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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목사 안수 문제
여자를 안수하여 목사로 세우는 문제를 놓고 한국교계는 그것이 신구약성경의 지지를 받는가에 대해 놓고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견해가 더 신구약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살펴본다.
1. 여자 목사 안수를 찬성하는 사들의 견해
1) 구약성경의 구절들
여자의 목사 안수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들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구약성경에 아론과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여선지자(출15:20)였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에서 여사사로 활동하였던 드보라(삿 4:4), 요시야 왕 시대에 활동했던 여선지자 훌다(왕하 22:14, 대하 24:22),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본국으로 귀환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할 때에 도비야와 산발랏이 느헤미야를 끈질기에 방해하였는데 이들의 편에서 느헤미야를 위협하고 괴롭게 하였던 여선지자 노아댜(느 6:14) 등의 기록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이스라엘의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온 후에 홍해를 건널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크게 찬양했던 인물이다.
여사사 드보라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을 때에 랍비돗의 아내인 드보라가 여선지가 되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치리하면서 납달리 땅 게데스에 사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격려하면서 가나안 족속의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전쟁을 하도록 지시하여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이 전쟁으로 가나인들에게 20년 동안이나 고통을 당하였던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여선지자 훌다가 활동하던 시대의 배경을 보면, 뜨거운 조국 사랑으로 눈물을 자주 흘리던 참 선지자인 예레미아와 스바냐와 같은 인물들이 활동하던 시대이다. 당시 남 유다의 왕은 제16대의 요시야 임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악한 정치를 하여 예루살렘의 거리를 피로 물들게 하였고, 그의 아버지 아몬은 22세에 즉위하여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치리하면서 자신의 부왕이었던 므낫세 왕의 악한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가 그의 신복들의 모반으로 궁중에서 비참하게 살해당하였다. 유다 왕국에 무서운 피바람이 일어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요시야는 불과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왕하 22:1). 그는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떠나 생활하였던 왕실의 비극과 죄악을 보면서 타락과 부패와 비극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겠다는 티 없이 고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요시야 왕은 개혁을 단행하기 위한 일환으로 먼저 성전을 수리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성전 수리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서기관 사반이 대제사장 힐기야를 만났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 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전달하여 읽게 하고, 그것을 다시 요시야 왕에게 보고 하여 읽게 하였다. 요시야 왕은 그 율법 책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두려 하여 자기 옷을 찢고, 대제사장 힐기야와 서기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대신 아사야에게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될 것인지를 여호와 하나님께 물어오도록 지시하였다(왕하 22:12).
요시야 왕의 어명을 받은 대제사장과 왕의 신하들은 곧 여선지자 훌다를 찾아갔던 것이다. 열왕기하 22장 14절에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저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하였더라 저희가 더불어 말하매”라고 하였다(왕하22:14). 당시에 매우 잘 알려진 대제사장과 참 선지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선지자인 훌다를 찾아간 것은 이 사건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곧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여선지자 훌다를 등장시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유다의 백성들로 하여금 깊이 인식하게 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하려는 것이었다. 요시야 왕의 마음을 모두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도 함께 하셨다. 그러니까 특별한 사건을 수행하기 위해 여선지자인 훌다를 세우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여 선지자의 제도가 보편적(일반적인) 직제와 관련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당시의 종교법(의식법)에 관한 직분의 제도만 보아도 여자를 세우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신약성경의 구절들
신약성경에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인 안나가 여선지자로 활동하였다(눅 2: 36). 가이사랴에 집을 두고 살았던 일곱 집사(헵타, 기본수 일곱)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에게는 결혼하지 않는 딸이 4명이 있었는데 모두 예언하였다(행 21: 8-10).
