미가 없다. '고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자본은 그러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방해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차별적으로 붕괴시키려는 속성이 바로 시장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송두율은 '세계화'를 '지구화'로 바꿔서 불러야 한다고 권한 바 있다. '세계화'는 물질적 성장과 자본의 가치만을 미화하는 왜곡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도시(city)와 문명(civilization)은 '시비타스civitas'라는 라틴어 어원에서 파생되었는데, 모두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숲, 삼림을 의미하는 '실바silva'는 야만(savage)의 어원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담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의적으로 왜곡되어 사용되는
언어는 지배 전략을 강화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수단으로서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경쟁 관계를 하나의 가치로 떠받들고 있다. 근대 과학혁명이 계산 가능한 것, 분류하고 규범화시킬 수 있는 것만을 세계의 질서로 자리매김하면서 우리 안의 근대성은 '마법'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꿈을 깨고 난 이후의 '계몽의 세계는 전쟁과 학살, 차별과 소외, 불안과 망상의 끔찍한 현실을 맞이했을 뿐이다. 인과율과 수치화의 세계에서는 고유한 주체, 타자적 현존이 불가능하다. 모두가 획일화되고 모방적 욕망에 사로잡힌다.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모방적 경쟁 관계에 의한 차이의 소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이며 이러한 '나쁜 상호성'이야말로 폭력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 코끼리는 강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짝을 부르기 위해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가청주파수 바깥의 소리를 낸다. 네트워크로 전 지구가 연결된 세계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핸드폰 하나씩은 손에 들고 있다. 어디나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고, 전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 새로운 황금광시대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총잡이를 부르듯" 폭력을 불러들인다.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개념에 의하면, 1995년 영국의 도시 런던을 유지하기 위해서 120배
에 달하는 토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를 오랜 기간 동안 파괴하고 소모하면서 모든 것을 황폐화시킨 문명은 지중해와 유럽으로 건너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은 새
로운 대륙을 발견하면서 자기 자신을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과학 기술은 우리 눈앞에 매일같이 "동해가 갈라지는 아침"의 놀라운 세계를 펼쳐보인다. 과학 기술은 문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또 다른 대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치 스페인 '함선'이 라틴 아메리카를 향해 출함하듯이.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듯이. 그러나 자원이 다 고갈되어 또 다른 행성을 침략한 외계인은 다름 아닌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구 사회다. 영화는 그러한 진실을 은폐한다.
폐허가 된 지구를 서구 중심의 단일한 체계로 통합하려는 숨은 전략이 감동적인 승리자의 미소로 포장되고 있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비서구 사회에 대한 지배 전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상을 왜곡한 오리엔탈리즘이 어느새 우리 사회의 시선이 되고야 말았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쫓겨진 범선 같은 귀를 펄럭이며" 멸망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문명을 냉철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진보라는 이름으로 문명은 끝끝내 스스로 붕괴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시를 쓰지 못했다.(송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