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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동아시아 수나라 전투병 100만대군 동원은 가볍게 나온다.
수양버들피리 추천 0 조회 1,438 12.04.18 16:41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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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2.04.18 22:33

    게임

  • 12.04.19 18:45

    밸런스

  • 12.04.18 17:13

    고중세 전투에서 대국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기 힘들었던 것은 보급병참 문제가 큽니다. 백만을 먹이려면 꽤나 계획적, 과학적 관리가 필요합니다. 유로파에서 보급한계로 몰살당한 경험 있으시면 아실듯.

  • 12.04.18 19:26

    이거 제가 예전에 역게에서 한참 다루었었는데 ㅎㅎ;;
    2차 고수전에서
    전투병을 따지면 <중국식 뻥튀기 => 200만 / 구체적인 기록 => 113만>
    즉 수양제가 200만이라고 뻥카치고 다녀서 요동성 군민들은 적 전투병 200만 대군이 온 줄 알고 싸웠다능~!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 조상님들 ㅠㅠ
    보급병 200만
    수나라 시절이 매우 풍족한 시기였고 113만 정도는 꼴아박아줘야 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113만 전투병에 200만 보급병 설을 지지합니다.

  • 12.04.18 19:32

    물론 그 당시에는 농민병이 전 계적인 대세(?)였지만 수나라는 서쪽 남쪽 북쪽을 평정하면서 단련된 수많은 정예병과 백전노장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단 절대로 아무리 전근대시기 통일 중국이 킹왕짱이라고 저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만!
    절대로 100만 전투병을 가볍게 동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로 수나라가 망했지 않습니까?
    3차 침공을 시작하던 시기에 이미 수나라 안(內)에서 반역과 반란이 일어나고 흔들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보면 2차 침공에서 절대로 가볍게 100만 전투병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 12.04.18 19:37

    몽골은 유목민이라서 그 만한 인구에 그만한 병력을 뽑아서 원정을 갔고 고구려는 엄연히 방어전이고 게다가 황폐해지기까지 했죠. 정착 주거민(줄여 정주민)인 수나라가 100만으로 '원정'을 간 것이랑 앞에 두가지는 엄연히 다르지요. 티무르는 다른 분이 말씀 점. ㅠㅠ
    나 중양 맹탕임 ㅠㅠ

  • 12.04.18 22:35

    113만명중에 대다수는 보급병이고 한 40만정도는 전투병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12.04.18 20:34

    왜케 읽기가 힘든 글이었누...ㅠㅠ

  • 12.04.19 14:25

    특히 정주민이 원정을 갈 경우 거리가 멀거나 부대 규모가 클수록 보급대가 소모하는 식량의 양도 늘어나죠. 100만이라.. 100만명이 하루 주먹밥 하나만 먹는다해도 한달분량이면 주먹밥만 3000만개. 여기에 보급대가 소모할 양까지 편성해서 출발해야하니 원.. 그렇다고 길이 잘 닦인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 12.04.23 02:07

    빅토리아나 유로파를 해보면 이동하는데 탈영하는 아름다운 자들 때문에 돌아버리죠. 어떨 때는 탈영병이 싸우는 병력보다 많을 때도 있고요.

  • 12.04.19 16:59

    마이 아이~~ 마이 아이~~~

  • 12.04.19 20:02

    그리고 중요한게 저 당시 국가 기반 산업은 농업이고 농업은 젊은 농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즘 농촌이야 기계도 쓰고 하니까 노인 분들이 어떻게 꾸려나가시는거고.) 군대로 100만을 징발한다는건 저 젊은 남성층을 100만씩 쑥 빼갔다는 거니 그 해 농사는 작살난거죠. 군대 보급이 문제가 아니라 그 해 나라 전체가 식량난을 어찌 해결할지부터 고민해야할 겁니다.

  • 12.04.20 19:22

    대신 그 당시에는 평균수명이 짧아서 인구의 절반은 젊은이가 아닐까 하는...... 그 중에 절반은 남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당 ㅎㅎ

  • 12.04.21 00:43

    한해농사 지어야하는데 그만한 군사 뽑아내는데 시일도 걸리고 돈도 많이 들거니와 윗분들이 언급한 보급(말 건초는 어디서 구할것이며, 식량은?)은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그리고 중궈의 그 흔한 숫자놀이떄문에 그닥 신뢰가 안가서 30만이 적정으로 잡습니다.

