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독주를 듣고
시작 시간이 지났지만 2024년 1월 17일 오후 3시쯤 평소 애청하는 KBS 1FM의 명연주 명음반을 틀었다. 몇 곡 이어 듣다가 후반부에 집중 감상곡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 늘 '집중'이라는 낱말 때문에 기다리게 되고 다른 곡과는 달리 관심을 갖고 듣게 된다. 진행자가 소개한 집중 감상곡은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이었는데 생소한 곡이었다. 먼저 연주자인 루지에로 리치 Ruggiero Ricci를 소개했는데 진행자가 어렸을 때 한국 무대에서 보았던 리치의 연주 모습을 이야기했다. 연주 자세가 다른 연주자와는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어깨 너비로 발을 디디고 서서 거의 아무런 움직임 없이 연주하는 모습이 특이했다는데 보통 연주자들은 선율에 따라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데 '리치'는 그렇지 않았다는데 표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왜 그랬을까. 악기가 뭐든지 간에 보통 연주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몸을 움직이는데 그에게는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이 나타내고자 하는 섬세한 감정을 손가락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온 정신을, 악기를 다루는 손가락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는 하지만 중요도를 따지면 바이올린 자체의 소리가 아닌가. 그 소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연주자도 정적인 악기를 닮아 가야 하지 않을까. 몸을 전체적으로 움직이면서 손가락을 움직이면 아무래도 힘과 주의가 분산되어 집중도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손 외에 다른 부위를 움직이면 미세한 음정 변화에 집중해야 하는 근육의 움직임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주하는 곡의 깊이를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연주하는 내내 자기가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몸을 움직이면 방해가 때문이 아닐까. 뭔가 중요한 내용을 들을 때 분위기가 부산스러우면 되겠는가. 온 정신을 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꼼짝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리치'도 가능한 한 움직임을 절제하면서 손과 팔 부분만 움직이며 연주했으리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연주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음반이나 라디오로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대를 잊고 오로지 음악-청각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청각예술은 시각예술과 달라 몸의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 아닌가. 누가 연주하든지 간에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조용한 가운데 청각적인 면만 집중하는 것이 음악 감상하는 사람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생각을 좀 확대해서 보면 예술 작품의 경우에 그 가치를 평가할 때 너무 작품 자체보다는 주변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화려한 경력과 관련하여 창작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관념이 크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가 만든 작품이 모두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좋다더라라는 군중심리가 작용하여 무조건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작품 그 자체만 보고 평가할 수 있는 감상 능력이 부족한 일반 대중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기 쉬울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이 너무 심하면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문화 전반이 정체되어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막음으로써 사회 발전을 더디게 할 것이 아닌가.
고독한 연주,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연주를 듣고 보니, 관현악 연주에 필요한 모든 악기들이 이런, 외로운 연주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각 악기의 개성적인 소리가 더욱 갈고 다듬어지고 그 과정을 거침으로써 관현악단이 연주할 때는 최상의 음악으로 완성될 수 있어 청중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의 일원인 개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울려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각자가 독서 등의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이 사회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글쎄요 나는 연주자나 작곡자의 개성과 음악적 성취보다도 내 귀에 들려 올 때 가슴을 울리는 느낌이 있나?
로 따지기 때문에 그런 쪽에 관심을 가져 본적 없습니다
개인의 악기 연주가 모여 관현악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이지요. 마치 이 사회의 소중한 일원인 우리들처럼 개인의 연주기능이 중요한 것이지요. 음악적 센스가 잘 드러난 글에 공감합니다.
풋볼님님 Evergreen, 방문 감사!
수필은 길어 시조에 비해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시조는 짧은 문장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수필로 이어집니다.
가슴을 울리는 느낌, 풋볼님 말씀대로 글도 그러한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