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가운데 13명의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지난 2010년 선거에서 6명이던 진보 교육감이 두 배 이상 늘어나는 셈.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 결과를 보면 서울, 부산, 광주, 경기, 강원, 충북, 전북, 전남, 경남, 세종, 제주, 인천, 충남 등 13곳에서 진보 성향 후보의 당선되었다.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진보 교육감이 가장 많이 배출된 선거다. 그 이유를 정교하게 따져 보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교사 및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대략적인 윤곽은 떠오른다.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첫 번째 진보진영 단일화다. 한 교육학 교수는 말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데, 교육감 선거에선 반대다”라고. 흔히 진보가 분열하는 이유는 노선 갈등인데, 교육 영역에선 이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육운동 진영에선 여전히 전통적인 정파 갈등이 있다. 그러나 그게 복수의 진보 후보를 낼 정도의 갈등으로 확대되지는 않는다. 지나친 입시 경쟁, 서열화, 교육을 통한 계층 대물림 등을 부추기는 보수 진영의 교육 논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워낙 강렬한 탓이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 후보 단일화를 하기란 쉽지가 않다. 전직 장관, 대학 총장도 탐내는 자리가 교육감이다. 의전 서열로는 장관보다 아래지만, 지역사회 및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뚜렷한 명분과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선 고위직 출신 인사의 출마 의지를 꺾기가 쉽지 않다. 반면, 진보 진영에선 지금과 같은 한국 교육에 반대하는 공감대가 견고하다.
진보 교육감 당선은 상당부분 단일화 덕분이다. 당선이 확실시, 또는 유력한 13명의 진보 교육감 가운데 과반수 득표를 한 경우는 전북 김승환(54.4%), 전남 장만채(55.5%) 정도에 그친다. 대부분 30%대 득표를 했다. 보수 성향 표가 갈라졌기에 당선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교육 영역에서 진보를 지지하는 여론이 당장 확대될 가능성은 낮으므로, 앞으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당선 여부는 ‘진보 단일화-보수 분열’이라는 공식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두 번째는 세월호 사건이다. 선거에서 정치공학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게 전부라면, 우리는 선거를 할 필요가 없다. 선거는 결국 민심의 반영이다.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단일화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만 작동한 민심 변수를 찾아야 한다. 그게 세월호 참사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진보 교육감 약진 배경으로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들의 집단적인 성찰을 꼽았다. 경쟁 중시, 우승열패, 엘리트 지향 등으로 요약되는 주류보수 진영의 교육논리에 회의감을 품는 이들이 최근 크게 늘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간 세월호 선장이 남긴 충격 탓이다.
아울러 헌신적이고 진정성 있는 교사에 대한 갈증도 더 커졌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대피시키다 목숨을 잃은 고(故) 남윤철 교사 등이 남긴 감동 덕분이기도 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진정성, 헌신성 등의 항목에서는 진보 성향 교사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진보 교육의 간판 격인 전교조에 대해 적대적인 이들도 전교조 교사들의 진정성, 헌신성 등은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전교조 교사들의 이념 성향 또는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싫다는 식이다. 진정성, 헌신성 등의 가치가 부각되면, 아무래도 진보 후보에게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진보 교육감에대한 재신임이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교육감은 모두 6명이다. 서울 곽노현, 경기 김상곤, 강원 민병희, 전북 김승환, 광주 장휘국, 전남 장만채 등이다. 이 가운데 곽노현은 이른바 ‘사후매수죄’에 걸려 낙마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지지율도 높다. 서울과 경기 역시 진보 교육감 당선이 확실해졌다. 이는 진보 교육감에 대한 시민의 재신임이라고 볼 수 있다. 진보적인 교육행정을 현장에서 경험한 이들은 계속 지지한다는 뜻이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혁신학교, 무상급식 등 진보 교육감의 정책이 낳은 변화를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 서울 등에서는 혁신학교 주변 집값이 오르는 일도 흔했다. 그만큼 반응이 좋다. 물론, 진보 교육감의 간판 상품 격인 ‘혁신학교’에 대해 적대적인 학부모들도 있다. 그런데 적대의 근거는 대체로 이념적인 경우가 많다. ‘전교조 학교 아니냐’라는 식이다. 반면, 찬사의 이유는 대체로 실질적이다. ‘학교 폭력이 줄었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등이다. 아무래도 이념과 실질이 부딪히면, 실질이 이기기 마련이다. 그간 진보 교육감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거둔 성과가 입소문을 탔고, 진보 교육감의 재선은 그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지난 선거에서 보수 교육감을 지지했던 지역 주민들이 이번에는 진보 교육감을 지지한 것은, 이런 입소문이 확산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