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죽과 멥쌀 20키로
한국교회에는 아름다운 신앙 유산, 곧 전통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모습이 성미(誠米)입니다. 지금은 시대 변천에 따라 달라졌지만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작은 교회의 성미는 목회자의 양식이 되었지요.
또 다른 것은 새벽기도회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이 시작하신 것으로 알려진 새벽기도회는 계승하고 유지해야 할 기도의 전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농경 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오늘날 새벽기도회 시간은 각 교회의 상황에 맞게 조정할 필요는 있지요. (예컨대 저희교회는 4월부터 10월까지는 새벽 5시로 하지만 동계에는 새벽6시로 변경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국교회의 좋은 전통은 봄, 가을로 행하는 대 심방이라 여깁니다.
물론 요즈음의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가정 방문을 기피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들을 전해 듣지만, 그러기에 젊은 세대들을 위한 맞춤 심방 전략도 필요하지요.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가정을 찾아가서 예배하다 보면 그 가정의 독특한 분위기나 정서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기에 목회자가 일년에 한 두 차례 정도는 가정 방문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여깁니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지난 20년부터 저희도 대 심방을 자제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는 사회적 분위기도 완화되었기에 가을철 심방을 금주에 행했습니다.
교우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드는 생각은 아직까지는 그래도 목회자를 존중해 주려는 문화가 일반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목회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려는 모습이 감사함과 더불어 가능성을 보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본 교회 교우 중에 깊은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분 가정을 심방하려고 찾았습니다.
이 분은 읍내까지 나가려면 30분이상을 나가야 함에도 읍내의 직장을 열심히 다니며 몸된 교회를 신실하게 섬겨나가시는 분입니다.
예배를 마치자 그분이 강냉이로 죽을 끓여보았다며 한 그릇씩 대접하는 것입니다.
모친께서 강원도 정선이 고향이셔서 어린 시절 먹어 보았던 강냉이 범벅(죽)입니다. 부군되시는 분이 한마디 하시는 말에, 강냉이 죽은 별미를 넘어서 심방대원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임을 느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이거 하려고 야단법석이었어요.”
사실 강냉이(옥수수)죽을 만들려면 일단 옥수수 알갱이들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나아가 껍질을 벗기고 팥을 삶는 등, 한 그릇의 죽을 위한 수고는 손이 많이 가야 하는 노동입니다.
그러한 설명을 들으며 먹으려니 그 정성과 사랑이 참 고마웠습니다.
강원도 별미를 맛나게 먹고서 또 다른 가정을 심방하는 중에“목사님! 쌀이 도착했나요?”라는 카톡을 받았습니다.
자세히 보았더니 오지랖 사역에 성심껏 협력하시는 한 분이 멥쌀 20키로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잠시 후 사택 문앞에 놓인 쌀 자루를 확인했더니, 전남 화순에서 보낸 20키로 한 자루였습니다.
시골교회 목회자 가정을 위하여 특별히 주문하여 보내 주신 그분의 정성과 사랑에 감동입니다. 사실 오늘날에는 주변에 먹거리가 흔한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타인을 위하여 댓가를 기대하지 않고 사랑을 흘러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입니다.
사실 지난 주 금요일, 한 교우 가정에서 양구쌀 20키로를 차에 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에는 아직 쌀이 남아 있기에, 같은 노회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은 교회로 당일 보내었습니다.
택배로 도착한 쌀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이었습니다. 거저 얻은 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흐르게 했더니 이런 방법으로 채워주시는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귀한 마음으로 섬겨 주신 분의 사랑과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귀한 쌀 나눔 사역에 미비한 손길을 보태려고 합니다. 계좌 번호 알려주시면 20만원 송금하겠으니 귀한 사역에 보태기를 바랍니다.”라며 지인 목사님 한분이 보내 오신 문자입니다.
학생 선교 단체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섬김을 받기가 부담스러워 마음만 받겠다 하자 재차 종용하셨습니다.
그분의 섬김으로 최전방 동부전선의 부대를 섬기는 민간인 군 사역자 세분 가정으로 양구 오대미 20키로를 보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 주 동안 주신 선물을 흘러 보낼 수 있고, 또한 사랑의 섬김을 받을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구나 싶어집니다.
나아가 무명의 시골교회 목사를 믿어주시고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여러분들의 섬김과 사랑을 새기며 달음질해 나가려 합니다.
바라기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인정받는 인생, 곧 녹슬어 없어지기 보다 닳아서 없어지는 생애이길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