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실내화
같은 교육기관이지만 초중고와 대학이 다른 점은 여럿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수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초중고에서는 교실이라 하고 대학은 강의실이라 한다. 초중고는 학교 건물에 들어설 때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서며 대학은 그냥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간다. 초중고에서는 학생들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자기 교실 앞까지 가서 신발장에 넣고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시청이나 동사무소 같은 관공서는 대학과 같이 청사 안으로 신발을 신은 채 들어서도록 되어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는 다른 초중고와 마찬가지로 교사들도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나를 비롯한 동료들이 학교를 옮겨갈 때 두 가지는 꼭 챙겨야 한다. 출근 후 매일 신고 퇴근 때 벗어두는 실내화다. 다른 하나는 점심 식후 양치를 할 때 쓰는 치약과 칫솔과 물 컵 정도다.
나는 현재 근무하는 학교가 5년째다. 그 이전 근무지에서 2년간 신었던 실내화를 가져와 3년간 더 이어 신었다. 그 실내화는 5년간 두 곳 학교를 거치면서 나의 발바닥을 받쳐준 고마운 존재였다. 5년을 신었더니 등이 닳고 바닥이 헤져 수명이 다했다. 나는 그 실내화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을 때 다음에 신을 실내화 한 켤레를 사 두었다. 그것은 우리 집 신발장에 보관해 놓고 있었다.
작년 봄 신학기였다. 나는 너덜하게 떨어진 실내화를 버리고 새 실내화를 가져가 바꾸어 신었다. 신학기 첫날을 산뜻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새로 신은 실내화는 그럴듯한 제조회사 제품이 아닌 길표 실내화였다. 어느 날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시장을 봐올 때였다. 집 근처 노상에 트럭으로 운동화와 실내화를 실어와 파는 행상이 있었다. 그 트럭에 가득 실린 신발에서 고른 것이다.
신발을 팔던 상인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 했다.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한 운동화와 실내화를 한 켤레 만원에 팔았다. 우리나라 운동화나 실내화라면 그 돈으로는 살 수 없을 만큼 싸게 팔았다. 나는 학교에서 신고 있는 실내화가 언제인가 다 닳으면 바꾸어 신을 생각으로 내 발 크기에 맞는 실내화를 하나 골랐다. 그 실내화는 한동안 우리 집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가 빛을 봤다.
학교 출근하면 새로 바꾼 중국산 실내화를 신고 매일 교실을 오르내렸다. 처음엔 새 신발이라는 선입견이어서인지 착용감을 좋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몇 달 지나고 나니 신발 재질이 딱딱해 그렇게 오래 신을 실내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식 게다처럼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근무시간 내내 신는 실내화이기에 조금이라도 불편해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오면 안 되는 실내화였다.
며칠 전부터 학교에 출근해 복도를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니 왼쪽 발을 끌었다. 주말에 노동과 산행을 무리하게 해서 그런가보다 여겼다. 나는 왼쪽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시큰거릴 때가 있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왼쪽 다리를 살짝 절거나 기우뚱하게 걸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신발을 끌며 걸었던 것은 무릎이 불편한 탓도 있었지만 왼쪽 실내화의 밑바닥 접착이 떨어져서였다.
어제 퇴근길이었다. 현관에서 실내화를 벗어 신발장에 두고 신발로 바꾸어 신을 때였다. 내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고 실내화를 올려둘 무렵 왼쪽 실내화 뒤축이 갈라져 너덜너덜해진 것을 발견했다. 아하, 요 근래 며칠 학교에서 실내화를 질질 끌고 다닌 게 무릎이 아파서라기보다 실내화가 떨어져 그런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래, 언젠가 실내화를 바꾸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나는 오늘 퇴근길 실내화를 하나 구해야겠다. 집에서 가까운 반송시장에 가면 실내화를 파는 가게가 한 곳 있다. 그곳으로 가지 않고 시내로 나가볼 요량이다. 그렇다고 백화점으로 나가 유명회사 제품을 고를 생각은 없다. 할인매장 일상 생활용품 코너에서 수수하고 실용적인 국산 실내화를 하나 고르련다. 이번에 사 신게 될 실내화가 내가 교단을 내려설 그날까지 신을 수 있으려나. 1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