  • 12.04.22 05:53

    ... 사고 실험으로는 우주도 정복할 수 있음.

    "그게 실제로 그런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 12.04.22 22:46

    요는 영토안의 자원으로 영토를 지킬 군대와 상부행정구조를 어느만큼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기술수준이 낮고 생산력이 미비하던 시대에는 단지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를 파탄나게 할 수 있었지요. 특히 중국같은 큰 덩이의 국가는 많은 자원의 혜택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사방의 외적을 상대로 방대한 외곽지대를 방어해야 했고 대규모 군대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국방과 행정조직 유지에 과중한 부담을 안고 있었지요. 여기에 귀족이나 지방토호가 왕실보다 세를 더늘리고 건전한 자영농민을 노비로 전락시켜 국가재정을 좀 먹는다던가, 군사기술 혁신으로 무기제작비가 치솟는다던가,

  • 12.04.22 22:46

    군비는 그대로지만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고 분배하는 행정기술이 후퇴하여 재정난을 겪던가..모든 분야에서 전왕조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주변 외적들이 수준이 높아져서 약세가 되던가 등등...많은 변수로 나라가 기울어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자원의생산(농업기술), 조직을 이용한 재분배(정치 행정기술), 군사부문(군사기술) 등에서 주변국보다 하나라도 앞서면 다른부분을 어느정도 상쇄도 가능한 것으로,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의 결과는 결국 고구려의 생산력/동원력/행정/축성/군사기술에 대해 원정군인 수나라의 생산/동원/행정/병참/공성기술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보여준 것이죠. 이는 수나라 초기의 위협이었던 돌궐족의

  • 12.04.22 22:43

    취약한 정치적 응집력에 대해 뛰어난 외교술로 이들 세력을 분산한 것과는 대조를 보입니다.
    특히 병참문제는 고대중국사회에서 언제나 문제가 많았는데..백성들에게 부과되던 요역들중 가장 치를 떨고 싫어하던 요역이 바로 운송역이고, 죽거나 도망치거나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 였다고 합니다. 식량이 풍족하게 나는 남부나 동쪽해안지대에서 황하 북부 변두리의 만곡부까지 군량미를 운송하는데 드는 비용이 많을때는 운송하는 내용물의 192배가 들기도 했는데, 동북지역에서 10말의 곡식을 수레로 운송하는데 2명의 짐꾼이 필요하였고, 고구려등의 원정시는 최악의 험로를 더 멀리 이동해야 했으므로 그 비용의 과중함이 상당했을 것입니다.

  • 12.04.22 23:09

    ...부강함으로는 수문제 시기에 맞먹었던 당현종이 안사의 난때 장안을 빼앗긴 후 이걸 탈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주변국가들에 돈 막 퍼주고 병력 꾸어오기까지 해서' 긁어모은게 15만이였음. 이걸로도 '조낸 후덜덜한 군대라서 이거면 낙양까진 여유있게 밀고 나갈듯요' 하는 말이 나오는 판이였는데.

  • 12.04.25 09:44

    안록산에 의해 장안이 털린 후라면 당나라 군대가 완전 소멸당하고난 뒤니 비교대상으론 좀..

  • 12.04.25 14:50

    당군이 소멸했다기엔 좀...

    당은 토번, 돌궐과 장기간 대립하다보니 서북방 군대가 가장 강성한 편이였고, 비록 당현종의 삽질로 동관을 나서면서 하서-농우 번진군이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북정, 안서4진, 삭방번진의 군대가 거의 그대로 온존되어 있었습니다. 단결/단련병처럼 금방 초모한 병력이나 자경대가 아닌, 프로페셔널 군바리들은 여전히 많았다 이말이죠.

  • 12.04.24 08:28

    인구 보다는 행정체계의 문제죠. 개인적으로는 좀 힘들지 않았나 생각하네요.

  • 12.05.03 22:34

    서양 이야기만 해서 좀 그렇지만 보급전의 역사 읽어보면 보급이 얼마나 킹왕짱 어려운지 알수있음. 서양 이야기만 해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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