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시인의 시 3편
진주에서 개양 넘어가는 고갯길을 사람들은 세비리 모티(모퉁이)라 부른다. 발 아래 남강과 도동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 곳에 <한국시조문학관>이 있다. 관장은 1974년에 <素心>이란 첫시집을 낸 김정희 시인(시조)이다. 우연히 그 분이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소심란(素心蘭) 판각화의 주인 추사 김정희와 동명이인이다. 하필이면 두 분 다 '蘭 중의 蘭' 소심난을 좋아한 모양이다. 하얀 소심난의 향기를 맡으면 세비리 모티 생각나고, 기와집 문학관 김정희 노시인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런데 이번에 <진주 사랑 한국작곡가회>에서 가곡집 내면서 김정희 노시인의 시 3편을 실었다고 한다. 옳치 싶었다. 옛날 마산 鷺山 李殷相 선생은 <가고파>란 노래말을 썼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가곡 가사는 원래 년조 높은 시인이 써야 좋다. 그래 진주 素心 김정희 시인이 적격인지 모른다. 참 잘된 일이라 가곡집에 실린 시 3편을 소개한다.
달무리 여울지는 어스름 달밤이면 눈물 고인 눈매로 찾아가는 금호호수
그 옛날 여윈 사람을 만날 수가 있을까
비단 안개 헤치며 꿈길에서 만난 그대 월아산 봉우리에 휘영청 달 띄워놓고
거문고 맑은 가락에 피리 불고 있었다
먼 훗날 만나리라 새끼손을 걸었던 갈대는 목을 꺽고 바람결에 휘둘리고
물가에 핀 달맞이꽃 초릉등불 밝혔다
산이 되고 별이 된 아름다운 이름이여 해 지면 만날거나 달 뜨면 만날거나
산이 되고 별이 된 아름다운 이름이여 해 지면 만날거나 달 뜨면 만날거나
물 안개 피워올리며 꿈을 꾸는 금호호수 물 안개 피워올리며 꿈을 꾸는 금호호수
두 손을 고이 모아 기도를 올립니다 저승길 강나루에 어둠을 밝힙니다
그 곁을 맴도는 바람향을 실어나릅니다 사무친 그리움에 뼈마디 녹습니다
마음을 한데 모아 중심을 잡습니다 하늘은 더 높은 곳에서 꽃비 내립니다
바람은 고요의 손 잡고 말 없이 사라집니다
앞 산은 그 자리에서 늘 그대 이름 부르고 그날 떨어진 꽃잎은 물거울에 아른거린다
매운 향 징소리 울리며 떠나간 그 여인 이 물에 저 강물에 얼비친 하늘 한쪽 있다
흰구름 흘러가는 곳 늘푸른 눈동자로 해와 달 맞이하면서 별이 된 그 여인이
앞 산은 그 자리에서 늘 그대 이름 부르고 그 날 떨어진 꽃잎은 물거울에 아른거린다
물거울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