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나미입니다. 혈육과 고향을 찾아주세요’ 캄보디아에서 살아온 일본군 위안부 출신 ‘훈’할머니가 반세기만에 1997년 8월4일 조국땅을 밟았다. 이후 고국방문 25일째인 8월 29일 가족과 상봉, 이남이로 밝혀진 그녀는 위한부 하나코에서 캄보디아 훈할머니로 지내다 다시 이남이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경남 진동에서 태어난 훈 할머니의 어릴 적 이름은 이남이였다. 그녀가 16세때인 1937년 위안부로 강제연행됐다. 처음 보내진 곳은 일본이 42년 2월 점령한 싱가포르. 그곳에서 하나코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전쟁이 끝나고 그녀는 캄보디아 남자와 결혼해 어려운 삶을 영위했다. 그녀는 살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이 위안부라는 사실과 신분을 숨겼다. 1997년 6월 13일 캄보디아 신문 ‘프놈펜 포스트’에 1943년 일제에 의해 캄보디아에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여성이 수도 프놈펜 교외의 한 마을에 생존해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일보가 다음날 이를 특종으로 보도했고 국내에 알려졌다.
그녀는 1998년 5월 영구귀국한 뒤 경북 경산 조카 집에서 4개월가량 머물다 그해 9월 캄보디아로 되돌아 갔다. 이후 신병치료차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1년 77세로 캄보디아에서 사망했다
|도쿄 박홍기특파원|필리핀 국회 상원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강제동원된 자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 정부에 사죄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했다고 교도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필리핀 하원도 이달 안에 결의안을 올릴 방침이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및 보상, 필리핀 정부에 대한 의료 지원 등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리핀의 위안부 관련 단체들은 지난달 통과한 미국 하원 본회의의 위안부 결의안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필리핀 상·하원의 움직임에 대해 적극 환영하는 성명을 냈다. 또 ‘일본의 정치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일본은 미 하원 결의안의 취지에 따라 새 의회가 위안부 보상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과 항일의병전쟁, 3.1운동,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간도참변(間島慘變), 4월 참변 등 과정에서 몇만명씩이 희생됐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대부분 정확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오는 10월 말이면 일제에 의해 자행된 주요 학살사건 때 희생된 한인의 규모가 어느 정도 자료를 통해 규명될 전망이다.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가 후기의병 100주년을 기념해 '항일민족운동과 일제의 한인 학살'이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연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국내 교수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까지 참여해 일제가 자행한 한인 학살의 규모와 상황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충청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국사학과 김상기 교수는 "일제에 희생된 한인들에 대한 규모와 피해상황에 대해서는 통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해방 이후 양민학살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계의 조명을 받지 못해 왔다"며 "이번에 일제가 한반도 침략과정과 대륙 침략과정에서 자행한 학살의 구체적인 실상을 밝혀 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는 한편 역사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후세 교육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의 한인 학살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에 이어 11월에는 역사학자들이 중심이 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국제 학술대회도 열린다.
그동안 위안부 관련 단체들이 주도한 학술대회는 몇차례 마련됐지만 역사학자들이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폭력성과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이번 학술대회를 주최하는 한국근현대사학회는 네덜란드와 대만, 중국 학자들까지 동참시켜 동북아 뿐만 아니라 동남아, 유럽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 동원실태 등을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첫댓글 침묵하는 친구가 더 밉다.... 음 가슴에 팍 하고 와 닿는 말이네요... 마지막에 눈물날뻔 했어요.... ㅠㅠ;;
ㅇ ㅏ정말 건강도 안 좋으신데,,하루라도 빨리 일본정무의 사과를 받아야하는데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