겐그레아 교회에는 일군(디아코노스, 시중드는 사람, 집사)이었던 자매 뵈뵈(롬 16:1)가 있었다. 이와 같이 신약 시대에 활동한 여성을 근거로 하여 여자의 목사 안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들은 여자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말씀들이 아니다. 여선지자 안나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탄생과 관련이 있고, 그 이외에 집사는 헬라어 ‘디아코노스’가 적용되어 있는데, 그 뜻은 ‘시중드는 사람’ 곧 ‘집사’를 뜻하는 단어이다. 초대교회나 그 뒤를 계승한 정통교회 시대에 ‘집사’는 감독(사도 및 장로)의 제자이거나 교회에서 성경을 읽어 주는 성직으로 감독을 따르는 부제(부사역자)였다. 디모데전서 3장 8절에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고 라고 하였다. 이 말씀에서도 집사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가 적용되어 있다.
3)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여자를 목사로 세운 사건에 관하여
여자의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분들은 유럽의 장로교회가 시작되었던 스코틀랜드의 교회에서 여자에게 안수하여 목사로 세웠던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는 근대시대에 일어난 일로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 조직에 하나인 세계교회협회(WCC)에 가입되어 있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여자를 안수하여 목사로 세웠는데, 이것이 교회사적으로 최초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여자 목사 안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4) 창조 원리에 관한 말씀이 여자의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창세기 1장 27-28절인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여자의 목사 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자도 동등하게 목사로 안수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남자와 여자는 권리 면에서는 동등하다. 모두가 동등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남녀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남녀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다만 남자와 여자는 신체 구조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인간 창조에 관한 말씀이 여자의 목사 안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인간 창조에 관한 말씀은 성직에 관한 말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가정의 대표자와 인류의 대표자는 남자 아담이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하였다. 여자인 하와가 사단의 꾀임을 먼저 받아 죄를 범하였으나 하나님과 행위언약(호 6:7)을 맺은 당사자이며 대표자인 아담이 죄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이 말씀 하나만 보아도 아담이 가정의 대표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창조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경은 최초로 부계(남자중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는 모계시대로 변하게 된다. 모계시대의 여자는 종족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여러 남성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갖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며 고대사회의 보편적인 관례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오래된 나라들의 역사를 연구하여 보면, 모계사회의 흔적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딸들은 동굴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종족‘(인종, 창 19:32)을 전달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근친상간에 속한 것이지만, 모계의 사회권에서 보면, 사회적인 이슈가 될 만한 사건도 아니었다. 성경의 이러한 기록은 모계사회에 있어서 종족의 전달이 그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기록인 동시에 종족 전달이 근친상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종족을 전달하지 못하면 그 종족은 멸망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다말은 자신의 시아버지인 유다를 속이고 창녀로 위장하여 동침하고 임신한 사건도 모두 모계사회권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러나 모세시대(레위기)에 오면서 모계는 다시 부계로 변하기 시작한다. 레위기 20장 12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 자부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였다.
5) 국적과 종족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라는 말씀을 가지고 여자의 목사 안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갈라디아서 3장 28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은 국적과 종족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곧 하나이다. 구원은 차별이 없다. 그러나 모든 차별이 없어 졌다는 이 말씀을 여자의 목사 안수에 관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구원에 관한 것을 설명하는 말씀이지 여자의 안수 문제에 관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6)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을 인위적으로 해석하여 여자의 안수 문제를 놓고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고린도전서 14장 34-25절인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 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당시의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이 받은 은사를 무질서하게 남용하고 있어서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권면한 말씀이다.
2. 여자의 목사 안수를 반대하는 견해
1) 신약성경이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3장 2절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하였다. 이 말씀에 보면, 감독(장로, 또는 사도)은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사도교회)의 보편적인 교회의 직분(직제) 중에는 여자가 없음을 뜻하는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초대교회사를 고찰하여 보면, 교회의 감독(장로)의 직분 중에 여자를 안수하여 세운 일은 없었다. 사도교회의 전통과 정통을 계승한 정통교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신구약성경에는 여선지자나 집사는 안수하여 세운 일은 있었다. 교회의 직분(직제)은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경우에 신구약성경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간접적인 근거에 의하여 여자에게 안수하여 세울 수도 있다고 본다.
