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에서] 촉구(促求)되다
해마다 학교에서 3·4학년을 대상 방과 후 첫영성체 교리반을 개설한다.
물론 소속 본당 신부님께 허락을 받고 시작한다. 첫영성체를 준비하기 위한
교리반인데 뜻밖에 세례를 준비하는 어린이가 많아 때로는 절반을 넘기도 한다.
세례받고자 하는 어린이 중에는 부모님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데 스스로 세례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경험하는 가톨릭 미사와 매일의
기도, 전례 행사 등에서 종교적 영향을 받는다. 또 모든 어린이에게 열려 있는
아침 기도 동아리 ‘리틀 메리’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이타적인 마음과 신앙을 갖게 된다.
학급에는 회장·부회장·부장 등 임원들이 있는데 그중에 종교부장은 반드시 가톨릭
신자여야 한다. 신자가 아닌 어린이에겐 이국적인 세례명을 갖고 종교부장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자발적으로 세례받고자 하는 동기가 된다.
세례를 원하는 어린이의 부모들 반응은 실로 다양하다.
굳이 자녀의 신앙 선택을 말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어린이로 말미암아 신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랜 냉담을 풀고, 교적을 찾고,
조당을 해소하여 자녀의 세례를 준비하는 것이다.
자녀의 요청으로 영세 입교를 하는 부모도 있는데, 올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삼대가 입교한 사례도 있다. 교리를 배우며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동안 어린이들에
게서 볼 수 있는 놀라운 변화에 대해 담당 수녀는 춤추는 듯한 눈빛과 상기된
목소리로 그 체험을 나누어준다.
우리 수녀회의 교육 비전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 그리고 우리의
풍요로운 교육유산으로 촉구되어⋯’라고 시작한다. ‘촉구된다’는 것은 ‘급하게
재촉되어 요구되는’ 것이다. 작은 학교에서 작은 어린이들이 체험하는 하느님의
좋으심과 섭리적인 돌보심에 대한 신앙의 열매들은 교회 사명과 수녀회의 카리스마
실현에 투신하는 수도자에게 지속적인 촉구로서 환원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박원희 수녀 (노틀담 수녀회, 인천박문초등학교 교장)
보도: 가톨릭평화신문 2024. 11.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