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구성된 혈구와 액체 성분인 혈장으로 나눌 수 있다. 혈소판은 혈구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으며 피 1 마이크로리터 속에 15만-40만 개가 들어 있다. 혈소판은 비록 덩치는 작지만 다쳤을 때 피를 멎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피가 나면 재빨리 혈소판들이 손상된 혈관 벽에 달라붙고 첩첩으로 서로 엉겨 붙어 일단 피를 멎게 해준다. 이와 동시에 혈소판들은 혈장속에 존재하는 많은 혈액응고 인자들을 끌어 모아 혈액응고 덩어리를 만들어 확실하고 단단하게 지혈시킨다. 이후에는 손상된 혈관을 수리 보수하여 원래의 정상 혈관으로 회복시켜 준다. 혈소판은 어디에서 태어나서 이토록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일까? 이들도 다른 혈구들과 마찬가지로 뼛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골수에서 태어난다.
혈소판 수혈이 필요한 이유
만약 혈소판이 감소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다쳐서 피가 나게 되어도 지혈이 잘 되지 않아 심한 출혈로 고생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생명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다. 농축 혈소판 또는 성분채집 혈소판은 혈소판 감소증 또는 혈소판 기능장애가 있는 환자에게 지혈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백혈병 또는 재생불량성 빈혈, 항암제 치료, 악성종양의 골수침범, 원발성 골수형성부전증 등으로 인하여 혈소판수가 20,000/μL 이하로 감소된 환자들에게 혈소판 수혈은 아주 중요한 치료 방법인 것이다.
농축 혈소판이란?
농축 혈소판(platelet concentrate, PC)은 수혈용 혈액제제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혈액성분이다. 농축혈소판은 어떻게 만들까? 헌혈받은 전혈을 원심분리하면 적혈구 성분과 혈소판 성분 그리고 혈장 성분으로 나눌 수 있다. 혈액은행에서는 이들을 따로따로 분리하여 농축 적혈구, 농축 혈소판, 및 신선동결혈장 등 세 가지 종류의 유용한 혈액성분제제를 만들어 보존한다. 농축 혈소판은 따라서 전혈 중에서 혈소판 성분만을 모아 둔 혈액제제이다. 혈소판은 적혈구와는 달리 산소 공급이 필요하므로 산소투과율이 높은 특수 혈소판 보존백(bag)을 사용하여 지속적으로 천천히 흔들어 주는 장치인 혈소판 보존기에서 보존해야 한다. 적정 보존온도는 20-24˚C이며 5일간 보존할 수 있다. 농축 혈소판 한 단위(unit)에는 혈장이 약 50 mL이 들어있고 약 5 X 1010개의 혈소판이 함유되어 있다. 농축 혈소판 한 단위를 수혈하면 혈소판 수치가 약 5000 정도 올라가는데 충분한 혈소판 수치의 상승을 위해 대개 6-10단위의 농축 혈소판을 한꺼번에 수혈하게 된다. 따라서 한번 수혈하는데 6-10명이 헌혈했던 혈액이 섞여서 환자의 몸 속으로 주입되는 셈이다. 그런데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들은 치료기간 동안 거의 매일 혈소판 수혈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10일 동안 매일 6-10단위의 농축 혈소판을 수혈한다면 결국 그 환자는 60-100명의 혈액에 노출되게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HLA 항체
혈액 속에는 백혈구라는 것이 들어 있다. 이들은 세균, 바이러스 등 침입자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이들은 세포 표면에 HLA라는 조직적합성 항원을 가지고 있다. 골수이식 등 장기이식을 하기 위해서는 HLA가 일치되어야 하는데 HLA가 다른 장기가 이식되면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HLA는 사람마다 다르다. 단일민족인 우리나라에서도 HLA가 일치할 확률은 약 5만명 중에 하나라고 한다. HLA를 가진 백혈구들은 헌혈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가 혈액백(bag) 속에 들어가 있게 되면 대부분 1-2일 후에는 죽게 된다. 그러나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이들은 죽어도 HLA를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수혈이나 장기이식을 통해 우리 것과 다른 HLA 항원에 노출되게 되면 우리는 그 HLA 항원에 대해 항체를 만들게 된다. HLA 항체가 생기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혈소판 수혈을 많이 해도 혈소판 수치가 오르지 않는 이유: 혈소판 수혈불응증
농축 혈소판 등 백혈구가 함유된 혈액제제들을 여러 번 수혈받게 되면 그 만큼 많은 종류의 HLA 항원에 노출되어 여러가지 HLA 항체를 만들게 된다. 이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 HLA 항체들은 혈소판 수혈을 아무리 많이 해도 혈소판 수치가 올라가지 않는 혈소판 수혈불응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혈소판 수혈불응증이 있는 환자에게 혈소판을 수혈하면 수혈 직후에는 혈소판 수가 일시 증가하지만 하루도 채 안되어 다시 감소하게 된다. 계속해서 수혈 받아야 하고 또 그때마다 다시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HLA 항체가 왜 하필 죄없는 혈소판을 파괴시키는가? 혈소판들도 HL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몸 속에 만들어진HLA 항체들은 상응하는 HLA 항원을 가진 수혈된 혈소판들을 공격하여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혈혈액제제에서 백혈구를 제거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향후 많은 혈소판 수혈이 예상되는 환자들 특히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들에게 HLA 항체에 의한 혈소판 수혈불응증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백혈구가 제거된 수혈혈액제제들을 수혈하고 있는 것이다. 백혈구 제거용 필터를 사용하면 수혈혈액제제에 함유된 백혈구의 99.9%-99.99%를 제거할 수 있다. HLA 항체에 의한 혈소판 수혈불응증을 극복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 HLA 가 일치되는 사람의 혈액을 수혈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골수이식 공여자를 찾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니 등록 혈소판 헌혈자가 빈약한 우리나라 여건상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혈소판 수혈불응증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도 있다. 비장종대, 패혈증, 파종성 혈관내 응고 등도 혈소판 수혈불응증의 원인이 된다.
성분채집 혈소판(Apheresis Platelets)이 농축 혈소판보다 좋은 이유
백혈구 제거용 필터를 사용하여 수혈혈액제제에 함유된 백혈구의 99.9%-99.99%를 제거해도 백혈구는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는다. 즉 0.1-0.01%의 백혈구는 남게 된다. 이 정도의 적은 숫자는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의 HLA에 노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아무리 검사 방법이 좋아져도 간염 바이러스 또는 에이즈 바이러스 등에 대한 검사가 100% 완벽한 것은 아니므로 이들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제로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1회 수혈시 여러 사람이 헌혈한 혈액을 모아서 수혈하는 농축 혈소판 보다는 한 사람이 헌혈한 성분채집 혈소판을 수혈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성분채집 혈소판은 혈소판 헌혈(plateletpheresis)로 얻는다. 농축 혈소판 6-10 단위에 해당하는 약 3 X 1011개 이상의 혈소판을 1명의 헌혈자로부터 헌혈 받을 수 있으므로 그 만큼 HLA 항체 형성의 기회를 줄일 수 있고 바이러스 등 수혈전파성 질환의 감염 기회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혈소판 헌혈이 반드시 필요하고 애절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