이미 성경에 없는 권사 직분이나, 전도사, 강도사와 같은 직분도 보편화가 되어 있는 것과 같다. 한국교계는 전통적으로 여자에게 안수하는 것을 금지하여 왔다. 한국의 최초의 독노회는 1907년도에 33인의 선교사와 36명의 장로가 교회규칙을 제정할 때 목사와 장로는 세례 받은 남자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32년에 경안노회에서 여자의 안수 문제 건에 관하여 질의와 답변이 있었는데, 여자에게 목사 안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시 1933년도 함남노회에서 여신도 103인과 노회장의 명의로 여신도의 장로 자격에 대한 헌의가 올라갔으나 부결되었다. 1935년 제24회 총회 때에도 "여자는 장로가 될 수 없음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고 못을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여자의 장로 안수 건이 총회의 상정되자 1955년에는 여자 장로를 대체할 수 있는 '권사'제도를 신설하였으나, 여자의 장로의 안수 건 문제는 집요하게 지속적으로 청원하거나 헌의로 올려 졌으나 부결되었다. 그러다가 1994년 통합교단의 총회에서701대 612로 여자의 안수 문제가 가결됨으로써 여자 목사가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보수교단으로 알려진 재건측 장로교회에서1951년에 최덕지 여전도사를 목사로 안수하여 배출하였고,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56년에 여자 장로 제도를 채택한 이후에 1974년 제59차 총회에서는 "목사는 신앙이 진실하고 교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라고 가결하여 '교수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남녀 모두가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1977년 기장측 경기노회에는 양정신을 여자 목사로 안수하여 세운 이래 지속적으로 여자에게 안수하여 목사를 배출하였다. 현재 이러한 영향을 받은 여러 장로교의 교단들도 여자에게 안수하고 있다. 감리교단에서는1931년부터 여자에게 안수하여 목사로 세웠다. 대한예수교성결교회 측에서 2003년에 여자의 안수 건을 가결하였고, 기독교성결교회측도 2004년에 여자의 안수 건을 가결하였다. 루터교회에서도 1965년도에 여자 안수를 허용했고, 성공회에서는 1975년도부터 허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성으로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은 말도 안되는 신구약성경의 구절들을 내세우면서 여자 목사의 정당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신앙양심을 속이는 일이다. 다만 몇 가지의 측면에서 여자를 목사로 안수하는 문제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첫째는, 신구약시대에 어떤 이유가 있었거나 여자의 선지자가 존재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초대교회시대에 집사에게 안수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의 집사도 성직이었으나 부제(부교역자)에 불과하였고, 교회에서 성경을 읽어 주는 정도의 성직이면서 교회의 감독을 보필하는 성직이었다.
셋째는, 현재의 목사 제도가 구약시대의 제사장직 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넷째는, 조직신학에서 가르치는 인간론으로 볼 때에 지구촌의 모든 인간들은 전적으로 타락하였다는데 있다. 목사를 포함하여 인간은 모두가 같은 입장에 있다. 고상한 척 행동해도 인간은 타락의 속성을 가진 실존이다. 이 점에 있어서 남자나 여자는 동일하다.
결론으로 말하면, 초대교회(사도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계승한 정통교회에서는 여자를 목사로 안수하는 사례가 없었다. 교회사를 연구하여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 할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은 신앙에 유일무이한 법칙인 신구약성경과 교회사(신앙인들과 발자취)에서 보편적으로 가르쳐 온 전통과 정통이 매우 중요한데, 여자의 목사 안수는 교회사적으로 정통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는 정통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비진리는 아니다.
여자의 목사 안수를 반대하는 쪽이 더 일리가 있으나 100% 옳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신구약성경에 여자 선지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목사직이 대제사장 직분과, 왕직과 선지자직을 계승한 것으로 믿고 권위주의만 내세우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직분(대제사장직, 왕직, 선지자직)을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동전의 한 면만 보고 우기는 것도 문제가 있다. 교회의 직제란 그 시대가 필요로 하면 만들면 되는 제도라고 본다.
한국기독교정보학회
카페지기 안병삼 목사~~~
첫댓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장로, 집사직분도 함부로 세우는 것 같습니다.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되며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책망할 것이 없으며
방탕하지 않고
믿는 자녀를 둔자이며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먼저 시험하여 보고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등의 말씀을 보니
솔직히 나는 직분 맡을 자격에서 제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